캐롤 (Carol, 2015)

아름답고 확고한 사랑의 이름



1950년대 뉴욕, 맨해튼 백화점 점원인 테레즈(루니 마라)와 손님으로 찾아온 캐롤(케이트 블란쳇)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거부할 수 없는 강한 끌림을 느낀다. 하나뿐인 딸을 두고 이혼 소송 중인 캐롤과 헌신적인 남자친구가 있지만 확신이 없던 테레즈, 각자의 상황을 잊을 만큼 통제할 수 없이 서로에게 빠져드는 감정의 혼란 속에서 둘은 확신하게 된다. 인생의 마지막에, 그리고 처음으로 찾아온 진짜 사랑임을… (출처 : 다음영화)


'벨벳 골드마인 (Velvet Goldmine, 1998)', '파 프롬 헤븐 (Far From Heaven, 2002)' 등을 연출했던 토드 헤인즈의 신작 '캐롤 (Carol, 2015)'은 그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위태롭기까지 한 불안함 가운데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여성과 여성이 서로 사랑하는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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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을 이야기하면서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동성간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 가운데는 단순히 이성간의 사랑을 동성간의 것으로 대치한 경우가 있는 한 편, 반드시 동성간의 사랑이어야만 가능한 이야기가 있는데 '캐롤'은 후자의 경우다. 즉, 극 중 캐롤과 테레즈 중 누가 이성애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남성의 역할을 하는가 하는 질문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화제가 된 이동진 평론가의 보편적 사랑 즉, 사랑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 대상이 그저 여성이었을 뿐이다 라는 의견 역시 이 영화에는 적절하지 않은 해설이다. 동성애를 다룬 영화 가운데는 실제로 주인공이 동성이라서 사랑을 하게 된 경우가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도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부정하려 함에도 동성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일종의 성별과 무관한 존재로서의 사랑의 측면에서 그리는 경우도 있는데, 토드 헤인즈의 '캐롤'은 그 어떤 동성애를 다룬 영화 보다도 더 확고한 신념에 찬 영화였다. 테레즈와 캐롤은 자신들이 동성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이것은 단순히 이성과의 사랑이냐 동성과의 사랑이냐 가운데 50대 50의 선택이 아니라 확고한 100%의 사랑임을 (동성애임을) 또한 인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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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은 여성과 여성이 사랑하는 관계 안에서만 발생하는 것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서로에게 전하는 미묘한 손길과 시선 그리고 그 미묘한 행동들을 행하기 전까지의 세심한 갈등과 떨림 등은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를 통해 극도로 섬세하게 묘사된다. 현재 상영 중인 허우 샤오시엔의 '자객 섭은낭'과 마찬가지로 '캐롤' 역시 겉으로는 밋밋하고 큰 클라이맥스 없이 진행되는 듯 한 로맨스이지만, 사실은 내면에서 아주 섬세하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교류하는 과정을 역시 아주 섬세하게 연출하고 있는 영화다. 테레즈와 캐롤, 특히 테레즈의 모습을 얼핏 보면 캐롤을 사랑하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불안함을 겪는 것 처럼 보이는데, 그녀가 캐롤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마지막까지 실제로 행동하고 대화하는 것을 보면 오히려 얼마나 확고한 신념에 차 있는 지를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캐롤'은 동성애를 금기시 하는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느낀 동성애에 대해 혼란을 겪고 불안함을 느끼면서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테레즈와 캐롤이 그런 외적인 상황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사랑에 대해 단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고 아주 격렬하게 사랑하는 이야기에 더 가깝다. 즉, 표현 방법에 있어서는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편이지만 내면의 감정에 있어서는 오히려 확고하고 강렬한 사랑을 다룬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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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로맨스를 다룬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감동 받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눈물이 나올 정도로..) 오히려 휴먼 드라마나 액션, 스릴러 장르에 비해 사랑을 다룬 로맨스 영화가 눈물 흘릴 정도의 감동을 일으키는 것은 더 어렵다고 볼 수 있을 텐데, '캐롤'의 어떤 장면에서 갑작스럽게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의 마지막 즈음에 캐롤이 남편과의 결혼관계에 대해 정리하기 위해 각자의 변호사를 대동하고 자리를 갖게 된 장면이 그 장면이었는데, 이 글에서 계속 이야기했던 바로 그 '확고한 신념'이 아주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이 장면은 놀랍도록 강렬하고 감정이 요동칠 수 밖에는 없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테레즈를 만나면서 자신과 자신이 느낀 사랑에 대해 모든 것을 다하지는 못했던 캐롤이, 사랑에 대해 완전히 솔직해 지는 동시에 자신 스스로에 대해서도 더 건강한 선택을 하게 되는 이 장면이야말로 토드 헤인즈가 '캐롤'을 통해 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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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캐롤'은 어쩔 수 없이 저항하는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저항하는 영화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 영화다. 세상의 잘못된 시선과 잘못된 다수의 의견으로 인해 죄책감을 갖거나 불안해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당신은 잘못하지 않았어'라는 확고한 메시지를 담은.



1. Carter Burwell이 맡은 영화 음악도 예술이에요. 그가 만든 코엔 형제 영화의 음악들도 좋아했었는데 이번 OST도 정말 예술!

2. 올해의 캐스팅이라는 상이 있다면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를 꼽고 싶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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