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인형 (空気人形, 2009)
외로움에 관한 위로의 판타지


<원더풀 라이프> <아무도 모른다>를 비롯해 지난해 <걸어도 걸어도>에 이르기까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들은 매번 삶의 관한 깊은 통찰로 인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한 켠이 심하게 저려오는 현상을 일으키곤 했었다. 이런 그의 작품들을 함께 하다보니 자연스레 그의 팬이 되어버렸는데, 이런 그의 신작 <공기인형>에 대한 첫 인상은 사실 조금 의외라는 느낌이었다. 전작들로 미뤄 봤을 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세계관이란, 너무나 현실적이고 평범한 것들을 다루면서도 그 속에서 쉽게 찾아내지 못하는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진리의 조각을 찾아내 성찰하고 투영해내는 것이라고 느꼈었기 때문에, '공기인형'이라는 소재와 무언가 사이버 판타지스러운 느낌의 기본 골격은 왠지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역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변하지 않았다. '공기인형'이라는 특수한 소재를 가지고 다시 한번 인간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는 시선과 더불어, 화려함 속에 감춰진 일본 사회의 외로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텍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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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한 남자가 성생활 보조 도구로 구매한 '공기인형' 노조미가 어느 날 마음을 갖게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인형이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설정은 로봇이나 사이보그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설정인데, <공기인형>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공기인형>은 노조미가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 아니라 마음을 갖게 되어버린 공기인형 노조미를 통해 그녀를 둘러 싼 인간들의 외로움을 그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공기인형>에는 노조미 외에 여러 명의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하나 같이 외로움과 결여됨에 힘겨워 하는 이들이다. 젊은 여성에게만 관심을 보이는 분위기 탓에 점점 나이 먹는 것을 두려워 하는 노처녀, 역시 사회와 단절되어 애니메이션과 영화에만 빠져사는 오타쿠 청년, 거식증에 먹는 것으로만 하루를 보내는 히키코모리 여자, 홀로 어린 딸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 사람의 따스한 손길을 그리워 하는 노인, 현실과는 상반된 모습을 영화로나마 풀어내려는 경찰 그리고 공기인형을 마치 사람처럼 여기며 하루를 살아가는 남자까지. 모두들 결여된 부분이 있는터라 날이 서 있는 사회 속에 차마 섞이지 못하고 외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인생들이다. 사실 <공기인형> 속 캐릭터들은 이런 결여된 부분을 좀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각각의 특별한 배경이 주어진 경우지만, 실제로 이들의 이야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겹쳐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게 된다. 결국 차가운 도시를 살아가는 외로운 자들에 대한 깊은 연민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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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로움과 연민을 관통하는 캐릭터는 역시 노조미 (배두나)이다. 인형인 노조미가 마음을 갖게 되면서 그 갖지 말았어야할 마음으로 인해 겪게 되는 아픔들을 통해, 이미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 인간들을 거꾸로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런 외로움에 대한 해결책으로 끊임 없이 관계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결여 혹은 결핍이라는 것은 단순히 생각하면 부족한 것으로 여길 수 있겠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채워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결여의 테마를 '채운다'의 메시지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 공기인형인 노조미가 사고로 몸에 구멍이 나 바람이 빠진 뒤에 묘한 감정이 싹트고 있던 비디오 가게 점원인 '준이치'가 직접 바람, 아니 숨을 불어 넣은 행위는 매우 직접적인 표현 방식인 동시에 이런 '채운다'의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것이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숨'이라는 점은 이 이전과 이후, 그러니까 공기가 들어 있을 때와 숨이 담긴 이후의 모습이 확연히 틀린 노조미의 모습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그저 펌프질을 통한 바람이 담겨있던 '공기'인형 노조미는 인형처럼 움직이고 인형처럼 행동했지만, 준이치가 '숨'을 불어넣은 노조미는 혈색도 사람다워졌고 무엇보다 이전에는 없던 '표정'이 생겼다는 점에서 관계를 통해 보다 의미있어졌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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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공기인형'이 갖는 메시지는 누군가로 인해 '대체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인간 관계에 있어 누구나 내가 특별한 존재이길 바라지만 관계를 맺다보면 서로가 느끼는 존재감이 다를 수 있게 되고, 이런 것에서 상처를 받다보면 나중에는 영화 속 남자처럼,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스스로 홀로 되는 것에 익숙해져 버리게 된다. 여기서 고작 얻을 수 있는 위로라고는 '나 같은 이가 더 있다'라는 것 정도 뿐이다.

점점 세상을 배워가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 더욱 정확히 알게 된 노조미는, 이제 용기를 얻어 자신도 무언가 능동적으로 관계를 맺는 데에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긴다. 하지만 노조미의 이런 의지는 그녀의 바램과는 다르게 좋지 못한 결과로 이어진다. 그녀는 자신의 숨이 왜 누군가를 더 다치게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이로 인해 벌어진 결과 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태생적으로 결여된 존재였던 노조미에게 세상은 너무나 가혹한 곳이었고, 그녀는 이 가혹함을 가혹함으로 받아들이지도 못한채 사그라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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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항상 희망을 이야기하던 작가였다. <공기인형> 역시 얼핏보면 너무도 슬프기만 한 판타지로 보이기도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알 수 있듯 노조미는 그 주변을 둘러 싸고 있던 인물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홀씨를 남기는 계기가 된다. 어떠한 희생으로 인해 희망을 엿보게 된다는 것은 여전히 슬픈 일이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노조미가 남긴 홀씨를 희망으로 이어가야 한다고 이야기하려 하는 듯 하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마지막 노조미가 꾸는 환상은 너무나도 슬픈 장면이었다. 이때 까지 몇번 외로움에 울컥했던 나는 이 환상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없었다면 <공기인형>은 그냥 너무 슬프고 짠하기만한 판타지가 되었을 텐데, 이로 인해 영화는 그래도 위로 받게 되는 판타지가 되었다. 이 장면에 대한 감회는 사실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가 너무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매번 이런 지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장면에서 갑자기 눈물이 터져나오곤 한다. <공기인형> 역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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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몇 달 전 다녀왔던 일본의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 터라 더 남다르게 다가온 작품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느꼈던 그들의 외로움을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떠올려볼 수 있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밴드 'world's end girlfriend'가 참여한 사운드 트랙도 영화와 잘 녹아드는 모습이었다. 새로 작업한 곡들 외에 그들의 지난 앨범 'Hurtbreak Wonderland'의 수록곡도 만나볼 수 있어 더욱 좋았고. 배두나의 연기는 더 말할 것이 없더라. 확실히 아오이 유우나 미야자키 아오이 등이 할 수 없는 연기와 아우라가 배두나에게는 있다(단순히 노출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를 과감히 잡은 배두나의 선택은 역시 옳았다.


1. 'world's end girlfriend'가 참여한 사운드트랙은 참 좋습니다. 영화의 쓸쓸함과 위로를 모두 담아내고 있어요.

2. 사실 전혀 모르고 간 터라 조금 놀랐는데, 영화 속 노출이 생각보다 높더군요. 전 그것도 몰랐는데, 이 영화를 검색하려보니 '배두나 노출'이 연관 검색어로 뜨더군요. 여전히 작품은 보지않고 노출에만 열을 올리는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또 한번 한심스럽습니다.

3. 극중 배두나가 오다리기 죠를 찾아가는 장면에서는 <메트로 폴리스>나 <블레이드 러너>가 살짝 연상되기도 하더군요. 오다기리 죠의 기존 이미지에 많이 기댄 캐릭터는 그것 만으로도 훌륭한 캐릭터가 되더군요.

4. 마지막 노조미의 환상 부분은 <에반게리온> TV판 마지막 장면이 그대로 겹쳐지더군요. 그래서 더 왈칵 했을까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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