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1:0 슬로베니아


1. 팀 내분 및 실력저하로 최악의 월드컵을 보낸 프랑스에 버금갈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탑 클래스 팀이라면 잉글랜드를 바로 꼽을 수 있을텐데, 사실상 승리해야만 16강에 오를 수 있었던 슬로베니아전, 카펠로 감독은 기존 조별 경기와는 조금 다른 조합을 들고 나왔다.

2. 루니의 파트너로 헤스키 대신 더메인 데포를 선발로 내세웠고, 무엇보다 측면 미드필더로 발 빠른 아론 레논이 아닌 제임스 밀너를 투입했으며, 중앙 수비 역시 부상으로 빠지게 된 레들리 킹 대신 매튜 업슨을 내세웠다. 확실히 네임 벨류나 전체적인 임팩트면에서는 무게가 떨어지는 라인업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이번 월드컵 카펠로 감독의 가장 좋은 선택이 되었다.

3. 전반 23분, 새롭게 선발에 들어온 제임스 밀너의 크로스를 역시 선발로 첫 투입된 데포가 골로 연결시켰고, 이 골은 결승골이 되었다. 제임스 밀너는 그래도 경기 막판까지 측면에서 괜찮은 움직임을 보여주었는데, 그나마 그 정도의 활약이 있어서 윙백인 글렌 존슨이 좀 더 수비에 집중할 수 있었다.

4. 사실 카펠로의 잉글랜드를 보면서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윙백인 글렌 존슨의 전술적 중요도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잉글랜드의 강점이라면(강점이자 약점) 후덜덜한 네임벨류의 미드필더 진을 들 수 있을텐데, 그럼에도 윙백인 글렌 존슨이 거의 미드필더, 더나아가 측면 공격수 처럼 뛰는 전술은 수비 조직력이 그리 강하지 않은 잉글랜드의 전형에 있어서 그리 적합한 전술인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날도 초반에는 글렌 존슨이 계속 하프라인을 넘어와 공격수처럼 활약했었는데, 골을 넣고 나서는 좀 더 수비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5.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지만 사실 잉글랜드는 부상 선수 없이 모두가 승선했다하더라도 팀 조직력에 있어서는 항상 의문 부호를 갖게 하는 팀이었다. 자국 리그내에서 치열한 라이벌 관계에 있는 선수들이 많고(이런 비슷한 이유로 스페인도 국대는 스펙에 비해 좋은 성적을 못내곤 했는데, 최근 스페인은 자국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 만큼이나 해외에서 뛰는 선수가 많아 스페인이 좀 더 나아보이는 편이다), 팀으로서 조직력을 맞춰 볼 만한 시간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한 명 한 명은 대단하지만 잉글랜드라는 팀으로서는 그 스텟을 100% 활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6. 거기에다가 존 테리의 스캔들로 퍼디난드가 주장이 되었으나, 퍼디난드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제라드가 다시 주장을, 하지만 존 테리는 아직도 자신이 주장인냥 행동하려고 하고, 감독과의 묘한 갈등 관계 등 전반적으로 좋지 못했던 팀 분위기까지 겹쳐, 잉글랜드는 이번 조별 경기 내내 그리 좋은 경기를 하지 못했다. 1:0으로 승리한 이날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시종일관 답답한 경기였으며, 골찬스도 거의 없었고 깔끔하지도 못한 경기였다.

7. 여튼 경기 하루 전인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카펠로 감독에게 사과를 하며 다시 한번 경기에 집중하기로 한 존 테리의 의지는 엿보이는 경기였다. 전반 슬로베니아의 거듭되는 골 찬스에서 몸을 던져가며 육탄 방어하는 (본문의 메인 이미지로 있는, '인간어뢰 존 테리'로 불리는 바로 저 장면!) 모습에서는 적어도, 팀에게 미안한 마음에 헌신하려하는구나 라는 진정성은 엿보였다. 하긴 존 테리는 그런 남자였다. 물론 '남자'여서 문제된 것이기도 했지만.

8. 웨인 루니의 부진은 맨유 팬으로서 아쉬운 부분이었다. 사실 몇 번 골로 연결될 만한 장면이 있었는데 정작 골로 연결시키지 못했다는 것이 악제였다. 이런 분위기가 한 두 경기 이어질 수록 좋던 분위기마저 사라져버리기 마련인데, 이 날 교체해준 것이 어쩌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풀 타임으로 뛰면서 골을 넣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못 넣었을 경우를 생각해봤을 땐 차라리 미리 빼준게 나았을 듯). 어쨋든 16강에 오르게 되었으니 (더군다나 숙적 독일을 만나게 되었으니) 좀 더 파이팅 넘치는 진짜 루니 (인민 루니 말고)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9. 아, 그리고 중앙 수비수로 나온 웨스트햄 소속의 매튜 업슨은 확실히 큰 경기 경험이 많지 않아서인지 불안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는 마이클 도슨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만, 어쨋든 캐러거, 킹, 퍼디난드가 다 없는 상황에서 잉글랜드의 센터백은 불안불안 한 것이 사실이다.

10. 독일이 가나를 꺽고 16강에 오르면서 가장 기대되는 16강전 대진이 완성되었다. 잉글랜드 vs 아르헨티나를 능가하는 최고의 라이벌, 잉글랜드와 독일의 대진이 그것인데, 두 팀 모두 부진한 터라 소문난 잔치에 볼 것 없는 경기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두 팀 모두 이 라이벌 전을 계기로 오기로라도 예전의 경기력을 찾을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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