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밑 아리에티 (借りぐらしのアリエッティ, 2010)
지브리의 메시지는 계속된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신작 '마루 밑 아리에티'가 드디어 개봉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각본 및 기획을 하고 신예 감독 요네바야시 히로마사가 연출을 맡은 (신예라고는 하지만 단독으로 연출을 맡은 장편이 없었을 뿐, 지브리에서 15년 간을 애니메이터로 활약해온 준비된 감독이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미야자키의 아들이 연출을 맡았지만 실망스러운 평가를 받았던 '게드 전기'와는 달리 공개 시점부터 좋은 반응과 기대를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에게도 좋은 반응을) 모았던 작품으로, 자칭 지브리의 광팬인 나에게도 아니 기대할 수 없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요네바야시 히로마사가 연출을 맡기는 했지만 원작이 존재하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각본을 맡은 만큼 완전히 요네바야시 만의 작품으로 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마루 밑 아리에티'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연속성을 이어갈 만한 괜찮은 작품이기는 하나, 오랫동안 지속되는 문제인 '과연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계자는 누가 될 것인가?'라는 문제의 답으로 보기는 조금 어려운 작품으로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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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인형의 집을 바라보는 다양한 인간들의 시선에 주목한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전작인 '벼랑 위의 포뇨'에 비하면 상당히 더 어른스러워진 느낌이다. 여기서 '어른스러워졌다'라는 표현은 내적인 부분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전개나 분위기가 그렇다는 이야기인데, '벼랑위의 포뇨'가 내적으로는 죽음을 관통하는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아이들도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이야기였던 것이 비해, '마루 밑 아리에티'는 지브리의 오랜 메시지인 환경과 '살아라'라는 화두는 그대로지만, 겉으로만 보았을 때는 '포뇨'에 비해 아이들이 즐길 만한 요소는 확실히 부족한 느낌이다. 소인이라는 종족의 등장한 평소 우리가 접하는 모든 것들이 거대해졌을 때 느끼게 되는 쾌감은 전달해주지만, '마루 밑 아리에티'는 이 세계를 아름답고 신비하게 포장하는데에 생각보다는 크게 주목하지 않고 있다. 생각보다 이런 설정들이 활용될 만한 에피소드를 자제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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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좀 더 메시지를 지우거나 유쾌함으로 전달하려고 했다면, 소인 종족과 인간들의 만남에 있어서 화합의 에피소드를 강조했을텐데, 이 영화가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은 오히려 공포에 가깝다. 실제로 이 영화를 보는 어린이들은 아마도 처음으로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누군가에게는 아주 공포스러운 존재가 될 수도 있구나 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영화 속에서 나름 악당으로 등장하는 아줌마가 그려지는 방식이야 그렇다쳐도, 주인공인 '쇼우'의 첫 등장 장면은 그야말로 공포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아주 쇼킹한 방식으로 그려지는데 (실제로 이 장면에서는 객석 여기저기서 '무서워'라는 말이 터져나오더군요),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지브리가 인간을 그릴 때 자주 묘사했던 방식처럼 인간이라는 존재의 공포 (특히 다른 종족이나 사물, 세계 등과 비교했을 때는 더욱)를 '마루 밑 아리에티'에서도 여전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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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부터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마루 밑 아리에티'에 담긴 정서는 확실히 쓸쓸하다. 한창 때의 디즈니 영화처럼 '그리고 오랫동안 행복했습니다~'라는 식의 이야기는 여기서 찾아볼 수 없다. 보통 같으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소인세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주인공에 의해 인간과 소인이 모두 행복하게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겠지만, 이 작품은 이것보다는 훨씬 현실적이고 세기말적인 느낌을 전달한다. 특히 가장 눈여겨 볼 점은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소인인 '아리에티'와 교감을 맺고 있는 주인공 '쇼우'가 죽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좀 더 드라마틱한 만화적 전개라면 소인들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쇼우의 심장병을 치유라도 해주겠지만, 보시다시피 영화 속 소인들에겐 아무런 능력도 없다. 그들은 단지 인간에 비해 몸의 크기가 매우 작을 뿐이다. 그리고 영화는 말미에 가서도 쇼우에게 확실한 건강을 허락하지 않는다. 쇼우는 그저 힘내겠다 라는 말을 남길 뿐이다. 오히려 이 마지막은 죽음을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한다. 

유일하게 자신과 다른 세계를 인정하고 공존하려했던 인물이 죽어간다는 것은, 이 영화가 주는 쓸쓸하고 씁쓸한 느낌의 핵심인 부분이다. 아, 그리고 아까 이야기했던 인간의 공포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쇼우의 첫 등장장면 만큼이나 쇼우와 아리에티의 대화 장면에서 그 공포와 잔인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아리에티에게 너희와 같은 소인 종족이 멸종해 가는 종족이라는 점을 아주 잔인할 정도로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은, 속으로 '와, 아이들도 보는 영화인데 너무 무서운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놓고 '너흰 죽어가고 있어'라고 이야기하는 터라 정말 놀랍기까지 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쇼우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아리에티의 가족이 결국 화해나 공존을 포기하고 이사를 선택한다는 것은 희망적이라기 보다는 세기말적인 쓸쓸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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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와중에도 지브리가 포기하지 않고 있는 또 다른 교훈인 '살아라'의 대한 것과 다른 세계를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것이 진정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메시지 역시 여전하다. 쇼우의 행동에서 이러한 메시지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쇼우는 직간접적으로 아리에티를 도우려고 하지만, 마지막의 순간에는 아리에티가 직접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선에서 자신의 역할을 마무리 한다. 아리에티의 엄마가 아줌마에 의해 잡혔을 때도 직접 아줌마를 따돌리고 엄마를 구해서 아리에티 앞에 턱 하고 놓을 수도 있었고, 더나아가 악당인 아줌마를 할머니에게 고자질해 아줌마를 집에서 떠나게 하고, 아리에티 가족과 함께 잘 살 수도 있었고, 그것이 아니라면 이사를 위해 험난한 여정을 가야만 할 아리에티의 가족을 새로운 보금자리로 더욱 안전하게 도울 수도 있었으나, 쇼우는 그냥 길을 터주고 미련 없이 보내는 것을 택한다.

지브리가 택한 방식은 매번 이런 방식이었다. 어려움에 처했거나 약자를 돕는 방식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주인공이 나서서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보다는, 약자가 스스로 이겨나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것 말이다. 물론 쇼우도 맘은 그렇지 않았지만 첨부터 이런 지혜를 완전히 깨우친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직접 해결해주기를 원해서 각설탕을 그대로 전달해 주기도 했으나, 처음 쇼우가 준 각설탕과 마지막에 준 각설탕의 의미는 확실히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첨에 준 각설탕은 말그대로 '너희가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내가 줄께'라는 식의 것이었지만 (그래서 아리에티는 쉽게 받을 수 없던 것이었지만), 마지막에 준 각설탕은 아리에티와 이런 모험과 교감을 겪고 나서 진심으로 전하는 '선물'의 의미, 즉 '그 땐 내가 경솔했어, 하지만 이제는 내 진심을 받아줄 수 있지?'라는 마음과 함께 전달되는, 그래서 아리에티도 더이상 '빌려가지' 않고 오전히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도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내내 '빌려가는'것으로만 살아왔던 이 두 종족의 관계가 더 이상 빌려가고, 도둑질 해가는 것이 아닌 선물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가 된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이런 교감을 나눈 쇼우는 죽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마루 밑 아리에티'는 희망과 절망을 모두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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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히사이시 조 없는 지브리의 사운드트랙은 기존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원작이 영국의 동화작가 '메리 노튼'의 판타지 소설인 것과 더불어 사운드트랙을 맡은 프랑스 출신의 여성 아티스트 '세실 코벨'의 음악은, 기존 지브리의 작품들 보다 훨씬 더 유럽풍의 인상을 준다('하울의 움직이는 성'보다도, 유럽을 배경으로 했던 '붉은 돼지'보다도 더하다). '썸머워즈'에서 목소리 연기를 맡았던 카미키 류노스케 군은 주인공 '쇼우'를 연기하고 있으며, '도쿄 타워'와 '걸어도 걸어도'에서 좋은 연기를 펼쳤던 키키 키린은 나름 악당인 '하루' 아줌마 역할을 맡아 열연하고 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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