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클 분미 (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 2010)
공존을 경험하다


'엉클 분미'를 보았다. 아니 경험했다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리겠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엉클 분미'는 한편으론 굉장히 복잡하고 난해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자면 (그리고 정치적인 메시지마저 제외한다면) 의외로 단순한 구성의 영화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쨋든 '엉클 분미'는 개인적으로 단 번에 글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작품이었다. 특히 '엉클 분미' 만으로 이 작품을 평가하기보다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다른 작품들을 다 본 이후에야 연장선상에서 평가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리고 극중에서 비교적 노골적으로 묘사된 태국의 정치적 배경을 알고 있어야만 비로소 '엉클 분미'를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보았다'라기 보다는 차라리 '경험했다' (몸을 맡겼다)라고 보는 편이 더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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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들판에 묶여 있던 소 한마리가 줄을 풀고 정글로 도망갔다가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다시 잡히는 과거의 시퀀스로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는 주인공 분미 아저씨와 인물들이 등장해 얼핏 전생의 이야기를 흘리는 것으로 보아, 이 오프닝 시퀀스인 소의 이야기 역시 누군가의 전생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한참 분미의 이야기에 장단을 맞춰 가려 할 때쯤, 영화는 죽은 그의 아내와 원숭이에게 홀려 역시 원숭이가 되어 나타난 아들 분쏭과의 이상하지만 자연스러운 공존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자면 이 이상한 만남을 (혹은 이루어질 수 없는 만남을) 영화 속 인물들은 전혀 거리낄 것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죽은 아내가 갑자기 귀신으로 저녁 식사 자리에 나타나고 아들 역시 원숭이의 모습을 해 나타나지만, 분미를 비롯한 이들의 반응은 그저 '오랜만이네' 라는 식일 뿐이다. 이 이후에도 영화는 이런 이질적인 (적어도 현실적, 일반적으로는 이질적인) 만남과 공존에 대해 매우 자연스러운 시각으로 임하고 있다. 

이런 영화적 자연스러움으로 인해 적어도 관객은 '아, 이런 공존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구나'라는 간단한 사실을 서서히 인지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 다음부터는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공감'이라는 감정이 더해지게 된다. 그러니까 더이상 귀신이나 원숭이가 아니라 아내이자 아들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물론 왜 원숭이가 되어야 했는지 등에 관한 이유에 대해서는 따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영화의 전체적인 구성과 메시지를 떠나서 적잖은 감동을 준다. '내가 죽어서 당신을 못찾으면 어떻하지?'라고 말하며 아내를 꼭 껴안는 분미의 장면을 볼 때면, 찰나이긴 하지만 다른 모든 복잡한 요소를 재쳐두고 이 한 마디의 대사가 주는 영향력의 범주에만 오롯이 머물 수도 있다. 따지고보면 죽은 아내를 본인이 죽기 전에 이렇듯 만날 수 있는 공존의 기회야 말로 누구나 꿈꾸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엉클 분미'는 신파적인 요소가 1%도 없음에도 이런 애틋한 감동마저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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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후에도 갑자기 한 공주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 이상한 시퀀스 역시 누구의 전생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볼 수 있지만 그 대상이나 주체가 명확하지는 않다. 이렇게 꿈 혹은 전생의 주체를 명확히 하지 않은채 이야기를 들려주던 영화는 후반부에 가서는 매우 노골적인 정치적 시퀀스를 삽입하는데, 태국의 정치적 배경을 잘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갑자기 군복을 입은 요즘의 청년들이 등장하는 스틸컷 형식의 시퀀스는, 형식적인 이질감으로 인해 더 직접적인 느낌을 준다. 그 이전에 분미가 '예전에 공산주의자들을 많이 죽여서 업보를 겪는거야'라는 대사 역시 매우 노골적인 부분이었다. 

그리고 영화적으로 가장 환상적이었던 동굴 시퀀스. 이 시퀀스는 촬영이나 조명 등 기술적인 측면으로만 보아도 '와, 영화를 이렇게 만들 수도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었는데, 이를 떠나서 영화 내적으로도 영화의 감정선이 가장 최고조에 달했던 클라이맥스였다. 그런데 영화는 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고 난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는 에필로그 같은, 그리고 이질감마저 느껴지는 호텔방의 시퀀스를 더 보여주는데, 이 마지막 장면은 참 의미 심장하다. 장면 속 인물들이 바라보는 TV속 현실 사회의 모습과 유체이탈을 하여 이런 자신들을 바라보는 이 장면은, '바라본다'라는 측면에서 묘한 또 하나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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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아마 좀 더 '영화적'이고 영화 자체가 지닌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춘 작품이었다면, 동굴씬에서 끝났어야 했을 것이고 늦어도 바로 이 호텔씬에서는 마무리 되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영화적'인 성취보다 더 현실적인 메시지에 대한 성취 의도가 높았던 작품이었다. 그리하여 영화는 그 이후에도 현실에 대한 장면을 더 이어간 뒤 막을 내린다. 그래서 이에 대한 배경의 이해가 부족하다면 이 마지막 시퀀스는 아무래도 일종의 여음구나 이질감으로 느껴질 수 있겠다 (실제로 내가 조금 그랬다). 아마도 태국이라는 나라가 겪어왔던 과거와 겪고 있는 현재의 이야기를 좀 더 알았더라면 내게 '엉클 분미'는 더 풍부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은 충분한 영화적 재미와 성취감을 안겨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2시간이 조금 못되는 시간 동안, 다양한 존재와 시간, 차원들의 공감을 경험하게 해준다. 

이것만으로도 내게 '엉클 분미'는 참 아련한 영화였다.



1. 나중에 영화를 보고나서 관련 배경에 대한 내용들을 찾아보았는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 많았으나 영화를 볼 때 제가 그대로 느꼈던 (어찌보면 무지에서 나왔던) 경험적 감상을 중시하는 측면에서, 이 부분은 글에 담지 않았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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