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 오브 라이프 (The Tree of Life, 2011)

경이로운 우주 속 나를 느끼다



테렌스 맬릭의 신작 '트리 오브 라이프 (The Tree of Life, 2011)'는 한 마디로 경이로운 작품이다. '트리 오브 라이프'는 신과 인간, 생명의 탄생과 죽음, 우주의 탄생과 진화 등 거대하기만한 담론들을 모두 담고 있는데, 한계를 두고 소박한 방식으로 풀어내기 보다는, 이 담론들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메시지들을 용감하게 정면으로 받아들이며 2시간이 조금 넘는 한정적인 시간 속에서도, 이들이 담고 있는 메시지의 힘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 작품이었다. 얼핏 설명만 들어도 굉장히 거창한 부가설명이라고 느낄 수 있을텐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테렌스 맬릭은 이 거창할 수 밖에는 없는 담론을 굳이 소박한 것이나 개인적인 것으로 대체하지 않고 정공법으로 메시지를, 그리고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거창해 보이는 것이, 아니 실제로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거창한 것이 맞다. 이런 논리로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이 작품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삶과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대단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인지, 그리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크기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느끼게 해준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는 나와 삶, 나와 우주의 간격을 이 영화는 고스란히 보여준다.



ⓒ River Road Entertainment . All rights reserved


'트리 오브 라이프'를 종교적인 영화로 규정 짓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결코 종교적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종교가 있기 이 전에, 아니 인간이 만든 종교라는 것은 한없이 미치지 못하는 우주의 탄생과 생명의 기원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종교적인 면을 들자면 '신(God)'의 관한 것일 텐데,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신은 종교의 범주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적 의미로서 혹은 모든 질문에 답을 갖고 있는 존재로서 그러하기 때문에, 이 작품을 단순히 종교적 영화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영화 속 우주의 탄생 (지구의 탄생으로 볼 수도 있지만, 영화가 말하려는 담론이 지구에 국한된 것 같지는 않다)을 묘사한 부분은 경건한 클래식 음악과 함께 장엄하게 펼쳐지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시퀀스가 그 어떤 자연과학 교제 보다도 더 깊고 교육적으로 느껴졌다. 즉, 감정적으로 뿐만 아니라 지식, 정보 적인 측면에서도 유익한 시퀀스라고 느껴졌다는 얘기다. 그냥 말로만 듣는 다면 브래드 피트와 숀 펜이 나오는 철학적인 드라마에 공룡이 등장한다는 사실이 매우 어색하고 뜬금없이 느껴질 수 밖에는 없을 텐데, 이 영화에서는 이 두 가지가 공존하지만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내러티브에 있어서나 감정적 선에서 보나 큰 틀에서 연장선에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공룡은 단순히 신비하고 호기심을 갖게 하는 존재가 아닌 이 같은 흐름으로 인식하게 되고, 이후 인간의 이야기로 넘어오는 것에서도 무리함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 River Road Entertainment . All rights reserved


그렇게 신과 우주의 이야기를 펼쳐놓은 영화는 본격적으로 소우주라 할 수 있는 인간의 삶을 비춘다. 한 가족의 이야기를 보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새로울 것 없는 갈등 구조와 시간에 흐름에 따른 보편적인 서사구조를 갖고 있었음에도, 치명적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이다. 이 가족의 이야기는 사실상 장남의 시점에서 진행이 되는데, 이 아이가 커가면서 부모와의 관계, 형제들 사이에서의 관계, 세상을 받아들이는 관계 그리고 자아의 갈등을 겪게 되는 과정들이, 한 수 한 수 놀라운 디테일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이 와중에도 영화가 전반적으로 갖고 있는 메시지의 기반에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 더욱 놀라웠다. 장남의 시점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일들과 심리적 변화 들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매우 익숙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보편적이지만 미묘한 시간들을 '트리 오브 라이프'는 완벽한 줄기로 그려내고 있다. 앞선 시퀀스에서 경이로움을 느꼈다면, 이 시퀀스에서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공감과 인생의 무게감을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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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트리 오브 라이프'는 찰리 카우프만의 '시네도키, 뉴욕'과는 다른 의미로 완전히 압도 당해버린 작품이었다. '시네도키, 뉴욕'이 자아를 파고들어 결국 정말로 끝까지 도달하여 정신적으로 엄청난 압박감과 함께 내 속을 누군가에게 다 속속들이 들켜버린 듯한 허탈감과 무력함을 느끼게 해주었다면, '트리 오브 라이프'는 평소 삶에서는 미처 체험할 수 없었던, 또 안다고 해도 절대 다 안다고는 말할 수 없었던 수 많은 간극을 영화적 체험을 통해 조금이나마 피부로 느끼게 해준 경우라 하겠다. 다시 말해 '트리 오브 라이프'가 말하는 방식은, 인간이란 존재와 이를 둘러싼 우주와 자연의 섭리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간극이 '있다'라고 마무리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간극을 설명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우리의 삶과 이를 둘러싼 모든 것(자꾸 '둘러싼 모든 것'이라 얘기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얘기하는 담론이 천제적 측면의 우주라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신과 생명의 범주까지 모두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들 간에는 유한한 거리로 설명되지 않는 '무한의 것'이 있다 (여기서 '있다'라는 단어의 의미는 앞선 '있다'와는 다르다)라는 얘기다.

직접 쓴 이 단락에서 느꼈다시피, 이것은 결코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님도 알 수 있다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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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을 보태지 않고, '트리 오브 라이프'를 보고 나오는 길에 다시금 바라본 세상은 분명 달라져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 아무 느낌 없던 그 세상이 분명 아니었다. 이렇듯 테렌스 맬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고, 언제나 그러했던 광대한 우주의 존재를 느끼게 하는 작은 선물 같은 영화였다. 그리고 그 안에 '나'라는 존재 역시 느낄 수 있어 형용할 수 없는 위로와 떨림마저 고스란히 전해졌던 경험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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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앞서서도 이야기했지만 만약 나중에 제 아이가 생기게 되, 우주와 인간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주어야 할 일이 생긴다면 이 영화를 소개해주고 싶어요. 물론 아이에겐 어렵겠지만, 아니 더 쉬울 지도 모르겠네요.

2. 아름답다라고 밖에는 할 수 없는 영상과 함께 했던 영화 음악도 참 좋았어요. 국내에는 사운드트랙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결국 아마존으로 가야할 것 같네요 ㅠ


 



3. 극 중 브래드 피트의 둘째 아들로 나온 아역 배우는 실제 피트의 아들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닮았더군요. 이 아이의 표정 연기가 참 좋았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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