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니클 (Chronicle, 2012)
소년이여, 진짜 영웅이 되어라
27살 신예 감독 조슈아 트랭크의 데뷔작 '크로니클 (Chronicle, 2012)'에 처음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초능력' 때문이었다. 물론 예고편에서 살짝 맛을 보여주었던 안티 히어로 영화로서의 면면도 기대가 되기는 했지만, 1차적으로는 소년들이 초능력을 얻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무겁지 않게 그리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소년'이었다. 소년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본인 스스로도 아직 소년의 감성이 풍부한 27살의 조슈아 트랭크는, 초능력이라는 매력덩어리를 21세기 사회에서 빠르게 소외되고 도태되고 또 빠르게 얻고 그 만큼이나 빠르게 잃어버리는 것을 겪고 있는 미성숙한 소년들의 이야기에 녹여냈다. 그리고 흥미 위주로만 흘려버릴 수 있었던 이야기에(그랬어도 충분히 재미있었을 이야기를) 깊이와 무게를 담아내는 것까지 적지 않게 이뤄냈다. '크로니클'을 보고 '아키라'나 '파수꾼'을 떠올리는 것은 그래서 이상할 것이 없다.
'크로니클'의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술로 사는 아버지와 병상에 누워 있는 어머니, 그리고 학교에서는 친구도 없이 따돌림 당하던 주인공 앤드류가 우연히 두 친구와 함께 초능력을 얻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과, 그 이후의 일들이다. 일단 10대의 시선에서 바라본 초능력과 이들이 이를 활용하는 장면들은 제법 신선했다. 이들은 정말 우연한 기회에 초능력을 얻게 되었기 때문에 이 능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더 나아가 이 능력을 어떤 범위와 한계와 규칙을 통해 사용해야 할지에 대한 기준도 규칙도 없는 상황이다. 즉, 애초부터 이 초능력을 사용해 세상을 구해야겠다 라는 심오한 가치도 없었음은 물론, 정반대로 나쁜 짓에 활용해서 쉽게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 조차 없었다는 얘기다. 기존 초능력과 관련한 영화들은 이 부분을 크게 신경쓰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거나 좀 더 무거운 주제의식을 갖고 있는 경우들이 많은데, '크로니클'은 이보다는 미성숙한 소년들이 통제할 수 없는 능력을 얻게 되었을 때에 더욱 주목한다. 그래서인지 앞서 이야기했던 바와 같이 이들이 초능력을 얻고 사용하는 장면들에서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발단한 현실감이 느껴진다. '내가 만약 이들과 같은 초능력을 갖게 되었더라면?'이라는 질문에 대해 현실적으로 가장 가까운 답이랄까.
많은 이들이 '크로니클'을 이야기할 때 '페이크 다큐'라는 장르를 이야기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페이크 다큐로 정의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페이크 다큐라는 건 SF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설정들과 세계관이 마치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현실적인 다른 도구들을 통해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크로니클'은 초능력이나 SF적 설정이 핵심인 영화가 아니라 그 역시도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영화이고, 현실처럼 그려서 더 높은 효과를 내려는 의도보다는 그냥 '현실'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페이크 다큐와는 분명한 차별점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페이크 다큐라는 이야기를 듣는 가장 큰 이유라면 역시 영화 속에서 주인공 앤드류를 비롯해 대부분의 장면들이 극중 인물들에 의해 캠코더로 촬영된 설정의 장면들이기 때문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을 장르로서가 아니라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의 측면으로 이해했다. 영화 속 앤드류는 친구도 거의 없고 오히려 따돌림을 당하는 외로운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앤드류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상대로 자기 자신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기록하고자 한다. 나중에 친구들은 앤드류에게 '그만 좀 찍어'를(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온 대사 중 하나일듯) 여러 차례 반복하지만, 초능력을 얻게 된 이후에도 앤드류는 촬영을 멈추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크로니클'에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초능력'보다도 '촬영' (혹은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혹은 너무 빠르게 생기고 사라지는 세계에서 나를 드러내고 기억하고자 하는 생존 본능 같은 것이 '크로니클'의 영화 속 '촬영'에는 담겨 있다.
이것이 따듯한 시선인지 아니면 더 냉소적인 시선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는 단 한 순간도 앤드류를 카메라 속에서 놓치지 않는다. 앤드류가 스스로를 촬영할 수 없을 때 조차, 병원의 CCTV 등으로 앤드류를 담아낸다. 앞서 따듯한 시선인지 냉소적 시선인지 모르겠다고 한 이유는, 앤드류의 마음처럼 영화가(아무도 신경써주지 않더라도, 영화라도!) 끝까지 앤드류를 담아내고자 하는 노력에서 소외된 이들에 대한 따듯한 시선이 느껴진 동시에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 조차 앤드류를 바라보는 것은 사람이 아닌 CCTV라는 점에서 결국 더 많은 앤드류가 잠재하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음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화의 전반적 시선은 어두웠을지언정 감독은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내려 했음을 앤드류의 사촌이자 친구인 '맷'에게서 엿볼 수 있었다. 맷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심을 잡고 있는 캐릭터이자 어쩌면 감독이 영화의 메시지를 실현하는데에 가장 핵심적 역할을 부여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읕 텐데, 영화 속 맷은 오히려 초능력을 얻고 나서 더 성숙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성숙함이 초능력으로 부여된 듯!). 스스로도 그 간 자신이 너무 유치하거나 생각없이 행동했던 일들을 반성하고, 앤드류를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정말로' 솔직한 자세로 임하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우연히 얻은 초능력에 대한 깊은 책임감을 갖게 된다 (물론 스티브에게는 그럴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맷이 느끼는 그 진정성만은 분명히 앤드류의 분노 만큼이나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영화의 후반부는 결국 소년 시기를 각기 다른 방법으로 마무리하는 두 주인공의 치열한 대립으로 치닫는다. 앤드류는 분노로 가득차 있던 소년 시기를 강력한 초능력으로 인한 우월함에 세상을 향해 폭주하며 소년이기를 벗어나려 하고, 맷은 그런 앤드류에게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고 앤드류를 지키려는 동시에 스스로도 자연스럽게 어른이(긍적적 의미의) 되는 과정을 그린다. 그래서인지 앤드류와 맷, 혹은 앤드류와 세상이 대립하는 이 마지막 시퀀스의 강렬함은 생각보다 더 인상 깊었다. 앤드류에게서는 이해할 수 있는 분노가 느껴졌고, 맷에게서는 역시 그래야만 하는 그의 책임감이 절절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퀀스는 초능력과 액션이 오가는 장면 치고는 눈물이 날 만큼 절절했으며 떨림이 객석까지 전달됬다.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Davis Entertainment 에 있습니다.
'개봉 영화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건축학개론 _ 나의 첫사랑과 90년대에게 바침 (11) | 2012.03.26 |
---|---|
용문비갑 _ 아 그리운 신용문객잔이여 (5) | 2012.03.21 |
화차 _ 삭막한 사회 속 잊혀져 가는 존재에 대한 연민 (6) | 2012.03.14 |
존 카터 _ 더 재밌을 수도 있었던 전쟁의 서막 (0) | 2012.03.12 |
휴고 _ 마법같은 영화는 지금도 계속된다 (3) | 2012.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