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의 봉인 (The Seventh Seal, 1957)

여정의 끝이 아닌 과정을 담은 영화



그 동안 제목만 무수히 들어왔던 영화.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그 영화를 수식하는 말은 많이 들어왔던 영화. 잉마르 베리만의 '제7의 봉인 (The Seventh Seal, 1957)'은 내게 그런 작품이었다. 이 영화를 본다하더라도 극장에서 보게 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못했었는데, 백두대간이 마련한 좋은 기회를 통해 2012년 개봉하게 되어 스크린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다. 영화에 애정을 갖게 되면서 자연스레 고전이라 불리우는 예전 영화들을 찾아보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는 '역시 걸작이라 불리는 이유가 있었구나'라며 감탄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작품이 시대를 뛰어넘기 보다는 당시에만 머물러 있는 영화도 있어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접한 경우도 있었다. 사실 '제7의 봉인'을 보기 전에는 신과 죽음 등 무거운 주제를 다룬 영화라는 예상 탓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보게 되었는데, 의외로 시종일관 유머가 사라지지 않는 작품이었으며 20세기 최고의 씨네아스트 답게 시대를 뛰어넘는 영화적 아름다움을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 백두대간. All rights reserved


신의 침묵에 대한 깊은 성찰과 질문이 담긴 '제7의 봉인'은 그 주제 만으로도 상상하기 힘든 심오함의 무게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잉마르 베리만은 이 성찰의 여정을 오묘하게 그려냈다. 굳이 신과 관련된 질문이 아니더라도 감독의 깊은 성찰이 담긴 작품의 경우, 그 무게를 영화가 감당하는 방법에 있어 힘겨움을 반드시 동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영화의 능력 부족이라기 보다는 힘겨움으로서 표현해야할 주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제7의 봉인' 역시 그러한 방식이 아닐까 섣불리 예상했었지만 잉마르 베리만의 방식이 오묘하다는 것은 유머러스함과 아이러니를 전면에 배치하다시피 하면서도 이 여정 속에 주제가 갖는 무게를 관객이 고스란히 받아들이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즉, 극 중 등장하는 광대의 이야기가 영화의 주제에 아주 밀접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는 하지만, 이 광대의 이야기를 들어내고 죽음과 체스를 두는 기사 '블로크 (막스 폰 시도우)'와 그의 종자 '옌스 (군나르 뵈른스트란드)의 이야기를 꾸려가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와 신의 침묵에 대해 깊은 질문을 던지는 블로크의 여정은 그 나름대로의 구성을, 광대와 그 가족의 이야기는 또 나름대로의 플롯을 가지고 성립이 가능하도록 구성된 동시에 두 이야기가 하나로 만났을 때 만들어내는 메시지는 다르지 않음을 만들어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이 접점을 만들어낸 방식이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게 연결고리가 강하지 않고 느슨한 듯 하지만 처음 부터 끝까지, 다르면서 같고 같지만 다른 두 가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매우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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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죽음으로 데려가기 위해 온 사신과 두는 체스라. 곰곰히 생각해보면 잉마르 베리만이 체스라는 소재를 이 관계 속에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한 것은, 자신의 오랜 성찰의 결과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 성찰 과정 자체를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죽음이라는 것은 어차피 과정 보다는 결과라고 할 수 있고, 체스 역시 결과로 말할 수 있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잉마르 베리만은 어쩌면 정해져 있는 두 가지 결과의 대화를 통해 그 과정에 담긴 수많은 질문과 성찰을 담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제7의 봉인'의 결과는 그 과정 보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블로크는 단순히 자신의 죽음을 미루고자 꼼수를 부려 사신과 체스를 제안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묻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며, 애초부터 결과(죽음)를 바꿔보려는 생각은 없었던 것 처럼 보인다. 답을 말하지 않는 영화에는 여러가지 경우가 있는데, '제7의 봉인'은 그 답이 무엇이었던 간에 그 답보다 의미있는 과정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오래 기억되는 작품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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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신과 바닷가에서 처음 체스를 두는 그 유명한 오프닝 장면은 정말 인상 깊더군요. 그 설정이 주는 인상과 흑백의 명암이 주는 아름다움이 모두 인상적인 장면이었어요.


2. 막스 폰 시도우의 젊은 모습은 아무래도 적응이 안되더군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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