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게리온 : Q (ヱヴァンゲリヲン新劇場版:Q Evangelion: 3.0 You Can (Not) Redo, 2012)
종극을 앞두고 다시 처음에 선 신지
지난 해 국내 개봉을 못 참고 먼저 일본에 가서 보고 온 '에반게리온 : Q'를 국내 개봉 전에 두 번 더 보게 되었다. '에반게리온 : 파 (破)'의 충격을 안고 살아오기를 약 3년. 과연 그 이후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는 그 이야기만 꺼내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엄청난 전율을 안겨준 작품이었는데, 드디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나기사 카오루의 이야기와 그 다음을 가늠하기 어려운 신지와 레이의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 될 지를 기다릴 수 없어 일본으로 먼저 갈 수 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 국내 개봉으로 100%의 내용을 확인하게 된 'Q'는 뭐랄까, 신극장판의 첫 작품인 '에반게리온 : 서 (序)'와 조금 닮아 있었다. 구성 상으로 말이다. '서'는 '파'를 위한 좋은 준비 과정이었고 신극장판의 시작으로 나쁘지 않은 작품이었으며, 그 어떤 작품보다 싱크로율을 주의 깊게 다룰 수 밖에는 없는 성격의 작품이었다. 이번 'Q'를 보며 '서'를 떠올린 것은 그 때문이다. 'Q'는 신극장판의 마지막 작품인 ':ll '를 준비하는 과정의 작품이자 또 한 번 싱크로율, 즉 마음과 마음을 맞춰가는 과정에 집중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하긴 따지고 보면 에바는 항상 그랬다. 가장 중요한 건 언제나 '마음' 이었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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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의 마지막 장면은 신지가 드디어 자신을 끝까지 밀어 붙여서 레이를 구해내는 데에 전력을 쏟아, 그 결과 서드 임팩트가 발생하는 것이었다. 'Q'는 그 이후 14년의 시간이 지난 뒤 다시 깨어난 신지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즉, 관객은 그 14년 동안의 이야기를 신지와 마찬가지로 주변 인물들에 의해 전해 들을 수 밖에는 없다. 여기서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아이러니 (혹은 갈등 구조)가 시작되는데, 그 동안 항상 두렵고 용기가 없어서 한 발 물러서기만 했던 신지가 처음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데로, 자신이 좋은 그대로 실행한 것이 레이를 끝까지 구해내려 한 것이었는데, 바로 이 행동이 많은 사람들이 막고자 했던 서드 임팩트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야기 내내 문제(?)로 지적되었던 (난 신지를 두고 찌질 하다고 하는 것에 단 한 번도 동의한 적이 없기에) 신지의 우유부단함과 용기 부족이 해결되는 순간, 가장 큰 인류의 재앙이 발생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대립하는 관계는 후에도 등장하는데, 이것은 이전 TV시리즈에서는 없었던 새로운 갈등 구조로서 어쩌면 이미 스스로를 이겨내는 정말 힘겨운 과정을 겪었던 이카리 신지에게는 더 큰 시련이 아닐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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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에 등장하는 신지는 분명 각성한 신지다. 즉, '파' 이전에 신지와는 확연히 다른 신지라는 얘기다. 만약 이전의 신지였다면 'Q'에는 신지가 멘붕에 빠져 러닝 타임 내내 자신의 마음을 안으로 안으로 갉아 먹을 만한 사건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서드 임팩트와 동시에 스스로 각성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제 3의 소년 신지는, 이런 일들로 이전처럼 한 없는 림보에 빠지지 않는다. 잠시 충격을 받을 뿐이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좋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비교적 빠르게 실행에 옮긴다. 이런 신지에게 이번 이야기에서 가장 큰 도움이자 위로가 되는 존재는 바로 카오루다.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이러한 역할(신지를 위한)로 규정하고 있는 카오루 답게, 이번 작품에서 카오루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만약 신지가 14년이 지난 뒤 네르프가 아닌 미사토와 아스카가 있는 뷜레에 남았더라면 이 보다 더 큰 정신적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지는 또 다른 레이라 불리 우는 이로 인해 네르프로 오게 되었고, 그를 기다리던 카오루와 만나게 된다.
신지와 카오루의 만남에서 '에반게리온'의 가장 큰 테마이자 사실상 단 하나의 테마인 마음과 마음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신극장판 '서'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카오루와 신지의 피아노 연습 장면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연습 이라기 보단 그냥 연주 정도겠지만) 흡사 신지와 아스카의 싱크로율 테스트 과정을 보는 듯 하다. 그리고 여기서 'Q'는 마치 기존 TV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스타일의 편집과 영상을 보여준다. 마치 실사와 이미지가 교차되는 듯한 분위기의 장면 말이다. 그리고 이 과정 중의 카오루와 신지의 대사는 그야말로 핵심을 꿰뚫고 있다. 이는 TV시리즈에서 내내 다루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연주를 한다는 것, 연주를 잘 한다는 것에 빗대어 카오루는 다시 한 번 각성한 신지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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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앞서 언급한 갈등 지점이 다시 등장한다. 모든 것이 잘 될 것만 같았던, 그러니까 나만 잘하면 나도 좋고 세상도 구하고 다 좋을 것만 같았던 행동이 문제가 되고 만다. 그 과정 속에서 아스카와 미사토로 대표 되는 뷜레와 원치 않는 싸움을 해야 하고, 신지와 마음을 나눈 유일한 친구인 카오루는 신지가 보는 앞에서 죽음에 이르고 만다. 신지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보다 더 큰 충격과 고난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 동안 스스로도 답답했던 자아를 이겨내고 드디어 레이를 구해냈다고 생각했는데 레이는 있지만 구해낸 것 같지는 않고, 1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자신이 알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 되어 여기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동료들을 냉정한 적으로 만나야 했으며, 그 사이 유일하게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인 카오루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마저도 자신이 보는 앞에서 죽음을 맞게 되었으니 이 보다 더 가혹한 운명이 어디 있으랴. 신지 입장에서만 보면 포스 임팩트의 발발보다도 카오루의 죽음이 더 큰 사건일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충격은 고스란히 이후의 얼빠진 표정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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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그러했지만 'Q'에서 레이는 존재하지 않고 아스카 역시 비중이 줄게 되면서 온전히 신지 중심의 이야기가 되었다. 각각의 갈등과 스토리가 있었던 TV시리즈와는 확연히 다른 구조다. 이전에는 신지는 물론이고, 레이, 아스카, 카오루, 미사토, 겐도 심지어 카지까지 자신 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었는데, 신극장판에서는 특히 'Q'에서는 완전한 신지 중심의 이야기만 남게 되었다. 이것은 여러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을 텐데, 이미 TV시리즈를 감상한 팬들에게는 더 이상 각자의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캐릭터의 성립이 충분하기 때문이며, 기존 팬들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과도 함께하고자 했던 신극장판의 목적 성에 부합하는 구조이자, 극장판이라는 포맷의 한계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 모든 요소들을 재쳐 두더라도 결국 신극장판으로 에반게리온이라는 이야기를 마무리하려는 것이라면 신지의 이야기로 집중하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사골게리온이 다음 편 극장판을 마지막으로 끝난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Q'에서의 신지는 또 한 번 가혹한 롤러코스터에 놓이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 장면은 완벽하게 루프설을 떠올리게 만든다) 다시 한 번 아스카의 손에 이끌려 길을 떠나게 되는 신지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모든 것을 잃은 상태에서도 다시 몸을 일으켜 나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신지의 운명이 말이다. 그저 행복하기만 하면 되었던 (하지만 그것이 너무 나도 힘겨웠던) 이전과 신극장판의 신지의 운명은 이렇게 다르다. 신극장판에서 신지의 운명은 좀 더 자신의 운명 그 이상의 것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즉, '에반게리온'의 중요한 테마인 '관계'를 맺는다는 것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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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에 가서 신지의 운명을 어떻게 가져갈지 혹은 어떤 방식으로 행복이라는 가치를 선사할 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에 앞서 아무리 생각해도 신지의 운명은 너무 도 가혹하다. 결국 안노 히데아키가 신지라는 자아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 모든 소년, 소녀들이 어른이 되어 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면 정말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을 정도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신극장판에서도 어른이 될 수 없는 혹은 되지 않는 소년, 소녀들을 등장 시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14년 동안 잠들어 있어 세월을 빗겨나간 신지, 에바의 저주에 걸려 역시 나이를 먹지 않은 아스카, 복제를 통해 영원한 소녀로만 존재하는 레이, 그리고 역시 소년으로만 존재하는 카오루와 소년, 소녀 이후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 토우지를 비롯한 같은 반 친구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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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인류보완계획'을 비롯해 수많은 이른바 떡밥을 풀어놓았던 '에반게리온'은 이번 'Q'에서도 어느 정도 그런 여지를 남겨 두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신극장판의 존재 자체가 떡밥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루프설 등) 신극장판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좀 더 단순하고 기본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떡밥에 대한 풀이를 전혀 하지 않더라도 충분한 의미가 있도록 그 본질에 더 집중하고 있는 것이 신극장판이고, 이는 신작이 거듭될 수록 그렇다는 생각이다. 혹자들은 TV시리즈에서 잔뜩 풀어놓았던 떡밥들을 신극장판이 해소 시켜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오히려 의혹만 가중 시키거나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이 없어 아쉬워하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신극장판에서 안노 히데아키는 여기에 별로 관심이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리고 그 점이 전혀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쉽기 보다는 마음에 드는 쪽에 가깝다.
'에반게리온' TV시리즈와 극장판, 신극장판을 여러 번 보았지만 볼 때마다 느끼는 건 결국 이 이야기는 미스테리나, 복잡한 설정과 떡밥들의 풀이 (물론 그것으로 유명해졌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가 중요한 작품이 아니라 AT필드로 표현되기도 하는 마음과 마음,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대한 깊은 성찰이 중요한 작품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흔히 들 말하는 신지의 '찌질함'은 어디서 오는가? 왜 수도 없이 본인에게 질문하고 답하기를 반복하고, 혹은 답을 찾지 못해 괴로워 하는가? 내가 타인과의 관계를 맺으면서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인가?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렇듯 '에반게리온'을 두고 누군가 정신 착란이라고 했던 것처럼 이러한 질문을 멈추지 않고 그 끝까지 가보려는 시도에서 시작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과정은 깊어질 수록 가혹하고 아프기 마련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과연 안노가 이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 지으려고 하는지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든다. 이미 안노 히데아키 만의 것이라고 할 수 없게 되어버린 '에반게리온'의 이야기를 다음 작품에서 어떻게 마무리 지을지. '에반게리온 : Q'는 '에반게리온 :ll '를 준비하는 하나의 과정 같은 영화였다. 어쩌면 '에반게리온 :ll '는 맨 처음으로 돌아갈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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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 : Q'는 아무래도 신극장판 마지막 편이 나온 뒤에야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기다림이 있다는 것 자체를 그리워 할 수년 뒤를 미리 떠올려 보며 천천히 기다려 보련다.
1. 처음 'Q'를 보면 '파'가 보고 싶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서'가 더 보고 싶어지더군요. 아예 '서'부터 쭉 다시 봐야겠어요.
2. 전 카오루와 신지의 므흣한 관계가 남남이라는 성별로만 규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고는 생각하지만 (그냥 존재와 존재로서), 그렇다 하더라도 카오루의 표정과 말투, 몸짓 하나 하나는 움찔 움찔 하게 만들더군요. 인정!
3. 다시 말하지만 '에반게리온 : Q'는 극장 상영에 최적화 된 작품입니다. 시네마스코프의 영상은 집에서는 그 만족감을 재현하기 어려워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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