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The Grand Budapest Hotel, 2014)
낭만적인 스토리텔링
웨스 앤더슨의 작품은 모두 다 좋아하지만 (특히 최근작들) 글로 쓰려면 별로 할 이야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신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The Grand Budapest Hotel, 2014)' 역시 마찬가지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가 다른 영화들에 비해 쓰고자 하는 이야기가 많지 않은 이유는, 생각하고 토론하는 영화라기 보다는 그가 이끄는 대로 그저 따라가는, 즐기는 형태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는 '어벤져스'로 대표되는 마블의 세계관 만큼이나 확고하고 뚜렷한 세계관을 갖고 있는데, 그의 인물들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옷을 입고 있는 모습만 봐도 웨스 앤더슨 세상 속 인물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이고, 말을 해도 물론 마찬가지다. 이번 신작 역시 그의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역사를 살짝 배경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사랑스럽고, 귀여우며 무엇보다 낭만적이다.
ⓒ Indian Paintbrush. All rights reserved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어떤 이야기인가가 중요하기 보다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 스토리텔링이 더 중요한 작품이다. 세대를 이어 전해지는 이야기는 간혹 역사의 어두운 면을 다루기도 하고, 별 일 아닌 것 같은 일에도 한참을 할애하기도 하는데, 무엇이 더 중요하다거나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기 보다는 그저 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애정을 담아 보내는 한 편의 그림 엽서처럼 느껴진다 (그림 엽서 라는 점이 중요하다 ㅎ). 그렇기 때문에 극 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하나 같이 괴팍하거나 이상한 것처럼 겉으론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보일 뿐이지 모두들 본인들에게 충실하고 맡은 일에 열심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웨스 앤더슨은 각각의 상황에 놓인 인물들이 그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할 때 얼마나 아름다울 정도로 귀여운지를 자신 만의 독특한 미적 감각을 통해 최대한 펼쳐놓는다. 이번 작품에서는 특히 다양한 색감은 물론, 이야기가 달라질 때마다 변하는 화면비를 통해 각각 이야기마다 성격을 부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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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웨스 앤더슨의 작품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다른 작품들에 비해 영화가 끝나고 나면 남는 것은 덜한 편이었는데 (그 좋아하는 '문라이즈 킹덤'도 의외로 자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은 덜하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그런 면에서 여운과 낭만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마치 채플린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극 중 랄프 파인즈가 연기한 구스타브 라는 캐릭터는 묘하게 애잔함과 낭만, 애틋함 마저 느끼게 만드는 캐릭터였다. 이 전체적인 이야기가 그렇게 느껴진 것도 이야기의 주인공인 구스타브 였기 때문이었다. 이건 뭐라 말로 정확히 표현하기 힘든 부분인데, 영화를 보고 나니 구스타브의 그 모습과 미소가 계속 잔상이 남았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이 영화를 기억하고 아마도 추억하게 될 가장 중요한 동기가 되기도 한다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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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타셈 싱의 '더 폴 (The Fall, 2006)'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다. 과장되고 특별한 이야기를 한참 동안 한 듯 했지만, 왠일인지 영화를 다 보고나면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낭만적인 영화. 웨스 앤더슨은 여전히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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