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 : 제네시스 (Terminator Genisys, 2015)

아놀드의  터미네이터는 여기까지, 더는 안돼



터미네이터의 다섯 번째 작품 '제네시스'를 보았다. 5편의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잘 아는 것처럼 다른 시리즈와는 달리 작품들 간의 연속성이 그리 중요하지는 않은 작품이다. 제임스 카메론이 만든 터미네이터와 그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시간 여행이라는 설정을 통해 다양한 시대(평행 우주)와 가정이 가능하게 되었는데, 이미 넘사벽인 '터미네이터 2 (Terminator 2 : Judgment Day, 1991)'와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터미네이터 (The Terminator, 1984)'를 제외하면 관객들에게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개인적으로 3편의 우울한 엔딩은 마음에 들었음). 그래서인지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출연하기는 하지만 무려 5번째 작품인 '제네시스'의 기대치는 그리 높지 않았었다 (사실 아놀드가 이렇게 큰 비중으로 나오는 줄도 몰랐었다). 알랜 테일러가 연출을 맡은 '제네시스'는 기본적으로 1편과 2편에 대한 오마주와 설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그래서 좋았고, 그래서 위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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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내내, 처음 '터미네이터' 와 '터미네이터 2'를 보았던 그 때가 떠올랐다. 왜냐하면 '제네시스'는 터미네이터나 심판의 날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는 오히려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평행 우주에 더 집중하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즉, 이 작품에선 또 다른 평행 우주 세계의 이야기로 전 편의 이야기들을 인정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아주 직접적으로 전 편의 설정이나 캐릭터를 등장 시킬 수 있었다. 팽팽하던 보디 빌더 시절의 아놀드 모습이나 이병헌이 연기한 T-1000 만 봐도 그렇다. 이것 외에도 알랜 테일러의 '제네시스'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시도 보다는, 시간 여행을 통해 또 다른 평행 우주 어디선가 발생했었을 수도 있었을 비슷한 (하지만 영화도 관객도 이것이 유사 반복임을 알고 있는) 이야기를 그려내는 것에 만족한다. 만족한다는 건 2015년에 걸 맞는 스케일이나 기술 진보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에는 큰 비중을 두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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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기대치가 그리 높지 않아서 인지 몰라도, 영화의 이러한 방식이 적당히 마음에 들었다. 현실에서 나이를 먹어버린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터미네이터로 다시 만나는 것에 있어서 이질감을 덜하게 하는 영화의 방식과, 이를 스크린을 통해 확인할 때 드는 어쩔 수 없는 애잔함 (짠함)은, 한 시대가 확실히 저물어 가고 있음에 대한 인정이자 헌사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라는 작품이 끼친 영향이 워낙 컸기에 이러한 헌사의 감성 만으로도 '제네시스'는 충분히 볼 만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1,2편에 대한 추억이나 애정이 없는 이들에겐 그냥 평범한 시간 여행 소재의 SF액션 영화로 받아들여 질 것이다).


전 편을 통해 익숙한 캐릭터를 다시 등장 시키고, 더 나아가 이 캐릭터를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에 있어서는 어쩔 수 없이 호불호가 생길 수 밖에는 없을 텐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터미네이터를 활용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영화가 취한 방식이 더 만족스러웠고, 대너리스로 더 유명한 에밀리아 클라크가 연기한 새로운 사라 코너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린다 헤밀턴과의 비교 질문 자체가 의미 없다는 전제 하에). 하지만 사실상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카일 리스의 캐스팅에 대해서는 아쉽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제이 코트니가 연기한 카일 리스는 전작에 마이클 빈이 연기한 카일과 비교하자면 한 없이 매력 없고 부족한 캐릭터로 묘사되고 있고, 비교하지 않더라도 별다른 매력 없이 심심한 캐릭터여서 이 작품이 줄 수 있는 또 다른 매력을 아예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나의 카일 리스는 이렇지 않아'라는 말 만으로 아쉬움을 표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카일 리스와 사라 코너의 관계 보다는 아마도 카일 리스 본인의 플롯에 집중하고 있는 것도 이유 중 하나 일 텐데, 그 플롯이 글 서두에 이야기한 '위험성'과 관련 되었다는 점으로 미뤄봐도, 카일 리스의 캐스팅과 캐릭터는 모두 아쉬웠다 (존 코너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못했는데, 존 코너 역시 카일 리스 못지 않다. 스포일러가 혹여 될까봐 이야기하지 않겠지만, 아마 대부분은 제이슨 클락이 존 코너라는 걸 알았을 때 직감적으로 이런 전개를 예상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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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 작품을 그럭저럭 만족스럽게 감상하고 나서도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던 것은 영화의 엔딩과 쿠키 장면 때문이었다. 영화는 이를 통해 아주 강하게 '제네시스'의 세계관을 확장 시킨 또 다른 터미네이터 속편을 암시하고 있는데, '제네시스'의 세계관은 한 번으로는 추억도 불러 오고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는 시도라고 볼 수 있겠지만, 이를 발판으로 발전하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놀드 슈워제네거라는 확고한 이미지가 각인 된 터미네이터(T-800)가 더 나은 기술과의 접촉으로 인해 업그레이드가 되는 것은, '와, 이제 진짜 끝내 주겠는데!'라는 기대 보다는 '그건 나의 터미네이터가 아니야'라는 우려가 더 클 수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터미네이터 영화가 나올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제네시스'의 세계관을 계승하는 작품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제네시스'는 만족스러웠으나 사실상의 '제네시스 2'는 기대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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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직접적 언급은 피했지만, 영화 속 아놀드의 모습을 보며 참 짠하더군요 ㅠㅠ 그래도 터미네이터로 돌아와서 좋았어요. (더는 안될 듯 ㅠㅠ)


2. 이병헌의 분량은 많지는 않은 편인데, 계속 여기저기 처박히는 모습이 은근히 불쌍하더군요. 조금 다른 의미로 그가 맡은 T-1000의 모습은 무섭다기 보다는 왠지 코믹스러웠어요.


3. 새삼 느끼지만,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 2'는 정말 대단한 작품이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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