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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Train To Busan, 2015)

세월호 이후, 혐오의 시대에서 생존하려면



연상호 감독의 첫 번째 실사영화 '부산행 (Train To Busan, 2015)'은 그의 전작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를 통해 보여주었던 것처럼 한국사회를 배경으로 한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좀비들의 확산으로 마비가 되어가는 짧은 시간 동안, 부산으로 향하는 KTX열차 안을 배경으로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막막한 현실과 특수한 재난 상황에 놓인 각기 다른 이해 관계의 인물들의 충돌을 빠른 템포로 그려낸다. 물론 '부산행'의 주요 모티브가 되는 것 중 하나는 좀비가 맞지만 이 영화를 좀비 영화라고 보긴 어렵다. 좀비라는 설정은 말 그대로 이 재난을 가져온 소재와 장르적인 요소로만 활용되고 있고, 영화의 구성은 오히려 전형적인 재난 영화에 가깝다. 좀비와 재난. '부산행'은 이 두 가지에서 떠올려 볼 수 있는 흐름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전형적인 것에서 오는 장르적 쾌감을 만끽하는데에 더 신경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단순한 장르 영화 이상의 인상을 주는 이유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무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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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 거의 색이 바래지기는 했지만 한 때 미국 영화는 9/11 테러 사건을 전후로 나뉜 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9/11 이후의 미국 영화들을 직간접적으로 또는 스스로가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무의식적으로 9/11의 기억과 충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는데, 최근의 한국 영화들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도드라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미리 말하고 싶은 점은 '부산행'을 세월호 참사와 전혀 연결 짓지 않아도 영화는 장르 영화로서, 그리고 연상호 감독이 꾸준히 해오던 테마의 발전으로서 충분히 성립 가능한 영화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세월호 사건을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은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9/11 이후 미국 영화들의 다수도 직접적으로 연관 지어 제작된 영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부산행'은 세월호 참사를 이제 그만 좀 얘기하자고 주장하는 이들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이 세월호 참사를 떠올릴 수 밖에는 없는 이야기다. 많은 이들이 좀비들에게 공격을 받고 사회 시스템이 붕괴되기 시작할 때 정부와 언론은 일부 과격 시위 단체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며 국민들에게 전한다. 또한 실상은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좀비들의 확산을 막지도, 문제의 원인을 밝혀내지도 못한 상황에서, 현재 모든 상황을 완벽히 관리하고 있다며 안심하라는 기자회견을 연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도 완전히 좀비들을 막아낸 이후에 상황에도 현실과 비슷한 대처를 하지 않았을까? 끝까지 좀비는 없었다고 부정하다가 나중에야 천천히 진실이 밝혀져도 또 딴소리와 책임 소재를 묻는 공방으로 시간이 흘러 잊혀지기 만을 바랬을 것이다. 세월호 때도, 메르스 때도 정부는 모두 구조 했다고, 완벽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거짓말로 안심시키는 동안 누군가는 목숨을 잃거나 피해를 입게 되었었다. '부산행'의 시작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영화네, 영화!'라고 웃어 넘길 수가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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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마동석이 연기한 '상화'같은 영화적인 캐릭터가 없었더라면 이 영화는 더 현실같아서 비참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철저하게 고립된 KTX 안의 상황은 더 지옥과도 같다. 말도 안되는 영화적인 캐릭터인 상화를 앞세워 좀비들을 물리치고 아직 좀비들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승객들이 대피하고 있는 열차 간으로 이동해왔지만 상황은 더 절망적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에 머물러 있던 승객들에게 주인공 일행은 감염 되었을지도 모를 위험한 존재이자,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생존의 확률을 낮추는 변수인 동시에, 정반대로 버팀막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사실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칸의 승객들이 처음 부터 전체적으로 나서서 이들을 막고 못들어 오게 하자고 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고 스스로의 양심과 갈등을 겪고 있을 때 앞으로 나서서 큰 목소리를 낸 용석 (김의성)의 행동 이후에야 함께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포인트가 있다. 하나는 다른 대부분의 승객들 모두 저들이 감염 되었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조금씩 갖고는 있었으나, 차마 이 상황에서 그들을 내치는게 양심에 걸리기도 하고 또 자신만 너무 나쁜 이가 될 것 같아 주저하고 있던 바를 용석이라는 매게체로 인해 자신들의 욕망을 타인의 손을 통한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모두가 자신이 피해나 손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때 이기적인 마음을 갖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나서서 혹시라도 몰매를 맞기는 싫은 또 다른 이기적인 생각 또한 갖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으론 전면에 나서서 생존을 위해 이기적인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이성적인 용석 보다도 용석의 등 뒤에 숨어 목소리를 보태며 주인공 일행을 배척한 승객들이 더 나쁜 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만약 용석이 아니라 다른 이가 용석과 다른 목소리로 주인공 일행을 다 같이 구하자고 외쳤더라면 이 상황이 바뀔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희망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 칸에 타고 있던 대부분의 승객들은 적어도 처음에는 양심에 가책을 느껴서 선뜻 어떻게 하자는 말이나 행동을 주저하고 있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마치 용석이 그랬던 것처럼 '자, 여러분 저들을 빨리 도웁시다. 이리와서 함께 도와주세요!'라고 외쳤다면 아마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졌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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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영화같이 장르 영화의 구성에 충실한 재난 영화를 세월호 참사 이전, 아니 자신에게 깊이 각인 된 어떠한 현실의 인재나 사건 등의 발생 이전에 보았다면, 장르 영화의 쾌감에만 충실하게 즐겼을지도 모르겠다. 재난 상황 속에서 국가나 정부가 뉴스 등에 나와 하는 말은 '뭐 영화 속 정부 모습이 다 저렇지'하고 그냥 넘어갔을 것이고, 열차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갈등 들도 '아..이거 너무 뻔한데'라며 조금은 전형적인 측면에 심심해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어쩔 수 없이 세월호 참사라는 실제 재난을 느껴야만 했던 그 이후의 영화다. 떠올리지 않을 래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그렇기 때문에 다들 안전한 열차 안에서 대기해 달라는 안내 방송이나 정부의 브리핑을 들었을 땐 '아, 만약 나에게도 저런 상황이 닥치면 그냥 하라는데로만 해서는 안되겠다'라는 생각이 들고, 또 세월호 이후 그 유가족들과 이 참사를 두고 벌어지는 대한민국 사회의 만연한 혐오를 지켜 보았기에 부끄럽지만 내 가족들에게 '혹시 저런 일이 생기면 절대 나서지 말고, 남들 생각하지 말고 너만이라도 꼭 살아야 돼'라고 가르치거나 당부할 수 밖에는 없는 현실이 씁쓸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재난 영화를 보고는 희생하는 캐릭터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혹은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 '우린 저런 사람이 되자'라고 말해왔는데, 이번에 보게 된 '부산행'의 느낌은 조금 달랐다. 이 영화 속 재난이 더 이상 스크린 안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최근 몇 년간 실감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기에, 마치 영화 속 용석이 재수 없고 화가 치밀지만 실제 상황이라면 저렇게라도 나와 내 가족은 살아 남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되어 더욱 가슴이 아팠다. 더 나아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그 참사 속에서 영웅적인 면모를 보인 이들이 겪게 되는 고통과 사회의 무시를 넘어선 질타를 보며, 누군가에게 '그래도 영웅이 되어야 해'라고 선뜻 말하기가 주저 될 수 밖에는 없었다 (말이 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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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부산행'을 보고 나서 죄책감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더 큰 잘못을 한 이는 따로 있으나 양심을 가진 이들이 겪어야만 했던 커다란 죄책감들. 그래서 차라리 스스로 좀비가 되기를 선택하다시피 한 어떤 장면은, 처연함도 들었지만 최소한의 양심을 가진 이들을 죽거나 죽지도 못하는 자가 되도록 만드는 현실이 떠올라 더 안타까웠다. 



1. 저는 어쩔 수 없이 세월호를 떠올렸지만 본문에도 썼던 것처럼 이 영화는 애초부터 의도를 갖고 만들어진 영화도 아닐 뿐더러, 그렇게 읽히지 않아도 충분한 상업 장르 영화입니다.


2. 혹시나 중간에 공유가 카누 마시는 장면이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ㅎ


3. 마동석이 연기한 상화라는 캐릭터는 '베테랑'에 등장하는 아트박스 사장 캐릭터의 연장선이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만약 마동석=아트박스 사장 캐릭터가 수 많은 한국 영화에 조금씩 다 등장하는 일종의 신개념 캐릭터를 구현해 보면 어떨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해보았어요 ㅎㅎ 무슨 영화에 나오든 마동석이 연기한 캐릭터는 덩치 좋고 힘좋은 아트박스 사장인데, 각 영화마다 분량이 조금씩 다른거죠. 마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는 모든 캐릭터가 동일한 시대를 사는 것처럼, 코리안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는 마동석 캐릭터가 모두 동일하게 존재하는. 말도 안되는 ㅋㅋ


4. 아, 스크린X 극장에서 보았는데 확실히 좀비 나오는 장면들에서는 몰입도가 더 좋더군요. 특히 모든 장면이 스크린X면 좀 정신 없을 것 같다 싶었는데, 다행히 좀비가 나오는 액션 장면들만 활용되고 있어서 좋았어요. 


5. '서울역'도 곧 개봉인데, 더 기대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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