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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쇼퍼 (Personal Shopper, 2016)

부유하는 고독한 영혼에 대해


모린 (크리스틴 스튜어트)은 유명인의 퍼스널 쇼퍼로 일하는 동시에 영혼과 이야기할 수 있는 영매이기도 하다. 역시 영매였던 그녀의 쌍둥이 오빠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그와 대화하고자 노력하고 기다리던 모린에게, 어느 날 알 수 없는 자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도착한다. 누구의 장난인지 아니면 쌍둥이 오빠로 부터의 메시지인지 모를 문자가 계속되며 모린은 점점 자신의 숨겨졌던 욕망을 솔직하게 고백하게 된다.


올리비에 아싸야스와 크리스틴 스튜어트 외에는 아무런 정보 없이 보게 된 영화 '퍼스널 쇼퍼 (Personal Shopper, 2016)'는 흔히 고스트 스릴러, 그러니까 유령이 등장하는 스릴러 영화로 소개되곤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흥미를 자극하는 장르적 재미 이상의 많은 영감을 제공하는 독특한 영화다. 69회 칸영화제에서 올리비에 아싸야스에게 감독상을 쥐어주며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불러일으킨 이 영화는, 불친절하다기보다는 의도적으로 모호함을 주거나 혹은 불완전한 연결고리를 그냥 방치하고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이 모호하고 불완전한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확실히 이 영화는 호불호가 분명하게 나뉘기 쉬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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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쇼퍼>는 모호한 이야기의 구성을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분명 고독에 관한 영화다. 모린이 세상을 떠난 쌍둥이 오빠와 대화하기 위해 기다리는 이유는 단순히 그와 약속을 했기 때문 만은 아니다. 오히려 죽은 자의 영혼과 대화하려는 노력은 현실에서의 고독함을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탈출구처럼 여겨진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모린이라는 캐릭터가 속한 세계다. 영화의 제목처럼 그녀는 현실에선 아주 유명한 셀러브리티의 옷과 액세서리를 대신 고르고 구매해주는 퍼스널 쇼퍼다. 즉, 가장 화려한 세계와 아주 가까운 위치에 있지만 실제로 그 세계에는 속하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있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런 괴리감으로 인해 더 큰 고독감과 욕망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영매라는 존재는 영혼과 대화를 나누는 자로서 한 편으론 퍼스널 쇼퍼라는 세계와 정반대에 놓인 존재라고도 볼 수 있을 텐데,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영매라는 존재 역시 고독함과 동떨어져 있지 않은 존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어쩌면 그녀가 처한 세계 (상황이라고 하지 않은 건, 오빠의 죽음이라는 사건 자체가 모린의 영화 속 행동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기보다는, 이미 그 이전부터 모린이라는 인물에게 있어서는 고독함과 고립이라는 정서가 짙게 깔려있었다고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는 애초부터 불안하고 그래서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던 것처럼 여겨진다. 이런 모린에게 결정적으로 오빠의 죽음과 이어지는 정체불명의 문자 메시지가 도화선이 되면서 모린의 자아에 금기시되어 있던 욕망이 조금씩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다음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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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를 보내오던 인물이 누구인지 드디어 존재가 드러나고 퍼즐이 어느 정도 맞춰져 마무리될 때, 영화는 또 한 번의 불확실함을 제공한다. 마지막 장면이 없었더라면 당연히 문자를 보내오던 인물은 키라과 내연 관계에 있던 잉고였고, 그렇게 한 바탕 자신의 욕망과 갈등을 겪던 모린이 모든 사건이 끝난 뒤 개리를 만나러 간 타국에서 드디어 오빠의 영혼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을 텐데, 마지막 그 대화가 오빠나 다른 영혼과의 대화가 아닌 모린 자신과의 대화라는 것으로 마무리되면서, 그렇다면 과연 모린은 언제부터 죽은 자였는지, 그 간 문자 메시지로 오간 대화 역시 잉고와의 대화가 아니라 그녀가 자신의 영혼과 나눈 대화인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자신의 영혼과 대화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니 그녀의 영혼이 인식하지 못한 채 벌인 일종의 환상인지, 여러 가지 모호함이 그대로 남게 된다.


가장 설득력이 높은 이야기라면 호텔에서 잉고가 나오기 전 마치 영혼이 호텔을 나오는 것과 같은 시퀀스로 미뤄 보았을 때, 잉고가 그 호텔에서 모린을 살해한 것으로 볼 수 있을 텐데, 그렇다 해도 완벽히 다 설명되는 것은 아니기에 이것 역시 확언할 수는 없다. 


맨 처음 <퍼스널 쇼퍼>가 많은 이들에게 호불호가 나뉘는 영화라는 점을 이야기했는데, 그 호불호의 원인은 내러티브의 완성도 혹은 설득력에 있을 것이다. 반대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퍼스널 쇼퍼> 같은 영화는 일반적인 미스터리 스릴러나 내러티브 자체가 핵심이 되는 영화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해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즉, 올리비에 아싸야스의 이 영화는 흩어진 퍼즐 조각을 완성하는 것에 목적이나 메시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왜 이 퍼즐이 조각 조각 흩어진 채 남겨져야 했는지를 주목하고 퍼즐을 맞춰 가는 과정 자체에 더 큰 목적이 있는 (설령 애초부터 맞지 않는 조각들로 완성해 나가야 했던 퍼즐일지라도) 영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완전한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위한 영화다. 올리비에 아싸야스는 크리스틴 스튜어트라는 배우의 매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완벽하게 알고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설령 이 영화의 결말이나 방식에는 동의하지 못하더라도, 크리스틴 스튜어트라는 배우의 매력에는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측면이 모호한 영화에서 이것 하나 만큼은 분명하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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