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몽 (悲夢: Dream, 2008)
애증, 그리고 꿈


김기덕 감독의 열 다섯 번째 작품이자 오다기리 죠, 이나영의 캐스팅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던 <비몽>.
사실 김기덕 감독의 작품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레도 <악어>부터 시작해서 <파란대문> <실제상황>
<나쁜 남자> <해안선>등 예전 작품들을 주로 보았던 것 같고 이들 작품들에서 그리 큰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었기
때문에 최근 화제를 불러모았었던 <빈 집>이나 <숨> <사마리아>같은 영화들은 제대로 챙겨보질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 <비몽>을 쉽게 넘기기 어려웠던 것은 역시나 캐스팅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인터뷰 & 기사를 보니 스타 배우라 할 수 있는 오다기리 죠와 이나영의 캐스팅은 김기덕 영화가
대중들과 소통을 원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나처럼 김기덕 영화에 대해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던
사람들마저 극장으로 불러오는 효과를 거두웠으니 어느 정도 이 소통방법이 통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결과적으로 <비몽>은 김기덕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스타일은 여전하지만, 오다기리 죠와 이나영이라는
스타의 캐스팅으로 대중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고자 노력한 시도가 엿보인 작품이며, 그 시도의 결과는 당연하게도
각자마다 틀려질 수 밖에는 없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영화의 기본 줄거리가 대충 이렇습니다. 극중 오다기리 죠는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 하며 매일 꿈을 꾸는데,
오다기리 죠가 꾸는 꿈은, 반대로 연인을 떠나버린 이나영에게 작용하게 되고, 오다기리 죠의 꿈이 이나영에게 몽유병으로
전달되게 됩니다. 즉 오다기리 죠는 꿈 속에서 그리도 만나고 싶던 헤어진 연인을 만나지만, 이 꿈이 이나영에게 몽유병으로
옮겨오면 이나영은 자신이 스스로 떠나보낸 증오만 남은 연인에게 매일 새벽 찾아가 사랑을 나누게 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비현실적인 표면적인 설정을 더하고 있는 것은 바로 오다기리 죠의 일본어 대사를 들 수
있습니다. 극 중에서 오다기리 죠는 일본어를 그대로 사용하는데 배경이 되는 대한민국의 모든 인물들과의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즉 오다기리 죠가 일본어로 말하면, 이를 받는 한국사람들은 한국어로 대답하는 형식이지요.
만약 한 사람의 꿈이 다른 사람에게 몽유병으로 연결된 다는 설정이나, 일본어와 한국어로 자유롭게 의사소통하는
설정을, 그대로 넘기지 못하면 이 영화는 매우 불편한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의 <비몽>에서 이런 것들은 별로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건 그냥 영화에
묵시적인 약속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비현실적이지만 일본어와 한국어로 자유롭게 대화하는 기본 설정은 묘한
분위기 외에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소통과 사랑과 증오의 가까움, 여러 사람이 결국은 한 사람이나 마찬가지라는
메시지와 교묘하게 교차되기도 합니다. 참고로 본래 김기덕 감독은 오다기리 죠의 일본어에 한국어 자막조차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확실히 김기덕 감독은 대부분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기본'이라는 설정에
전혀 구속 받지 않는 감독임은 확실한 듯 해요.


(아래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다기리 죠는 자신이 잠이 들고 꿈을 꾸게 되면 그 꿈이 이나영에게 몽유병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이를 알고는 잠을 자지
않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이나영 역시 잠을 자게 되면 몽유병으로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옛 애인을 찾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는 잠을 자지 않으려고 하구요.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 교차로 자는 방법을 생각해내고 얼마 정도는 성공을
거두는 듯 하지만, 이도 결국은 성공하지 못하고 나중에는 서로 수갑을 차고 같은 자리에서 잠을 청하는 방법까지
동원하게 되죠. 이들이 잠이 들지 않기 위해서 무던히도 노력하는 모습은 정말 눈물겹기 까지 합니다.
사실 어느 정도 코믹하기도 했는데, 잠들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뜨려고 얼굴을 쥐어 뜯는 다던가 눈에 테입까지 붙여가며
잠을 안자려고 하는 모습은 처음에는 블랙 코미디 정도로 생각되기도 하지만, 나중에 가면 이 눈물 겨운 노력들은
무섭게 느껴지기 까지 합니다. 어쩌면 김기덕 감독은 코믹함으로 느껴졌던 장면들이 분위기에 따라 공포스러운 장면으로
까지 느껴지는 것을 통해, 사랑과 증오는 어차피 하나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이 영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장면을 들자면 아무래도 갈대밭에서 4명의 인물이 모두 등장해 벌어지는 장면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일반적인 영화 화법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온 이상한 장면인 동시에, 마치 현실에서 완전히 차단된
죽은 자들의 세계같은 느낌도 전해주는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비현실적이고 이상한 장면이긴 하지만,
인물과 인물이 교차되고, 상대가 바뀌는 것을 보여주면서 결국 이 사람과 이 사람이 같은 사람이고, 이 사람과 이 사람도
같은 사람인, 즉 모두가 하나이고 모든 감정도 하나라는 것을 매우 단적으로 보여준 어쩌면 매우 현실적인 장면이기도
하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이나영은 온통 검은 옷을, 오다기리 죠는 온통 흰색 옷을 입고 등장하는데,
이 역시 아주 노골적인 묘사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기덕 영화 하면 가학적이라는 선입관이 있긴 합니다. 그 내면에 정말 폭력성이 있느냐, 그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냐에
대해서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어쨋든 화면으로 보여지는,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장면들에서는
가학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비몽>역시 오다기리 죠의 연기를 통해 이 가학적인 측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다른 감독이었다면 영화 속 오다기리 죠의 후반부의 행동들을 그런 식으로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하더군요. 이는 분명 김기덕 감독이라 그런 방식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생각 밖에는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김기덕 감독이 작품이 조금 불편하기도 한 것 같구요.

영화가 들려주려는 메시지는 화법이 그리 친절하지는 않지만(그것이 김기덕 감독의 스타일이기도 하구요), 조금만
신경을 써보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술적인 측면이나 장면들을 통해
메시지를 이미지화 하려는 시도가 적극적이었다는 것 또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백과 강렬한 색, 어둠과 빛의 강렬한
대비 효과들은 배우들이 뿜어내는 강렬한 이미지와 맞물려 메시지 전달에 시각적인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김기덕 감독의 작품을 특별히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음에도 이 영화를 과감히 선택하게 된 이유는,
이나영 때문이 아닌 바로 오다기리 죠라는 배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 배우들 가운데도 특유의 여유로움과 코믹함부터
극 진지함까지 다양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오다기리 죠가 김기덕의 작품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하는 것이 사실
가장 궁금했던 것이었지요. <비몽>에서 그가 연기한 '진'이라는 캐릭터가 오다기리 죠만이 할 수 있는, 아니면 오다기리 죠의
역량이 최대한 발휘된 캐릭터라고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후반 부에 처절하게 변해가는 진의 캐릭터를 보고 있노라면
오다기리 죠의 연기력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나영의 연기는 사실 연기력 자체보다는 그 무표정의 이미지가 더욱 기억에 남는
연기였던 것 같습니다. 가끔씩 무표정으로 대사를 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아름다움을 넘어서 섬뜩함까지
느껴지곤 하니까요.

쉽게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개인적으로는 김기덕 감독의 작품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된 영화가 될 것 같네요.


1. 결국 잠이 보약!
2. 어디서 보았는데, 이 영화는 완전 '한옥투어'무비라고. 그 말에 동감.
3. 아직 <텐텐>을 못봤는데 이 영활 보고 <텐텐>을 보게 되면 그가 어찌보일지 궁금하군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김기덕 필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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