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다

홍상수 감독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영화를 평균 이상으로 좋아하다보니 가끔 실제 장소를 배경으로 촬영한 영화들을 보면 최대한 그 장소를 직접 찾아가서 다시 한 번 영화의 기운과 여운을 느껴보고자 하는 편이다. 바로 지난 주에 본 홍상수 감독의 신작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도 보는 즉시 그곳에 가고 픈 욕구가 발동하는 영화였다. 홍상수 감독의 작품들은 워낙 저예산이기도 하고 짧은 시간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아 실제 존재하는 장소를 배경으로 하는 것은 물론, 특별한 장소를 일부러 찾아 촬영하기 보다는 그냥 어떤 동네의 평범한 장소들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 그의 영화를 보면 꼭 한 번 그 동네를 찾아보고픈 생각이 들곤 한다. 이번 작품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수원화성 근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영화를 본 바로 다음 날 가벼운 마음으로 수원을 찾았다.





영화의 첫 장면에 화성행궁 앞에서 극 중 함춘수 (정재영)가 담배를 피는 장면은 바로 저 큰 나무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참고로 이 영화를 겨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늦여름 찾아간 것이 아쉬움이라면 아쉬움. 입김이 나는 계절에 찾아왔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나서 화성행궁에 입장하기 위해 입장권을 구매하는 장면. 참고로 내가 간 날은 행사 기간이라서 무료 입장이었다.




그리고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는 곳. 바로 복래당 (福內堂)이다. 이 곳에서 함춘수는 윤희정 (김민희)을 처음 만나게 되어 어색하고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정재영이 앉아있던 자리는 볕이 몹시 잘 들었다. 정말 솔솔 잠이 올 것 만 같은 햇살.





이 쪽은 극 중 김민희가 앉아서 요구르트를 먹던 자리. 특별할 것은 없지만 영화 속에서 워낙 그의 내레이션을 통해 이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소개를 듣다보니 달리 보이는 곳이기도 했다. 참고로 화성행궁은 정조가 머물던 임시처소였고 복내당은 정조가 행차시에 머물렀던 곳이였다고 한다.





이 곳은 바로 화성행궁 옆에 위치한 수원호스텔 건물인데, 영화 속에서는 거의 첫 장면 쯤에 정재영이 저 외쪽 창문을 열고 바로 사진을 찍은 이 아래 쪽의 고아성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이곳은 행궁 옆의 골목을 조금만 걷다보면 왼편에 나오는 가게인데, 바로 극 중 정재영과 김민희가 술을 마시며 오랜 대화를 나누던 바로 그 스시집이다. 이 곳은 보시다시피 가게 앞에 영화 포스터도 전시해 놓으며 촬영지라는 걸 알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리얼리티를 위해 직접 들어가서 스시에 소주 한 잔을 할까도 했지만 너무 낮시간이라 이번엔 패스.




그리고 여긴 극 중 김민희가 사는 집으로 등장하는 곳인데, 이 곳 역시 바로 행궁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참고로 영화를 보면 이 집 바로 뒤에서 절이 있어서 종 치는 소리가 들리곤 하는데, 실제로 뒤 편에 큰 불상이 위치해 있었고 종소리도 가깝게 들려왔다.


이 곳 말고도 가보려고 했는데 깜빡하고 못 갔던 곳이 '시인과 농부'라는 찻집인데, 극 중 인물들이 술을 마시는 장면의 배경이 된 카페다. 이 곳 역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여긴 영화 촬영과 상관없이도 독특한 분위기로 제법 소문이 난 찻집이다. 참고로 이 곳은 개인적으로도 아는 지인들이 다녀온 후기로 먼저 알게 된 곳으로, 영화 속에서 다시 보니 더 반가운 곳이기도 했다.


이렇게 짧게나마 홍상수 감독의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배경이 된 수원 화성행궁 근처를 둘러보았다.

찬바람이 부는 한 겨울 즈음에 다시 한 번 찾아, 입김 호호 불며 또 한 번 영화를 느껴보고 싶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사진 이미지는 본인이 직접 촬영하였으며,
모든 사진의 권리는 본인에게 있습니다.






조셉 고든 레빗 : 연대기 (Joseph Gordon-Levitt : Chronicle)


여기 한 남자 배우가 있다. 최근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화제작 '인셉션'을 통해 '500일의 썸머'에 이어 다시 한번 주목을 받게 된 그는 바로 조셉 고든 레빗 (Joseph Gordon-Levitt)이다. 조셉 고든 레빗의 필모그래피가 흥미롭기는 했지만 이렇게 급격하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를 받는 헐리웃의 대표 배우로 성장하게 될 줄은 몰랐었다. 물론 그는 아직까지는 마이너한 감성과 분위기를 갖고 있는 배우일지도 모르지만, 다른 한편으론 분명 헐리웃이 가장 주목하는 젊은 배우라는 점에서 더 늦기 전의 그의 짧지 않은 연대기를 살펴볼 필요가 생겼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흥미로운 필모그래피가 될 것이라고는 예상했었지만, 예상보다 더 흥미롭고 결코 짧지 않은 커리어는 알면 알 수록 조셉 고든 레빗이라는 배우에게 빠져들도록 만들었다.



(누구에게나 과거는 있다. 그렇다. 조셉 고든 레빗은 바로 외계인 가족이었던 것이다)

 
처음 성인이 된 조셉 고든 레빗을 본 사람들은 '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3rd Rock from the Sun)'에 나왔던 그 아이구나!'라고 무릎을 쳤을 것이다. 그렇다, 조셉 고든 레빗은 아역 연기자 출신으로 우리가 흔히 알만한 작품에도 여럿 출연했었다. 앞서 언급한 TV시리즈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을 비롯하여 1994년 작으로 우리에게는 대니 글로버 주연의 야구영화로 기억되는 '외야의 천사들 (Angels in the Outfield, 1994)'에도 출연하였으며, 브래드 피드 주연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A River Runs Through It, 1992)'에서는 주인공 노먼이 아역으로 출연하였으며, 데미 무어와 알렉 볼드윈이 주연한 1996년작 '주어러 (The Juror, 1996)'에서는 데미 무어의 아들로 출연하기도 했었다. 이 밖에도 수많은 TV시리즈와 작은 영화들에서 아역 연기자로 크고 작은 역할들을 연기했었는데, 의외로 배우들이 좋은 작품들이 제법 있었다는 점이 조금은 놀랄 만한 점이었다.



(이 작품에는 히스 레저와 조셉 고든 레빗 외에 어린 데이빗 크럼홀츠도 출연했었다. 데이빗 크럼홀츠는 미드 '넘버스'의 주인공으로 더 유명한데, 이런 풋풋한 모습을 보니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를 꼭 챙겨봐야할 또 한 가지 이유가 생긴 기분이다. 더 재밌는건 '넘버스'의 에피소드에 조셉 고든 레빗이 출연한 적도 있다는 사실!)

그러다가 아역의 티를 살짝 벗은 19살의 조셉 고든 레빗을 만나볼 수 있었던 작품이 바로 헐리웃 청춘 영화의 산실로 불리는 (점점 불려지는) 영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10 Things I Hate About You, 1999)'이었다. 이 작품은 초기 소수 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가 히스 레저가 주목을 끌었을 때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었는데, 사실 이 작품을 조셉 고든 레빗 때문에 다시 꺼내들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작품을 통해 주목 받은 것은 물론 히스 레저와 줄리아 스타일즈 였겠지만, 여기엔 분명히 조셉 고든 레빗도 비중있는 역할로 출연했었다. 한가지 아쉬운 건 점점 영화 팬들 사이에서 (적어도 히스 레저와 조셉 고든 레빗의 팬들 사이에서는) 그 중요도가 커져가는 이 작품이 국내에서는 DVD로도 출시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미에서는 블루레이로까지 발매가 되었었는데 어쨋든 이 작품을 제대로 확인해볼 수 있는 방법이 묘연하다는 점에서 큰 아쉬움이 남는다. 이후 '브릭' 이전에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비중있는 출연이라면 월트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보물성 (Treasure Planet, 2002)'에서 주인공의 목소리 더빙을 맡았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라이언 존슨 감독의 '브릭'은 성인 배우로서 조셉 고든 레빗을 다시 재조명해준 작품이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조셉 고든 레빗이라는 배우를 이름과 함께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한 계기는 바로 21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며 큰 주목을 받았던 '브릭 (Brick, 2005)' 이었다. 고등학생과 교내를 배경으로 누아르 장르를 써내려간 이 기발한 작품은 한 편으론 참 유치하고 단순해 보이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론 느와르와 장르 영화의 특성을 전혀 다른 배경에 완전히 대입시킨 작품으로서 평단에 큰 주목을 받았었다. '브릭'에서 돋보이는 배우는 단연 그 였다. '브릭'에서 처음 조셉 고든 레빗을 보았을 때는 사실 히스 레저를 보는 줄 알았었다. 아직까지도 그를 떠올리면 '아, 첨에 히스 레저 닮은 배우로 생각했던' 이라는 이미지가 남아있을 정도로, '브릭'에 등장한 그의 모습은 마치 좀 더 골격이 작고 여린 히스 레저 같아 보였었다.



(적어도 나에겐 히스 레저를 연상시키는 배우로 출발했던 조셉 고든 레빗에게, 이제 더이상 히스 레저의 그림자는 없다)

그런데 구글링을 하다보니 이런 생각을 하는 이가 나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저렇게 둘이 붙여 놓고 보면 꼭 닮았다고만은 할 수 없을텐데, '브릭'을 보고 들었던 인상은 분명 '히스 레저'였다. 이미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를 통해 함께 연기했었고, 만약 히스 레저가 먼저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어떤 작품에서든 다시금 만날 수도 있었을 이 두 배우가 또 한번 함께 연기하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된 것은 팬으로서 역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겠다.  



 
(톰과 썸머는 이미 2001년 '매닉 (Manic)'이라는 작품을 통해 만났었다)

 
 
'브릭'의 성공 이후 배우로서 탄탄대로를 밟겠구나 싶었었으나 의외로 그의 모습을 한 동안 (적어도 국내 극장가에서는) 보기 어려웠다. '브릭' 이후 2005년부터 2008년 까지 제법 많은 영화에 주연, 조연을 맡았었지만 이렇다할 인상적인 작품은 없었다 (직접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더 구체적인 평가를 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렇게 금새 수면 위로 떠오를 줄 알았던 그를 기다리기가 점점 지루해질 때 쯤, 조셉 고든 레빗은 전혀 의외의 영화와 캐릭터로 우리 곁에 다가왔는데 바로 이병헌이 출연해 더 큰 관심을 끌었던 헐리웃 블럭버스터 '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 (G.I. Joe: The Rise Of Cobra, 2009)'가 그것이었다 (실제 북미 개봉 시점을 보면 '(500)일의 썸머'가 같은 해 다른 달로 조금 더 개봉이 빠르지만, 국내 개봉 시점으로 보면 '지.아이.조'가 앞서 있었다). 당시 썼던 '지.아이.조' 리뷰에 조셉 관련 부분을 끄집어 내보자면,

'사실 출연 사실을 알고 그나마 기대했던 건 조셉 고든-레빗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왜 이런 영화에 출연했을까 싶을 정도로 아쉬움이 남았다(마치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왜 <이온 플럭스>에 출연했을까 했던 것 처럼). 그가 맡은 렉스 캐릭터 역시 2편부터 본격적으로 활약하게 될 모양이지만, 왠지 이런 영화와 그 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이 평가는 아직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과연 왜 이 영화에 출연했을까는 아직까지 좀 의문인데....음....의문이다.




(500일의 썸머에서 조셉 고든 레빗의 연기는, 젊었을 때의 더스틴 호프만을 연상시키기도 했는데 아마도 수십년 뒤에 이 영화를 다시 보면 그런 클래식함이 더 깊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드디어 '(500)일의 썸머 ([500] Days Of Summer, 2009)'. '드디어'라는 수식어를 최근 개봉한 '인셉션' 대신 '(500)일의 썸머'에서 사용한 이유는, 이 작품에서 이미 그의 연기가 많이 자리를 잡고 안정감을 갖게 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조이 데샤넬이 영화 속 '썸머' 그 자체였듯이, 조셉 고든 레빗 역시 '톰' 그 자체였다. 이 영화 속 '톰 핸슨'이라는 캐릭터는 비슷한 다른 배우가 맡았더라도 괜찮은 작품이 되었겠지만, 다른 여배우가 맡았더라면 조이 데샤넬 특유의 뉘앙스는 살릴 수 없었을 것처럼, 톰 역시 조셉 고든 레빗 만의 사소한 디테일들이 모여 지금의 '톰 핸슨'을 만들어 냈다. 두 배우 모두 연기가 아니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평소의 모습이 은연 중에 잘 드러난 작품이기도 했는데, 확실히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조셉 고든 레빗을 '그냥' 좋아하는 배우가 아니라 '매우' 좋아하는 배우로 꼽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 SNL이 맞다)

 
'(500)일의 썸머'이후 조이 데샤넬의 팬을 자처하게 되면서 그녀의 관련 소식을 찾다가 자연스레 조셉 고든 레빗에 관한 소식들도 접하게 되었는데, 이 친구 알면 알 수록 마음에 든달까. 그의 활동을 보고 있노라면 단순히 무비 스타 혹은 셀러브리티로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자신의 커리어를 마음껏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깊게 받을 수 있었다. 아직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어느 자리, 어떤 상황에서 담긴 사진들을 보아도 모두 여유로움이 묻어나고 있었으며, 어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활동들이 더욱 그를 특별하고 개성있는 배우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가끔은 이런 느낌도??)

그의 다양한 활동들 가운데는 직접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도 있고 단편을 연출하는 것도 있는데, 이런 것들을 모두 아우를 만한 그의 대표적인 프로젝트라면 'hitRECord'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의 트위터를 알게 되면서 이 프로젝트에 대해 알게 되고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여러가지 결과물들을 보고나서야, 그의 아티스트적인 역량과 자부심 혹은 욕심을 엿볼 수 있었는데, 이것이야말로 조셉 고든 레빗을 남들과는 다른 배우로 만들어 주는 (연기 외에) 핵심적인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직 방문하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hitRECord.org'를 방문해보라!





(그리고 우리를 흥분하게 만든 '인셉션' 속 '아서'로 분한 그)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 (Inception, 2010)'에서 아서 역할로 분한 그의 모습은 기존 과는 또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마치 코스츔을 입은 듯 곱게 빗어 넘긴 올백 헤어스타일과 좁은 어깨를 그대로 드러낸 타이트한 양복 차림의 그는, 고풍스러운 취향을 갖고 있는 아서와 맞아 떨어지며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하였다. 특히 시크한 듯 찡그리는 그 표정이나 별다른 감정 변화를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귀여움마저 드는 표정 연기 역시 인상적이었다. 토비 맥과이어가 '스파이더 맨' 시리즈에서 하차하기로 한다는 소식 이후, '(500)일의 썸머'를 연출한 마크 웹 감독이 새롭게 연출을 맡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새로운 피터 파커로 조셉 고든 레빗이 오르내리기도 했었는데, 처음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지배적이었으나 '인셉션'에 등장하는 무중력 액션 시퀀스를 보니 새로운 스파이더 맨으로서 (역시 아직까지는 어색함이 더 크지만) 새로운 매력을 보여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이 역할은 다른 배우로 내정이 된 상태).

어쨋든 '인셉션'은 '(500)일의 썸머'와 맞물려 서로 다른 매력의 조셉 고든 레빗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인셉션'을 보는 내내 '아서'로서가 아니라 썸머에게 휘둘리던 불쌍한 '톰'으로 느껴기기도 했으니 말이다. 



(혹시 자네, 아직도 썸머를 그리워 하는 것은 아니겠지...)


'인셉션' 후 조셉 고든 레빗은 또 다른 작품에서 전혀 다른 캐릭터로 우리 곁을 찾아올 예정이다. 북미 기준으로 2011년 1월 공개를 목표로 작업중인 'Hesher'라는 작품인데, 위의 스틸컷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또 다른 조셉을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작품에는 그 외에 나탈리 포트만과 레인 윌슨 등이 출연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도 개봉할 수 있을런지는 확실히 미지수다. 

참고로 조셉 고든 레빗은 현재 'Live with It'이라는 조나단 레바인 감독의 작품에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안나 캔드릭, 세스 로건 등과 함께 캐스팅 된 상태이며, '쥬라기 공원' '스파이더 맨' '우주전쟁'등의 시나리오를 썼던 데이비드 콥 (David Koepp)이 연출을 맡은 'Premium Rush'라는 작품에도 캐스팅이 된 상태다. 




(훗, 내 커리어는 이제 시작일 뿐. '인셉션'은 거들 뿐)


조셉 고든 레빗의 커리어를 살펴보니 결코 짧지만은 않은 그리고 매우 흥미로운 커리어와 필모그래피를 가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좀 좋은데' 에서 시작된 관심이었다면, 지금은 확실히 '야, 이거 잘못하면 또 하나의 팬 블로그를 만들어야 하는것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깊은 관심을 갖게 된 떠오르는 배우로서 굳게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배우로서 작품 활동 외에 아티스트로서 자신 만의 퍼포먼스 영역을 넓혀가는 점이나, 이 청년이 갖고 있는 자세나 가치관에 동요되었다고나 할까. 알면 알 수록 더 끌리는 배우가 바로 조셉 고든 레빗이 아닐까 싶다. 이제 그는 내가 가장 주목하는 젊은 배우 중 하나다.


2011.12.15 추가 업데이트

지난 번 조셉 고든 레빗의 연대기 마지막에 출연 예정작이라고 거론 했었던 작품 가운데는
'Live with It'이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이 작품이 바로 '50/50'이었다.


세스 로건, 안나 캔드릭 등과 함께 출연한 이 작품에서 JGL은 암환자인 '아담' 역할을 맡고 있는데, 기존에 그가 갖고 있는 평범한 듯한 이미지를 그대로 활용하면서도 역시 그 안에서 자신 만의 색깔을 나타내고 있는 작품이라 캐릭터와 상당한 싱크로율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특히 이 작품이 추구하는 바가 삶과 죽음을 극적으로 그리기 보다는 그저 일상의 한 조각으로 거리를 두고 그리려고 한 점이라는 걸 봤을 때, 조셉 고든 레빗이라는 배우의 건조한 듯 하고 평범한 듯 하지만 진실이 담긴 눈망울은 더할 나위 없는 캐스팅이었다. 하지만 비교적 평범한 일상과 캐릭터로 등장하는 그를 보다보니, 저절로 썸머의 빈자리가 느껴지기도 했는데 아마도 이러한 경향은 한동안 계속 되지 않을까 싶다.

그의 다음 출연 예정작은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2012)'다. 존 블레이크 역할로 출연할 예정인 JGL의 모습은 벌써부터 많은 기대를 하게 한다. 과연 그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3부작을 마무리하는 이 작품에서, 또 어떤 연기와 캐릭터를 만들어낼까!



2012.10.26 추가 업데이트

업데이트를 깜빡하고 놓쳤는데 2012년 그의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던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빼먹을 뻔했다. 예전 글에서 이야기했다시피 이 영화는 조셉 고든 레빗이 연기한 '블레이크'를 중심으로 보자면 '블레이크 라이즈'라고 해도 좋을 만큼 블레이크의 비중이 의미상으로 중요한 작품이었다.



'인셉션' 이후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에 다시 한 번 등장한 JGL은, 영화 개봉 전 모든 이가 '로빈'일 것이라고 예상했던 경찰 '블레이크' 역할을 맡았는데, '다크나이트'의 하비 덴트 만큼은 아니지만 대단원을 마무리 하는 이 작품에서 배트맨이라는 캐릭터가 다시 한 번 애정을 갖게 되는 캐릭터인 동시에 거울로 삼게 되는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있다. 기존 그가 연기한 작품들을 보면 그 특유의 좁은 어깨 때문인지 조금은 연약한 이미지가 없지 않았는데, 이 작품에서 그가 연기한 블레이크는 정의라는 것을 대변해 줄 곧은 인물로서 결코 연약하지 않은 이미지를 선보였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로빈'이라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한 껏 안고 시작한 캐릭터였지만, 결론적으로는 '블레이크'로서도 충분히 독립 가능한 연기를 보여준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2012년 10월에 국내에서 만나보게 된 '루퍼 (Looper, 2012)'. 영화와 별개로 조토끼의 팬으로서 이 작품이 흥미로웠던 것은 작품 내내 살짝 못 알아볼 정도의 분장을 한 채 등장한다는 사실 때문인데, 영화를 처음 볼 때만 해도 '저러다가 어떤 이유로 인해 다시 제 얼굴을 찾지 않을까?' 했는데, 끝까지 긴가민가한 얼굴로 연기를 펼친 작품이었다. 그 이유라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미래에서 온 자신을 연기한 브루스 윌리스와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위해서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개인적으로는 굳이 분장이 아니더라도 그 자연스러움을 살릴 수 있었을 정도로 브루스 윌리스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한 그의 노력이 엿보였던 작품이었다. 얼굴이 아주 다른게 아니라 미묘하게 (긴가민가 수준) 다른 경우라 어떤 면에서는 익숙한 그가 보였다가도, 다른 장면에서는 낯선 그를 보게 되기도 했는데, 조셉 고든 레빗의 팬이라면 영화의 재미와는 별개로, 다른 얼굴로 연기하는 JGL을 보는 재미가 쏠쏠할 듯 하다.


현재 조셉 고든 레빗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링컨 (Lincoln, 2012)'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함께 연기를 마쳤으며, '인디아나 존스 :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과 '다빈치 코드'의 후속작 '천사와 악마'를 연출했던 데이빗 코엡 감독의 신작 '프리미엄 러쉬 (Premium Rush, 2012)'에도 출연해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본인이 직접 감독, 주연, 각본까지 맡은 영화 '돈 존스 어딕션 (Don Jon's Addiction, 2013)'까지 내년 선보일 예정이다. 이 작품은 그 외에도 줄리안 무어와 스칼렛 요한슨이 출연하고 있어 더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배우를 넘어서서 이제는 감독과 각본에 까지 영역을 넓힌 JGL의 활약을 앞으로도 계속 기대해본다!


'연대기' 시리즈는 주인공의 작품이나 앨범이 추가될 때마다 계속 업데이트 됩니다.


조셉 고든 레빗 출연작 리뷰

* 브릭 (Brick, 2005) _ 누아르 장르의 진화 (http://www.realfolkblues.co.kr/449)
* 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 (G.I. Joe: The Rise Of Cobra, 2009) _ 예고편을 좀 더 실감나게 즐기는 방법 (http://www.realfolkblues.co.kr/1054)
* (500)일의 썸머 ((500)Days of Summer, 2009) _ 내게도 썸머가 있었다 (http://www.realfolkblues.co.kr/1189)
* 인셉션 (Inception, 2010) _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 스스로 발전하는 세계 (http://www.realfolkblues.co.kr/1330)
* 인셉션 _ 블루레이 리뷰 (http://www.realfolkblues.co.kr/1419)
* 50/50 (,2012) _ 보이지 않던 반대편의 50%에 대해 (http://www.realfolkblues.co.kr/1571)
* 다크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2012) _ 놀란의 배트맨, 이렇게 마무리되다
(http://realfolkblues.co.kr/1669)
* 루퍼 (Looper, 2012) _ 흥미로운 장르영화 그리고 설마의 가능성 (http://realfolkblues.co.kr/1702)




자료참고 / imdb.com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각 영화사와 원저작자에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2 - 세계관과 메시지


오늘 아이맥스로만 세 번째 관람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다크 나이트>를 보면서 느끼는 점은 요 근래에 영화에서 이렇게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이렇게나 효과적으로 전달한 경우가 있었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블록버스터 답게 볼거리는 볼거리대로 전달하고, 스케일은 스케일대로 자랑하고 있으며, 코믹스를 원작으로한 히어로물답게 캐릭터별로 영웅과 악당의 이야기도 잘 표현해내고 있고(물론 일반적인 히어로물의 영웅론과는 다르지만),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바탕으로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완벽하게 영화 속에 녹여내 관객으로 하여금, 그 어떤 정치적 선동이나 말들 보다도 훨씬 강한 인상을 받게끔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은 처음 볼 때보다 두 번째, 세 번째 볼 때 오히려 더욱 강해졌습니다. 그 이유는 처음 볼 때는 그냥 지나쳤던 대사들이 (특히 초반부에 대사들은 영화에 막 빠져들기 시작하는 단계라서 - 그리고 어찌 진행될지 몰랐다는 아주 당연한 이유에서도 - 작은 대사 하나하나에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말 거의 한 마디도 그냥 쓰인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혹은 농담하듯 던지며 아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었다는 점을 알아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화에 관한 심각한 스포일러가 계속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영화의 주인공은 배트맨, 하비 덴트, 조커, 이 세 명 모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신 분들은 모두 다 아시겠지만 이 세 캐릭터의 영화 속 관계나 캐릭터가 갖고있는 상징적인 의미의 관계를 보아도, 이들은 절대 독립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배트맨과 조커의 관계는 영웅과 악당의 단순 관계로 규정 짓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점이 많다 하겠습니다. 일단 얼핏 보아도 배트맨은 일반적 히어로물의 영웅들과는 거리가 있으며, 조커 역시 일반적인 악당들과는 거리가 먼 독특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 <다크 나이트>에 따르자면, 조커는 태생적으로 배트맨의 의해 탄생하게 된 인물이나 다를바 없습니다.

팀 버튼의 <배트맨>처럼 조커가 브루스 웨인의 부모를 살해하게 되어 직접적인
원한의 구조로 이루어진 관계는 아니지만, 조커란 캐릭터는 고담시의 범죄와 싸우는 배트맨의 등장을 목격하고, 고담시민들이 배트맨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자신과의 유사점을 발견하는 동시에, 이로 인해 일어나게 된 갖가지 사회적 현상들과 모순들에 일종의 경종을 울리고, 이로 인한 혼란을 야기시키려는 의도 아닌 의도를 가지고 등장하게 되니까요. 그런데 이 말 자체가 <다크 나이트>에서는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 조커의 캐릭터는 그야말로 배경은 물론, 의도나 성격 자체가 없는 캐릭터로, 혼돈 그 자체로 보는 편이 더욱 맞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결국 앞서 '의도'라고 표현된 것들은 결과적으로 그런 효과를 거두었다는 것이지, 애초에 그럴려는 엄청난 계획과 목표를 갖고 진행된 일들은 아니라고 해도 무방할 듯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영화 속에서 조커가 배트맨에게 보여주는 이른바 '별종'으로서 느끼는 동질감은 어느 정도 순수하게
받아들여지는 부분도 분명 있다고 하겠습니다. 영화 초반 갱들과의 대화에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별종'이라는 단어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던 조커가 배트맨과의 대화에서는 자신이 스스로 '별종'이라 칭하며 배트맨에게 '너도 나와 같은 별종이다'라고 이야기하죠. 배트맨은 처음에는 인정하지 않지만 조커와의 대결이 깊어질 수록 점차 어느 정도 이 부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이 부분이 다른 히어로물의 영웅의 모습과 가장 다른 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는데(물론 모든 히어물과의 비교에서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일반적인 경향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 설정은 놀란이 얘기하려는 메시지와 정확히 맞닿아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외계인이 되었든, 돌연변이가 되었든, 아니면 사고로 특수능력을 얻었던지 간에, 일반적으로 주인공인 영웅들의 이러한 능력은 악을 소탕하는 데에만 쓰여지면 일반인들에게도 전혀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지고 환호를 얻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히어로물에서 일반인들이 보내는 시선과 반응이 만화적이고 판타지적이라면, <다크 나이트>에서의 모습은 영화의 겉모습처럼 상당히 리얼리티에 가까운, 즉 판타지에서는 숨기고 싶었던, 버젓이 존재하지만 숨기고 싶었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이기적이고 잔인한 모습과 모순적인 양면성이 드러나도록 상황을 만드는 존재가 바로 조커이며, 조커가 만들어낸(만들었다기 보다는 끄집어낸) 사건들이 계속되면서 브루스 웨인 역시, 자신이 본래 생각했던 선한 의도로 행했던 일들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직시하게 되고, 배트맨으로서 행해왔던 영웅적인 일들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즉 자신이 조커와 같은 '별종' 임을 인정하게 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고민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만약 <다크 나이트>속 배트맨의 모습이 일반적이라면 이러한 고민에 굳이 빠져들 이유가 없으며, 그냥 조커 역시 다른 악당들처럼 우여곡절은 겪었지만 결국 소탕해내고, 앞으로도 계속 영웅으로서 악당을 소탕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는 다릅니다. 배트맨은 자신이 이런 비정상적인 영웅 행동이 영원할 수 없음을 이미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고, 조커의 등장과 사건들을 통해 이를 더욱 확신하게 되면서, 정상적인 사회 시스템 속에서 악을 컨트롤할 수 있는 인물과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가 바로 하비 덴트 이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실제로 많은 관객들이 하비 덴트의 캐릭터에 공감을 하고 감정이입이 되었을 만큼, 하비 덴트라는 캐릭터는 어찌보면 가장 안쓰럽고 안타까운 캐릭터로 묘사되고 있기도 합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악과 맞설 방법을 찾던 브루스 웨인에게 적임자로 선택되었을 정도로 하비 덴트의 캐릭터는 '고담시'라는 배경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법한 매우 곧은 선한 의지를 갖고 있는 인물입니다. 고든과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비 덴트는 내사과 시절부터 어찌보면 융통성이 없다고 보일 정도로, 관례적으로 여겨지는 일반적인 좋지 않은 행태들 마저 일일이 태클을 걸며 걸고 넘어지는, 즉 너무 곧이 곧대로 법과 선을 행해서 나쁜 이들은 물론 동료들과 일반인들에게도 때때로 욕을 먹는 고담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이죠. 

물론 그렇다고해서 하비 덴트가 절대 선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가 <다크 나이트>에서보여주는 모습들을 보면 그는 악당까지는 아니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하는데에는 어느 정도 폭력적인 방법이 동원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이런 면에서는 배트맨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얼핏 보면 게리 올드만이 연기한 고든이라는 인물이 가장 선한 캐릭터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는 <배트맨 비긴즈>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자신의 파트너가 뇌물을 먹고 부패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그냥 긁어부스럼 만들기도 싫고, 또한 이미 모두가 썩었는데 어디가서 얘기하냐며 현실을 탓하고 마는 가장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하비 덴트는 달랐죠. 그도 누구보다 이렇게 썩을 대로 썩은 경찰과 조직의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었지만,
하비 덴트는 이런 부조리에 맞서 지속적으로 싸워온 용자라 할 수 있습니다. 고든이 하비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영화 속 대화에 언급된 것처럼 영웅심에 불타 동료들 모두를 조사한 것에 불쾌한 마음도 어느 정도 있었겠지만, 마음 한 편에는 자신은 미처 용기가 없어 하지 못했던 일을 거침없이 해나아가는 것에 대한 일종의 질투어린 시선과 부러움, 그리고 존경심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고든의 표현되지 못한 마음은 이후 하비 덴트가 결국 부패한 경찰들에 의해 레이첼과 각각 납치가 되고, 레이첼을 잃는 사고를 겪고 그가 고통에 힘겨워 하는 것을 보면서 점점 표현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물론 고든이 하비에게 갖는 미안함은 레이첼을 잃게 되는 사건에 있어서 결국 하비를 믿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가장 큰 것이겠지만, 그 내면 깊은 곳에는 애초부터 갖고 있었던 이러한 부러움과 존경심이 어느 정도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다시 하비 덴트의 중심으로 돌아가자면, 하비 덴트에게는 레이첼을 잃은 책임을 묻는 대상이, 이를 사실상 직접 행했다고 볼 수 있는 조커도 아니고, 어찌되었든 레이첼보다 자신을 먼저 구하러 온 배트맨도 아니며, 그 동안 경찰조직 내에서 그 부패를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음에도 미적한 태도로 이를 자신처럼 적극적으로 고쳐내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고든이라는 점에서, 하비 덴트라는 캐릭터가 투 페이스로 변하게 된 근본적인 심경 변화를 읽을 수 있다고 봅니다. 만약 그 원한의 가장 큰 대상이 배트맨이나 조커 였다면, 영화 속 투 페이스의 모습처럼 변화하지는 않았겠지요. 하지만 하비 덴트는 레이첼을 잃음으로서 그간  자신이 그토록 바꿔나갈려고 고군분투할 때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았던, 이른바 같은 편인 경찰들에게 (더군다나 결국 그 부패한 경찰들이 자신과 레이첼을 납치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음으로)그 화살을 돌리게 되면서 더 큰 분노로 인해 투 페이스의 모습으로 변화했다고 생각됩니다. 하비 덴트의 입장에선 어찌됬든 배트맨은 행동하는 인물이었고, 고든은 행동하지 않는 인물이었으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지막으로 다시 고든으로 돌아가자면, 고든은 하비 덴트가 투 페이스로 변하는 과정을 보면서 가장 죄책감을 크게 느낀 인물로 보여집니다. 하비 덴트의 생각처럼 자신이 행동하지 않는 인물이었다는 것을 깨닫거나, 인정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어쩌면 고든도 참 안타까운 캐릭터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비 덴트를 통해 이제야 자신이 역할과 해야할 일을 비로서 깨닫게 되었지만, 앞으로는 개혁하려는 용기가 있어도 배트맨의 뜻을 들어주기 위해 연기를 해야하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크 나이트>는 처음 볼 때부터 굉장히 정치적인 텍스트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일단 아이러니하면서 대단하다고 느꼈던 점은 이 영화가 슈퍼히어로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히어로물은 가장 미국적인 동시에 전세계에서 경찰 노릇을 하는 미국의 군사적 행동에 은연중으로 혹은 세뇌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토록 만드는 기능을 담당해 왔습니다. 그것이 애초부터 의도적이든 하다보니 그리 되었든 말이죠. 슈퍼히어로물에서 주인공인 영웅은 곧 미국이며, 악당은 미국이 주적으로 칭하는 테러리스트 들이 되겠으며, 테러를 당하는 일반 시민들이나 보통 사람들은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 정도로 비교하면 될 듯 합니다. 즉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당해낼 수 없는 일들이 있어서 이런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슈퍼히어로가 나서야 하고, 슈퍼히어로가 나서서 악을 물리치면 만사가 행복하고, 이는 결국 세계의 혼란스런 정세 속에서 미국이 경찰 노릇을 해야만이 평화와 안정을 누릴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히어로물에서는 <스파이더맨>의 대사처럼 '큰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슈퍼 파워를 선한 의도로 좋은 일에만 쓰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즉 책임만 지면 괜찮다는 메시지를 주로 담고 있습니다. 이것을 좋은 의미로 해석하자면 '슈퍼파워는 좋은 일에 써라'가 되기도 하겠지요. 물론 '큰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라는 말에는 감수하고 희생해야 될 것도 분명히 있다 라는 의미도 담고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를 단순히 가면을 쓴 히어로가 아닌 일반인으로서의 삶과 가족이나 여자친구를 포기해야 된다는 것 이상으로는 전개하지 않고 있지만, <다크 나이트>의 경우는 무엇보다도 이 문제에 가장 집중하고 있습니다. 즉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괜찮은가?' 혹은 '슈퍼파워를 지닌 자가 모든 것을 컨트롤 하여 선과 악의 균형을 맞추는 것 자체가 옳은 것인가?', '선한 의도로만 사용된다면 다 괜찮은 것인가? 선한 의도로 행한 힘의 결과로 좋은 일들만이 발생하는가?' '그리고 이런 것을 슈퍼히어로가 모두 컨트롤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러한 감독의 비판적 메시지는 브루스 웨인과 알프레드의 대화에서 아주 직접적으로 묘사됩니다. 조커의 행동들을 보며 '그들이 이렇게 까지 선을 넘을 줄은 몰랐다'라는 브루스의 말에 알프레드는 '선을 넘은 건 주인님이 먼저죠'라며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은 아주 직접적입니다. 배트맨은 분명 악당을 소탕한다는 의도 아래 악당들과 마찬가지로 법이 허용하지 않는 범위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폭력을 행했고(그 폭력이 누구에게 행해졌는지만 다를 뿐이죠), 단순히 용기 있는 몇 번의 행동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풍부한 재력을 바탕으로 각종 신무기와 비밀스런 프로젝트 들을 통해 브루스 웨인의 삶보다 배트맨의 삶에 더욱 집중했을 정도로 악당과의 전쟁 아닌 전쟁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브루스 웨인에게 배트맨으로서 아버지의 혼이 깃든 고담시를 지켜야 한다, 고담시의 악을 모두 소탕해야 한다라는 것은 거의 강박관념에 가까워 보이기도 합니다.

<다크 나이트>에서 비판의 메시지는 정치적으로 미국과 미국의 군사행동을 향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 히어로인 배트맨의 모습은 미국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미국이란 나라는 현재 정세 속에서 일종의 영화 속 히어로 입니다. 미국은 세계평화를 수호한다는 의도 아래 각종 군사작전을 진행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영향력과 엄청난 권력을 쥐고 있습니다. 그들의 논리는 단순합니다. 아직 믿기 어렵고, 나에게 적대적인 나라들이 힘을 갖는 것은 위험하니, 착한 내가 힘을 다 쥐고 컨트롤 하는 것이 안전하다 라는 것이지요. 이 논리의 기본적인 모순은 착한 사람이라도 모든 권력을 쥐고 컨트롤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겠지만, 더 문제는 그 '착한 사람'이 실제로는 '더 나쁜 사람'이라는 것에 있겠지요. 물론 영화 속 배트맨의 모습은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그저 '더 나쁜 사람'을 컨트롤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착한 사람이죠. 힘을 가지고 영웅 대접을 받고 영웅놀음에 빠지게 되면 당사자는 이미 자신을 제대로 컨트롤 할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브루스 웨인도 이런 위기에 빠질 수 있었으나 그에게는 알프레드나 폭스, 레이첼 같은
곧은 말을 해주는 조력자들이 있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브루스 웨인은 항상 알프레드에게 '어떻게 해야하냐'며 자신의 행동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알프레드는 브루스가 스스로 깨우치도록 직접적이지 않고 은유적으로 대답을 돌려줍니다. 그래서 브루스는 자신이 계속 고담을 위해 배트맨으로 활동을 하는 것이 진정으로 고담을 위하는 것인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되고, 자신이 선한 의도로 행해왔던 일들로 인해 더 큰 악이 발생한 것을 깨닫고 '영웅'으로서가 아닌 '어둠의 기사' 로서 자신 스스로를 희생하기에 이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는 미국에게 있어 굉장히 비판적인 텍스트 입니다. 다른 장르도 아닌 미국의 영웅적 행세를 가장 근간에서부터
지지하고 있던 히어로물에서, 이런 미국의 영웅적 행태를 비판하는 텍스트를 끌어낸 것은 놀란 감독의 대담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이클 케인이 어느 인터뷰에서 밝혔던 것처럼, 기존 히어로물이 미국 내에서 바라본 미국의 모습이라면, <다크 나이트>는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 미국을 바라본 모습이라는 말은, 아주 완벽하게 떨어지는 표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더군다나 그것도 '배트맨'이라는 히어로물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완벽한 메시지의 표현 방법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크 나이트>가 대단한 작품이라 평가 받는데에는 이런 비판적인 시각 때문이 아닙니다. 다른 영화에서도 이런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준 경우는 종종 있었으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영화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문제다'라며 화두를 던져준 영화는 많았으나 '이렇게 해야한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영화는 많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영화 속 브루스 웨인/배트맨의 모습을 보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다크 나이트>를 통해 단순히 문제 제기 뿐 아니라, 나아가야 할 해결책 까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 배트맨의 모습이 바로 그 해결책이지요.

조커와의 대결을 통해 배트맨의 등장이 오히려 더 큰 악을 불러일으킨 측면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후계자 겪인 인물을 모색하던 중 하비 덴트를 점 찍게 되지만, 이 과정에서 하비 덴트 역시 타락해버린 안타까운 현실을 직시하면서 결국 스스로 영웅의 이미지를 포기하게 됩니다. 이 과정 속에서 배트맨은 폭스의 기술을 업그레이드해 휴대폰을 통해 모든 이들을 투시할 수 있는 이른바 '무소불위'의 힘을 얻게 되는데, 폭스는 '이건 너무 과한 힘이에요'라며 우려를 표시합니다. 배트맨은 정확한 대답을 하지 않고 이번 일만 끝나면 이 기계가 존재하는한 회사를 떠나겠다는 폭스에게, 일이 끝나면 이름을 입력하라고만 합니다. 결국 기계를 통해 조커를 다시 잡아들이게 되고 폭스는 자신의 이름을 입력하고, 기계는 폭파되며 폭스는 '그래 브루스 웨인이 그럴리가 없지'라는 식의 미소를 띄우며 그곳을 빠져나옵니다.

일반적이라면 악당을 잡아들이는데 용이한 이 기계를 굳이 폭파할 이유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 영화가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자면 배트맨이 앞으로도 활동하는한 더한 악당들이 계속 등장할테니, 그들과 계속 싸우기 위해서라도 이 최신의 무기는 남겨두어야 겠지요. 하지만 <다크 나이트>에서는 이 기계를 과감히(?) 폭파합니다. 그 이유는 폭스가 언급했던 것처럼 이것이 너무 과한 힘이기 때문입니다. 영웅이 아무리 선한 편이라 하더라도 이 경우처럼 도를 넘어서는 과도한 힘을 완벽하게 컨트롤 하고 부패하지 않을 것이라 자신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자신도 본인이 소탕해야할 악당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진다는 점을 잘 알고, 앞으로 악당들과의 싸움에서 어려움을 겪을 지언정, 도를 넘는 옳지 않은 방법은 과감히 포기하고 미련을 버립니다. 이것은 미국식 히어로물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완전히 비판적인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이런 메시지를 담기에 '배트맨'이라는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아니 이 모호함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는)캐릭터는 너무도 잘 맞아 떨어지는 조합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배트맨과 알프레드의 대화 속에서 이 영화의 정치적인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면(제가 일일이 대사 하나하나를
다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가운데 <다크 나이트>를 또 다시 보게 될 분들이 계신다면 이 둘의 대화를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곱씹으며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던 대화들도 하나하나 이런 맥락에서 보면 무섭도록 맞아 떨어지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배트맨과 조커의 대화를 통해서는 이 영화의 사회적인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따져보면 영화 속에서 조커는 자신이 처음부터 직접적으로 행동하고 계획했던 것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이 사람들 속에 내제되어 있었던 본성과 모순을 끄집어내 이용한 것 뿐이었죠. 그가 처음 배트맨에게 관심을 끌고 접근하게 된 것도, 배트맨을 눈에 가시처럼 여기는 갱들에 필요를 끌어냈기 때문이었고,나중에 자신을 잡으러온 배트맨이 경찰 특공대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도록 만든것도, (안이 훤히 보이는 의심스런 건물임에도, 더 치밀한 조사없이)가면을 쓴 사람은 악당이고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은 인질이라는 선입견 때문이었죠. 특히 그간 범죄를 소탕해 오던 배트맨을, 막상 자신들에게 죽음의 위험이 닥쳐오자 제물로 바치는 듯이 자수를 요구하는 기자회견 장의 모습이나, 리스가 시간 내에 죽으면 폭파시키지 않겠다는 조커의 말에 모두들 달려들어 리스를 죽이려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과 무관한 일들에는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먼산 보듯 하다가, 정작 자신의 신변에 직접적인 위협이 닥쳐왔을 땐 그 어떤 악당들보다도 악한 본성을 드러내고야 마는 이기적인 사회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또한 병원에 입원된 가족을 위해, 혹은 밀린 입원비를 위해 남의 목숨을 쉽게 재물로 바치고 마는, (저도 물론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지나쳤던 대사이지만, 영화의 초반에 고든과 라미레즈가 옥상에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눌때, 고든이 라미레즈에게 부모님은 어떠시냐고 안부를 묻자, 계속 입원 중이시라며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만약 이 대사를 처음부터 정확하게 캐치하고 있었다면, 후반부에 경찰 가족 가운데 병원에 입원한 사람 찾아보라고 했을 때 벌써, 라미레즈의 배신을 눈치챌 수도 있었겠지요) 즉 선과 악의 차이는 동전 뒤집듯이 별 것 아닌 것이 되고마는 사회의 암울하고 어두운 면을 섬뜩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선과 악에 대한 묘사는 배트맨과 조커의 캐릭터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고, 하비 덴트가 투 페이스로 변하는 과정에서도 아주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선과 악이라는 기본적인 설정에 근거해 이 영화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잘 보여주는 시퀀스는 바로 두 대의 유람선 장면이었습니다. 감독은 이 부분에서 의도적으로 관객들의 선입관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화법이나 비판적인 시선으로 보았을 때, 그리고 일반적으로 영화에 심하게 몰입한 관객들이 생각하기에, 막판에 한 죄수가 '당신이 10분 전에 못한 일을 내가 하겠다'며 기폭장치를 달라고 했을 때 대부분 그 죄수가 누르겠거니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죄수는 기폭 장치를 누르지 않고 오히려 창문 밖 바다로 던져버리죠. 그리고 다른 배에서도 한 남자가 '자기 손이 더럽히긴 싫다 이거지'하며 기폭장치를 손에 쥐었을 때 누르지 않을까 했지만, 이 남자도 결국 누르지 못하고 자리에 돌아와 앉게 되죠.

그런데 저는 이 다음 장면에 각 배에 탄 사람들의 심리 묘사 장면이 더욱 좋았습니다. 좋았다기 보다는 표현함에 있어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기폭장치를 던져버리거나 누르지 못하고 자리로 돌아오자, 같은 배에 탄 주변 사람들의 표정은 '그래, 그런 짓을 할 수야 없지'라기 보다는 '아, 이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더욱 커 보입니다. 이성적으로는 그런 비인간적인 행동을 차마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본능적으로는 내가 죽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라는 감정이 극하게 교차되고 있는 순간이죠.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악과 함께 이 극적인 선과 악의 대립의 순간은 극렬하게 묘사되지만, 결국 둘 모두 기폭장치를 누르지 못하고, 이에 조커는 당황하게 됩니다. 그 동안 사람들의 악한 본성에 내맡겨 자신의 일들을 척척 진행되었던 조커에게는 처음 맛보는 실패 아닌 실패였죠.

이 장면은 리얼리티를 강조하고 있는 <다크 나이트>에서 유일하게 판타지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판타지 적이라기 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서 '이렇게 해야 한다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어쩌면 죄수들도 누르지 않고, 죄수들을 죽여야 한다며 큰 소리 치던 사람들도 기폭장치를 누르지 않는 이 장면이 판타지적으로 느껴진 것 자체가, 현대의 이 사회가 얼마나 암울한 상황인가를 은연중에 느끼게 해준 섬뜩한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결론적으로 <메멘토> <인썸니아> <프레스티지>를 만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는 일반적인 슈퍼히어로 물에서는 담을 수 없었던, 혹은 담으려 하지 않았던 미국식 영웅주의의 대한 비판적 메시지와 더불어 선과 악이 이성보다는 이기적인 본능에 의해 제어되는 사회의 대한 비판과 이러한 사회와 정세 속에서 거대한 힘을 갖고 있는 자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의 메시지를 모두 담고 있는 완벽한 영화라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다크 나이트>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따르자면, '완벽한 영화'라는 표현마저도 오만한 표현이 될지도 모르겠으나,
어떻합니까.
완벽한걸.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arner Bros. 에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크나이트 (The Dark Knight, 2008)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1 - 첫 느낌


해외에서 쏟아지는 호평과 극찬들. 국내 시사회 이후에 역시나 관객과 평론가 모두에게 쏟아지는 박수와 걸작이라는 거침 없는 평가들. 저는 본능적으로 남들이 다 좋아하는 것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면도 있고(물론 예외는 존재하지만), 저 뿐 아니라 기대라는 것은 커지면 커질 수록 실망이 자연적으로 커지는 법이라 감상전의 이 같은 엄청난 기대를 불러 일으키는 말들은 분명히 곧 만나게 될 <다크 나이트>에게는 마이너스 요소였습니다. 즉 쉽게 말해 100점짜리 영화를 만들었어도 워낙에 커진 기대 탓에 120점 정도는 보여줘야만이 100점으로 느껴질 정도였다는 얘긴데,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런 부담스런 기대를 안고 관람했음에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는 200점짜리 결과물을 저에게 안겨주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극장에서 감동과 전율의 눈물과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존경과 위대함에 대한 박수를 보낸 영화였으며, 그 동안 알고 있던 히어로 장르의 영화들을 모두(과장을 보태자면) 초라하게 만들어 버리는 압도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크리스토퍼 놀란이 <배트맨 비긴즈>를 통해 보여준 것은 정말 의미있는 시작이었다는 것이 <다크 나이트>를 통해 다시 한번 느껴졌습니다. 기존 판타지스럽고 기존 히어로 물의 일반적인 구성에 충실했던(물론 팀 버튼의 <배트맨>이 이런 전형적인 히어로 물의 룰을 따르고 있다는 것은 아니죠) 배트맨의 이야기를, 어쩌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현실로 가져와 배트맨과 브루스 웨인이라는 캐릭터를 좀 더 인간적인 면으로 그려냈고, 리얼리티를 강조하면서 왜 배트맨이 되었나에 관한, 혹은 될 수 밖에는 없었나에 대한 이해가 용이해졌고, 무엇보다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에 좀 더 애정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정말 놀란이 만든 <배트맨 비긴즈>이전에는 단 한 번도 고담시가 현실에 존재할 법한 도시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크리스토퍼 놀란은 자신이 처음 맡게 된 배트맨 이야기의 새로워진 배경과 분위기를 설명하는데에 <배트맨 비긴즈>의 최대 공을 들였다면, <다크 나이트>에서는 이러한 프롤로그 없이 이미 비긴즈에서 설명이 된 세계와 인물들을 중심으로 본래 하고 싶었던 복잡한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꺼내 놓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는 배트맨에게 가장 위협적인 적이라 할 수 있는 적으로 조커가 등장하게 되었고, 투 페이스도 등장하게 되죠. 크리스토퍼 놀란은 영웅이 악당을 무찌르는 기본적인 히어로 물의 아주 커다란(아주) 바탕 아래 범죄 스릴러의 요소를 가져왔으며, 사회/정치적인 메시지와 히어로로서 겪는 갈등의 요소를 극대화해 어느 리얼한 극 영화들 보다도 관객이 놓여진 상황에서 어떤 결정도 쉽게 내릴 수 없고 지치고 곤란하게 만들어 버릴 정도의 갈등을 야기시키면서(그것도 히어로 물에서 말이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심리극의 분위기로 배트맨을 이끌고 있습니다.

어느 기사를 보니 크리스토퍼 놀란이 팀 버튼의 배트맨과 차별되는 배트맨을 만들기 위해 리얼리티를 강조함에 있어 마이클 만을 거쳐가는 방법을 택했다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이에 적극 공감하는 바입니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그 동안은 그저 코믹스나 영화 속에나 만나볼 수 있는 가상 공간으로만 여겨졌던 고담씨티를 실제 시카고를 배경으로한 로케이션 촬영으로 대부분의 장면을 묘사하면서 이 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주요 인물들과 배트맨, 조커 등의 캐릭터에 대한 리얼리티도 동시에 부여하는 효과를 거뒀으며, 마이클 만이 <히트>에서 보여주었던 총격씬에서의 리얼리티와 사운드(마이클 만은 역시 총소리의 달인!), 그리고 <콜레트럴>에서 보여주었던 L.A의 밤거리의 묘사 같은 장면의 장점만을 고스란히 흡수하면서, (특히나 아이맥스로 촬영된 장면에서는) CG가 아닌 리얼리티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초반 프롤로그 장면을 비롯해 영화 속의 사운드는 엄청난 박력으로 무장되어 있었으며, 밤거리를 배경으로 벌어진 차량 추격씬에서도 화려함보다는 오히려 묵직함과 박력이 느껴지는 구성이라 할 수 있겠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배우들의 열연은 <다크 나이트>를 위대한 영화로 만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먼저 배트맨/브루스 웨인
역을 맡은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는 여전히 뛰어납니다. 사실 조커 역의 히스 레저의 놀랍도록 완벽한 연기에 가려서이지, <배트맨 비긴즈>에 이어 <다크 나이트>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크리스찬 베일이라는 배우에 대해 다시 한번 신뢰를 깊게 할만큼 인상적입니다. <비긴즈>에서 배트맨이 되어야만 했던 '브루스 웨인'으로서의 고뇌를 표현해 냈다면, <다크 나이트>에서는 '언제 까지 배트맨이 고담시에 존재해야 하는가' 혹은 배트맨의 등장이 악을 소탕하는 것 보다는 오히려 더 큰 악을 불러 오게 된 계기는 아니었나'하는 '배트맨'으로서의 고뇌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나중에 더 집중적으로 리뷰할 글을 위해 남겨두느라 자세한 표현은 하지 않겠지만,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이 겪는 고민은 관객도 예상할 수 없음은 물론, 어느 쪽을 선택해도 기회비용이 따르는, 정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이런 복잡한 심리를 표현해 내기에 크리스찬 베일만한 배우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 작품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에서는 배우 히스 레저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단순히 짙은 분장과 의도된 목소리 연기 탓만이 아니라, 그의 놀랍도록 몰입된 연기에서는 히스 레저는 물론, 조커 하면 떠오르는 잭 니콜슨의 그림자 조차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간 히스 레저가 출연한 작품들은 <카사노바>를 제외하면 거의 다 보았던 것 같은데, 그 작품들 어디에서도 이런 모습이 내재되어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의도된 목소리 연기와 입맛을 다시는 동작 등을 볼 때는 정말 소름이 돋더군요. 히스 레저의 연기에 대해서도 너무나 감탄스럽고 칭찬할 부분들이 많은데 이 부분 또한 나중 포스트에 좀 더 자세하게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간단하게 마무리하자면,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속보로 전했을 때보다 <다크 나이트>를 보고 나온 오늘의 느낀 그의 공백에 대한 충격이 더욱 컸습니다. ㅠㅠ


초반 등장하는 킬리언 머피는 이 정도면 거의 까메오 수준입니다.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배우임에도 이런 스쳐가는 분량에도 기꺼이 참여한 그에게도 박수를 보냅니다(결과적으로 킬리언 머피도 이 걸작의 영화에 동참하는 배우가 되었네요). 알프레드 역의 마이클 케인과 폭스 역의 모건 프리먼 역시 <배트맨 비긴즈>에 비하면 비중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둘 캐릭터는 <다크 나이트>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캐릭터라 할 수 있겠죠.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 나이트>를 거치면서 어느새 악역의 기존 이미지는 거의 다 희석되다시피 되어버린 게리 올드만 역시 고든 역할을 충실히 연기해냈고(코믹스 속 고든의 모습을 본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코믹스 속 고든과 게리 올드만이 연기한 고든의 모습의 싱크로율은 상당히 높습니다), 케이트 홈즈에 이어 레이첼 역할을 맡은 메기 질렌할은 객관적인 미모 평가에서는 조금 뒤쳐진다는 평들도 있으나(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습니다), 전작에서부터 그대로 이어지는 캐릭터 가운데 유일하게 배우가 교체된 핸디캡이 있었음에도 몰입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는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물론 영화 자체에 완전히 몰입하도록 만든 감독의 연출력이 바탕이 되었죠).

하비 덴트를 연기한 아론 에크하트는 이 영화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배트맨과 조커 만큼이나)중요한 캐릭터라 할 수 있는데, 선의 상징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는 하비 덴트와 악당이 모습으로 변해버린 투 페이스의 캐릭터 모두를 연기함에 있어, 캐릭터를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생각되지 않도록 훌륭한 연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배트맨, 조커, 투페이스, 그리고 크리스찬 베일, 히스 레저, 아론 에크하트 등 배우들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 포스트에 따로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스 짐머와 제임스 뉴튼 하워드가 무려(!) 함께 작업한 사운드 트랙은 그야말로 걸작에 어울리는 웅장하고 중후하면서도 극적인 분위기를 한꺼번에 전하고 있습니다. 액션 장면에서도 너무 오버되지 않은 표현과 더불어 전체적으로 서사적이면서도 슬픈 감정이 묻어있는 음악을 들려주는데, 정말 오랜만에 스케일이 느껴지는 사운드 트랙이 아닐까 싶습니다(이미 너는 질러져있다).


DVD나 블루레이가 출시된 이후에 작정하고 하나의 영화에 대해 연재를 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개봉관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단 한 번 보고, 단 번에 연재할 만한 이야기꺼리가 떠오르고 계획하게 된 건 <다크 나이트>가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앞으로 영화의 세계관 / 감독의 메시지, 배우/캐릭터 열전, 크리스토퍼 놀란만의 배트맨 이야기 등등 적게는 3회, 많게는 4~5회에 걸쳐 <다크 나이트>에 관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그것이 이 시대에 걸작이자 히어로 물의 역사를 새로 쓴 영화에 대해 제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작은 성의이겠지요 ^^;



1. 아이맥스로 촬영된 장면의 압도적인 스케일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건 느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말로 설득할 수 없습니다.

2. 하비 덴트가 투 페이스로 변해가는 과정과 배경을 보니 <배트맨 포에버>에서 토미 리 존스가 연기한 투 페이스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약간 우습게만 보였던 그의 모습들이 다시 보였달까요. <다크 나이트>중복 관람이 어느 정도 끝나게 되면 <배트맨 포에버>를 다시 찾아봐야 겠어요.

3. 영화가 끝나자 마자 한 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이름이 뜨자 한 번, 그리고 세상을 떠난 히스 레저와 스텝의 이름이 떴을 때 한 번, 총 3번의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4. 전 원래 어느 영화든 엔딩 크래딧이 완전히 끝날 때 까지 다 보고 나오는 편이지만, 화요일 6시 용산에서 아이맥스로 관람하고 계단을 내려오며 뒤를 쳐다봤는데, 아마도 제가 본 이래에는 가장 많은 관객들이 완전히 끝까지 남아있던 광경이었습니다.

5. 에릭 로버츠의 모습도 오랜만이라 반갑더군요.

6. 고든의 아들 역할로 나오는 아역배우 나단 겜블은 <미스트>에서 토마스 제인의 아들로 나오기도 했었죠.

7. 엔딩 크레딧에 히스 레저와 함께 추모의 뜻을 보냈던 이는 Conway Wickliffe 라는 특수효과 전문 스텝이었습니다. 1966년 생으로 지난해 9월 25일 유명을 달리하셨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arner Bros. 에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의 어린 시절인 80년대 후반. 그 때는 부모님이 퇴근해서 집에 오실 때 마다 무슨 비디오를 빌려올지가 가장 기대되는 날들이었다. 아직도 내 인생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영화들은 모두 당시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본 영화들이었으며, 그 중에는 무엇보다 스필버그 영화와 홍콩 영화가 가장 재미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권에서는 홍콩 영화가 단연 최고의 인기였고, 우리 집이라고 다를 것 없었다. 주윤발 주연의 <영웅본색> <첩혈쌍웅>과 장국영, 왕조현의 <천녀유혼>같은 영화도 무척이나 많이 보았지만, 단일 배우로 꼽자면 단연 성룡 영화를 가장 많이 보았던 것 같다. 특히나 <폴리스 스토리> <프로젝트 A> <용형호제>등 시리즈로 제작된 작품들은 이른바 지금까지도 ‘성룡’영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불후의 명작들이라 할 수 있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시절 가장 친숙한 이미지는 다름 아닌 골든 하베스트의 영화사 로고였다)


지금처럼 영화 시작 전부터 어느 영화사가 제작하고 또 배급했나 로고를 유심히 살피지 않던 어린 시절에도 강하게 인식된 영화가 로고가 있었으니, 그건 다름 아닌 골든 하베스트사의 그 유명한 문양이었다. ‘뚱, 뚱, 뚱, 뚱, 뚜뚜 두 뚜~’하는 배경음악과 함께 등장하는 골든 하베스트의 이미지는 정말 당시 지겨울 정도로 많이 보았던 것 같다. 어린 시절에 생각하기로는 골든 하베스트를 하나의 영화사로 인식하기보다는, 그냥 성룡 영화의 시작엔 당연히 나오는 하나의 인트로 정도로 인식했었던 것 같다. 

성룡에게 있어 이 작품 <폴리스 스토리>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품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폴리스 스토리>이전까지 성룡이라는 배우는 <취권>과 <사형도수>등으로 대표되는 쿵푸 사극 속의 이미지나 <쾌찬차>로 대표되는 홍금보, 원표와 함께한 코믹 액션 영화의 이미지가 강했었으나, <폴리스 스토리>가 성공을 거두면서 이후 하나의 브랜드처럼 되어버린 ‘성룡’ 영화의 기틀을 마련한 계기가 되었고, 무엇보다 홍금보, 원표 없이 단독으로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도 성공하면서 자신만의 입지를 탄탄히 다지게 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시기는 성룡이 헐리우드 진출을 위해 단독 주연 작품 몇 작품을 만들었지만, 실패를 거두고 난 상황이라 더욱 의미가 컸는데, 성룡은 단순히 주연만 맡은 것이 아니라 감독과 제작, 스턴트, 무술지도, 그리고 주제가 까지도 직접 부르는 등 1인 다역을 선보이면서, 그간 자신이 주연을 맡아온 영화들과는 색 다른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단순히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는 <폴리스 스토리>라는 것이 재밌기만 한(물론 아주 재미있는) 코믹 액션 영화 정도로 남아있었는데, 어른이 되어 다시 보게 되니,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여러 가지 영화적인 재미와 더불어 감동이 엿보이는 것이 아닌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85년작인 <폴리스 스토리 (警察故事)>는 제목과도 같이 경찰인 주인공 ‘진가구’가 경찰로서 악을 소탕하는 과정을 그린 액션 영화이다. 그런데 악당이 아주 극악무도 하다기 보다는 법을 악용해 합법적으로 범죄를 일으킨다. 경찰인 진가구는 여기에 억울해하고 분노하지만 이를 합법적으로 응징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 뻔히 악당을 범죄 현장에서 잡아넣었지만 그들은 변호사를 고용해 법정에서 요리조리 빠져나가 무죄 판결을 받게 되고, 그 와중에 동료 경찰관이 이들과 결탁한 것을 알게 되지만, 동료 경찰은 곧 악당들에게 살해되고 이 살인죄마저 뒤집어쓰게 되어 경찰에게도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진가구는 자기 발로 경찰서로 돌아가 억울함을 호소해보지만 불리한 증거 때문에 결국 상사를 설득시키지 못하고, 상사를 인질로 잡은 채 빠져나와 스스로 범죄의 증거물을 찾아 나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폴리스 스토리>에서 흥미로운 설정 중에 하나는 바로 경찰 내의 모습이다. 이런 설정은 2편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는데, 동표가 연기한 ‘표숙’으로 대표되는 경찰서 내의 이른바 ‘윗사람’들은 겉으로는 딱딱하고 권위를 내 세우는 듯 ‘연기’하지만 실제로는 법보다는 인정이 앞서는 따뜻한 사람들이다. 이를 가장 잘 나타내 주는 캐릭터가 동표가 연기한 ‘표숙’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마치 상사라기보다는 아버지 같은 느낌으로 진가구를 대하며, 오랫동안 함께해온 동료로서 진가구의 성격과 성향을 누구보다 훤히 꿰뚫고 있어 힘들이지 않고도 경찰조직 내의 상하구조를 유연하게 컨트롤 해내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납치를 당했음에도 스스로 진가구에게 증거 확보를 위한 시간을 벌어주는 상사의 모습에서도 이런 ‘정’을 느낄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룡 영화에는 반드시 높은 담이나 문을 넘는 장면이 등장한다. 성룡의 스턴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범죄를 대하는 방식에 대해 잠시 이야기하다 말았는데 계속 이어가보자면, 결과적으로 경찰 조직 내에서도 이 범죄조직을 합법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에, 진가구를 사실상 그냥 보내주고 만다. 결국 진가구가 마지막 백화점에서의 치열한 격투 끝에 범죄의 증거와 더불어 일당의 우두머리인 ‘주도’를 잡게 되는데, 보통 같으면 잡는 것으로 해피 엔딩으로 끝나겠지만 <폴리스 스토리>에서는 이런 정상적인 방식보다는 시종일관 법으로도 범죄를 해결할 수 없어 억눌리고 답답한 정서를 마지막에 시원하게 풀어내고야 만다. 마지막 진가구가 주도의 변호사와 주도에게 분노의 주먹을 날릴 때, 사실상 그를 아무도 말리지 않은 것은 모두들 진가구를 이해하고 있고 또한 동의하고 있음을 암묵적으로 보여준다. 잡히고 나서도 뻔뻔하게 법을 논하는 변호사에게 시원하게 한 방 날릴 때의 쾌감은, 단순히 액션에서 오는 쾌감 그 이상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편의 가장 큰 스턴트 장면이었던 백화점 샹들리에 씬)

<폴리스 스토리>에서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마지막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백화점에서 샹들리에를 타고 내려오는 스턴트 장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당시 성룡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영화 한 편마다 초대형의 스턴트 장면이 꼭 하나씩 등장한다는 점인데, <폴리스 스토리>에서는 바로 이 백화점 샹들리에 장면이었으며, 영화 속에서 이 장면은 각기 다른 각도에서 여러 번 반복되어 등장한다(이 같은 방식은 이후 성룡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예전 어느 글에서 본 것 같은데, 이런 대형 스턴트 장면에서 성룡은 영화 속 인물인 ‘진가구’로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배우인 ‘성룡’으로 임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적으로는 맞지 않게 몇 번씩 같은 장면을 스턴트 적인 면에서만 강조하여 반복하는 것이나, 스턴트 전에 크게 심호흡을 하며 준비하는 과정을 그대로 담은 것은,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니라 배우 ‘성룡’으로 임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고 보여주는 것으로서, 오히려 영화적으로 촌스럽게 보이기보다는 성룡 영화에 대한 진정성을 관객에게 느끼게 해주는 것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성룡 영화에 대표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는 ‘NG장면’을 통해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귀엽기까지한 모습에 임청하도 이 영화에서 고생을 참 많이했다)


<폴리스 스토리>의 엔딩 장면은 비디오 버전과 DVD버전이 다른데, 비디오 버전에서는 주도에게 분노의 주먹을 날린 뒤 밖으로 나와 경찰에게 연행되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DVD버전에서는 백화점 안에서 분노하는 것으로 밖으로 나오기 전에 끝이 난다. 1편에 대해 다 못한 얘기를 좀 더 보태자면, 역시 임청하에 풋풋한 모습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텐데(장만옥의 경우는 3편 모두 출연하고 있으니 나중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아마도 개인적으로 내가 임청하를 보게 된 작품은 <폴리스 스토리>가 두 번째였던 것 같다(첫 번째는 <촉산>).

임청하 하면 떠오르는 대표 이미지인 ‘동방불패’를 생각한다면, <폴리스 스토리>에서 성룡에게 귀엽게 애교를 부리는 어린 임청하의 모습은 새롭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임청하는 NG 컷에서 알 수 있듯이, 후반 백화점에서의 액션 씬을 직접 소화하는 과정에서 고생을 겪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당시 비교적 신인이라고는 하지만 여배우가 저리도 열심히 스턴트 연기를 펼치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기까지 했다(슬로우 비디오로 묘사되기 때문에 임청하에 고통스런 일그러진 표정을 가감 없이 볼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룡과 장만옥의 이 오토바이 유머 시퀀스는 1편에 이어 2편에서는 업그레이드해 등장한다)

 
<폴리스 스토리>1편과 2편은 그대로 이어지는 하나의 영화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1편 이후에 <용형호제>나 <프로젝트 A 2>같은 작품이 있은 뒤 1988년 만들어진 2편이기는 하지만, 1편의 하이라이트 장면으로 시작하는 것과 1편의 등장인물들이 그대로 2편에도 등장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나중에 3편에 대해 얘기할 때 또 언급하겠지만, <폴리스 스토리 3>은 성룡이 아닌 당계례가 감독을 맡았다는 점과 말레이시아 해외 로케이션 등 내용적으로나 영화적으로도 스케일이 더 커졌다는 점에서, 오히려 1,2편 보다는 아쉬운 부분이 많은 작품이었다). 뭐랄까 1편에서 자신 만의 스타일은 이런 거다 라고 맛을 보여주었다면, 2편<폴리스 스토리 : 구룡의 눈 (警察故事續集: Police Story Part II)>에서는 앞서 언급한 영화들을 거치면서 좀 더 자신 만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영화화 하는데 매끄러워진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1편이 약간 거친 것에 비해 2편에서는 능수능란함을 엿볼 수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룡 영화에는 유난히 의자와 탁자를 이용한 액션 장면이 많이 나온다)


2편을 다시 보니 <스파이더 맨>같은 일종의 히어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주도 일당을 일방 타진한 진가구는 경찰의 마스코트가 되어 대외적으로도 유명세를 타게 되는데, 1편 마지막에서 잡혔던 주도는 결국 법을 악용해 다시금 풀려나 진가구를 본격적으로 노리게 된다. 이 와중에서 진가구의 여자 친구인 아미(장만옥)를 괴롭히고 위협하게 되는데, 진가구는 이런 상황에서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경찰로서가 아니라 아미의 남자친구로서 주도 일당을 찾아가 한바탕 소동을 벌이게 된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경찰 내에서는 진가구를 나무라고 진가구는 그럴 바에는 경찰직을 내놓겠다며 사직 의사를 밝히고 아미에게로 돌아온다. 그래서 오랜만에 아미와 한가로운 데이트를 즐기며 경찰을 관두었다는 얘기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은 마치 피터 파커가 <스파이더 맨 2>에서 메리 제인을 위해 스파이더 맨 생활을 접고 행복함을 느끼는('Rain drops keep falling on my head'가 흐르던 장면. 개인적으로 <스파이더 맨 2>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장면과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피터 파커가 그러하였듯 진가구도 다시금 악을 소탕하기 위해 경찰로 복귀하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찰로 돌아온 진가구는 주도 일당이 아닌 쇼핑센터 폭탄 테러를 통해 대기업에 돈을 요구하는 테러 집단과 맞서게 되는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전편에서 사실상 혼자 모든 것을 해결했던 것에 비해, 2편에서는 팀을 이뤄 작전을 수행하는 설정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진가구가 홀로 해결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긴 하지만, 팀을 이뤄 도청을 하고, 미행을 하고, 위장을 해 접근하고, 용의자를 심문하는 장면 등은 분량 상으로는 그리 길지 않았지만, 이제 와 다시 보니 아주 흥미로운 설정이 아닐 수 없었다(특히나 전화 발신자를 추적하는 경찰의 최첨단(?)시스템과, 미행 도중에서 벌어지는 도주 스킬(지하철을 타려다 안타고, 안타려다 막판에 타는 것으로 미행을 따돌리는)은 마치 <본 슈프리머시>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구조물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이 공원 액션 장면은, 성룡 영화에 명장면 중 하나이다)


<폴리스 스토리 2>에서는 인상적인 격투 시퀀스가 2번 등장하는데, 그 첫 번째는 공원에서 벌어지는 주도 일당과의 격투 장면이다. 성룡의 액션은 마치 격투 게임과도 같은 1:1 만의 대결에서 보다는 1대 다수의 대결에서 더욱 빛나고, 주변에 구조물이 많고 집기가 많은 곳에서 더욱 빛이 나는데, 이런 장점을 가장 잘 보여준 전투 시퀀스 중 하나가 바로 공원에서의 결투 장면이 아닐까 한다. 공원에 있는 시소나 미끄럼틀 등 다양한 구조물을 모두 이용하여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적을 피하는 성룡의 모습이나, 일반적인 권법 외에 무기까지 사용하는 장면이 등장하면서 더욱 다양한 액션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성룡은 1대 다수로 주로 싸우는 장면이 많아 그렇기도 하지만, 무결점의 파이터라기 보다는 때리는 만큼이나 상당히 많이 맞는 파이터라고 볼 수 있는데, 이 공원에서의 격투 장면에서도 피를 흘릴 정도로 많이 맞는 가운데 모두를 소탕하는 성룡의 액션을 만나볼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공삼각!! 이 대결 장면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두 번째 인상적인 액션 장면은 바로 영화의 마지막인 공장 건물에서 벌어지는 액션을 들 수 있겠는데,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1대 다수의 결투 외에 1:1 대결의 묘미를 극대화 시키고 있다. 바로 영화 속에서 ‘아빠, 아빠, 아빠’만을 말하던 농아 역할의 베니(중국 이름 여강권)와의 대결이 그것인데, 이 1:1 대결은 성룡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결투 씬들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큼 인상적인 합을 보여준다. 태권도를 시작으로 다양한 무술을 익힌 스턴트 맨이자 배우인 여강권과 성룡과의 액션 장면은 일단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하는데, 특히 여강권이 보여주는 영공삼각(공중에서 세 번 발로 차는)동작이 기억에 남는다. 여강권이라는 배우 자체가 태권도를 가장 먼저 배운 배우이기 때문에 화려한 발차기 기술이 적극 도입되었고, 결국 화려한 액션 장면으로 연결되었다. 물론 이 대결의 백미는 ‘콩알탄’과 흡사한 폭약을 던지는 장면이었는데, 나중에 진가구가 폭탄을 들고 ‘아빠, 아빠, 아빠’하며 복수하는 장면은 지금 봐도 재미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강권은 2편 뿐 아니라, 1편에서도 단역으로 출연하였고, <프로젝트 A 2>에도 출연하였다)


이 장면에서 등장한 여강권은 1편에도 자동차에서 벌어지는 액션 장면에서 스턴트 연기자로 참여했었고, 2편에서는 이렇듯 중요한 역할을 맡았으며, <프로젝트 A 2탄>에도 출연하였다. DVD의 서플먼트에는 유일하게 여강권의 인터뷰가 수록되었는데, 나이를 먹은 지금에도 무술로 단련하고 있는 모습과, 스턴트맨이기 보다는 연기가 하고 싶다는 바램도 들을 수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당시 성룡 영화에는 모두 등장하다시피하던 '화성'과 '다이표'. 얼굴만 봐도 반갑다)


당시 성룡 영화하면 성룡이 직접 만든 스턴트 팀인 ‘성가반 (JC Stunt Club)’과 함께 항상 등장하는 조연 배우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배우를 꼽으라면 ‘화성’과 ‘다이표’를 들 수 있겠다. ‘화성’은 <폴리스 스토리>1,2편에서는 경찰청 내 동료 경찰로 등장하고 있고, 3편에서는 경찰이 아닌 악당 중 한 명으로 잠시 등장하기도 했다. ‘다이표’의 경우는 <폴리스 스토리 2>에서 진가구를 배신하는 정보원 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은 당시 성룡 영화에는 거의 빠지지 않았던 배우들로서 마치 골든 하베스트 로고와 같이 성룡 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이미지라 할 수 있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마와 증강,나열 등의 모습도 만나볼 수 있다)


이 외에도 2편에는 또 다른 까메오 연기자가 등장하는데 바로 <천녀유혼>의 ‘연적하’역으로 유명한 ‘우마’다. <폴리스 스토리 2>에서는 경찰관 역으로 잠시 등장한다. <폴리스 스토리 3>에서는 여러 배우들이 등장하는데, 일단 두 명의 악당 역할을 맡은 ‘원화’와 ‘증강’을 빼놓을 수 없겠다. 일단 비교적 최근작인 <쿵푸 허슬>에도 출연했었던 원화는 1970년대부터 홍콩 영화계를 이끌어 온 대표적인 배우로서, 쿵푸에도 특히 조예가 깊은 배우다. 또한 ‘증강’은 개인적으로는 <영웅본색>에서의 이미지가 강한 배우였는데, <폴리스 스토리 3>에서도 혼전 중에 양복을 입고 흐트러진 모습을 볼 수 있어 더욱 <영웅본색>이 떠올랐다.

그리고 정창화 감독의 <죽음의 다섯손가락>의 주인공인 나열 (Lieh Lo)을 들 수 있는데, 성룡의 또 다른 작품인 <미라클>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던 나열은(그의 화려한 쇼브라더스 경력은 여기서는 거론하지 않겠다), 여기서 군의 장군 역할로 출연하고 있다. 그리고 2편에서 동료 경찰들 가운데 한 명으로 <판관포청천>의 ‘전조’로 유명한 ‘하가경’이 출연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룡과 동표의 콤비는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성룡과 함께 1편부터 3편까지 모두 등장하는 배우 중에 대표적인 두 배우를 꼽으라면 동표와 장만옥을 들 수 있겠는데, 먼저 <폴리스 스토리>하면 성룡 만큼이나 동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어느 때는 친구처럼, 어느 때는 아버지와 아들처럼, 어느 때는 삼촌과 조카처럼, 성룡과 콤비를 이루어 여러 재미있는 장면을 만들어내는 동표의 모습은 비단 <폴리스 스토리>뿐만 아니라 여러 다른 성룡의 작품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동표라는 배우 외에 ‘표숙’이라는 캐릭터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폴리스 스토리>에서 동표의 이미지는 깊이 각인되어 있다. 특히 여우처럼 은근슬쩍 넘어가는 표정이라던가, 깜짝 놀라는 표정, 민망함을 넘기는 표정 연기 등은 보는 사람을 절로 행복하게 만든다(참고로
동표는 2006년 2월 22일 우리 곁은 떠났다 ㅜㅜ, 그의 관을 가장 앞에서 운구한 사람은 다름 아닌 성룡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장만옥의 볼살 통통한 모습은 <폴리스 스토리>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이다)


먼저 밝히자면 나는 장만옥의 왕팬이다. 모든 여배우를 통틀어서 가장 좋아하는 배우가 장만옥일 정도로 좋아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폴리스 스토리>시리즈는 내게는 더욱 특별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사실상의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폴리스 스토리>에서 장만옥의 모습은 그야말로 젖살이 다 빠지지 않은 풋풋함 그 자체라 할 수 있는데, 이후 장만옥이 보여준 선 굵은 깊은 연기와 비교해보자면 <폴리스 스토리>에서 장만옥이 보여준 가볍고(?), 밝은 모습은 오히려 더욱 인상적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1편, 2편, 3편으로 계속되면서 점차 젖살이 빠지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장만옥의 얼굴에 가까워져 가는 그녀의 변화도 스크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폴리스 스토리 3>

에서 당시 <예스 마담>시리즈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던 양자경도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쿵푸와 스턴트 연기를 펼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초반에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폴리스 스토리 3>은 일단 성룡이 직접 감독을 맡지 않고 <홍번구>등을 만들었던 당계례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1편과 2편이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과는 달리 인물들은 동일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 로케이션이 진행되고, 공안과 군이 등장하는 등 스케일이 전편보다 훨씬 커졌음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같은 확장이 오히려 전편들보다는 재미를 반감시키는 결과를 낳았는데(이렇게 얘기하면 재미가 없다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겠지만, 1,2편보다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마약이나 밀거래(장군이 등장하는 밀거래 설정은 마치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1,2편에서는 경찰만 총을 소지했던(물론 1편 빈민가에서 벌어진 액션에서는 악당도 총을 갖고 있긴 했다만)것에 비해 군이 등장한 터라 대형 화기들이 등장하는데 이런 것도 좋지만, 역시나 성룡 하면 주먹 싸움이 제 맛이라 이런 설정이 크게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룡 영화의 인장과도 같은 NG컷에서는 재미와 진정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헬리콥터와 기차가 동원된 스턴트 장면은 역시 이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는데(기차에 헬기가 걸려 추격하게 되는 설정하면 <미션 임파서블>이 먼저 떠오르는데, <미션 임파서블>은 1996년 작이고, <폴리스 스토리 3>는 1992년 작이니 일단은 이 작품에서 더 먼저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물론 이 부분은 <미션 임파서블> TV시리즈의 에피소드에 등장했거나, 다른 영화에서 먼저 등장했다면 틀린 말이 되겠다). 이 헬기 스턴트도 그렇지만 성룡 영화에서 스턴트가 동원된 장면에서는 일반적인 카메라 구도와는 다른 구도를 보여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인물에 아주 근접하지 않으면서도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아서 인물의 얼굴은 누구인지 확인이 가능한 정도의 거리에서, 전체적인 구도로 잡으면서 영화적인 컷에 중점을 포인트를 두었다기 보다는 스턴트에 포인트를 맞춘 구도로서, 마치 ‘이거다 실제로 촬영한거다’ ‘스턴트 맨이 아니라 내가 직접 다 했다’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물론 이 당시에도 성룡이 가끔 대역을 쓴 것은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래도 거의 대부분의 스턴트 장면을 본인이 직접 했다는 데에는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 비디오로만 보았던 성룡 영화를 언제 한 번 다시보기 하면서 정리해봐야겠다 하는 막연함만 있었는데, 이번에야 겨우 첫 삽을 들게 되었다. 참고로 두 번째 <성룡영화 다시보기>작품은 <프로젝트 A>가 되겠다~




* 본문에 <폴리스 스토리 3>의 헬기와 기차 장면을 언급하면서 더 먼저인 영화를 찾지 못했었는데,
  DP에 호레이쇼 처키 님이 알려주신것 처럼, 리암 니슨 주연의 <다크 맨>에서 먼저 이 설정을 보여준바 있다.
  <다크 맨>은 1990년 작임.



글 / 아쉬타카 ( www.realfolkblues.co.kr )




명작 다시보기 #1 _ 천녀유혼 (倩女幽魂, A Chinese Ghost Story)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러하겠지만, 어린 시절 시기를 놓쳐 극장에서는 보지 못했고
비디오로나마 감상하였거나, 꼭 한 번 극장의 대형 스크린으로 다시 보고 싶은 영화가 있게 마련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어렸을 때 보았던 영화들은 일단 재쳐두더라도, 한참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고, 배우의
이름을 하나 둘 익혀가던 시절에 보았던 영화들은, 대부분 극장에서가 아니라 VHS 비디오를 통한 관람이었기
때문에 당시에 보았던 영화들을 극장에서 보는 것이 하나의 소원일 수 밖에는 없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비디오로 정말 수십번도 더 보았던 작품들 중에 대표적인 영화들을 꼽으라면, 그 첫째로는 <인디아나 존스>같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당시 작품들과 <영웅본색>과 <천녀유혼> 3부작, 그리고 성룡의 영화들이었다.
최근 한국영상자료원 개관을 기념하여 영화제가 열렸는데, 여기에서 바로 극장에서는 보지 못했던
<천녀유혼>시리즈를 상영한다는 정보를 보고는, 아니 들 뜰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기다렸던 이 날, 다른 중요한 일이 생겨버리는 바람에 극장에서 <천녀유혼>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또 놓쳐버리고야 말았다. 그래서 의기소침하고 있던 중에,
'아, 그러면 아쉬운대로 예전에 사놓고 아직 뜯지도 않았던 <천녀유혼 트릴로지>DVD를 꺼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실 DVD 한창 사던 시절에는 일단 신작들 위주로 열심히 관람을 했던터라,
<천녀유혼 트릴로지>처럼 예전 작품이 새롭게 발매되는 타이틀 같은 경우는, 비닐 포장을 뜯지도 않고
DVD장에 고이 모셔둔 경우가 종종 있었다(<폴리스 스토리>시리즈와 <용형호제>시리즈, <프로젝트 A>등도
아직 밀봉 상태다 --;;). 그래서 이번 기회에 아쉽게 극장 상영을 놓친 마당에, 부족하나마 그 동안 꺼내보지
않았던 DVD세트로 다시 예전에 비디오로 느꼈던 감동을 느껴봐야 겠다 마음먹게 되었다.



<천녀유혼>의 이야기는 중국에서 예전부터 내려오는 <섭소천 (倩倩)>설화를 영화한 것으로, 이 작품 외에도
더 이전에 쇼브라더스에서 이미 영화화 된 적이 있으며, 그 외에도 영화라던가 애니메이션, 소설 등 다양한
버전으로 각색되었던 작품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원작은 물론 그 어느 버전의 <천녀유혼>과
비교해보아도 정소동 감독의 <천녀유혼>은 그 중 단연 최고의 작품이며, 곧 '천녀유혼'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원작을 각색하여 영화화하는 경우, 원작 팬들로서는 영화의 결과물이 만족스럽거나 그렇지
않거나로 나뉘거나, 원작의 내용을 압축하는 과정에서 아쉬움이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천녀유혼'은 애초부터가
아주 짧은 단편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나중에 읽게 되면 재미가 급감 될 정도로,
원작의 기본 뿌리를 바탕으로 세심한 캐릭터 묘사와 풍부한 이야기로 사실상의 '오리지널'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본래 원작에서는 영채신(장국영 분)이 유부남이고 섭소천(왕조현 분)을 사랑하게
되 그녀를 첩으로 맞게 되는데, 좀 더 러브스토리를 강조하기 위해서, 이 같은 원작의 설정을 버리고
영채신의 캐릭터를 좀 더 순수하게 만드는 한 편, 섭소천 역시 원작에서는 상당히 유혹적이었던 것을
축소하여(여기서 '축소'란 말 그대로 '섭소천'캐릭터가 본래 지닌 유혹적인 성향을 축소했다는 것이지, 왕조현이
그린 섭소천이 유혹적이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좀 더 애틋하고 순수한 러브 스토리의 이야기를 강조하고
있다.


(지금 봐도 나름 재미있는 오프닝의 돌덩이 빵 개그)

사실 따지고보면 <천녀유혼>의 바탕이 되는 스토리구조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러브 스토리 라인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 그것인데, 귀신과 사람이라는 존재의
차이, 그로 인해 오게 되는 부모님의 반대(?),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 특히나 요염한 여자 주인공에게 쉽게
유혹 당해 죽거나 이용당하는 남자들과는 달리, 남자 주인공은 여기에 넘어가지 않게 되고, 이에 반한
여자주인공도 차차 남자주인공에게 본연의 자세(?)를 잊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도, 이런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 설정들이다. 사실상 특별할 것이 없는 스토리를 갖고 있는 이 영화가 특별한 영화가 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그 중에서 첫 번째로 들고 싶은 것은 이 영화의 장르적 스타일을 얘기하고 싶다.


(이 장면에선 살짝(아주 살짝) <고스트 바스터즈>가 떠오르기도 했다)

당시 80년대 중국의 영화계는 당시 스티븐 스필버그나 조지 루카스로 대변되는 헐리웃의 영화들의 분위기가
서서히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여기서 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적극 수용한 것이 바로 이 영화의
제작을 맡은 서극 감독이었다. 이미 <촉산>을 만들 때부터 ILM과 함께 작업을 하기도 했던 서극 감독은,
<천녀유혼>을 통해 호러와 로맨스, 코미디, 액션 등 다양한 장르적 특성을 중국 고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내는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이 영화의 감독은 무술감독으로 더 유명한 정소동 감독이지만,
<천녀유혼>은 정소동의 영화인 동시에 서극의 영화이기도 할 만큼, 그의 아이디어와 노력이 상당히 많이
가미된 작품이였다.


(생긴건 거의 미이라에 가깝고, 하는 짓은 좀비에 가깝다)

<천녀유혼>은 기본적으로는 러브 스토리라고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이 평범한 러브 스토리를 더 강력하게
해주는 데에는 호러라는 장르가 배경으로 작용했고, 호러 영화 팬들 사이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 될 만큼 이 영화는 호러 영화로서도 상당히 인정 받는 작품이다. 특히나 단순한 귀신을 넘어서서,
거의 촉수에 가까운 혀를 내두르는 요괴의 모습은 당시로서는 매우 호러스럽고 파격적인 것이었으며(특히 혀!),
중국 호러 영화에서는 잘 등장하지 않았던 설정이었다. 더군다나 막판에 가서는 거의 악어(?)의 모습과도
비슷한 일종의 괴수로 변신하기에 이르는데, 이런 형태의 괴수의 모습은 중국 호러 영화라기 보다는,
일본의 호러물이나 괴수영화에서 주로 등장했던 것들로 상당히 새로운 시도였다고 생각된다(거대한 혀도
그랬지만, 혀를 찔렀을 때 나오는 타액 들이나 역시 끈적끈적한 타액 들이 난무하는 설정 들도 이전 중국영화
들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장면들이었다).


(장국영은 뭘 보고 저리 놀란 것일까? ^^)

또한 초반 관약사 지하에서 꿈틀거리는 죽은 자들의 묘사에 있어서도 마치 '미이라'에 가까운 모습들을
하고 있는데, 그들이 움직이는 방식이나 제거되는 장면 묘사에 있어서도,
마치 좀비에 가까운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상당히 이채롭다. 그리고 이번에 DVD를 보면서
새롭게 보게 된 점은, 바로 저 미이라 같은 존재들의 움직임이었는데, 당시 비디오로 볼 때에는 물론 그런
기술적인 방식들은 알지도 못하던 때였긴 했지만, 움직임에 있어 전혀 특징적인 점을 알 수가 없었는데, 이번에
새롭게 보니 마치 팀 버튼의 애니메이션과 같은 스톱모션 방식으로 주로 촬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톱모션과 직접 사람이 분장하는 방식이 장면에 따라 함께 쓰였다).


(이 장면은 완벽하게 <레이더스>의 마지막 장면에 대한 오마주일 것이다)

여기에 중국영화에서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코미디 적인 요소들도 상당히 많이 배치되어 있는데,
장국영의 노래와 함께 시작되는 초반 부분에 영채신이 빵을 꺼내먹으려고 하는데 돌 같이 굳어있어서,
그 빵으로 돌을 깨는 등의 장면은, 그 때도 그랬지만 지금에와서 봐도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또한 짧게 짧게 지나가지만 영채신과 연적하(우마 분)가 나누는 대화에는 하이 개그와 썰렁 개그를 넘나드는
조크들이 심심치 않게 지나가고 있다. 하지만 역시나 당시 중국영화의 성향이 대부분 그리하였듯이,
크게 극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오바스럽게 웃기는 부분들이 이 영화에도 등장하는데, 어쩌면 이 같은 부분은
당시 이런 장르를 좋아했던 중국 관객들을 위한 배려일지도 모르나, 어쩃듯 아주 과하게 쓰이지는 않으면서
적절하게 제어되고 있는 듯 하다.


(왕조현 누님, 이런 앙탈스런 표정으로 유혹을!!)

사실 개인적으로 <천녀유혼>을 추억해 볼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왕조현 누님과 장국영의 욕조 속 수중
키스씬이 아니라(당시 나이가 어려서인지 여자 주인공보다는 남자주인공에게 더 정이 가던 시절이었음;;),
바로 연적하 즉 우마가 펼치는 액션씬이었다. 어린 시절 <드래곤 볼>에 나오는 손오공의 순간 이동 모션과
(두 손가락을 이마에 갖다대고 머리 속으로 떠올리면 순간이동하는), <우뢰매>에 등장하는 형래의 에스퍼맨
변신 동작(옆돌기 후에 짠!)과 더불어 가장 많이 따라했던 영화 속 동작은 바로 연적하가 귀신들을 물리 칠 때
사용했던 권법들이었다. 손가락을 살며시 깨물어 피를 낸 뒤 손 바닥에 진을 그리고 나서 시연하는
‘천지무극 건곤차법'등의 권법들은 비주얼 적으로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장면들이었다. 마치 장풍을 쏘듯
연적하가 액션을 취하고 나면 땅 밑에서부터 폭발음과 함께 튀어 오르던 장면과 지옥에서 검법을 겨루며
두 검이 스칠 때 번개가 이는 장면은 지금에봐도 충분히 인상적인 장면들이었다.
정소동 감독은 와이어를 많이 쓰는 액션씬으로도 유명한데, <천녀유혼>의 액션씬들도 물론 와이어가 많이
쓰이기는 했지만, 숲 속이라는 점과 밤의 이라는 설정 때문에 와이어 액션이라는 점이 크게 어색하지 않게
다가왔으며, 왕조현의 펄럭이는 옷 자락과 더불어 휘날리는 천 조각들의 묘사들은 지금봐도 참으로 멋진
장면들이 아닐 수 없었다.


(보요보로미!)

아무리 그래도 <천녀유혼>하면 장국영과 왕조현을 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전과 이후에도 수많은
<천녀유혼>들이 있어왔지만 이 둘이 아닌 영채신과 섭소천은(특히 섭소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이 두 캐릭터를
완전히 이미지화 시켜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장국영은 개인적으로도 이 작품 <천녀유혼>과
<영웅본색>으로 인해 가장 좋아하는 남자 배우이기도 한데, 멍청하리만큼 순수하면서도 밉지 않고,
여성적이면서도 자신이 지켜야할 대상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영채신의 캐릭터를,
과연 그가 아니면 누가 더 잘 연기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예전에 볼 떄는 연기력이나 이런건
전혀 신경쓰지 않고 보았었지만, 이번에 새롭게 보니 <천녀유혼>에서도 장국영이 얼마나 '연기'를 잘 하고
있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 다시 <천녀유혼>을 보니, 새삼스래 '장국영 참 연기 잘하는 배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앞서 살짝 언급했던 것처럼 개인적으로는 당시 나이가 나이였던지라 그다지 큰 임팩트로 다가오지는
않았었지만, <천녀유혼>하면 바로 '왕조현'을 떠올릴 정도로, 이 영화에서 '왕조현'이라는 배우가 차지하는
영향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나 '섭소천'의 캐릭터에 있어서 이전과 이후에 나온 모든
섭소천을 무색하게 할만큼, 섭소천=왕조현 이라는 절대 공식을 만들어버렸으며, 당시로서는 상당히 야했던
등판 노출과 수중 키스씬, 그리고 긴 옷자락을 휘날리며 나뭇가지 사이를 선녀처럼 날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당시 수 많은 남성들의 마음 속에 깊게 자리잡기에 충분했다. 사실 왕조현도 당시 홍콩 영화계의 대표적인
여자 배우로서 여러 작품 활동을 했음에도, 대부분의 관객들의 머리 속에 오로지 '천녀유혼'으로 기억되는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라 할 수 있겠다. 사실 그녀는 어린 시절 농구선수 출신이었을 만큼 여배우 치고는
상당한 덩치(?)를 자랑하는 배우이기도 한데, 더군다나 약간 외소한 체격인 장국영이 상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더 외소해보였던 데에는, 그녀의 연기가 크게 한 몫 했다고 할 수 있겠다.


(아~아아~아아~~~, 등장하면 꼭 노래와 바람이 불어주던 왕조현 누님)

개인적으로는 장국영, 왕조현 보다도 <천녀유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배우는 바로 '연적하'역할의 우마이다.
사실 그는 다작을 하는 홍콩 배우들 중에서도 가장 많이 작품을 했을 정도로, 당시 홍콩 영화에 가장 많이
출연하는 다작 배우중의 한 명인데, 개인적으로 우마가 출연한 작품 가운데 가장 인상 깊고도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천녀유혼>을 꼽을 수 밖에는 없겠다. 사실 그는 이 영화와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약방의 감초같은 코믹스런 조연으로 출연한 적이 많았는데, 어쩌면 가장 멋지게 나오는 이 영화가
팬들에게 가장 인상깊은 작품이 된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연적하'라는 캐릭터를 그림에 있어 그 독특한 수염과 헤어스타일, 그리고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로 만들어내면서, 극중이름을 '우마'로 착각할 만큼
대단한 싱크로율을 보여주고 있다. 이 외에 우마의 출연작 중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성룡과 매염방이 출연한
<미라클>을 떠올리 수 있겠다. 이 작품에서도 우마는 자신이 가장 많이 연기한 감초 같은 조연으로 등장하는데,
이런 영화들과 비교해보자면, 과연 같은 배우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천녀유혼>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그의 평소 연기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결국 <천녀유혼>은 우마의 필모그래피에서 최고의 작품이되었다!)

<천녀유혼>의 음악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다. 당시 홍콩영화들이 대부분 그러하였지만, 영화 만큼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영화의 음악과 삽입곡들이었다. 홍콩 영화의 팬들이라면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다 들리는데로 엉터리 중국 발음으로 노래를 따라불러 봤을 정도로, 포인트가 되는 장면에서는 꼭 노래가
흘러나왔다. 요즘 영화들처럼 그냥 노래가 삽입된 것이 아니라, 그 장면 그대로 독립해서 본다면 뮤직비디오에
가까울 정도로, 가사와 더불어 대사 없이 완전히 노래와 장면에 의존하는 형식으로 담겨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최고의 장면으로 꼽은 장면 역시 바로 우마가 부르는 '도도도'장면인데,
실제로는 우마가 아니라 음악을 만든 황점이 직접 노래를 불렀다. 곡을 만든 황점은 본래는 다른 가수가 부르길
원했었지만, 서극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냥 직접 부르는 것도 좋겠다는 말에 결국 본인 자신이 직접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황점은 이 노래를 만들 당시 술에 취해 있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호탕하고 자유분방한
곡의 느낌이 살아있는 듯 하다.


(당시 꿈에 자주 등장해, 어린 나를 괴롭혔던 아줌마, 아니 아저씨 ^^)

<천녀유혼>의 음악 감독을 맡은 황점은 홍콩 영화음악계의 존 윌리엄스라고 해도 좋을 만큼, 대단한 영화음악을
만들어온 거장이다. 이 영화를 비롯해 <소오강호> <동방불패> <지존무상> <황비홍> 등의 영화음악을 만들었으며, <소오강호>의 그 유명한 곡 '滄海一聲笑 '도 황점의 작품이다. 그는 영화 배우로도 상당히 많은 작품에
출연하기도 했다. 황점은 처음 <천녀유혼>의 제작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함께 참여하기를 바랬으나, 제작사와
감독이 먼저 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음악감독이 만든 음악들이 마음에 들지 않자, 서극은
황점에게 부탁을 하게 되 나중에 합류를 하게 된 케이스였다(만약 황점의 '도도도'나 '여명부요래(黎明不要來)'가 없는 천녀유혼이었다면 얼마나 심심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천녀유혼>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곡은 왕조현과
장국영의 러브씬에서 흘러나오던 '여명부요래'일텐데, 이 곡은 잘 알다시피 엽천문이 불렀으며, 본래 이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곡이 아니라 다른 작품을 위해 만들었다가 쓰이지 못한 미발표곡이었는데, 촬영 말미에 곡을
추가하길 원했던 감독의 권유에 황점은 이 곡을 떠올렸다고 한다. '새벽이여 오지 말아요'라는 가사가 이렇게
잘 어울릴 영화가 또 어디있을까!

영화음악에 관한 얘기를 조금만 더해보자면, 황점은 당시 막 신디사이저가 출시되던 시점이라 아주 재미있게
여러가지 시도를 쉽고 재미있게 해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음악을 잘 들어보면 상당히 SF적인
소리들을 들을 수가 있는데, 이게 다 신상(?)이었던 신디사이저의 기능을 맘껏 활용해보려는 황점의 의도가
묻어난 것이라 하겠다.


(어리버리 어리숙한 영채신의 모습은 장국영이 완벽히 그려냈다)

사실 어린시절 추억이 담긴 영화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번 <천녀유혼>을
비롯해, 명작 다시보기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느낀 것은, 추억만 가지고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영화들에게
지금와 어른이 되어 다시 보니 영화적인 우수성과 재미도 한꺼번에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지금처럼 영화를 볼 때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아도 그저 재미있었는데, 이것저것 생각을 하면서
봐도 충분히 재미가 있었다는 말이다. 확실히 21세기에는 이런 영화를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천녀유혼>은 더욱 소중한 영화로 평생 남을 것이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 및 권리는 태원엔터테인먼트에 있습니다)

블로그코리아에 블UP하기  RSS등록하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