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노트 (エンディングノート, 2011)
닮고 싶은 죽음, 아니 삶
비록 제작자라 할지라도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신뢰의 이름 그리고 죽음을 클라이맥스로 설정하지 않고 시작하는 이 영화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엔딩노트 (エンディングノート, 2011)'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조감독을 지낸 마미 스나다 감독이 자신의 아버지인 도모아키 스나다의 마지막 여정을 직접 촬영하고 연출한 작품이다.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도모아키 스나다는 자신의 삶을 직접 정리하며 죽음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간다. 이 정도만 가지고도 평소 영화보고 감정이 격해져서 자주 우는 나 같은 사람은 눈물을 펑펑 흘릴 것만 같은 영화지만, 오히려 이 영화엔 눈물보단 미소와 부러움이 더 깊게 흘러나왔다.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싶지만 실제로 그랬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정말 울지 않았다.
ⓒ 영화사 진진. All rights reserved
죽음을 계획적으로 준비해 나가는 도모아키 씨의 여정은 결코 슬프지 않게 그려진다. 아니 그려진다는 연출의 측면이 아니라 실제로 슬픔보다는 유쾌함이 담겨 있는 과정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마지막을 준비하며 도모아키 씨가 적어내려간 엔딩 노트엔 '손녀들과 힘껏 놀아주기' '장례식 초대 명단 정리하기' '이왕 이렇게 된 거 신을 믿어보기' 등 적어도 죽음보다는 삶이 느껴지는 to-do list가 담겨 있다. 그리고 영화는 이런 영화들이 주인공의 일생을 모두 담으려 하는 것과 같은 거대한 야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간간히 도모아키 씨의 젊은 시절을 사진과 홈비디오 등으로 회상하기는 하지만 이것이 죽음을 더 극적으로 느껴지도록 하는 장치라기 보다는 현재 그의 곁에 있는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손녀들 과의 관계에 대해 관객들이 조금이나마 더 공감할 수 있도록 한 최소한의 배려 정도로 작용하고 있다.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이들이라면 이런 유쾌한 분위기가 도모아키 씨의 것이라기 보다는 영화가 관객을 위해 만든 방식이라고 오해할 지도 모르겠는데, 영화는 철저하게 도모아키 씨의 생각과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려 애쓰고 있다. 왜 애쓰고 있다고 하냐면 이 작품을 촬영하고 만든 이가 바로 그의 막내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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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는 아니지만, 가끔씩 어떤 죽음을 맞았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아닌 계획을 짜보기도 하는데, 그런 나에게 도모아키 씨의 엔딩 노트는 정답지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더 나아가서 과연 이런 계획을 실현 혹은 수행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던 나에게 도모아키 씨의 삶은 '가능하다' 라는 확답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그저 이런 엔딩 노트를 차근차근 실행해 나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죽음에 이르는 도모아키 씨가,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도모아키 씨의 죽음이 정말 부러웠었다. 구체적이진 않지만 막연하게 꿈꾸었던 죽음과 거의 유사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화가 거의 끝날 무렵, 나는 도모아키 씨의 죽음보다는 그의 삶을 더 부러워하게 되었다. 이런 죽음을 준비하고 맞을 수 있을 정도로 오랜 시간 행복하게 살아온 그의 삶과 이런 그의 마지막을 기꺼이 함께 동참해주는 가족을 갖고 있는 그의 삶이 부럽기만 했다.
'엔딩 노트'는 처음엔 그냥 단순하게 '도모아키 씨처럼 죽고 싶다' 라는 결심을 하게 했다면, 마지막에는 결국 '도모아키 씨와 같은 삶을 살아야겠다' 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 소중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보며 결코 울지 않았다. 최근 본 그 어떤 영화들 보다도 해피 엔딩이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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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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