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 (悪人 Villain, 2010)
외로운 존재와 소중한 자를 둘러싼 슬픈노래


지난해 일본내 가장 화제작 중 하나였던 이상일 감독의 '악인 (
悪人)'은, 그 제목과는 달리 단호하거나 세기가 강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굉장히 섬세하고 따듯한 시선으로 세상에서 '악인'이라 불리는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저 '우리가 악인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연약한 이들이 많다' 라거나 '이들을 악인으로 만든건 사회다'라는 것 정도를 담아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좀 더 넓은 의미의 포용과 관계를 담아내려 애쓴다. 


ⓒ 마운틴 픽쳐스. All rights reserved
 

 

하나의 살인사건을 둘러 싸고 유이치 (츠마부키 사토시)와 요시노 (미쓰시마 히카리)와 그녀의 아버지 요시오 (에모토 아키라), 요시노와 관계가 있던 남자 대학생 마스오 (오카다 마사키) 그리고 나중에 유이치와 만나게 되는 미츠요 (후카츠 에리)와 요시노를 자식같이 키웠던 그의 할머니 후사에 (기키 기린)까지. 이들의 이야기는 하나의 사건으로 엮여 있지만 각기 다른 이해관계와 슬픔 그리고 결핍을 안고 있다. 요시다 슈이치의 원작 소설을 읽지는 못해 원작과의 비교는 어렵겠지만, 이 다양한 캐릭터들의 이야기는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악인'은 러닝타임도 139분으로 결코 짧지 않은 편인데, 이 각자의 이야기 (각각이 아닌)는 조금은 독립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완벽하게 하나의 이야기로 러닝타임 내내 동일한 힘의 크기로 움직이지는 못한다. 유이치의 이야기는 너무 가려져 있고 미츠요를 만나기 전과 후의 이야기는 1막과 2막으로 나눠도 좋을 만큼의 거리감이 없지 않으며 할머니인 후사에의 이야기 역시, 중심에서 조금은 벗어나 독립성을 갖는 부분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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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지만 글 서두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악인'에는 더 넓은 의미의 포용과 시선이 존재한다. 이 포용은 마치 연골처럼 이들의 관계를 조금 더 자연스럽도록 연결시켜주는 동시에 하나의 메시지로 귀결시킨다. 다시 말해, 좀 더 유이치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에 완전히 집중해 극적인 동력을 얻지 못한 까닭은, 그 만큼 '악인'에서는 악인이 된 유이치 뿐만 아니라 그 주변과 그로 인해 돌아볼 기회와 잠재적 분노 그리고 슬픔을 표출하게 된 '이들'의 이야기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최근 들어 어떠한 사건, 특히 살인사건이나 사이코 패스 등을 그릴 때의 경향을 보면 결국 그 이면에는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무관심과 잘못이 있었다는 것으로 종결짓곤 하는데, 이 작품은 그렇게 볼 수 있는 여지가 없지 않지만 이러한 논리적이고 냉소적인 이유 보다는 감성적인 부분에 더 호소하고 기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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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내 불필요 하다 싶을 정도로 흩날리게 뿌려놓은 조각들은 마지막에가서 영화가 결국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꺼낼 때, 완전하지는 않지만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작동한다. 이 덩어리는 완벽한 하나가 되지는 못해 조금씩 갈라진 균열의 틈으로 빛이 새어나오기는 하지만, 따지고보면 이 균열이라는 것 또한 이 작품이 말하고자 했던 또 다른 외로움과 포용의 이름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점을 미처 다 느낄 수 없었더라도 영화가 마지막 던지는 메시지는 뭉클하고 울컥하게 되는 지점을 분명히 갖고 있다. 그 동안 이들의 외로움을 경험할 수 있었고, 그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슬픔과 마음의 짐을 엿볼 수 있었기에, 참아왔던 이들이 비로소 자신의 진심을 소박하게 고백하는 순간 (혹은 끝내 토해내지 못하는 것을 목격하는 순간), 영화가 들려주는 슬픈 노래에 눈물짓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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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을 맡은 츠마부키 사토시는 캐릭터의 특성상 깊이를 체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던 반면, 할머니 역할을 맡은 기키 기린이나 아버지 역할의 에모토 아키라의 연기는 역시 명불허전, 이 작품에 가장 큰 역할을 한 배우라면 오히려 이 둘을 더욱 꼽고 싶을 정도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영화에 상당히 많은 부분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는데, 극중 캐릭터들이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내면의 감정을 음악이 상당부분 역할을 부여 받아 표현하고 있는 듯 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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