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愛 (No Name Stars)
우리의 오월은 끝나지 않는다
내게 있어 5.18 광주는 결코 잊혀지지 않는 사실이다. 나는 광주 사람도 아니고 당시를 치열하게 겪은 세대도 아닐 뿐더러, 직접적으로 가까운 이들이 피해를 입거나 한 것도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좋은 부모 아래서 그 어떤 슬프고 참혹한 역사보다도 많은 자료와 이야기들을 전해들었던 터라, 5.18 광주는 결코 낯설지가 않았다. 처음 광주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당시의 참혹한 참상이 그대로 담겨있는 사진들과 책들을 통해서 였는데, 이 사진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너무 어렸었기 때문에 어떠한 감정이 들기 보다는 그저 아무런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것 뿐이었다. 그 이후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광주와 그 배경에 있는 정치적인 이야기, 그리고 그 곳에서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스러져간 광주시민들, 더나아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해보고 알아갈 기회를 갖을 수 있었다. 이제와 새삼스레 드는 생각은, 이런 기회들이 내 인생에 가치관을 형성하는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광주의 진실을 알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이후 정치적인 잣대를 세우는 데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너무 이 진실 속에서 살아온 삶을 당연하게 여겨왔지만, 언제부턴가 진실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만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 시네마달. All rights reserved
그리고 2011년 5월. 나는 또 하나의 오월 광주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오월愛'를 보게 되었다. 사실 처음 이 작품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5.18 광주의 한 가운데에서 투쟁했던 이들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보이지 않게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아주머니들, 어머니들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었다. 물론 '오월애'에 그런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 집중을 하기 보다는 전반적으로 1980년 5월 광주를 치열하게 살았던 이들의 말들을 통해, 2010년 광주를 다시 돌아보는 작품임을 알 수 있었다.
이미 광주와 관련된 여러 다큐, 인터뷰, 영상들을 접해왔던 나로서는, 익숙한 얼굴들도 있고, 그 안에서 치열하게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새롭게 접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눈물이 흘렀다. 누군가는 나와는 상관없는 이 과거사에 왜 눈물을 흘리느냐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한 마디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의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다. 첫 번째로 이것은 우리의 역사이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다. 현 정권에 들어서서 다시금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많아진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의 근간에는 1980년대 피흘려 싸운 광주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다. 즉, 이것은 결코 남의 일,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우리의 일이며, 현대를 사는 모든 이들은 적어도 민주주의의 가치를 따른다면 오월 광주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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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알아야할 과거나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가 관련된 나의 일이라는 점에서 5.18 광주는, 대한민국에서 국민으로 살아가는 한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더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참으로 부끄럽고 화가 나는 일이지만, 아직도 오월 광주의 슬픔과 희생이 치유받거나 존중받지 못한 채 잊혀져야할 과거사로 점점 내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5.18은 혁명으로 인정받고, 희생자들은 민주투사가 되었지만 아직도 참혹한 일들을 저질렀던 범죄자들은 죄값을 치르기는 커녕, 사과를 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 슬픔을 고스란히 안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이들과는 다르게 부유한 삶을 살고 있으며, 이들은 놀랍게도 아직까지 사회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감정적으로 보자면 그들이 한 짓은 절대 용서받기 어려운 일들이겠지만, 이렇다하더라도 이 '용서'라는 것은 가해자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고개숙여 사죄할 때나 가능한 일일텐데, 오히려 시간이 갈 수록 가해자가 자신의 가해사실을 점점 지워가고 있는 지금에서 어떻게 '용서'라는 것이 가능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부끄럽고 화가나지만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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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광주의 슬픔과 눈물은 아직도 흐르고 있다. 당시를 살았던 이들은, 함께 싸우다 먼저 자신을 던져 희생했던 이들에게 미약하게나마 보답하고자, 자신의 위치에서 끊임없이 오월 광주를 끌어 안은 채 또 다른 투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흘릴 눈물마저 남아있지 않은 이들에게, 이 작품을 보며 흐르는 내 눈물조차 죄스러울 정도로 현대를 사는 우리는 아직도 이들에게 너무 소홀했고, 사회와 정부는 또 다시 이들을 폭도로 내몰 궁리만 하고 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들의 영령을 위로하기는 커녕, 분노하게 만드는 일들만 자행하는 현실이 과연 제대로 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부끄럽고 또 부끄러워 흐르는 눈물을 조심스럽게 감출 수 밖에는 없었다.
사실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이 영화 '오월愛'는 광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던 이들이라면 지난해 도청건물 철거를 두고 벌어진 일들만 제외하면 거의 알고 있던 사실들을 담고 있다고 해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단언할 수 있는 건, 그렇다고해서 결코 이 영화가 갖는 의미가 퇴색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 받아들이는 이들에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나에게 '오월愛'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다시금 책임감을 갖게 하는 작품이었다. 광주 시민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나로서는, 적어도 내가 안다고 해서 여기서 그칠 것이 아니라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미약한 노력이라도, 5.18 광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과 이를 접해볼 기회가 없었던 어린 세대들, 그리고 더 나아가 오해로 인해 잘못된 사실들로 알고 있는 이들을 위해 내가 알고 있는 바를 전해야겠다는 작은 결심을 할 수 밖에는 없었다. 그것은 결국 나를 위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오월 광주가 아닌 우리의 광주. 그리고 우리의 오월은 끝나지 않는다. '끝나지 않았다'로 한정 지을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비관적인 미래로서가 아니라 더 많은 의미를 담아 '끝나지 않는다'로 깊이 가슴에 새겨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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