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そして父になる, 2013)

가족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적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최근 작을 보면 대부분 가족과 관련된 영화들이었다. 2008년 작 '걸어도 걸어도'는 아들로서 부모를 바라보는 시각이었고, 2011년 작 '기적'은 아이들의 눈 높이에서 바라보려고 애쓴 또 다른 가족 영화였으며, 제작을 맡았던 '엔딩노트' 역시 한 가족이 가장과 이별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의 신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역시 또 한 번 가족의 관한, 그 가운데서도 제목에서 바로 알 수 있듯이 아버지라는 존재의 탄생 혹은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은 단 한 번도 자극적이었던 적이 없는데, 이번 작품 역시 결코 관객을 향해 소리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일어난 사건 자체는 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 만큼의 중대한 사건이지만, 영화는 이를 내적으로 삼켜내는 두 가족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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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버지가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기 전까지 후쿠야마 마사히루가 연기한 료타를 아버지로 부를 수 있을 까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영화는 철저하게 료타에게 맞춰져 있다. 사실 이 작품은 고레에다의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내게 자리에서 쉽게 일어날 수 없을 만큼의 감흥을 전달한 작품이었지만, 조금의 석연치 않은 부분들도 있었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철저하게 아버지 역할인 료타에게만 맞춰져 있다. 같은 크기의 충격을 맞게 된 두 가정이고, 한 가정으로만 한정 지어도 료타의 아내의 이야기가 있지만 영화는 오로지 료타의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가 극을 이끈다 는 것 보다는 극이 그 만을 주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너무도 직접적인데, 결국 영화는 료타가 어떻게 아버지가 되는지 바로 그 과정인 '그렇게'를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석연치 않았던 부분은 바로 그 점이었다. 너무 료타의 이야기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것. 영화 속 인물들과 영화 자체가 러닝 타임 내내 료타가 아버지가 되길 기다려주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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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형태의 다른 이야기와는 달리 '그렇게 아버지가..'에서 료타가 겪게 되는 사건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다른 인물들도 똑같은 세기로 겪게 되는 사건이었기에, 극 중 인물들 모두가 (심지어 상대가 되는 가족까지도) 료타가 자신을 극복하고 아버지가 되길 도와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한 편으론 영화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판타지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희망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료타가 아버지가 되었다고 과연 두 가족이 겪은 이 고통이 해소되었나? 라는 물음에 조금은 우울함 마저 들었다.


참고로 나는 이 영화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이창동 감독이 참여한 GV로 한 번, 그리고 나중에 개봉관에서 한 번 이렇게 두 번을 관람하였는데, 단순 재 관람의 이유 때문 만이 아니라 다시 보고 나서 달리 느낀 부분이 생겼다. 바로 석연치 않게 여겼던 료타와 이를 기다려주는 영화에 대한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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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료타와 영화의 관계가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들어오는 생각은, 어쩌면 그것이 영화가 말하고자 한 가족의 의미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료타가 아버지가 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그 자신의 자각이나 극복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말 없이 기다려주는 가족이었다는 얘기다. 료타가 결정적으로 다시 금 이 잘못된 상황을 재 자리로 돌려야겠다고 마음 먹게 된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되는 장면) 장면을 봐도 그렇다. 울고 있는 료타를 본, 이제 막 잠에서 깬 그의 아내는 그가 울고 있는 것을 분명히 보았음에도 아무런 이유를 묻지 않고 그저 '아침 먹을까?'라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마지막 장면 역시 그렇게 돌아온 료타를 아무 말 없이 받아주는 또 다른 가족 역시 그런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즉, 판타지라고 생각했을 정도의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 역시 가족이라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것. 그것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전작 '기적'에서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또 다른 기적이 아닐까 하는 것. 이 영화는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1. 영화를 본 지는 제법 지났는데 리뷰가 늦었네요;


2. 아래 사진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이창동 감독님이 함께 했던 씨네토크 현장.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과 영향을 주는 관계라는 걸 그 분위기만 봐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는데, 참 귀한 시간이었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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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올해의 영화 베스트 10


2013년은 저에게 정말 정신 없이 바쁜 한 해 였습니다. 이 블로그에는 영화 관련된 이야기만 주로 올리다보니 얘기할 기회가 없었지만, 지난 해 말부터 올해 지금까지는 제 직장 경력을 통틀어 가장 정신 없이 바쁜 한 해였으며, 그 만큼 중요한 일들과 역할을 맡다보니 본래 좋아하던 영화보고, 음악듣고, 글 쓰는 일을 병행하는 것이 정말 더 더 어려워만 지더군요. 그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전보다 더 많은 영화를 보진 못하고, 영화제에 가는 건 꿈도 못 꿀 정도가 되었지만, 그래도 잠을 덜 자가며 어렵게 본 영화들과 써내려간 글들이라 더 뿌듯하기도 한 한 해 였기도 했네요.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는 자주 하는 말인데, 이렇게 잠을 못 잘 정도로 바쁘고 피곤해도 영화보고 쓰는 일을 잠시 쉬거나 멈추지 않는 건, 한 번 멈추면 절대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아서에요. 올해는 정말 중간에 쉬고 싶은 유혹이 많았었는데, 그 때 마다 두 눈을 부릅뜨고 버텨냈던 것 같습니다. 올해 본 '잉투기'를 보면 그런 대사가 나와요.


'계속하는 것은 힘이 된다'


제게 올해는 이 말을 새삼 깊이 새겨보았던 한 해였습니다.

자, 그럼 제가 올 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10편의 영화를 소개합니다.

순위는 없으며 순서는 제가 극장에서 본 순서입니다.







1. 라이프 오프 파이 / 이안


올해 초 본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는 3D의 놀라운 영상도 대단했지만, 그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의 놀라움이 더 큰 작품이었어요. 믿음에 관한 영화 가운데 아마도 오랫동안 회자될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믿느냐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믿고 싶어 하는 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 작품.


라이프 오브 파이 _ 믿음을 말하는 거대한 이야기

http://realfolkblues.co.kr/1781







2. 가족의 나라 / 양영희


올 해 초 보았던 양영희 감독의 '가족의 나라'는 당시 너무 일찍 올해의 영화를 보게 되었다고 바로 말할 수 있었을 만큼,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우리와 관련이 있는 제3자 혹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나라, 내 가족의 대한 이야기로 전달한 수작.


가족의 나라 _ 내 가족이 살고 있는 나라

http://realfolkblues.co.kr/1760






3. 월플라워 / 스티븐 크보스키


올 해의 청춘영화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엠마 왓슨 주연의 '월플라워'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이 영화는 청춘 영화가 흔히 담고 있는 무모함과 아름다움을 가장 높은 수준의 진심을 담아 전달하고 있는 영화였어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습니다.


월플라워 _ 청춘, 그 뜨거운 무한함에 대해

http://realfolkblues.co.kr/1784






4. 테이크 쉘터 / 제프 니콜스


올 해의 청춘영화가 '월플라워'라면 올 해의 가족영화는 '테이크 쉘터'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처음엔 약간 미스테리한 SF적 요소에 관심이 있어 보게 된 영화였는데,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가장 진한 가족에 대한 내용이었네요.


테이크 쉘터 _ 불안을 이기는 가족의 힘

http://realfolkblues.co.kr/1794






5. 비포 미드나잇 / 리차드 링클레이터


전 물론 제가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을 좋아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얼마나 좋아하는 지는 바로 이 작품을 보고나서야 알 수 있었어요. '비포 미드나잇'은 뭐랄까, 극도로 현실적이면서도 판타지가 존재하는 그런 영화였는데, 삶의 아름다움과 현실로 인해 뭐라 말하기 힘든 감정이 드는 참 이상한 영화였어요. 저도 그들처럼 어른이 되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요.


비포 미드나잇 _ 세월의 무상함 보다는 성숙함

http://realfolkblues.co.kr/1803






6. 일대종사 / 왕가위


한 동안 다른 길을 가는 것처럼 보였던 왕가위가 엽문을 주제로 한 무협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화려하고 기술이 주가 된 액션 영화보다는 정수를 담은 영화가 될 것이라는 부푼 기대가 있었어요. 그 기대를 넘어설 만큼 왕가위 감독은 정수에서도 최고 지점을 간파하는 무협 영화를 만들었으며, 양조위는 기대 만큼 해주었고 장쯔이는 왜 그녀가 중화권 최고의 배우인지를 몸으로 보여준 정말 멋진 연기였어요. 굳이 여우주연상을 꼽자면 그녀.


일대종사 _ 왕가위의 21세기 동사서독

http://www.realfolkblues.co.kr/1829






7. 그래비티 / 알폰소 쿠아론


알폰소 쿠아론이 언젠가 일을 낼 줄 알았어요. 제가 해리포터 시리즈에 애착을 갖게 된 것도 그가 연출을 맡았던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때문이었거든요. '그래비티'가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는 것에는 전혀 이견이 없습니다.


그래비티 _ 당연하다고 여겼던 존재의 발견

http://www.realfolkblues.co.kr/1847







8. 사이비 / 연상호


'사이비'는 가장 흥미롭고 재미 없기 힘든 주제와 (하지만 반대로 그 가운데서 돋보이긴 힘든) 악인이 더 나쁜 악인과 싸우는 익숙한 구조 속에서도, 진정성과 다른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준 수작이었어요. 맹신이라는 것을 일 방향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의 다른 방향을 열어둠으로서, 같은 주제지만 새롭게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 준 영화이기도 했구요. 전작 '돼지의 왕'보다 모든 면의 진 일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국내 감독 중에서 가장 먼저 아카데미를 수상하게 될 감독은 아마도 연상호 감독이 아닐까 싶습니다.






9.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 / 코엔 형제


아직 국내 정식 개봉하지 않았지만 특별 시사회를 통해 먼저 보게 된 코엔 형제의 첫 번째 음악 영화는, 음악을 소재로 하되 코엔 형제스러운 영화가 될 것이라는 뻔한 예상과는 달리, 코엔 형제 영화이면서도 가장 완벽한 음악 영화의 경지에 오른 작품이었네요. 포크뮤직과 우연, 로드무비와 코엔 형제. 극장을 나오면 더 생각나는 영화였어요.







10.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최근 몇 년 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을 보면 그는 가족이라는 것 안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듯 보여요. 본인 스스로도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부모를 잃게 되는 등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늘어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하고 싶은 게 아닌가 싶네요. 이번 신작도 여지없이 좋았어요. 아마도 최근 일본 영화 감독들 가운데 이렇게 편차 없이 계속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 감독은 그 밖에 없는 것 같네요.




제가 올해의 영화를 꼽으면서 홍상수 영화를 꼽지 않은 적은 최근 드문 것 같은데, '우리 선희'와 '누구의 딸도 아닌 해'은 둘 다 참 좋았지만 10편에 넣기에는 아주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고, 그 밖에 여기에 언급하지 못했지만 좋았던 영화들로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마스터', 강진아 감독의 '환상 속의 그대',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토마스 빈터베르그의 '더 헌트' 등이 있었네요.


올해도 여전히 몇 편의 블루레이에 제 글을 실을 수 있었고, 몇 편의 음반에 해설지를 쓸 수 있었고, 몇 몇 기대하지 않았고 복에 겨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이 부분은 따로 한 번 글로 정리하려구요. 매번 드리는 말씀이지만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올해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누군 가가 내 글을 정성껏 읽어주고 있다는 느낌은 생각 외로 삶에 큰 힘이 되거든요 ^^;


감사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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