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 (2013)

역사와 허구의 사이에서



'연애의 목적 (2005)' '우아한 세계 (2006)'등을 연출했던 한재림 감독의 신작 '관상'을 추석 연휴 느지막히 보았다. 아무래도 이 작품은 화려한 캐스팅으로 더 화제가 된 작품이기도 한데, 송강호를 비롯해 백윤식, 김혜수, 이정재, 조정석, 이종석까지 이름 만으로도 포스터를 부족함 없이 채울 면면의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는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수양대군이 자신의 반대파를 청산했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관상쟁이라는 허구의 인물을 대입한 펙션 장르를 취하고 있는데, 결론적으로 보자면 역사와 허구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찾지 못한 조금은 아쉬운 작품이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최근 한국 영화 가운데 부담 없이 추천할 만한 웰메이드 영화를 꼽으라면 어렵지 않게 '관상'을 꼽을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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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션이라는 장르는 실제 역사에 근거하기 때문에 다른 장르의 영화들 보다 더 큰 흥미를 주게 마련인데, 그 점에서 '관상'은 전형적인(나쁘지 않은) 방식을 택했다. 역사와 허구의 비중을 두고 봤을 때 전체적인 비중은 역시 실제 역사에 더 크게 두고 있다고 봐야 할 텐데, 그렇기 때문에 결말에 대한 궁금증이나 전개 과정에서의 신선함은 아무래도 좀 떨어질 수 밖에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 가운데 재미와 흥미를 주는 것은 영화가 선택한 허구의 이야기, 즉 관상쟁이 내경 (송강호)의 이야기일텐데 여기서 좀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영화는 '관상'이라는 것을 제목으로 내세웠을 정도로,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 가운데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하고자 함이 엿보였다. 


초반 영화는 관상이라는 것에 대해 주목하고 그 관상을 기가 막히게 보는 주인공 내경의 존재에 집중한다. 내경이 오롯이 관상에 집중할 때만 해도 영화는 균형을 잃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내경이 관상쟁이를 초월한 한명회 못지 않은 책사에 가까운 능력을 발휘하게 되면서, 초반 흥미를 주었던 관상이라는 주제가 희미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다시 말해 처음에는 관상이라는 소재가 이 역사적 비극 가운데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지 기대와 흥미를 갖게 했는데, 내경이 관상이 아닌 사건에 더 깊게 연루될 수록 그 가능성을 희미해지고 조금은 단순한 사극이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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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이라는 소재를 처음 들었을 때 '아 이것은 필히 운명론과 맞닿게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더 전형적이라 하더라도 차라리 치열한 운명론과의 대립이 주가 되었다면 더 강렬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관상을 읽는 관상쟁이 내경. 역적 집안에서 벼슬을 할 수 없는 운명으로 태어난 내경의 아들 진형 (이종석), 그리고 왕의 될 운명보다는 역적의 상을 하고 있지만 왕을 꿈꾸는 수양대군 (이정재)의 이야기들을, 치열한 각각의 대립으로 그렸다면 끝까지 강렬한 작품이 되지는 않았을까 싶다. 영화가 비극을 그리는 방식은 역시 신파에 기반을 두고 있기는 했지만 나쁘지 않았고 역시 송강호의 열연 탓에 쉽게 빠져들 수 있었지만,  영화가 처음 던졌던 관상이라는 테마에 비하면 조금은 심심한 이야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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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아무래도 '광해'와 비교 혹은 연상 될 수 밖에는 없는데,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관상'이 더 인상적이었다 (내게 '광해'는 아무래도 심심한 작품이었다). 그 중심에는 역시 '멋진' 배우들이 있다. 이 역사 속 이야기에 짧은 시간 쉽게 빠져들 수 있는 건 거의 배우들의 응집된 연기력 때문이었다. 송강호 연기는 굳이 단점을 찾으라면 이제는 좀 더 힘 있고 무거운 연기를 한 번 봤으면 좋겠다는 것 뿐이고 (소시민 연기가 이제는 조금씩 지루해지기는 하는데 그래도 나쁘진 않다), 조정석은 너무 가볍기만 할 수 있는 캐릭터에 배우 본인이 갖고 있는 깊이가 더해져 무게를 만들어 냈던 것 같고, 존재 만으로 크게 서 있는 김종서 역할의 백윤식이나 김혜수의 연기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뭐 그래도 역시 '관상'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수양대군 역할의 이정재였다. '신세계'와 '관상'의 이정재를 보면 특별히 연기력이 갑자기 나아졌다 기 보다는, 자신에게 잘 맞는 캐릭터의 옷을 입게 되어 더 돋보인 듯 했다. 수양대군이라는 캐릭터는 양면성 보다는 오히려 완벽한 악으로 그려져야 했는데 (적어도 이 작품 속에선), 등장 장면에서 한 눈에 공포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정도로 공을 많이 들인 캐릭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정재의 수양대군이 워낙 매력적이었기에 앞서서 그의 운명론으로 영화가 전개되었어도 좋았겠다는 바램도 들었었고. 



1. 한 번 실수록 세 단락 이상 썼던 글을 날린 이후로 다시 쓰는 거라 집중력이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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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들 (The Thieves, 2012)

최동훈 세계의 집대성 그 장점과 단점



언제부턴가 국내에서 영화를 소개할 때 '웰 메이드 (well­ made)'라는 표현을 유독 자주보게 되었는데, 어쨋든 전반적으로 잘 만든 영화라는 의미라면 국내에서 '웰 메이드'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독 중 하나가 바로 최동훈 감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범죄의 재구성 (2004)' '타짜 (2006)' '전우치 (2009)' 까지, 최동훈 감독의 영화들은 개인마다 호불호는 나뉠 수 있지만 영화적 완성도로 보았을 때는 전반적으로 평균적인 완성도가 높은, 배우, 연출, 액션, 시나리오, 대중성 등 다방면에서 준수함을 보여주었기에 이 작품 '도둑들' 역시 적지 않은 기대를 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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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들'은 전반적으로 최동훈의 세계관을 집대성 해놓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두 명이 극을 이끄는 것이 아닌 여러 명의 캐릭터가 집단으로 등장해 유기적으로 얽히는 설정은 물론, 범죄의 세계에 대한 디테일 (주로 대사에서 오는)을 챙기는 한 편, 액션에도 볼거리를 선사하고 반전을 거듭하는 동시에 드라마까지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장만 봐도 알 수 있지만 '도둑들'은 이미 장단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양날의 검이라는 것이 확연한 작품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은 조금만 더 간결했더라면 훨씬 더 매력적인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최동훈 감독은 언제나 영화의 배경을 묘사할 때 단순 묘사나 한 두 가지의 디테일로 승부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그 세계를 그려내는 데에 공을 들였던 감독이었다. '범죄의 재구성'은 전문 사기꾼들이 쓰는 찰진 대사들을 통해 실제 그 세계를 러닝 타임 동안만이라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타짜' 역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박꾼들을 넘어서 그들 만의 세계를 엿볼 수 있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도둑들' 역시 최동훈 감독은 현실과 거리가 있는 듯 하면서도 한 편으론 우리가 사는 이 곳의 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를 현실감있게 묘사하고 있다. 가끔 이런 이면의 세계를 그릴 때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경우들이 있는데, '도둑들'은 현실성과 영화적인 부분이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단편적으로 정리하자면, 부산을 배경으로 건물 외벽을 와이어에 매달려 벌이는 총격전이 한편으론 판타지스럽기도 하지만 만족스럽기도 하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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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계관을 구현하는데에 있어 '도둑들'이 갖고 있는 장점들은 캐릭터와 로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일단 집단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경우 장점과 단점을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10명에 가깝게 주요 캐릭터가 등장하는 경우 각각 캐릭터의 이야기를 살리기는 불가능하다기보다 안하는 편이 맞다고 생각되는데, 그런 측면에서 이 작품은 절반의 만족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몇몇 캐릭터의 경우 딱 그 캐릭터의 비중에 맞게 설정되어 그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앤드류-오달수, 예니콜-전지현 등), 몇몇 캐릭터에게는 범위 이상의 이야기가 할애된 듯한 느낌 역시 받았다. 김수현이 연기한 '잠파노'의 경우 분명 매력적인 캐릭터인데 예니콜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조금은 모호함이 없지 않았던 것 같고, 임달화 형님이 연기한 '첸'과 김해숙이 연기한 '씹던껌'의 이야기의 경우는 무언가 전체적인 이 영화의 흐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니 어울리지 않다기보다 모호하게 위치한 느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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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도둑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역시, 임달화 형님의 출연 때문 ㅠ)


참고로 첸과 씹던껌의 이야기를 통해 최동훈 감독이 말하고자 한 '도둑들'의 정서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있었는데, 그 부분이 이렇게 중간에 흩어져 버리는 것이 좀 아쉬울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그 둘이 남긴 대사들이 주는 범죄 영화의 감성적인 정서를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더더욱 이 정서가 영화의 전체적인 구성에서 한 켠에 머무르지 않고 차라리 중심에 섰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렇다면 현재의 '도둑들'에서 어울리지 않는 정서들도 여럿 있을 테니 총체적인 정리가 필요했겠지만... 아무래도 이 정서의 중심에 임달화 형님이 있다보니 이렇게 사이드로 마무리 되는 것이 아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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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들을 통해 보여주었던 최동훈 감독의 야심이 집대성 되다보니 발생된 단점이라면, 일단 안그래도 집단으로 등장하는 인물들 때문에 이야기가 집중되지 못할 확률이 높은데 그 각각의 인물들에게 비교적 더 많은 이야기를 주려고 하다보니 전반적으로 힘을 잃은 경향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도둑들'의 메인 스토리라면 마카오박을 중심으로 태양의 눈물을 두고 벌이는 이른바 '꾼'들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여기에 팹시(김혜수)와 뽀빠이(이정재)가 연관된 과거사가 포함된 것까지는 필연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첸과 씹던껌의 독립적인 이야기는 물론, 무언가 더 할 것처럼 하다가 애매하게 남겨져 버린 잠파노 그리고 추후 비중있게 등장하는 웨이 홍의 이야기까지, 모두 하나의 줄기에 엮여있기는 하지만 각자의 열매가 조금은 무거웠던 탓에 전반적으로 복잡해져 버린 느낌이었다.


사실 이렇게 복잡한 관계 설정을 가지고 노는 것이 최동훈 감독의 이야기에 장점 중 하나이긴 한데, 이번에는 조금 과한 감이 없지 않았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 처럼 시리즈로 계획되었다면 조금은 부담이 덜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워낙에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여럿 등장하다보니 각각의 비중을 설정하는 데에 조금은 애를 먹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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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면 역시 후반부 부산에서 펼쳐지는 건물 외벽 와이어 액션을 들 수 있을 텐데, 어떤 영화와 비슷하다 아니다를 떠나서 시퀀스만 봐도 액션 콘티를 얼마나 신경써서 작업했는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장면이었다. 사실 그 동안 마카오박에 대해 영화가 별다른 설명을 해주지 않았기에 갑자기 이던 헌트처럼 와이어를 타고 자유자재로 날라다니는(?)가 하면 홍콩 조직원들과도 1:1로 결투까지 벌이는 마카오박의 모습에 조금 갑작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어쨋든 그 갑작스러움만 제외한다면 이 영화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리듬감을 만나볼 수 있는 시퀀스였다. 두기봉 영화와 성룡 영화를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이었는데, 전반적으로 너무 마음에 들었던 부산 로케이션을 배경으로 (이 장면의 또 다른 승자는 바로 그 건물이다), 와이어를 최대한 적절하게 활용한 이 액션 시퀀스는 '도둑들'이 단순히 머리쓰고 뒤통수 치는 영화가 아니라 볼거리로도 만족을 줄 수 있는 영화가 된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나중에 블루레이가 나온다면 한 번 본편을 감상한 경우 바로 이 장면을 선택해 다시 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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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은 그의 영화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요소들이 총출동하는 작품으로서, 그의 작품을 좋아했던 관객들이라면 그 각각의 매력을 모두 만나볼 수 있는 다채로운 작품이 될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그 매력적인 요소들이 조금은 과하게 담긴 탓에 넘쳐 아쉬움으로 남게 된 점도 없지 않지만, 우리가 흥분했던 홍콩 범죄 영화의 장점을 우리 것으로 잘 소화해낸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마지막으로 아마 어렵겠지만 '오션스 일레븐' 처럼 시리즈로 제작되어 다음 편에는 정말 조지 클루니가 일원으로 출연한다던지 아니면 양자경 누님 정도가 출연해주신다면 더 멋진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비현실적인 바램도 가져본다.



1. 오랜만에 극장에서 여자 분들의 함성소리를 들었어요. 확실히 김수현이 대세이긴 한 것 같아요 ㅎ 그의 등장과 대사 하나하나에 반응하시더라는 ^^;


2. 그동안 자신의 이미지를 비튼 전지현의 '예니콜' 캐릭터는 확실히 인상적이더군요. 염정아나 김혜수가 내뱉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같은 대사들이었어요 ㅎ 이름부터가 '예니콜'이라는 것에서 피식하기도 했고요 ㅋ


3. 오히려 등장인물들이 많다보니 메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마카오박(김윤석)의 비중이나 깊이는 조금 덜해진 느낌이더군요. 이건 김윤석 씨가 연기를 못했다기 보다는 상대적인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4. 나중에 부산 가면 그 건물과 그 골목은 꼭 한 번 가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정말 홍콩 영화에서나 보던 장소 활용이랄까.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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