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 2 (Jiseul, 2012)
제주 4.3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오멸 감독의 신작이자 최근 한국 영화 가운데 가장 뜨거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 2'를 보았다. '지슬'은 이미 개봉 전부터, 선댄스에서 주목을 받기 전부터 개인적으로 기대가 컸던 작품이었다. 제주 4.3에 관한 영화들이 본격적으로 선보이고 있는 최근, 그 가운 데서도 가장 관심을 끄는 작품인 동시에 영화적으로도 기대가 되는 측면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최근 국내 독립 영화들은 단순히 메시지가 강한 것 만이 아니라 영화적으로도 상업 영화와 비교하여 전혀 손색이 없는 (투자 비용에 대비하자면 말할 것도 없고) 완성도와 미 적으로 풍부한 만족감을 주고 있는데, 그런 연장선에서 또 하나의 잘 빠진 작품이 바로 '지슬'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오멸 감독의 '지슬'은 그러한 기대를 그대로 충족 시켜주는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지슬'은 많은 이들이 아직 잘 알 지조차 못하는 우리의 역사에 대한 환기는 물론, 미 적으로도 아름다운 그런 작품이었다.
ⓒ 자파리 필름. All rights reserved
오멸 감독의 '지슬'은 아슬아슬한 영화다. 그 아슬아슬함이 이 영화의 매력이자 한 편으론 단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제주 4.3을 인지하고 있는 관객의 정도에 따라 다르게 작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지슬'은 제주 4.3을 다루면서 직접적인 방법과 간접적인 방법을 교차하여 사용하고 있다. 마을에서 군인들을 통해 벌어지는 일들은 직접적인 방법에 가깝지만, 이 사건을 일찌감치 피해 동굴로 피난 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한동안 거리를 두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거리 두기는 관객에게 두 가지 다른 측면으로 받아 들여지게 되는데, 하나는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제주 4.3에 관한 충격적이고 아픈 역사를 좀 더 순차적으로 전달하는 순기능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기 때문에 본말이 전도되어 오해로 시작할 수 있다는 역기능일 것이다. '지슬'은 바로 이 두 가지의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시종일관 교차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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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지슬'은 굉장히 영리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정적인 구조를 120% 활용하여 오히려 제한적인 것이 더 나은 결과를 만들었다고 할까. 영화를 보는 내내 웨스 앤더슨이 떠올랐던 건 바로 캐릭터와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마을 사람들은 특유의 제주 사투리가 더해져서 마치 웨스 앤더슨의 영화 속 캐릭터들과 같은 귀여움마저 느껴진다. 어쩌면 이 무거운 주제를 다룬 영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귀여움'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개인적으로는 이 귀여움을 4.3의 무게를 흐리지 않을 정도로 잘 다루고 있는 듯 했다. 즉, 본말이 전도 될 정도의 것은 아닌 듯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사건의 무게에서 조금은 거리를 두고 있는 듯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와 직접적인 행위가 벌어지는 군인들의 이야기와의 균형이나 이어짐도 자연스러운 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이 거리가 좁혀져 마을 사람들이 군인들과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에도 전혀 다른 두 이야기나 정서가 만나는 듯한 이질감은 없었다.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비교적 성공적이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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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는 만족스러웠으나 집으로 돌아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해보니 우려되는 부분이 좀 있었다. 그것은 영화가 묘사하고 있는 군인들에 대한 묘사였는데, 바로 군인 가운데 서도 이 사건에 대해 부당함을 느끼고 결국 배신 혹은 반역을 일으키게 되는 인물들의 묘사 부분이었다. '지슬'이 이들을 묘사하는 방식을 보면 몇몇 군인들은 인간성을 상실한 듯 보일 정도로 짐승 혹은 악마처럼 묘사되지만, 몇몇 군인들은 깨어 있어서 또 다른 피해자로 묘사된 다던지 혹은 러닝 타임 내내 관찰자 혹은 관조자로 남아있다가 결국에는 참지 못하고 깨어나는 인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이 점이 조금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라 하겠다.
이 지점은 양날의 칼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골똘히 생각해보면 아직은 시기상조 혹은 위험한 묘사가 아니었나 싶다. 즉, 아직은 군인들도 피해자였다 거나 혹은 아픈 시대의 산물이다 라고 표현해 버리기에는 제주 4.3의 상처가 너무 깊고 사회적 인식이나 위로도 그 수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극 중에 등장한 대사처럼 '군인들이라고 다 나쁜 건 아니네'라는 말은 자칫하면 이 사건을 처음 받아들이는 사람일 수록 오해하기 쉬운 말이라는 얘기다. 정말로 무고한 사람들이 너무 잔혹하게 목숨을 잃어간 사건의 참혹함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에도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은 이러한 균형적 혹은 냉정한 시선이 위험하게 느껴졌다. 홀로코스트는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이야기되고 영화화 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근래에 와서 당시의 독일인의 시점에서 묘사한 작품이라 거나 그 가운데서 또 다른 의미의 고통과 상처를 받았던 이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의 성숙한 시간이 흘렀지만, 제주 4.3의 상처와 이를 대한민국 사회가 인지하고 있는 정도를 떠올려본다면 확실히 그 정도 성숙의 시점이 가능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한다. 더군다나 아직 까지도 이 역사에 대한 명확한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가해자의 입장을 살피기엔 아직 상처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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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위험함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슬'은 충분히 의미 있고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아슬아슬하기는 하지만 본말이 전도될 정도로 비껴가지는 않았고, 제주 4.3의 역사를 환기 시키는 데에는 이미 충분히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아마 앞으로는 더 많은 4.3에 관한 영화가 나올 것이다. 그래야만 하고. 그런 의미에서 더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보기를 권한다. 더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통해 제주와 4.3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1. 본문에도 썼지만 보는 중간 중간 웨스 앤더슨이 떠올랐어요. 전혀 쌩뚱 맞게도 말이죠.
2. 이 작품의 발단이 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故 김경률 감독의 '끝나지 않은 세월'도 꼭 보고 싶네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40913
3. 제주 4.3에 관한 또 다른 작품인 임흥순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비념'도 곧 개봉합니다. '지슬'을 인상 깊게 보신 분들이라면 이 작품도 함께 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70917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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