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콜하스의 선택 (Michael Kohlhaas, 2013)

스스로 견디지 못함의 대한 울림



아르노 데 팔리에르 감독의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 (Michael Kohlhaas, 2013)'을 선택하게 된 것은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때문도 아니고, 영화의 줄거리 때문도 아닌 오로지 주연을 맡은 매즈 미켈슨의 극 중 모습이 커다랗게 담긴 포스터 한 장 때문이었다. 이 포스터는 뭐랄까, 여러 작품을 통해 조금씩 좋아해 오다가 '더 헌트'에 와서 비로소 애정을 고백하게 되었던 매즈 미켈슨이라는 배우의 매력을 120% 발산하고 있는 이미지였기에, 아마도 이런 단계로 그를 좋아하게 된 영화 팬들이라면 보고 싶어 안달이 날 수 밖에는 없는 그런 포스터였다. 회색 머리를 휘날리며 등 뒤에 검을 매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하이랜더' 같은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는데, 솔직히 포스터의 비주얼에 압도 당해 보게 된 영화였지만 내용은 그 와는 많이 달랐다. 아주 고전적이고 조용한 방식으로 '정의'라는 거대한 뜻에 질문을 던지는 그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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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판매하는 미하엘 콜하스는 매일 말을 팔러 시장에 가는 길에 지나던 다리에 통행세를 내라는 남작의 말에, 처음에는 반대하지만 일단 말 두 마리를 맡기고 나중에 되찾는 조건으로 그냥 지나간다. 하지만 나중에 말을 돌려 받으러 가보니 윤기가 흐르던 두 건강한 말을 다치고 더러워진 상태였으며, 이를 찾으러 갔던 하인 역시 공격을 받아 다치고 만다. 이를 부당하게 여긴 미하엘 콜하스는 법적으로 소송을 걸려 하지만 공작이 손을 쓴 탓에 전해지지 않자 직접 공주에게 이를 전하려 하는데, 대신 전하려던 아내마저 죽음에 이르게 된다.


만약 이 영화가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영웅의 이야기를 그리고자 했다면 아내를 잃는 과정의 묘사는 물론, 그 이후 미하엘 콜하스의 여정 역시 훨씬 더 디테일하고 극적인 묘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불친절 하다기 보다는 일부러 디테일을 걷어낸 듯 한 느낌이다. 복수를 감행하지만 그 순간은 결코 통쾌하지 않고, 어느새 반란군이 되어 버린 그의 일당이 조직되는 과정이나 여정 역시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즉, 이 영화는 부당한 것과 그것의 해결 혹은 극복에 포인트가 있지 않고, 그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갖고 오는 지를 보여주며, 관객에게 다시 어떤 선택을 하겠냐고 되묻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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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을 나오며 같이 본 이와 우스게 소리로 이런 얘기를 했다. '그러게 사람이 융통성이 있어야지'.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만약 미하엘 콜하스가 조금은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라 남들처럼 피해가거나 돌아갈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극 중 묘사되는 모습으로 미뤄보면 미하엘 콜하스가 꽉 막힌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조금은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그럼에도 그가 이 사건을 겪으며 했던 선택들은 조금은 날이 선, 그래서 본인 스스로도 어떤 의의를 두거나 정의를 행한다고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그가 만약 조금 더 융통성을 발휘 했다면 아내를 잃게 된 것을 비롯해 모든 일들을 겪지 않았을까? 라는 질문을 되 묻게 되었다. 그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그렇담 과연 '융통성'이라는 건 '정의'라는 것을 논할 때 선택 가능한 옵션인가 라는 의문도 더불어 갖게 되었다. '그러느니 죽는게 차라리 낫다'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의미가 있다'라는 것은 무엇이 반드시 옳다고 말하기 힘든 문제인데 (최근 본 '노예 12년'을 떠올려 보면 더욱 그렇다), 이 작품은 국내 개봉 제목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선택을 한 주인공의 이야기에 대한 답을 관객이 해야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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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 극장을 나오며 했던 '융통성'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서 답하자면, 영화 속 시대를 배경으로 미하엘 콜하스의 상황이었다면 그가 융통성을 부려 두 필의 말을 잃고 부당한 일을 당한 것을 그냥 넘겼다 하더라도, 결코 평탄한 삶을 영유했을 것이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야 말로 조금은 비겁한 융통성의 결론인데, 어차피 결과가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는 계산에 그렇다면 좀 더 (상대적으로) 정의의 편에서 행하는 것이 나은 것이겠다 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극 중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이 계산적이거나 비겁하지 않았던 건, 그 스스로가 계산을 통해 한 일이 아니었고 오히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행하지 않고서는 견뎌낼 수 없었던,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과 삶은 정의로운 영웅의 삶이라기 보다는, 정의로울 수 밖에는 없었던 현실적인 한 남자의 삶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하엘 콜하스의 여정이 아니라, 그가 그렇게 해야만 했던 내적 갈등과 그렇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그 '마음', 양심이라고 표현하기엔 무언가 부족한 그 마음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너무 쉽게 견디는 것은 아닐까.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은 그 스스로 견디지 못함에 대한, 고요하지만 깊은 울림을 들려주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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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헌트 (Jagten, 2012)

사냥감이 되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



유치원 교사인 루카스는 아내와 이혼했지만 아들 마커스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중이며,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가장 친하게 장난 치고 놀 정도로 착하고 평범한 남자다. 그런 루카스에게 어느 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아주 사소한 일이 발생한다. 가장 친한 친구의 딸이자 어쩌면 부모보다도 더 가까운 친구 같은 존재였던 클라라와의 사이에서 벌어진 아주 사소한 감정의 스침은 루카스를 하루 아침에, 모두가 혐오하는 범죄자로 발전시킨다. 토마스 빈터베르그의 '더 헌트 (Jagten, 2012)'는 '사냥'이라는 제목을 들어 억울한 상황에 놓인 주인공과 이 주인공을 범죄자로 몰아가는 어른이라는 이름의 이성과 그 무서움에 대해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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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상황에 놓인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는 많다. '더 헌트'의 루카스 (매즈 미켈슨)의 이야기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주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주인공, 그리고 남들보다 좀 더 친절했던 주인공은 어쩌면 그 친절함 때문에 본인도 인지하지 못한 순간, 아주 작은 우연으로 억울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것은 작은 실수가 아니라 작은 우연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루카스가 클라라에게 보인 행동을 실수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를 순간의 감정으로 거짓말을 해버린 어린 클라라의 실수 때문 만이라고 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원인이 없는, 과정이 원인마저 잠식해 버리는 이야기다. '더 헌트'가 매력적인 건 바로 이 과정을 매우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디테일한 부분은 다를 수 있으나 전반적으로 억울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를 갖고 있음에도 또 한 번 루카스의 이야기에 깊게 공감하고 답답함마저 느끼게 되는 것은, 그 깊이를 가볍게 다루지 않고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는 영화의 시선과 방식에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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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루카스를 억울한 상황으로 몰아 넣으면서도 상대적으로 그를 범죄자로 몰아넣는 동네 사람들과 친구들의 모습을 무지와 억지로 묘사하지는 않고 있다. 즉, 몰상식으로 한 사람을 몰아가는 모양새가 아니라 이들이 최대한 이성과 논리에 기대고 있다는 것을 영화는 충분히 보여준다. 그리고나서는 바로 그 이성이 얼마나 무서운 일을 벌이는 지를 가감없이 묘사한다. 그리고 관객에게는 더 나아가 (특히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더더욱) 루카스가 처한 상황이 분명히 억울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한 편으론, 그걸 알면서도 만약 내가 저 마을의 한 일원이라면 굳이 루카스와 엮이고 싶지는 않다는 이기적인 생각까지 불러온다. 즉, 완전히 루카스의 편에만 서 있는 듯 하지만, 은연 중에 루카스를 멀리하는 그의 친구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이는 영화 후반부 클라라의 아버지이자 루카스의 친구인 '테오'를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을 통해 다시 한 번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더 헌트'의 주인공은 분명 루카스이지만 다른 한 편으론 테오의 영화라고 느껴졌다. 그 만큼 테오의 행동과 갈등은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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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헌트'는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인간의 이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쉽게 부서짐에 노출되어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누군가가 이로 인해 처절히 무너져 가는 과정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가능성을 어렴풋이 열어두고 있어 더 인상적이었다. 사실 몇몇 장면은 너무 쉽게 이 희망의 가능성을 확장시켜 버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이런 생각을 할 때 쯤 영화는, 스윽 하고 다시 나타나 결국 아직도 사냥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혹은 더 혹독한 사냥의 시절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남긴다.

사냥감이 되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 내가 누군가를 사냥하고 있는 지도 아마 그 전엔 알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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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즈 미켈슨의 연기는 정말 좋았어요. 이전 헐리웃 영화에서 보았던 악당의 모습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을 정도로요. 더불어 클라라 역할을 맡은 아이는 어떻게 이런 아이를 찾아냈을까가 더 놀랍더군요.


2. 주인공의 심리에 완전히 공감하도록 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론 그 사회의 입장에 서도록 만드는 연출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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