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네트워크 (The Social Network, 2010)
네트와 인간관계에 관한 또 다른 진실


5억명의 온라인 친구, 전세계 최연소 억만장자, 하버드 천재가 창조한 소셜 네트워크 혁명 등의로 포장하고 있는 데이빗 핀처의 영화 '소셜 네트워크'는, 사실 이와 같은 영화는 아니다. 다시 말해 5억명의 온라인 친구를 만들기 위한 영화도 아니고, 전세계 최연소 억만장자가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도 아니며, 하버드 천재가 창조한 소셜 네트워크 혁명을 그린 영화도 아니다. 물론 성공신화에 솔깃 하는 대중의 심리에는 '과연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서비스 페이스북 (facebook)는 어떻게 탄생되고 성공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갖을 수 있겠지만, 그래서 이런 기대에 발맞춰 창립자 마크 주커버그의 입장에서 멋진 성공신화를 써내려 갔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 보다는 더 영리한 데이빗 핀처와 각본을 쓴 아론 소킨은 페이스북과 마크 주커버그를 지우더라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를 완성해 냈다. 

즉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소셜 네트워크'를 보고나면 가장 많이 궁금해 하는 바인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인가?'에 대한 물음은 이 영화의 정확한 본질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저 이들은 21세기의 소셜 네트워크와 그 중심에 있는 페이스북의 이야기에 빗대어, 네트와 인간관계 혹은 네트의 광활한 발전으로 인한 인간 관계의 진화 (혹은 퇴화)에 대한 씁쓸한 담론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저'와 '뿐이다'라는 표현은 이 영화의 완성도와 임팩트를 억지로 억누르려는 시도였을 뿐, '소셜 네트워크'는 데이빗 핀처의 필모그래피의 또 하나의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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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하는 이야기를 구현하려하지 않고 하버드 아이들의 '라쇼몽'을 생각했다 라는 데이빗 핀처의 인터뷰 처럼, 이 작품은 하나의 진실을 둘러 싼 각기 다른 이들의 또 다른 진실에 관한 이야기다. 데이빗 핀처는 이처럼 하나의 사건을 두고 각기 다른 진실을 이야기하는 구조를 원했음에도, 이를 복잡한 영화적 트릭이나 장치 없이도 수려하게 완성해 냈다. 그러니까 영화 속 주인공인 마크 주커버그 (제시 아이젠버그)와 왈도 세브린 (앤드류 가필드) 그리고 윈클보스 형제 (아미 해머)가 싸늘한 테이블 위에서 나누는 논쟁은, '내 이야기는 이랬어' '어, 내 이야기는 다른데?'하며 각자에게 같은 사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턴을 제공하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해 이어가고 있음에도, '라쇼몽'과 같은 느낌과 더불어 누군가에게 완전한 치우침 없이 아슬아슬한 이야기의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완벽하게 동등한 공감대의 비중을 두지는 않았기 때문에 (애초에 하려던 얘기가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동등함은 필요가 없을 터), 관객은 특히 앤드류 가필드가 연기한 왈도에게 좀 더 공감을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확실히 공감대를 형성하는 부분에서는 왈도 세브린의 이야기가 임팩트가 느껴진다. 관객은 무의식적으로 약자에게 공감을 하게 되어 있는데 어쩌면 표면적으로 이 작품 속에서 왈도가 가장 약자처럼 연약한 존재로 (냉철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묘사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셜 네트워크'가 흥미로운 것은 모두가 승자인 동시에 결국 모두가 패자가 된다는 점이다. 마크 주커버그와 왈도 세브린의 작은 프로젝트였던 '더 페이스북'이 전세계 5억명이 사용하는 '페이스북'으로 성장하였지만 마크의 모습은 여전히 행복해 보이지 않고, 반대로 페이스북의 성공으로 인해 가장 친한 친구와 멀어지게 된 왈도의 경우 패배자로 보이지만, 이 고소건에 대해서는 서로 합의를 보았으니 표면적으로는 패배자로 보기도 어렵다.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빼았겼다고 주장하는 윈클보스 형제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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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셜 네트워크'의 이야기를 단순히 엄청나게 성공한 기업의 어두운 뒷이야기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이런 소재의 영화에서 의례 등장하는 이런 방정식으로 풀어내기에 이 영화의 알고리즘은 훨씬 더 견고하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처음과 끝은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정서를 거의 대부분 대변하고 있다. 결국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여자친구에게마저 차인 마크 주커버그는 홧김에 여자 친구를 욕보이게 되는 일들을 인터넷 상에 하게 되고, 결국 이 잘못을 만회하기 위한 방법도 보란듯이 자신이 만든 서비스를 성장시키는 것으로 하려 한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하버드의 모든 학생들을 넘어서서 수 많은 대학의 네트워크에 퍼졌을 정도로 유명해졌을지언정, 떠나버린 여자친구의 마음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러면 돌아올 것으로 예상했던 마크는 실망보다는 당황을 하게 되고, 마지막에 가서 다시 홀로 남게 된 마크가 자신이 만든 서비스의 베타적 특징 때문에 (이 서비스가 전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었던 바로 그 장점 때문에) 본인조차 '수락'의 과정을 거쳐야만 전 여자친구의 소식을 듣거나 다시 친구가 될 수 있게 된 현실은, 그리고 그 현실 앞에서 계속 새로고침을 누르고 기다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는 현실은, 인간관계의 가장 밀접하고 민감한 부분에 기인해 만든 소셜 네트워크이지만 이것 역시 완벽한 대안이 될 수는 없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보통같으면 영화 속 인물들의 현재의 상황을 설명해주는 자막이 등장했을 때, 특히나 이번 영화처럼 '페이스북은 전세계 가입자 5억명이 사용하는 서비스고, 마크 주커버그는 최연소 억만장자다'라는 문구가 등장했을 때 무언가 해피엔딩에 가까운 감흥을 느끼게 되지만, '소셜 네트워크'의 마지막에는 이러한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즉 현실에서 보여지는 그의 모습은 억만장자이지만, 우리가 영화를 통해 보게 된 그의 마지막 모습은 앞서 언급한 '새로고침'하는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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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소셜 네트워크'를 만든 이들 가운데 빼놓지 말아야 할 한 사람은 바로 음악을 맡은 '트렌트 레즈너'이다. 록 팬들에게는 '나인 인치 네일스 (Nine Inch Nails)'의 프론트맨으로 더욱 유명한 트렌트 레즈너가 만든 영화 음악은, '소셜 네트워크'를 전반적으로 쓸쓸하면서도 차가운 정서로 이끄는 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우고 있다. 이 영화는 음악이 상당히 깊게 관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 차가운 디지털 사운드로 채워진 음악들은 장면의 리듬감은 물론 마치 스릴러 영화에서나 느꼈을 법한 긴장감과 동시에 인간관계를 디지털화하여 쉽게 연결해주는 페이스북이라는 도구와, 그 도구로 인해 멀어져버린 진짜 인간관계에 대한 쓸쓸한 정서를 마치 무채색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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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네트워크'가 더 인상적이었던 또 다른 이유는, 개인적으로도 페이스북과 같은 서비스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최근에는 새로운 서비스를 한창 기획하고 준비하는 시기여서 평소에 브레밍스토밍 하고 있는 것들과 연관되는 부분들, 혹은 근본적인 원류를 다시금 되돌아보게끔 해 더 인상적일 수 밖에는 없었다. 또한 페이스북 서비스를 사용한지가 어느 덧 제법 오래되었고 또 최근 몇 달간 더 자주 사용하고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시류를 잘 읽고 앞서갔던 서비스라는 점에서 좋은 인상을 갖고 있던 터라, 마크 주커버그가 처음 어떤 아이디어에서 출발하게 되었는지 (교내 네트워크를 위한 서비스에서 시작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영화로 그 과정을 접하니 감회가 남다르더라), 또 '더 페이스북'이 어떻게 '페이스북'이 되었는지, 현재 페이스북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몇가지 중요한 아이디어들이 어떻게 설계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흥분되는 작품이기도 했다. 쉽게 말해 업계 사람으로서 업계 1위라고 할 수 있는 서비스의 리얼한 탄생과정의 목격은 그 자체로 흥분되는 것이었다 (음악으로 바꿔 이야기하자면 유명한 밴드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볼 때, 명곡이 어떻게 우연처럼 탄생하게 되었는지가 등장할 때 소름이 돋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미 지난 예전의 이야기임에도 무릎을 탁치게 되는 장면들이 많았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지금 만들고 있는 서비스 혹은 훗날 만들게 될 서비스에 여기서 파생된 아이디어들을 접목시켜야 겠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아, 물론 영화 속 이들의 이야기처럼 5억명의 친구를 만들기 위해 진짜 친구들을 모두 적으로 만들게 되는 일은 없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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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시 아이젠버그와 완성시킨 '마크 주커버그'는 그야말로 올해의 캐릭터 중 하나로 꼽을 만 하더군요. 연민과 비난이 동시에 들게 끔 하는 묘한 주인공이었죠. 

2. 극중 윙클보스 형제는 아미 해머가 1인 2역으로 연기하고 나중에 CG를 통해 영화 속 장면이 완성되었는데, 감쪽 같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그 보다는, 오히려 '자, 이건 1인 2역이야, 뭔가 이상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데이빗 핀처의 영화적 조크와 장난끼랄까요.

3.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필모그래피에서도 현재까지는 최고의 연기가 아닐까 싶군요. 영화를 보고나서 아직까지도 얄밉다고 하는 이들이 있는걸 보면요.

4. 개인적으로 최고의 대사는 '션, 난 니 옆에 서고 싶어. 그럼 내가 더 터프해 보일테니까'라는 왈도의 대사와 '더 는 빼, 그냥 페이스북으로'라는 션의 대사를 꼽고 싶군요. 전자는 감정적으로 후자는 현실적으로요 ㅋ

5. 이 글은 제 페이스북으로도 발행하였습니다. 5억명의 친구들이 보게 될까 두렵군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Columbia Pictures 에 있습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2008)
순간의 성장영화

F.스콧 피츠제랄드의 소설을 원작으로 데이빗 핀처가 연출하고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처음부터 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었다('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우리말 제목에
괸해서는 조금 직접적이고 자극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원제 그대로 '흥미로운 사건' 혹은 '기이한 사건' 이라던가
아니면 그냥 '포레스트 검프'처럼 '벤자민 버튼'이라고 해도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았던터라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었으나, 우리말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주인공 '벤자민 버튼'의 시간이
거꾸로 간다는 것 정도 외에는 별다른 정보를 수집하지 않은채 관람하였는데(아! 2시간 40분에 달하는 긴 상영시간에 대해서도
미리 인지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데이빗 핀처의 스타일이나 성향 등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영화도 어느 정도 이런
성향에 연장선에 있지 않을까 했지만, 의외로 이 영화의 주된 흐름은 로맨스에 있었다. 원작을 이미 읽어본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원작과는 사뭇 다른 각색으로 실망도 했다고 하는데, 원작을 읽지 않은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데이비드 핀처만의
스타일리쉬하고 독특한 장면들을 만나볼 수 있는 동시에 <조디악>이후 확실히 <조디악> 이전 작품들과는 구별되는
연출스타일을 보여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 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이미 스포아닌 기본 줄거리로서 알려진 바처럼 이 영화의 주인공 벤자민 버튼은 태어날 때 노인의 몸(정확히 말해서는
몸상태라 해야 맞겠다)으로 태어나 점점 시간이 흐를 수록 몸이 젊어지는 독특한 인생을 타고난 캐릭터이다. 태어나자 마자
노인과 같은 주름진 얼굴과 피부를 하고 나온 아이를 아버지인 토마스 버튼은 어느 한 집에 버리게 되는데, 이 집은 일종의
양로원 같은 공간으로 노인들이 모여사는 곳이다(원작에서 벤자민의 부모는 벤자민을 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일단은 일반
평범한 가정이 아니라 조금은 특별한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이 장소 설정이 영화를 전체적으로 흥미롭게 만드는 듯 하다.
이 곳을 관리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게 된 벤자민은 어렸을 때 부터 노인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지내게 된다. 거꾸로 시간이
간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동시대를 살기 어렵고 그들의 죽음을 계속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역시 의미하는데,
바로 이 점에서 노인들이 주로 살아가는 이 공간은 매우 효과적으로 적용이 되고 있다. 자신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었던 이,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세상을 보여주었던 이,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죽음을 하나하나 다
겪어야만 하는 캐릭터를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인생에 대한 기본적인 메시지들을 은연 중에 전달하고 있다. 직접적인 방식은
아니었으나 이 공간과 벤자민의 나레이션들을 통해 이 '인생'에 관한 깊은 메시지는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이야기 하고 있는 또 하나의 메시지는 바로 소외된 자를 받아들이는 방법과 선입견이
없이 수용하는 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 영화가 판타지스러운 것은 단순히 시간을 거꾸로 적용받는 주인공 때문 만은 아닐 것
이다. 앞서 언급한 이 공간, 이 공간은 어찌보면 매우 판타지스러운 공간이 아닐 수 없겠다. 일단 이 시기라면 완벽하게
인종차별이 없었던 시기라고 할 수 없을텐데(하긴 오바마 정부인 최근조차 완벽하게 없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사실상
흑인들이 운영하는 이 공간에 굉장히 격식이 차려진 삶을 살아온 듯한 백인 노인들이 이 공간에 아무런 불평없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노인들의 헤어스타일이나 의상, 장신구들로 미뤄보아 다들 여유로운 마지막을 준비하려 이곳을 선택한
이들임을 알 수 있는데, 이들에게서는 전혀 인종차별의 낌새조차 발견할 수 없다.

인종차별에 관한 건 굳이 발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 영화에서 더 중요한 다른 시선은 바로 선입견 없이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을 바라보는 인물들에 모습에 있다. 벤자민의 아버지는 벤자민이 태어나자 마자 '괴물'같이 흉측한 모습이라며 아이를
버렸지만, 이를 발견한 '퀴니'는 거의 단 한번도 주저함 없이 벤자민을 겉모습이 아닌 '아이' 그 자체로만 받아들인다.
이 공간 속에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보통 같으면 퀴니가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벤자민을 공개했을 때 기겁들을 했겠지만,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노인들은 '내 죽은 남편과 비슷하게 생겼다'며 농담까지 할 정도로 퀴니가 그랬던 것처럼 별다른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벤자민을 처음 친구로 받아주었던 피그미족 남자도 그랬고, 키작고 노인으로만 보였던 벤자민을
자신의 선원으로 받아준 선장 마이크 역시 그러했고, 벤자민의 연인이었던 데이지 역시 그러했던 것처럼, 이들 모두는
우리가 쉽게 보는 벤자민의 기이한 겉모습에 전혀 편견을 갖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있다. 현실은 이렇지 않기에
이런 구성이 판타지로 느껴지는 것이 씁쓸하기까지 한데, 이를 반영하는 캐릭터들을 노인이나, 흑인, 선원들로 묘사한 것은,
그 반대에 서있다 할 수 있는 이른바 '지식층'들에 대한 조롱의 시선이었는지도 모르겠다(괴물 같다며 벤자민을 버렸다가
나중에 점점 젊어지고 번듯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자 자신의 전재산을 물려주며 가업을 잇게 하기 위해 아버지임을 밝히게 되는
토마스 버튼이 기업가(사업가)라는 점도 앞선 것들과 연관지을 수 있겠다.



(개인적으론 케이트 블란쳇 만큼이나 좋아하는 줄리아 오몬드도 만나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영화는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데이지와 그녀의 딸 캐롤라인이 예전 일기장을 읽어내려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중간중간 계속 나레이션이 삽입되어 있는데, 그래서인지 이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더더욱 마치 책
한 권을 읽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죽을 때가 되어서야 좀 더 진실한 대화를 나누게 되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비춰
봤을 때도 그렇고, 부모가 (직간접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판타지스럽다는 측면에서, 팀 버튼 감독의 <빅 피쉬>가
연상되기도 했다.

이 영화는 기이하게 태어난 벤자민 버튼의 삶을 그리고 있지만, 방식이 일반적이지 않을 뿐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매우 보편적
이다. 노인의 몸을 가지고 태어난 벤자민은 노인들과의 생활을 통해 여러가지를 배우고, 우연히 함께하게 된 인양선 항해를
통해 마치 사춘기 소년이 그러하듯 성에 대한 첫경험과 이성에 대한 호기심도 갖게 되었으며, 데이지를 통해 이성에 대한
감정과 이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도 하나씩 배워나가게 된다. 시작은 남들과 정반대에서 시작했지만 시작점이 달랐을 뿐
같은 길을 반대방향에서 걸어간다고 보면 될텐데,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이 기이한 설정만 제외하면 완벽하게 성장영화와
맞아 떨어진다. 일단 영화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영화의 감독이 데이빗 핀처라는 점이었는데, 이 기이한 설정을
컨트롤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그의 역량이 발휘될 것으로 기대되었던 바이지만, 이를 제외하면 사실상 로맨스와
드라마에 가까운 이 영화를, 스릴러와 강한 스타일이 장기인 핀처가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확실히 데이빗 핀처는 <조디악>이후 이렇게 느긋하게 극을 이끌어나가는 부분에 있어서 스릴러 적인 긴장감 없이도
지루하지 않게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조디악>은 물론 범죄 스릴러 라는 장르 안에 있었지만 이전 그의
작품들처럼, 장르적인 특성과 분위기에만 기대는 영화가 아니었다. 이런 장점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다시금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데, 특히 순간순간 장면을 감성적으로 그려낸 것을 보니 '과연 이 장면들이 데이빗 핀처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이야기가 잠시 헛나갔는데 본론으로 다시 돌아오자면, 이 영화가 인생이라는 것을 그리는데 있어서 얼마나 순간과 지금에
중요성을 두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점은 데이지가 사고를 당하게 되는 시퀀스를 통해 아주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데이지가 차에 치이게 되는 과정에 얽힌 여러 인물들의 인과 관계를 설명하면서, 이렇듯 여러가지가 제대로 정상적
으로 작용하지 못했음에도 즉 단 한가지라도 어긋났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찰나의 사고가 일어나게 된 것을 매우 직접적으로
묘사하면서, 이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순간과 시간의 개념에 대해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벤자민과 데이지는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지만 벤자민의 특별한 상황 때문에 일종의 '접점'을 기다려왔다고 할 수 있는데,
서로 반대의 출발점에서 시작한 둘의 나이가 서로 어느 정도 비슷한 시기에 도달했을 때, 이들은 그야말로 서로를 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정도로 이 순간에 집중한다. 얼핏보면 이 시기가 곧 '청춘'이 인생의 클라이맥스이자 만개했다
지는 꽃처럼, '한 때'를 찬양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로 보았을 때 '찬양'이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음을 인지하고 이 주어진 시간 속에서 최대한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 영화에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사실 조금 의외다 싶었는데, 영화를 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일단 벤자민의 어린 시절(?)의 묘사를 위해 엄청난 CG가 사용되고 있다. 이부분은 모션캡쳐를 통해
브레드 피트의 얼굴 부분을 그래픽으로 완성하고, 얼굴 외 부분은 대역 연기자가 연기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진짜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 호빗을 촬영했던 방식으로 촬영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키도 작고 노인의 몸을 갖고 있는
브레드 피트의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재미있는건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래딧이 올라갈 때 등장한 순서대로 배우들의
이름이 나열되는데, 벤자민 버튼 역을 맡은 브레드 피트는 세 페이지가 지난 다음에야(틸다 스윈튼이 등장할 때) 등장하는
것으로 나온다).

캐릭터 묘사에 사용된 CG와 이에 따른 비용도 많았겠지만, 이 밖에도 배경 묘사나 로케이션을 대체하기 위해 엄청난 CG를
사용하고 있는 점도 흥미로웠다. 극 중 벤자민 버튼은 세계 각지를 여행하는데 물론 실제 로케이션을 통해 촬영된 분량도
조금 있는 듯 하지만 대부분은 완벽한 CG로 채워졌으며(예전 파리 시내를 아우르는 장면은 CG이지만 상당한 위압감마저
느껴졌다), 브래드 피트가 인양선을 타고 간 곳 거리의 디테일도 로케이션이 아니라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묘사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 이 두 배우의 모습 묘사에도 많은 CG가 사용되었는데, 특히 브래드 피트의
경우 할아버지 분장부터 <델마와 루이스>시절 혹은 더 이전을 연상케 하는 '미소년'의 모습까지 연기하고 있어,
이른바 '뽀샵'의 효과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극중 데이지가 발레를 하는 이 장면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 장면을 보면서 데이빗 핀처도 이런 감수성이 있구나 하고
느끼기도 했고)

극중 벤자민 버튼 역을 맡은 브레드 피트는 연기를 잘했다 못했다를 떠나서 '벤자민 버튼'이라는 이 캐릭터에 너무도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젊어진 다는 설정을 표현함에 있어서 그의 외모는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겠는데,
점점 젊어질 때마다 더더욱 빛을 발하는 그의 외모는 여성 관객들의 탄성을 절로 불러일으켰다. 사실 의외로 이 영화에서
브래드 피트가 '연기'자체로 표현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극중 틸다 스윈튼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가 연기한
것이 아니라 모션 픽쳐를 사용한 대역 연기자가 벤자민을 연기하였고, 이후 에도 외모 적인 변화 만큼 인상적인 연기는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물론 그의 외모를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어느 정도 만족스럽긴 했다;;).

그에 반해 데이지 역할을 맡은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는 훨씬 깊은 편이다. 대부분 CG에 큰 도움을 받았던 벤자민 버튼 역할과는
달리, 죽음을 앞둔 노인 역할부터 20대의 풋풋한 발레리나 까지, 또 한번 그녀의 놀라운 연기 스펙트럼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워낙에 빛을 발하는 브래드 피트 때문에 조금 가려져 있긴 하지만, 20대의 데이지를 연기한 케이트의 놀라운 외모는
(물론 CG의 도움이 어느 정도 있었겠지만) 다시 한번 여신의 포스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제목이 '벤자민 버튼의 ....'라서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경향이 있지만 연기면에서는 그녀의 연기가 훨씬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데이지의 딸로 등장하는 줄리아 오몬드의 경우 브래드 피트와 <가을의 전설>에서 연인으로 출연했던 터라 이 같은 관계설정이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어찌보면 큰 기대에 비해 표면적으로 별로 들려주는 얘기는 부족한 듯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이 젊어진다는 설정을 좀 더 다양하게 이용하지 못한 듯한 느낌도 살짝 들지만, 개인적으론 이 설정에
국한되지 않고 본래 하려던 이야기를 단지 설정만 빌려와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비교적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2시간 40분이라는 상당히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가 단지 두 배우의 외모적 변화를
관찰하는 재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1. <콘스탄틴>등에서 잘 보여줬던 것처럼, 이번 영화에서도 워너브라더스의 로고가 멋지게 변형되어 등장한다.
이 로고를 통해 벤자민 '버튼'이라는 이름의 의미에 대해 살짝 예상해볼 수 있었다.

2. 초반에 허리케인이 온다며 잠시 간호도우미가 자리를 뜨는데, 이 도우미의 이름이 도로시라는 점도 재미있었다.
참고로 영화 마지막 장면의 날짜는 뉴올리언즈가 카트리나에 피해를 받게 되었던 그 날이라고 한다.

3. 본문에도 썼지만 영화의 초중반 등장하는 벤자민 버튼은 브래드 피트의 얼굴을 모션 캡쳐하여 대역 연기자가 연기한 것이기
때문에, 등장순서대로 나오는 엔딩 크래딧에 브래드 피트는 세 페이지가 지난 뒤에야 이름을 올리고 있다.

4.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은 알렌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작품 <바벨>에서 부부로 등장했던 적이 있다.

5. 의외로 케이트 블란쳇과 틸다 스윈튼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관객들이 많은데(비슷한 시기에 마녀 혹은 여왕 같은 캐릭터를
연기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일 듯 하다), 이 두 배우가 한 영화에 등장한 것도 소소한 재미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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