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자 (2010)
언브레이커블 돋는 초능력자를 지지한다
고수라는 배우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건 순전히 마스크 때문인듯) 반드시 봐야 겠다는 생각은 사실 없었는데, 그래도 '초능력자'라는 구미를 당기는 제목 때문에 극장에서 놓치면 나중에 후회가 남을 것 같다는 생각에 보게 된 영화 '초능력자'.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어설프다, 유치하다 등등의 많은 평들과는 다르게 개인적으로는 아주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강동원, 고수라는 두 배우의 이름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던 이 영화는 (물론 '초능력자'라는 제목자체가 엄청난 정보이긴 했지만) 봉준호, 김지운 감독의 연출부였던 김민석 감독의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특히나 데뷔작임을 감안한다면 아쉬움보다는 가능성을 훨씬 더 많이 엿볼 수 있었던 취향타는 작품이었다.
ⓒ 유나이티드 픽처스. All rights reserved
영화는 어린 시절부터 특별한 능력으로 인해 불운을 타고 난 '초인 (강동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는 평범하지만 사회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는 또 다른 인물 '임규남 (고수)'의 이야기를 슬쩍 얹어 놓는다. 눈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모든 사람을 자유자재로 조종 가능한 초인은 여느 때처럼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손 쉽게 돈을 훔쳐내는데,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이 통하지 않는 규남과 만나게 되면서 이 이야기는 급속도로 전개 된다. 사실 초능력을 갖은 주인공과 이런 초능력이 유일하게 통하지 않는 또 다른 주인공의 이야기라는 설정을 들었을 때부터 M.나이트 샤말란의 '언브레이커블'이 얼핏 떠올랐었는데, 막상보고 나니 '초능력자'는 '언브레이커블'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유사한 점이 많은 작품이었다. 즉, 다르게 말하자면 '언브레이커블'을 보았느냐 말았느냐에 따라 혹은 어떻게 보았느냐에 따라 '초능력자'에 대한 인상이 다를 수 밖에는 없다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언브레이커블'을 히어로 영화의 중요한 줄기 중 하나라고 여기는 입장에서, 이를 충실하게 따르며 또 다른 정서까지 담아내려 했던 '초능력자'가 인상적일 수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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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브레이커블'이 히어로물의 세계관의 충실한 영웅과 악당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인 것과 마찬가지로, '초능력자'도 얼핏보면 단순한 에피소드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바로 이런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언브레이커블'은 좀 더 서사적이고 신화적인 측면에서 무겁게 다룬 것에 비해, '초능력자'는 영웅의 탄생을 유쾌하고 가벼운 터치와 더불어 다른 문화적인 공기를 좀 더 담으려고 애썼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많은 이들에게 이런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런 유쾌함을 통해 표현하려 했던 부분들 때문이라고도 생각이 되는데, 특히 규남의 친구들인 외국인들의 경우 한국말을 능숙하게 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웃음의 포인트가 되기 때문에, 이 패거리의 이야기가 그냥 웃긴 것으로 뭉뚱그려 지는 부분이 있었고 규남의 이야기 역시 거꾸로 돌아보면 영웅의 이야기로 볼 수 있지만, 태생부터 능력 위주로 연출했던 초인의 이야기에 비해 관객들이 규남을 영웅이 되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본래부터 영웅이었지만 스스로 깨닫지 못했던 언브레이커블의 데이빗 던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받아들이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더 심각한 분위기와 신화적인 내용을 담아내려 했다면 영화는 더 실패했을 지언정 어쨋든 히어로 물의 범주에서 논의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바로 이 영화가 그려내려 했던 그 분위기와 문화적인 주변의 이야기가 '초능력자'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규남의 외국인 친구들의 경우 한국말을 능숙하게 한다는 것 자체와 마치 이 3인조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도색된 다마스 차량 그리고 폐차장에서 일하는 특성을 살린 각종 수공예 무기들과 후반부 만화적인 상상력마저 폭발하게 하는 부스터 개조까지! 이 3인조는 분명 독특한 분위기를 영화 전체에 제공하고 있다. 주류 사회에서 외면당한 이들의 이야기는 마치 또 다른 히어로물의 가능성을 보여준 '킥 애스'를 연상시키게도 했는데, 결국 주류 사회를 믿지 못하고 아웃사이더인 이들이 스스로 해결하려고 (해결해야만 하는) 나서는 모습은, 그리고 멍청해 보일 정도로 무심한 주류 사회의 모습은 이 영화가 숨기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정서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내면의 것들을 다 무시하더라도 일수회사가 몰려 있는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이면을 배경으로 한국청년과 터키, 가나 청년 이렇게 셋이서 (그리고 다마스!) 만들어내는 아우라는 이런 요상한 감성을 좋아하는 이들을 마구 자극하는 무언가가 분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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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규남의 이야기만 했던 것 같은데 초인을 그려내는 방식도 아쉬움은 있었지만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영화는 초인 역시 완전한 악당으로 그리기 보다는 능력을 타고 났지만 그 능력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어야만 했던,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캐릭터로 그려내려 하고 있는데, 확실히 이런 영화의 의도는 강동원이라는 배우가 초인을 연기하면서 좀 더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즉, 관객들은 다른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영화의 내러티브와 큰 상관없이 강동원이 연기한 캐릭터에 공감을 담게 되기 때문에, 악한 일들을 저지르지만 태생적 고통에 대한 여지를 저절로 얻게 된달까. 물론 이로 인해 적어도 동등한 비중과 공감대는 얻었어야 할 규남의 이야기가 오히려 덜 공감을 얻게 되어 영화가 전체적으로 꼬일 확률이 높아진 것도 있지만, 이런 외부적 요인들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은 관객들이라면 영화가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규남과 초인의 이야기를 모두 비중있게 다루려 했다는 점에 흥미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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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과 카메라 그리고 음악에 있어서도 상당히 의도된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콘트라스트가 강한 영상은 장면 장면에 더 힘을 실어주고 있으며 음악 역시 상당히 장르화 되고 매우 의도적으로 사용되고 있어, 다른 부족한 부분들을 힘으로 커버하고 있는 느낌이다. 카메라의 경우 한 2~30도 쯤 기울여서 찍은 장면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초인과 규남의 대결 구도를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영화에 전체적으로 리듬감을 주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특히 규남이 임대리로서 첫 출근하는 날의 그 장면은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 중 하나였다.
아, 그리고 말 많은 규남의 엔딩 장면에 대해서는, 이 영화가 그냥 '초능력자'였다면 필요없는 과한 장면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품은 '언브레이커블'과 마찬가지로 영웅의 탄생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이 장면이 반드시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를 그리는 방식이 좀 세련되다기 보다는 너무 직접적이고 코믹하긴 했지만 (그런데 이렇게 오버스러운 연출이 오히려 귀엽고 이 영화를 더 오래 기억하게 할 것 만 같다), 이 장면이 있어야 '아, 그래서 규남이 결국 그렇게 되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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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쉬움 보다는 감독의 마니아적 취향과 정서가 인상적이었던 작품이었고, 유쾌함과 통쾌함도 느껴졌던 힘이 있는 작품이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좀 더 세련된 작품이 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작품인 것도 분명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날 것의 느낌이 살아있는 이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 아마도 속편이 나온다면 아, 속편이 나온단 얘기 따윈 없었지. 하지만 유토피아 임대리가 매편 다른 초능력자를 상대하는 시리즈물로 기획된다면 어떨까. 그럴리 없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 작품 '초능력자'는 갈수록 의미있는 '임규남 비긴즈'가 될지도 모른다. 순전히 개인적인 공상이지만.
1. '유토피아 임대리다!' 아, 이 대사가 주는 정서가 좋았어요. '유토피아'라는 회사 이름도 의미심장하고 말이죠 ㅋ
2. 많은 분들이 단순히 '왜 안죽어?'라는 의문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영화를 더 재미있게 즐기지 못하는 것 같아 조금 아쉬웠어요. 여기서 자유로워지면, 아니 왜 안죽는지를 인정하고 나면 영화가 좀 더 재미있어지는데 말이죠;
3. 몇몇 말깔나는 대사들이 있었어요. '엄마가 단추 끝까지 채운 놈들은 조심하랬어'라는 대사 같은거요. 김인권 씨의 애드립일 수도 있겠군요.
4. 두 주인공 만큼이나 두 명의 외국인 친구들이 주는 인상이 컸어요. 단순히 유창한 한국말을 하는 외국인을 넘어서서, 연기도 나쁘지 않았거든요. 아, 이 3인조를 오래 기억하게만 될 것 같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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