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만 감독의 1992년 작 '라스트 모히칸 (The Last of the Mohicans)' 을 블루레이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왼발 (1989)'과 더불어 다니엘 데이 루이스 라는 배우를 영화 팬들에게 확실히 각인 시킨 작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텐데, 지금 와 따져보자면 다니엘 데이 루이스도 그렇고 감독인 마이클 만에게도 이 작품이 대표작이라고 부를 만한 작품은 아니지만, 감독과 배우 모두의 비교적 초기를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새롭게 살펴볼 만한 작품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18세기 미대륙에서 벌어진 프랑스와 영국의 식민지 전쟁을 배경으로 원주민인 인디언들과 연결된 역사적 사건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국의 소설가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디테일 한 측면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기 보다는 당시 시대 상황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설정들과 캐릭터들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아직 원시적인 모습을 다 잃지 않은 모히칸족의 모습들과 숲과 폭포 등 웅장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자연의 풍경은, 웅장함에 비장함마저 드는 사운드 트랙과 맞물려 순간 순간 장관을 연출한다. 존 윌리엄스나 한스 짐머의 음악처럼 작곡가의 이름까지 기억하게 만들지는 못했지만, 트레버 존스가 만든 '라스트 모히칸'의 메인 테마 곡은 누구나 들으면 '아, 이 음악!'할 정도로 유명한 곡이라 할 수 있을텐데, 세월이 지나도 이 영화를 웅장하게 남도록 하는 힘은 바로 이 테마 곡의 영향이 가장 크지 않았나 싶다.






15세 이상 관람가로서 지금보자면 피도 거의 보이지 않고 잔인한 듯 하지만 영화적 표현에 있어서는 상당히 절제된 액션 장면들이 조금은 소극적으로 비춰지기도 하는데, 그에 반해 당시를 재현하는데 상당한 공을 들인 디자인과 의상, 풍습 등은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어린 시절 단순히 명작이라는 기억만 어렴 풋이 남아있던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 개인적인 소감은, 서사 측면에서도 무게감이 조금은 아쉽고 영화의 전체적인 리듬이나 완성도 측면에서도 상징적인 큰 이미지에 집중하고 있는 터라 좀 더 세밀한 연출에 대한 아쉬움이 드는 작품이었다.




이런 이유로 글의 서두에 마이클 만과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초기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들게 되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가공할 만한 메소드 연기를 보여주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 보다는 '호크아이'라는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는 그도 그렇고, 총기류 디테일의 화신인 마이클 만보다는 식민지 전쟁과 인디언이라는 대 상징을 이미지화한 마이클 만도 그렇고, 현재의 시점으로 본다면 다른 시각에서 접근 가능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Blu-ray : Video Quality



MPEG-4 AVC 포맷의 블루레이 화질은 1992년 작이라는 세월의 무게를 다 이겨내지는 못한 듯 하다. 대대적인 복원 작업을 통해 최신작과 겨뤄도 전혀 손색이 없는 화질 정도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화질이다.






노이즈 현상도 발견되며 특히 어두운 장면의 경우는 최근 작들의 암부 표현력과 비교하자면 상당히 아쉬운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몇몇 장면에서는 블루레이 화질 다운 퀄리티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쨍 하고 선명한 수준급의 화질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전반적으로 아쉬움이 남는 화질이라 하겠다.





Blu-ray : Sound Quality

 
DTS-HD MA 5.1채널의 사운드의 경우 웅장한 사운드 트랙의 감동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으며, 대사 처리와 다양한 효과음들 역시 제법 다이내믹 함을 들려준다. 사운드는 화질에 비해 크게 아쉬운 점은 없었지만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배경 음악이 흐르는 일부 장면에서 우퍼 스피커의 울림이 과도하게 세팅 되었다는 점이다.






이미 출시되었던 DVD타이틀에서도 발견되었던 문제라는 점으로 미뤄봤을 때 블루레이 자체의 문제 라기 보다는 본 소스의 문제가 아닐 까도 싶은데, 이 점이 수정되지 않은 부분은 DVD와 마찬가지로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콜래트럴 (Collateral, 2004) 
도시의 외로운 늑대 이야기 (Blu-ray Review)


마이클 만의 2004년작 '콜래트럴 (Collateral)'은 그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개인적으로 특히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다. 톰 크루즈와 제이미 폭스라는 스타가 출연하지만 그 스타성이 빛나기 보다는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든 탓에, 작품과 배우가 모두 시너지 효과를 내는 동시에, 촬영과 카메라, 조명, 총기 액션의 디테일, 그리고 L.A라는 도시의 특수성 잘 드러난 질감이 눈으로 느껴지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마이클 만의 작품은 대부분 영상의 질감이 깊게 느껴지곤 하지만, 이 작품처럼 일반 필름의 비중보다 고화질 디지털 촬영 비중이 큰 경우에는 오히려 극장 관람보다 블루레이로 즐길 때 그 질감이 더 살아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 글은 최근 출시된 '콜래트럴' 블루레이를 중심으로, 다시 한번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다.


(이 글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두루 포함되어 있습니다)

ⓒ 2010 Paramount Pictures Corporation and DW Studios L.L.C. All rights reserved

(택시라는 공간은 외로운 도시와 대비되며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 곳은 한정된 공간인 동시에, 나만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콜래트럴'의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면서도 상당히 다층적이다. 영화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은 빈센트 (톰 크루즈)와 맥스 (제이미 폭스)다. 전문 킬러인 빈센트는 하룻 밤 사이에 자신이 해치워야할 리스트를 갖고 있고, 이런 빈센트가 평범한 맥스의 택시에 타게 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먼저 영화가 이야기를 그리는, 아니 캐릭터를 그리는 서사 방식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보통 위와 같이 '택시를 타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라고 했을 때는, 이렇듯 본격적 사건이 시작되기 전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나 사건의 시발이 되는 요소들에 대한 설명이 전제되기 마련이다. 이건 친절함과 불친절함을 떠나서 그래야만 좀 더 관객들에게 주인공이 겪는 일들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콜래트럴'이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은 이것과는 조금 다르다. 말그대로 빈센트가 택시를 타기 전, 그러니까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되기 전의 일반적인 전개라고는, 영화의 말미에 다시 등장할 애니 (제이다 핀켓 스미스)의 소개와 더불어 이 대화를 통해 맥스의 성격에 대해 조금 알 수 있는 정도가 고작이다. 영화는 하룻밤의 이야기를 그리기에 2시간의 러닝타임이 부족했는지 이렇듯 바로 핵심 사건으로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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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빈센트가 맥스의 택시를 타기 전 장면들을 그냥 흘려보내기엔 이 장면이 시사하는 바도 적지 않다. 이 부분에서 마이클 만은 L.A라는 도시의 낮시간의 평화로운 모습,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아름답고 평화로운 야경을 갖고 있는 도시의 모습도 비춘다. 이것을 단순히 '이랬던 도시가 밤과 새벽에는 더 차갑게 변한다'라는 설명을 하기 위한 대비로만 말하기는 부족한 점이 많다. 이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이는 도시의 풍경 속에서 역시 외로움과 황량함을 느낄 수 있는데, 이런 감성은 택시 문을 닫으며 완전히 바깥 세상과 단절되어 자신 만의 세계를 갖게 되는 맥스의 모습에서 더 크게 드러난다. 택시의 문이 닫히는 순간 맥스는 완전히 자신 만의 공간을 갖게 된다. 맥스에게 택시 안은 L.A라는 지리적 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다른 차원의 공간이나 다름 없다. 맥스는 이 곳에서 자신 만의 꿈을 키워가며 더 나은 삶을 꿈꾼다. 택시 기사 일을 오래 해왔음에도 항상 '임시직'임을 강조하는 맥스의 말처럼, 아이러니하게도 택시는 맥스의 꿈을 키우는 공간이긴 하지만, 맥스가 꿈꾸는 세상에 바로 지금의 택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꿈이 모두 휴양지나 섬과 같은 도시 밖에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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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는 택시 안에 있지만, 맥스의 꿈은 택시 밖에 있다)

도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더해보자면, 개인적으로 '콜래트럴'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L.A라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본래 뉴욕 맨하튼으로 설정되어 있던 시나리오를 마이클 만이 감독하게 되면서 L.A로 수정이 되었는데, 물론 이는 마이클 만이 L.A의 곳곳을 잘 알고 있는 탓도 크다. 실제로 L.A라는 도시에 있는 특별한 건물, 장소 등은 감독이 단순한 로케이션 이상의 디테일을 구현하는데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무엇보다 한인타운, 멕시코계 등 다문화가 공존하는 특성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데, 이런 특성은 영화의 줄거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으로 등장할 때 더 큰 의미를 주기도 한다. 마이클 만은 L.A(도시)의 모습을 마치 주인공 그린 듯 묘사한다. 헬기 촬영을 통해 밤 거리를 지나는 자동차들의 동선을 묘사하기도 하고, 새로운 장소가 차창 밖으로 등장할 때마다 포커스를 차장 밖 배경에 맞추고 인물에서는 포커스 아웃을 하는 방식을 매우 자주 사용하고 있다. 

이런 내용적인 측면을 제외하더라도 마이클 만이 잡아내는 도시의 야경은 그것만으로도 황홀하다. 실제로 '콜래트럴'을 극장에서보고 나와 지금까지도 가장 깊게 남은 인상은 다름아닌 L.A의 야경이었다. 그 거친 그레인 질감과 더불어 유영하듯 미끄러져 나가는 택시와 불빛과 어둠이 모두 선명한 밤의 풍경은, '콜래트럴'의 가장 매혹적인 장면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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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밤 풍경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다시 캐릭터로 돌아와 빈센트와 맥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분명 빈센트와 맥스 두 명다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빈센트에게 조금 더 무게추가 기울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조금 나중에 이야기하고 일단 맥스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하자면, 맥스는 보통 사람을 대변한다고 보면 되겠다. 크게 문제 일으키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나만의 꿈이 있어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고 있지만 무언가 꼭 말해야 할 때에는 반대로 잘 나서지 못하고 그냥 속으로 혼자 새기고마는 스타일이다. 

그의 반대로 빈센트는 정반대는 아니지만 여러가지로 반대할 만한 혹은 보완할 만한 성격을 갖고 있는 캐릭터다. 빈센트는 프로페셔널하며 자신만의 가치관이 매우 확고한 동시에 자신에게 매우 철저한 사람이다. 결국 '콜래트럴'이 재미있는 건 이 두사람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 이야기 때문이다. 일단 먼저 자신의 결핍을 드러내는 이는 맥스다. 맥스는 연쇄 살인이라는 여태껏 겪어보지 못한 충격적인 사건에 공범에 가까운 처지에 놓여있지만, 그 중간중간 빈센트와의 대화와 행동들에서 무언가 결핍되고 억눌려 있던 부분이 해소됨을 느낀다. 이 둘의 대화는 결국 자신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맥스는 빈센트를 대신하여 살인을 청부한 갱단 두목(하비에르 바르뎀)을 만나게 되었을 때 비로서 억눌렸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는 빈센트라는 허울을 방패삼아 자신을 표출한다. 그 밖에도 재즈바에 들러 주인장과 이야기를 나눌 때를 보면, 너무나 이 대화에 천진난만할 정도로 빠져있는 맥스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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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는 빈센트를 만나 잠재되어 있던 자신을 깨우게 된다. 맥스가 겪은 이 하룻밤이 단순히 지옥같은 경험이 될지, 무언가 의미있는 사건이 될지는 더 두고볼 일이나 분명 후자에 가까울 것이라 예상한다)

사실 빈센트와 맥스가 겪는 이 하룻밤의 이야기를 맥스의 입장에서 본다면 중간중간 비현실적인 수준의 상황들이 벌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방금 눈앞에서 살인을 하는 것을 보았음에도, 택시 안에서 빈센트와 나누는 대화는 지극히 평범하고 진솔하기까지 하다. 빈센트에게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꿈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 본인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격없이 나누는 상황은, 빈센트가 킬러이기 때문에 공포감으로 인한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무언가 억눌려 있던 자신을 표출하는 능동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실제 상황이었다면 저런 무서운 킬러가 뒷좌석에 앉아있는데 그와 진솔한 이야기를 저렇게 편하게 나눌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콜래트럴'은 그럼에도 이런 묘사가 매우 설득력있게 그려진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서두에 캐릭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부족했음에도 말이다. 맥스는 확실히 빈센트를 만나 변해간다. 그것도 이 짧은 시간 동안. 점점 잃어가는 빈센트와는 달리 맥스는 오히려 상황이 진행될 수록 자신을 발견하는 것에 희열마저 느껴질 정도다. 그래서 맥스는 빈센트에게 묘한 감정을 갖게 된다. 적이자 친구인, 아니 형제인 대상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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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만은 유난히 택시 안과 밖, 도시와 인물 간의 거리를 깊게 묘사하고 있다. 보케로 흐릿한 도시의 모습과 더불어 칸막이 유리창에 가려 흐려진 빈센트의 반쪽 얼굴은, 이 도시에서 유령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외로운 한 캐릭터를 더 부각시킨다)

빈센트와의 만남으로 인한 맥스의 변화가 긍정적인 것이었다면 빈센트의 경우는 그 반대라고 볼 수 있겠다. 초반 정말 기계와도 같았던 킬러 빈센트는 맥스와의 대화가 깊어질 수록 후회와 더불어 많은 것을 잃어간다. 확실히 잃어간다는 쪽보다는 후회가 늘어난다는 쪽이 더 맞겠다. 자신이 룰에 철저하고 감정따위는 사치로 느끼는 빈센트는 (마이클 만은 빈센트 캐릭터를 이야기하며, '마음의 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썼다), 맥스와의 대화를 통해 역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빈센트가 맥스에게 하는 말들을 잘들어보면 곧 자신에게 하는 혹은 예전의 자신에게 하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이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질책하는 경우에는, 완벽하지 못함에 대한 질책과 동시에 항상 완벽해야만 하는 (그렇게 되어버린) 자신에 대한 회환의 감정도 상당한 경우가 많은데, 빈센트에게서도 그런 감정이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맥스와의 대화가 깊어지면 질 수록 자신이 고수해왔던 규칙을 깨는 일이 잦아지고, 계획되지 않았던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빈센트는 맥스를 죽이지 않는다. 결국 빈센트는 자신을 비춰볼 맥스라는 매개체가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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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의 시퀀스는 '콜래트럴'의 장면들 가운데서도 가장 감정의 변화가 심하고 캐릭터의 심리 묘사가 흥미로운 장면 중 하나다)

그런 면에서 빈센트가 맥스와 함께 맥스의 어머니를 병문안 가는 장면은 여러가지를 발견할 수 있는 재미있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극장에서 처음 보았을 때는 마치 시트콤처럼 유머가 녹아있는 장면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다시 보니 그 이상의 감정선들이 교차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빈센트는 굳이 이 복잡한 상황 속에서 맥스의 어머니의 병문안을 빼먹지 말고 가자고 한다. 꽃도 사가야 한다며 맥스를 독촉하는데, 어머니에 대한 특별한 애틋함이 발휘되었다기 보다는 (나중에 나오지만 빈센트에게는 어머니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계속 자신이 규칙이 깨어져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처음에는 큰 기대까지는 하지 않은 방문이었으나 자신에게 더 친절한 어머니의 반응을 보자 빈센트는 화색하며 이 분위기를 더욱 즐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상황에서 맥스가 미묘한 질투와 탄식을 느낀다는 것이다. 아마도 맥스는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어머니 곁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홀로 남아 곁을 지켰는데, 처음보는 빈센트에게 자신에 비해 극친절한 모습을 보고는 묘한 질투감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빈센트와 맥스의 관계는 마치 한 어머니 아래의 형제에 가깝다. 사실 이런 감정을 포착하기 전에는 맥스가 갑자기 빈센트의 가방을 들고 뛰쳐나가는 것이 단순히 빈센트가 느슨해진 틈을 타 기회를 포착한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것보다는 역시 빈센트와 어머니의 만남을 통해 느끼게 된 무력감이 역시 빈센트를 통해 서서히 표면으로 드러나고 있는 잠재적인 불만에 힘입어 폭발하게 된 장면이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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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는 맥스의 택시에 처음 타게 되었을 때 L.A라는 도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지하철에서 죽은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한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단순히 L.A라는 도시의 이면 혹은 진면목에 대한 냉철한 시선 정도로 볼 수 있었지만, 나중에는 이 이야기가 비단 도시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홀로 외로운 자신의 대한 이야기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빈센트는 자신이 그 주인공이 되었을 때 다시 한번 맥스에게 똑같은 말을 건넨다. 이 수미쌍관 사이에는 이를 뒷받침 할만한 황폐한 정서가 가득하다. 빈센트가 살인을 벌이는 이 하룻밤, 깊은 밤 시간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살인사건은 생각보다 크게 번지지 않는다. FBI와 경찰이 가담하여 사상이 일어나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끝까지 이 둘의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하지만 영화는 끝까지 이 둘의 이야기로 한정한다. 아니 그것보다는 결국 L.A라는 도시는 이 둘의 이야기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무심하게도 빈센트가 떠나고 맥스가 만나게 된 L.A의 아침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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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콜래트럴'하면 생각나는 장면은 바로 이 장면이다)

그래서 글의 제목을 '도시의 외로운 늑대 이야기'로 정했다(하지만 사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동물은 늑대가 아니라 코요테다). 실제로 이런 상황을 도심에서 겪은 적이 있다는 마이클 만의 경험이 묻어난 장면이기도 한데, 이런 단순 에피소드로 생각하기에 이 장면이 시사하는 바는 가볍지가 않다. 한창 가치관의 대립, 캐릭터의 대립으로 열띤 토론을 벌이던 중 맥스는 갑자기 택시를 멈춘다. 그리고 두 사람 앞에는 거짓말처럼 코요테 한 마리가 이들을 한번 스윽 쳐다보고는 이내 지나쳐간다. 이 순간에는 택시만 멈춰선 것이 아니다. 빈센트와 맥스 역시 마치 시간이 멈춘듯 그대로 멈춰버리고 만다. 맥스의 표정은 조금 의아하다 싶은 정도였지만 빈센트의 표정은 달랐다. 빈센트는 마치 유령을 만난냥 혹은 코요테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냥,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한동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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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는 도심 속 코요테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마이클 만은 영화적 상황이 아닌 본인이 겪었던 이 상황을 두고 마치 이 곳에서 오랜 세월 살아온 코요테가, 이제 겨우 수십년 정도 이 곳에서 살아온 인간들에게, 마치 이 곳이 본래 자신들의 사는 곳이었다는 것을 말하기라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런 느낌은 영화적 상황에서 빈센트라는 캐릭터와 겹쳐 의미깊은 장면을 만들어낸다. 빈센트는 도심을 가로지르는 코요테에게서 자신을 본다. 정신의 장애를 겪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린, 그리고 아무도 의지할 곳 없는 이 도시라는 곳에 홀로 남겨진 외로운 존재... 이 장면이 더 흥미로운 건 코요테의 출현에 대해 그 이후에 둘다 아무런 말한마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잠시 다른 차원의 포탈이 열린듯, 아니면 무언가 범접하기 어려운 존재를 영접한듯, 이후 이들에겐 한동안의 침묵이 흐른다 (실제 영화에서는 다른 컷으로 이동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맥스가 택시를 다시 출발시키는 장면을 통해 이후 '정적'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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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이클 만...

서두에 이 영화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대해 언급했었는데, 마이클 만은 디테일을 중요시하는 (중요시한다기보단 놓치지 않는 이 더 맞겠다) 감독 답게 극중에는 노출되지 않는 캐릭터의 배경과 성격 형성을 위해 촬영전 배우들과 많은 연구를 거듭했었다. 그냥 단순히 어떻게 자라왔고 어떤 가족환경이라고 가정해보자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마치 캐릭터의 히스토리를 시나리오로 작업하듯 가정사와 개인사에 대한 부분을 모두 완벽하게 만들어두었다. 그리고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 (그렇다고 삭제 장면으로 촬영되지도 않는) 영화의 앞 상황에 대한 묘사들도 배우들과 논의하여 모두 언지를 주기도 했다. 

한 예로 빈센트의 경우 맥스의 택시를 타기 전, 이미 공항에서 도심으로 오며 다른 택시를 이용했었는데, 이 택시 기사는 빈센트의 마음에 별로 들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빈센트는 맥스의 택시를 타고서, 7분 안에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맥스의 말에 반신반의하며 내기걸 듯 짜증을 풀려고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맥스는 빈센트가 생각했던 그런 사람이 아니라 일종의 '신뢰가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고, 자신의 룰에서 조금 벗어나지만 맥스라는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이 밤의 중요한 계획을 맡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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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이 캐릭터를 위해 트레이닝 하는 방법 역시 마찬가지였다. 톰 크루즈의 경우 빈센트 처럼 프로페셔널한 킬러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극중에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총격씬의 무한 반복 연습은 물론이요, 실제 전문가들이 받는 트레이닝 과정을 수행하며 직간접적으로 빈센트를 연기할 때 동작에서 자연스레 묻어날 수 있도록 치밀한 준비를 거쳤다. 제이미 폭스 역시 오랜 세월 택시 운전을 한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레이싱에 가까운 운전기술을 익히는 등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준비에 많은 공을 들였다. 실제로 총기 액션의 경우 톰 크루즈는 거의 대역없이 모든 동작을 정말 빠르게 소화해냈으며 (스텝들이 하나 같이 그의 손놀림이 정말 빠르다고 칭찬하는 것이 그냥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제이미 폭스 역시 대규모 총격전 뒤 충격을 받고 클럽을 떠나는 장면에서 직접 부딪히며 빠져나가는 장면을 연기(운전)하기도 했다. 또한 톰 크루즈가 극중에서 자신을 완벽하게 숨기는 것이 가능한 빈센트를 연기하기 위해,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UPS 배달원으로 분장해 사람들로 붐비는 L.A마켓에서 아무도 그가 톰 크루즈인줄 못 알아보도록 하는 훈련을 하기도 한 것은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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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의 격발음 만큼이나 총알이 발사될 때의 리얼한 섬광 표현은 마이클 만 영화의 또 다른 체크 포인트다)

마이클 만 영화를 논하면서 총기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작품 역시 일반 관객은 거의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혹은 굳이 알지 못해도 전혀 상관없는 부분마저도, 총기와 관련된 부분에는 상당한 디테일이 숨겨져 있다. 특히 극중 빈센트는 프로페셔널 킬러이기 때문에 그가 사용하는 총기에 대한 것도 꼼꼼히 체크하고 있으며, 한 때 관객들 사이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가기도 했던 지하철에서 빈센트와 맥스의 난사 장면의 경우도, 바로 이런 총기에 대한 디테일이 숨어 있었음을 뒤늦게 확인할 수 있었다(이 대결에서 빈센트는 자신의 본래 총이 아닌 건물 경비의 총을 사용하고 있었고, 맥스는 사고 뒤 택시 주변에서 발견한 빈센트의 총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빈센트의 총은 지하철 문을 관통할 수 있는 전문가용 총기였으나, 건물 경비원의 총을 사용했다는 것을 뒤늦게 탄창을 교체하려고 하는 순간 알게 된 빈센트가 일종의 짜증섞인 자책과 함께 스스로 무너진 자신을 발견하고는 그만 포기하고 말았던 것이다).

또한 마이클 만은 극중 등장하는 FBI 전술 요원들이나 클럽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무장 경비들 역시 배우가 아닌 실제 인물들을 출연시켜 리얼리티를 강조했으며, L.A의 지역의 특성을 살린 (실제 갱들간의 경계가 되는 우범지역 등) 로케이션 설정으로, 극장에서 볼 때는 미처 알 수 없었으나 후에 리얼리티와 디테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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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야경을 배경으로한 장면인데 고화질의 HD 카메라를 사용한 탓에 자세히 보면, 저멀리 밤하늘에 떠 있는 구름까지도 표현이 될 정도로 디테일한 영상을 담을 수 있었다)

본래 장기인 총기만큼이나 마이클 만이 '콜래트럴'에서 신경 쓴 부분은 다름아닌 카메라와 촬영부분이었다. 마이클 만은 거의 대부분의 장면을 디지털 방식의 고화질 HD 카메라를 통해 촬영을 하였는데, 특히 일반 필름보다 빛에 더 잘 반응하는 디지털의 특성 때문에 낮은 광량에도 어두운 거리의 디테일을 실감나고 아름답게 살릴 수 있었다. '콜래트럴'하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중 하나가 바로 네온사인과 가로등 불빛들로 인해 갈색 톤을 담은 도시의 야경을 들 수 있는데, 바로 이것은 이런 디지털 촬영 방법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사실 마이클 만의 이런 HD카메라 사용은 최근작 '퍼블릭 에너미'에서 아주 극대화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이 작품을 보면 마치 HD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디지털 촬영방식으로 촬영된 영상은 필름 라이크한 느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질감이 느껴지게 된다), 이런 경향을 드러내기 시작한 작품이 바로 '콜래트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에 사용된 HD카메라는 '소니 HDW-F900'과 '톰슨 바이퍼캠 (Thomson VIPER)'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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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만의 '콜래트럴'은 좋은 색감과 질감, 그리고 간결한 표면적 이야기 뒤에 숨은 디테일이 많은 그 다운 작품이었다. '히트'는 확실히 걸작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콜래트럴' 이후 마이클 만이 더 좋아진 경우다. 그리고 마이클 만이 추구하려던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은 확실히 블루레이의 고화질로 더 선명하게 표현된다. 어서 그의 이전 작품들 '히트'와 '알리' 등도 블루레이로 정식 출시되길 바란다.

1. 본래는 기존 블루레이 리뷰들 처럼 화질/음질/부가영상 등 전체적인 면까지 정리해볼 예정이었는데, 글을 쓰다보니 너무 길어진 것도 있고, 촛점이 작품에 완전 집중된 느낌이 있어 그냥 이 부분은 생략하기로 했습니다 ^^;

2. 참고로 의도된 그레인 현상이 깊은 화질은 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더군요. 오히려 그레인을 제외하면 디지털로 촬영되었기 때문에 상당히 좋은 화질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도 많았거든요.

3. 코멘터리 수록이 무엇보다 마음에 듭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는 직접 캡쳐하였고,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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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릭 에너미 (Public Enemies, 2009)
마이클 만의 실험적인 갱스터영화


<히트> <콜레트럴> <마이애미 바이스>등을 연출했던 마이클 만이 조니 뎁, 크리스찬 베일 등과 (나중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이 '등'에는 상당히 많은 거론할 만한 배우들이 포함되어 있다) 새로운 작품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부터 이 작품 <퍼블릭 에너미> (원제목은 'Enemies'임으로 우리말 제목으로 하자면 '공공의 적'이 아니라 '공공의 적들'이 맞겠다)는 기대작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의 필몰그래피 가운데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가 협연한 1995년작 <히트 (Heat)>를 최고의 작품을 꼽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1999년작 <인사이더 (The Insider)>부터, 아니면 톰 크루즈와 제이미 폭스가 출연했던 2004년작 <콜레트럴 (Collateral)>에서야 본격적으로 좋아하는 감독으로 꼽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 그가 193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활동했던 대표적인 갱스터 '존 딜린저'를 영화한다고 했을 때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점들은 분명 몇 가지가 있었는데 (최신형 총기들의 격발음의 디테일을 선보였던 마이클 만이, 시카고로 대표되는 기관총의 사운드는 어떻게 차별화하여 들려줄 것인가 등등), <퍼블릭 에너미>는 그런 점들도 물론이거니와 기존에 <콜레트럴>과 <마이애미 바이스>를 통해 사용 빈도를 높여왔던 HD카메라의 사용을 더욱 광범위하게 사용한 상당히 실험적인 영상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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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되고나서 솔직한 심정은 조금은 의외였다. 마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도그빌>에서나 볼 법한, 아니면 역시 그의 작품인 <어둠 속의 댄서>의 HD버전을 보는 듯한 영상은, '정말 이대로 끝까지 다 담으려는건가?'하는 생각을 하게 했는데, 마이클 만은 작정을 한 듯 이렇게 조금은 관객들이 기대하지 않았던 이질감이 느껴지는 화면으로 영화를 완성시키고 있었다. 특히 초반 장면들 같은 경우 실외 장면에서는 그 미치도록 파란 하늘에 혼이 팔려 감각을 잃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외 장면보다 실내 장면에서 더욱 크게 그 이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뭐랄까, HD다큐멘터리르 보는 듯한 화면의 질감과 전혀 필름 라이크하지 않은 이 영상은 확실히 몰입도 측면에서 양날의 검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클 만은 <퍼블릭 에너미>를 소개하는 인터뷰에서 '관객들이 1930년대를 구경하기 보다는, 그 안에 진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라는 소견을 밝히기도 하였는데, 그런 그의 의도를 단 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카메라 워킹과 영상이었다. 이 작품의 카메라 워킹을 보다보면 화면 속 배우들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저리 비켜요'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완전히 VJ가 된마냥 인물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특히 법정 장면에서의 앵글은 완벽하게 방청석에 앉아 있는 시점에서 이를 빠져나가는 주인공들을 뒤 쫓고 있다(그렇다고 <클로버필드>마냥 완벽한 촬영자적 입장에서 본다고만은 볼 수 없는 영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핸드헬드 기법이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거나 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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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카메라 워킹은 '그 속에 진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한 방법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HD카메라만을 통한 그 필름 라이크하지 않은 화면의 질감은 확실히 실험적인 것이었다. <마이애미 바이스>에서도 이런 식의 장면들이 몇몇 있긴 했었지만 전체적으로 2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을 커버하리고는 생각지 못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런 HD카메라로 담은 영상은 한 편으론 정말 그 속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일반적인 영화적 화면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무언가 떨어져 보이는 영상으로 오해되기 쉬운 것도 사실일 것이다. 특히나 만약 이 영화를 조니 뎁과 크리스찬 베일이 운명의 적수로 만나는 대결구도(.vs)의 액션 영화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온 관객들에게는 적잖이 당황스런 경험이었을 것이다.

<퍼블릭 에너미>는 실존 인물인 존 딜린저와 그와 관련된 실제 있었던 일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비슷한 종류의 다른 영화들처럼 '이것은 실화입니다'라고 강조하는 편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마도 따로 자막을 통해 관객에게 알려주지 않아도, '실제 있었던'이 아닌 '실제하는' 이야기로 전달하려는 욕심과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는데, 확실히 영화의 영상은 다큐멘터리라고 봐도 좋을 정도인데, 마치 유명한 뮤지션들의 투어를 따라다니면서 그들의 모든 것을 담아내려는 투어필름 감독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영화 속에는 실제로 당시 경찰들이 영화 상영 전 홍보를 위해 촬영한 영상을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만약 존 딜린저가 이런 작업을 진행했었다면 이런 비슷한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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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시에는 굉장히 카메라를 인물에게 타이트하게 들이대는데, 이런 방식은 정말 라스 폰 트리에가 자주 썼던 방식으로, 관객들이 극중 인물에 심리상태를 더욱 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며 마치 극중 인물의 숨이 내 얼굴에 와 닿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또한 정경을 멀리서 촬영하거나 카메라가 먼 곳으로 빠지는 장면 같은 경우는, 인물들 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실제하는 공간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영화 감상기를 쓰면서 스포일러 걱정없이 술술 쓸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영화에는 별로 스포일러가 될만한 요소들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존 딜린저가 매우 유명한 실존 인물임을 감안했을 때 이 영화의 결말은, 히틀러의 암살작전을 다룬 <발키리>와 다를 바 없으며 (그렇다고 해놓고선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센스 ^^;), 그 과정의 이야기들도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 뿐이다. 존 딜린저는 시대를 풍미했던 갱스터로서 은행털고, 세력 다툼도 있었고 그를 잡으려는 경찰들은 더욱 조직화 되었으며, 운명 같은 사랑도 나누었다는 이야기 가운데 적어도 마이클 만은 내용 안에 특별한 메시지나 논란거리를 던지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클 만은 이 처럼 얼마든지 영화적으로 상상력을 더해(더하지 않더라도) 극적인 스토리로 만들 수 있었던 소재를 그저 다큐처럼 조명하는데에 더 큰 관심을 쏟고 있다. 실제로 이 영화 속 총격씬에는 기술적인 구현 외에 극적인 요소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있다면 윈스테드 경관의 앞구르기 정도!), 총격전 사이에도 긴장감은 별로 찾아볼 수 없고 각각의 인물들에게도 정말 진심으로 우러나서 공감하기는 그리 쉽지 않은게 사실이다. 단 하나 이 영화에서 극적인 부분을 조장하려 하는 부분이 있다면 음악일텐데, 마치 <다크 나이트>의 스코어와 살짝 흡사한 음울한 스코어는 장면 장면 분위기를 만들려고 끼어드는데, 무언가 담백하게 가려는 영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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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뎁이 이런 무거운 갱스터 영화에 어울리까도 싶었었지만, 터프하기보다는 섬세하고 낭만적으로 그려지는 존 딜린저 역에 그의 캐스팅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던 것 같다. 살짝 살이오른 그의 얼굴은 은근히 네모내 보이기도 하는데, 확실히 '넌 이제 내 여자야' 라는 대사를 그나마 덜 어색하게, 그래도 어느 정도 수긍 가능하게 만든 것은 '조니 뎁'의 역량이지 않았나 싶다. 크리스찬 베일은 역시나 크리스찬 베일이었다. 씨네21 리뷰에서는 그의 연기를 평하면서 <다크 나이트>보다도 오히려 이 영화의 등장한 멜빈 퍼비스
를 연기하기 위한 배우같았다고 짧게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정말 더 꽉 다문 입에서 브루스 웨인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그래도 첫 대사를 할 때 그 목소리는 마치 변조된 배트맨 목소리가 살짝 연상되긴 했다).

마리온 꼬띨라르는 <라비 앙 로즈>에 이어 또 한 번의 시대극이라서 그런지 에디뜨 피아프의 잔상을 다 지우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조니 뎁과 은근히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후버를 연기한 빌리 크루덥은 짧지만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연기 자체가 인상적이었다기 보다는 자꾸 <왓치맨>의 닥터 맨하탄이 생각나서 집중되지 않기도;; (닥터 맨하튼이 갱스터 하나 못잡아서 곤란해하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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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급 연기자들 외에도 이 작품엔 참 많은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어서 배우들 얼굴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도 했다. '파라미르' 데이빗 윈햄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고, 며칠 전 <디스 이즈 잉글랜드>를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스테판 그레이엄 역시 '참~ 맘에 안드는' 캐릭터를 맡아 열연하고 있고,
<블레이드>에 출연했던 스티븐 도프, 따져보니 본 영화는 그리 많지 않은데 얼굴만은 참 익은 지오바니 리비시, 마지막에 잠깐 등장했지만 얼굴을 보고는 반가웠었던 <딥 임팩트>의 그녀 릴리 소비에스키까지. 예상치 못했던 조연급 연기자들이 다수 출연해 그것만으로도 반가운 작품이기도 했다. 물론 그 중 가장 놀라웠던 출연자는 UFC와 프라이드에서 활동했었던 격투선수 돈 프라이였다. 대사는 거의 없지만 그래도 존재감은 어느 정도 있는 캐릭터였는데, 돈 프라이를 마이클 만 감독 작품에서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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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마이클 만의 <퍼블릭 에너미>는 예상하던 장르 영화로서의 갱스터영화는 아니었지만, 다시 한번 영화 장인으로서의 마이클 만의 야욕과 실험정신을 엿볼 수 있었던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1. 디지털 상영으로 보았는데 그렇기에 더더욱 HD카메라의 의도적 영상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2. 초반 클럽에서 노래하는 여가수는 다름 아닌 다이애나 크롤이더군요. 깜놀.
3. 누가 조니 뎁 아니랄까봐, 이름이 뭐냐는 물음에 '잭'이라고 하더군요 ㅎ
4. 극장 장면은 하나는 참 재미있었고, 다른 하나는 참 영화적으로 인상적이더군요. 셜리 템플 지못미.
5. 무언가 더 할말이 있었는데 -_-;;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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