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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케르크 (Dunkirk, 2017)

무엇이 그들을 생존하게 만들었나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덩케르크'는 1940년 덩케르크 해변을 배경으로 벌어졌던 영국군의 대규모 탈출 실화를 배경으로 한다. 놀란의 전쟁 영화라는 점에서 어떤 영화일까 몹시 궁금했었는데, 아이맥스 카메라를 최대한 활용한 기술적 시도는 놀라울 만큼 압도적이지만 보통의 전쟁 영화 혹은 대탈출 영화가 보여주는 극적인 요소와 전쟁의 참혹함을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장면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덩케르크'는 조금 다른 방향성을 가진 전쟁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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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탈출을 돕는 구축선과 해변의 병사들을 공격하는 적기들을 막기 위해 전투를 벌이는 전투기 조종사의 시점, 포위된 상황을 벗어나 본국으로 탈출하려는 병사들의 시점 그리고 이 병사들을 돕기 위해 덩케르크 해변으로 향하는 어선에 올라 탄 평범한 이들의 시점으로 각각 나누어진다. 놀란의 영화가 자주 그런 형태를 취하듯이 이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른 시점의 이야기들은 이번에도 절묘한 편집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로서 완성도를 갖는다.


커다란 사건을 배경으로 한 세 가지의 다른 이야기를 하나로 풀어내는 방식은 독립적인 동시에 유기적이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예전 영화들처럼 흩어져 있던 인물들이 한 지점에서 반드시 만나기 위해 존재하는 필연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시공간을 통해 주고받는 느슨한 동시에 매우 끈끈한 관계라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이 세 가지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연결되는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화가 왜 그들을 연결시키고 있는 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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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인셉션'과 '인터스텔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크리스토퍼 놀란이 대중들에게는 기술적인 부분과 디테일과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치들로 유명하지만 사실은 인간의 감정과 드라마를 풀어내는 것에 재능 혹은 애정이 있다고 했었는데, '덩케르크'를 보면서 재차 이 생각을 굳힐 수 있었다. 결국 크리스토퍼 놀란이 덩케르크 구출 작전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전쟁이라는 비 인륜적이고 비이성적인 상황 속에서도 순수한 선의를 갖고 있던 인물들로 인해 승리보다도 값진 생존을 얻어낼 수 있었다는 것일 텐데, 그런 측면에서 한 편으론 영화 자체가 담고 있는 시선이 순수하기보단 순진한 것으로 그려질 수 있지만 놀란은 이번에도 자신이 믿는 순수한 선의를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영화적 장치들로 이를 설득해 낸다. 


만약 이 영화가 끝내 러닝 타임 동안 이 상황과 인물들의 선의를 전달하는 것에 실패했더라면, 영화의 말미에 등장하는 민간 어선의 구출 장면이나 몇몇 의미 심장한 대사들이 그저 간지러운 것으로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일일이 인물들의 동기를 다 설명하지 않았음에도 관객을 설득해 내는 데 성공한다. 그것이 '덩케르크'가 성취한 가장 값진 결과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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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맥스 레이저 상영과 한스 짐머의 음악에 대해


'덩케르크'를 이야기하면서 아이맥스 촬영과 음악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이 두 가지를 빼면  이 영화는 성립 자체가 불가한 정도이기 때문이다. 일단 '덩케르크'가 선택한 아이맥스 촬영의 경우 일반적인 아이맥스 화면비보다도 더 상하의 화면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1.43:1의 화면비로 약 75% 이상이 촬영되었는데, 이는 일반 디지털 아이맥스 관에서도 상하 레터박스가 생기는 화면비로서 국내에서는 최근 용산 CGV에 도입된 아이맥스 레이저 상영을 통해서만 손실 없이 관람할 수가 있다. 


이렇듯 보통의 아이맥스 화면비보다도 아래 위로 더 많은 정보량이 담긴 영상을 영화는 적극 활용하고 있는데, 그만큼 상하의 움직임이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고 일부 전투기 장면에서는 흡사 파노라마 방식을 좌우가 아닌 상하로 구현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인상적인 것을 넘어서는 최초의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즉, 단순히 1.43:1의 화면비로 대부분 촬영되었으니 아이맥스 레이저 상영을 가능하면 관람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이 화면비로 감상해야만 제대로 된 장면의 의도가 파악되는 장면들이 다수 있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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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 장면들은 2.2:1의 화면비로 촬영되어 아이맥스 레이저 상영관에서 관람할 경우 레터박스가 생기게 되는데, 레터박스가 감상을 방해해서가 아니라 2.2:1로 촬영된 장면들을 굳이 1.43:1로 찍지 않아야만 했던 이유가 부족해 보였던 터라, 좀 더 편안한 감상을 위해 하나의 포맷으로 촬영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1.43:1의 화면비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이 사실상 국내에 하나밖에 없다는 환경적인 이유는 별개의 문제로 하고). 


한스 짐머와 놀란의 작업은 이제 별개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데, '덩케르크'의 영화 음악은 '다크 나이트' 이후 가장 인상적인 한스 짐머의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덩케르크'에서 영화 음악은 거의 러닝 타임 내내 강약을 조절해 가며 깔리고 있는데, 마치 러닝 타임과 같은 길이의 긴 한 곡을 연주하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영화의 내용과 완전히 결합되어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소리들이 영화 음악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모든 실제의 사운드를 이질감 없이 음악으로 소화해 내는 점이 이번 한스 짐머의 음악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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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란 다운 전쟁 영화가 나왔다


대규모 제작비가 투여된 전쟁 영화로서 기존의 박진감 넘치는 대규모 전투 장면이나 카타르시스가 극적으로 치닫는 탈출 영화로서의 묘미를 기대했다면 이 영화는 조금 실망할 수도 있겠다. 이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기존의'다. 즉, '덩케르크'는 박진감 넘치는 전투 장면이나 극적인 탈출 영화로서의 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다른 느낌과 방식으로 전하는 영화다. 리얼리티를 고집하는 크리스토퍼 놀란 답게 과연 이런 장면들을 CG 없이 어떻게 완성해 냈는가 궁금한 장면들도 많고, 전쟁을 다루는 과정 속에서도 인간의 마음을 결국 그려내고자 했던 순수함과 인간에 대한 굳은 믿음을 이번에도 발견할 수 있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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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브릿지 (Bridge of Spies, 2015)

신념을 지켜낸 자들의 우화 혹은 실화


미국과 소련의 냉전으로 핵무기 전쟁의 공포가 최고조에 오른 1957년, 보험 전문 변호사 '제임스 도노반'(톰 행크스)은 소련 스파이 '루돌프 아벨'(마크 라이런스)의 변호를 맡게 된다. 당시 미국에선 전기기술자 로젠버그 부부가 원자폭탄 제조 기술을 소련에 제공했다는 혐의로 간첩죄로 사형된 사건이 있었다. 미국의 반공운동이 극에 달했던 단적인 예로 적국의 스파이를 변호한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은 물론 가족의 안전까지 위협받는 일이었다. 여론과 국민의 질타 속에서도 제임스 도노반은 “변론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한다”며 자신의 신념과 원칙에 따라 아벨의 변호에 최선을 다한다. 때마침 소련에서 붙잡힌 CIA 첩보기 조종사의 소식이 전해지고 제임스 도노반은 그를 구출하기 위해 스파이 맞교환이라는 사상 유래 없는 비밀협상에 나서게 되는데... (출처 - 다음영화)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정부 차원이 아닌 민간인인 변호사 도노반이 스파이 맞교환 비밀협상에 나서게 된다는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스필버그가 연출하고 코엔 형제가 각본을, 야누즈 카민스키의 촬영 그리고 톰 행크스가 주인공 도노반을 연기한 '스파이 브릿지 (Bridge of Spies, 2015)'는 시놉시스를 통해 예상할 수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영화 소개에 앞서 이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의 이름을 굳이 나열한 이유는, 여러 번 반복 된 아주 새롭지 않은 이야기임에도 이 베테랑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은 그 완성도로 인해 또 한 번 볼만한 영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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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결국 신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철저하게 국가의 입장과 이익이 대변되던 시절, 다소 이상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신념을 지켜 낸 주인공 도노반과 스파이로 구속 된 루돌프 아벨 (마크 라일런스)의 이야기를 통해, 시대의 공기와 더불어 인간성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거대한 정치적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도노반이라는 캐릭터는 톰 행크스의 연기를 통해 또 한 번 설득력 있게 묘사되고 있으며, 실제로는 스파이 행위에 대한 내용은 없는 이 영화에 스파이 영화의 공기를 불어 넣는 아벨 역의 마크 라일런스는 확실히 이번 영화의 발견이라 할 수 있겠다.


(다음 단락에 영화의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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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브릿지'는 결국 이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비밀협상을 이상적으로 이끌어 낸 도노반의 이야기로 마무리 되는데, 영화가 내내 말하고자 했던 신념과 특히 후반부 도노반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요, 내가 떳떳하면 그걸로 된거죠'라는 식의 대사는 조금 다른 결말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더 쓸쓸한 결말. 그러니까 결국 이데올로기나 다른 정치적 상황과는 별개로 단순하게 자신의 일과 신념에 끝까지 충실했던 사람들을 그리면서, 결국 세상은 이런 이야기를 알지 못했다는 (인정하지 않았다는) 결말이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신념에 대한 메시지를 더 강하게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마무리 된 뒤 뉴욕으로 돌아온 도노반이 지하철 밖 풍경을 통해 결국 동독내의 상황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을 떠올리게 되는 것 처럼, 집으로 돌아온 그를 아내가 모르는 척 말 없이 이해해주는 것이 더 강렬한, 즉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라는 메시지 전달 측면이나 실제 이런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더 따듯한 위로가 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영화적으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결말은 오히려 조금은 기운이 빠지는 감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묘사들을 비롯해 아벨을 뒷자석에 태우는 것도 그렇고, 이 영화가 쓸쓸하게 끝낼 것만 같은 뉘앙스를 너무 주었기 때문에 이런 아쉬움이 더 들기도).


하지만 이런 아쉬움은 영화가 끝나고 실존 인물들의 뒷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이해되었는데, 뭐랄까 실화가 더 영화적이고 말이 안되는 측면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실화입니다'가 아니라 '실화를 바탕으로 했습니다'였기에 차라리 실존 인물들의 후일담으로 마무리 하는 대신, 쓸쓸하게 결국 세상은 알아주지 않았다는 것으로 마무리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그래도 남았다 (왜 이렇게 쓸쓸한 엔딩에 집착하는가...).



(스포일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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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무리 방식은 조금 아쉬움이 남지만, '스파이 브릿지'는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2시간 20분의 러닝타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만큼 짜임새 있는 작품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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