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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리언 : 커버넌트 (Alien: Covenant, 2017)

프로메테우스로부터 에이리언으로의 귀환


리들리 스콧의 전작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2012)'는 에이리언의 세계관을 가져와 좀 더 근원적인 질문과 답을 꺼낸 몹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에이리언'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게는 떡밥만 뿌리 고만 아쉬운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내게 있어 '프로메테우스'는 이 세계관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고 더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만드는 아주 애정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렇게 1979년작 '에이리언 (Alien)'의 프리퀄이자 전작 '프로메테우스'의 속편 격인 이 영화 '에이리언 : 커버넌트 (Alien: Covenant, 2017)'는 앞서 말한 관객들의 아쉬운 평가가 신경 쓰인 탓인지, 프로메테우스 보다는 79년작 '에이리언'과 더 맞닿아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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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쉬운 점부터 말해보자면 그 이유는 아마 다 '프로메테우스'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를 너무 재미있고 흥미롭게 즐긴 입장에서 '커버넌트'는 그 연장선에 있다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전작에서 언급했던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통한 철학적 화두는 희미한 배경 정도로만 존재할 뿐이다. 쇼 박사와 데이빗이 엔지니어의 행성으로 떠났을 때의 마음 가짐을 떠올려 보자면, 아마도 그들이 관심을 갖고 탐구했던 바에 대한 내용은 '커버넌트'의 시점까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벌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커버넌트'는 그저 데이빗의 대사 한 마디로 이 10년의 기간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할 뿐이다. 


데이빗의 회상 장면으로 미뤄볼 때 그들이 처음 이 행성에 도착하고 수많은 엔지니어들을 마주하게 되고, 또 쇼 박사가 어떻게 죽음을 맞고 그 이후 데이빗은 어떤 일들을 경험하게 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데, '프로메테우스'의 관점에서 볼 때 이십 년 간의 이야기가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전작에서 던졌던 근원에 대한 물음과 창조주와 피조물 간에 서로 얽히게 되는, 한편으론 어리석은 굴레의 과정을 더 깊이 있게 다뤄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세월을 완전히 건너뛴 점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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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프로메테우스'의 모호함을 버리고 '에이리언' 본래의 공포와 긴장감의 장르 영화의 성격을 띠게 되면서 '커버넌트'는 더 심플하고 오락적인 영화가 되었다. 기존 1979년작 '에이리언'을 처음 보았을 때의 긴장감을 떠올려 본다면 쉽게 예상할 수 있을 텐데, 그때의 충격과 떨림을 넘어서지는 못하지만, 혹여나 79년작을 못 본 이들이라면 비슷한 첫 경험을 이 영화를 통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에이리언 : 커버넌트'는 '에이리언 (1979)'과 장르적으로나 구성면에서 매우 닮아 있고, 더 나아가 제임스 카메론이 연출했던 '에이리언 2 (Aliens, 1986)'과도 상당 부분 닮아있다. 미지의 공간, 그리고 그 공간에서 하나둘씩 죽음을 맞는 대원들, 그리고 에이리언과 사투를 벌이는 여주인공의 모습까지, 전작들을 본 이들이라면 반복적인 요소가 다분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긴장감 넘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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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넘게 충분히 재미있게 즐겼으나 전작의 매력적인 세계관과 연장선에 있을 수 있었던 구조와 재료들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쉽다. 리들리 스콧은 '프로메테우스'와 관련해 여러 가지 인터뷰들을 한 것으로 아는데, 시리즈의 정통성이나 '에이리언'과의 연관성 등과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완전하게 심플해진 새로운 '에이리언' 영화는 아쉬움을 남긴다. 



1. 영화를 보고 든 잡생각 중 하나는, 이 탐사대원은 무슨 부부동반 우대 조건이라도 있었나 싶었던 ㅋㅋ

2. 전작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리뷰는 여기로. (프로메테우스 _ 근원에 대한 선문답)

3. 근래 본 15세 관람가 영화 중에 가장 수위가 높은 듯하네요. 

4. 사실 여기 등장한 배우들이 에이리언한테 호락호락당할 캐릭터들이 아닌데 말이죠. 마법사(캐서린 워터스톤, 카르멘 에조고)도 있고, 매그니토 (패스벤더)도 있고, 무엇보다 닥터 맨해튼 (빌리 크루덥)도 있잖아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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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덜리스 (Rudderless, 2014)

아버지가 부르는 노래



빌리 크루덥이 수염 덥수룩한 얼굴로 기타를 메고 노래하는 이미지 만으로도 충분히 기대되었던 영화 '러덜리스 (Rudderless, 2014)'. 음악 영화라는 점만으로도 꼭 봐야지 싶었던 영화는 반대로 그랬기 때문에 별다른 정보를 알아보지 않고 보게 되었는데, 조금은 특별한 음악 영화였다. 아내와 이혼한 주인공 샘 (빌리 크루덥)은 다니는 광고 회사에서 중요한 계약을 따낸 뒤 바로 아들에게 전화해 만나고자 약속하지만, 아들은 약속 장소에 나오지 못하고 그 이유는 놀랍게도 아들이 다니는 대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사건으로 인해 아들이 세상을 떠나게 된 것임을 알게 된다. 영화는 이 사건이 벌어진지 2년 뒤의 시점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들을 그렇게 잃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샘의 이야기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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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영화가 중후반부까지 숨기고자 했던 사실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도 언급하지 않겠지만, 그 방식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사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러덜리스'를 통해 기대되었던 부분은 음악 영화로서의 지점이었기 때문에 그런 맥락으로만 영화를 감상하다가, 말미에 가서야 숨겨왔던 진실을 꺼내 놓았을 때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포인트였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이 영화가 전혀 다른 의미의 영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단 표면적인 내러티브 측면으로 보자면 '러덜리스'는 몹시 불친절하고 부자연스러운 작품이다. 앞서 이 총기 사건을 겪기 전까지의 짧은 프롤로그는 그 이전의 가족 관계를 예상하기에 결코 친절하지 않으며, 아들을 잃은 충격적인 사건임에도 그 사건을 묘사하는 비중은 아주 짧고 간접적으로 묘사된다. 그리고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바로 2년 뒤의 시점에서. 어쩌면 아무것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시점에서 본격적인 영화가 시작된다. 그렇다고 그 간 짧게 표현되었던 사건과 시간들이 이후 인물들에게 바로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형태도 아니다. 샘은 잘 나가던 광고 회사의 중역에서 떠돌이 페인트공이 될 정도로 삶이 변화하였지만, 과거에 영향을 받기 보다는 오히려 그냥 이미 지금의 현실에 제법 익숙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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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영화는 그다지 친절한 구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말미에 그 진실이 밝혀진 뒤에도 마찬가지고, 영화가 스스로 마무리 짓는 방식 역시 그러하다. '러덜리스'는 그 여백을 음악의 힘이 채워준다고 굳게 믿고 있는 작품이다. 처음 아무 설명 없이 아들이 기숙사 방에서 직접 쓴 곡을 녹음하는 장면의 인트로 부분도 그렇고, 이후 샘이 쿠엔틴 (안톤 옐친)과 우연히 만나 밴드를 결성해 연주하게 되는 과정도 그렇다. '러덜리스'의 인물들은 저마다 충분히 대사나 지문으로 설명되지 않지만, 그래도 관객들에게 충분한 공감대를 전달하는데, 그것은 바로 음악 때문일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자 좋았던 연출은 후반부 샘이 홀로 남아 클럽에서 곡을 노래하는 장면이었다. 보통의 다른 영화였다면 이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사전 설명이 필요함은 물론, 이 순간의 감정을 극적인 연기나 또 다른 사건으로 풀었어야 가능했을텐데, '러덜리스'는 아주 덤덤한, 정말 아주 덤덤한 노래 한 곡으로 완벽에 가깝게 묘사해 냈다. 그리고 더 괜찮았던건, 과연 이런 샘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 역시, 클럽 내 사람들의 디테일한 반응들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반응이 영화가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위로도 비난도 아닌 그저 슬픔이랄까. 그 말로 하기 어려운 주변의 반응과 이 한 가운데에서 폭발하는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샘의 심정을 묘사해 낸 이 시퀀스는 이 작품의 백미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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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러덜리스'는 영화 스스로가 음악이라는 것의 힘을 믿고, 많은 여백과 논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과감히 던져 놓은 것이 무척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아마도 이 같은 사건을 주제로 음악 영화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풀어냈더라면, 그건 그 나름대로 생각해 볼만한 그리고 더 격정적인 드라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러덜리스'는 그저 노래하는 것 만으로 그 복잡미묘한 감정의 심연을 묘사해 냈다. 바로 아버지가 부르는 노래로 말이다.



1. 처음엔 '어? 윌리엄 H.머시도 출연하네?' 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감독이더군요. 그가 감독을 한 장편 영화는 이 작품이 첫 작품이 아닌가 싶은데, 그의 다음 작품이 나온다면 주저 없이 보게 될 것 같네요. 기획과 각본에 까지 참여했네요.


2. 나중에 블루레이가 나온다면 (나오기로 확정되었죠, 플레인에서!) 극 중 아들의 음악 노트를 컨셉으로 책자가 만들어 지면 정말 멋질 것 같아요. 주요 수록곡 코드 악보도 넣고.


3. 며칠 째 이 사운드 트랙만 듣는 중~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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