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스펙터 (Spectre, 2015)

어쩌면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마지막



샘 멘데스가 연출을 맡았던 '007 스카이폴 (Skyfall, 2012)'은 007이라는 브랜드이자 자존심의 5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자 온고지신의 정석이라 할 만큼 고유의 정통성에 대한 주저할 것 없는 인정과 자부심은 물론, 새로운 시대에 대한 객관적 평가 (인정)와 변화를 수용하고 있는, 정말 대단한 작품이었다. 바로 그 다음 007 영화이자 다니엘 크레이그의 4번째 007 영화인, 그리고 샘 멘데스의 두 번째 007 영화인 '스펙터 (Spectre, 2015)'는 역시 역사성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수용하고 있는 긍정적인 평가와 작품성 측면으로 아쉬움을 모두 발견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



ⓒ Metro-Goldwyn-Mayer (MGM) . All rights reserved


어쩔 수 없이 '스펙터'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스카이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영화적 완성도 측면으로 보았을 때 스펙터는 전작에 크게 못 미친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다니엘 크레이그로 대표되는 새로운 시대의 007영화에 더 익숙한 관객들 입장을 고려한다면 더욱 밋밋한 영화라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완성도 측면에서 보았을 때 '스카이폴'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구성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들에 대한 다양한 은유를 이보다 더 적절히 녹여낼 수 없을 정도로 만들어 낸 수작이었다. 비교에 앞서 '스카이폴'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더 하는 이유는, '스카이폴'이 처해진 상황이 '스펙터'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펙터'의 처해진 상황도 그리 녹녹하지는 않았다. 전작 '스카이폴'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제임스 본드를 완벽하게 정의해 놓은 동시에 무엇보다 역사성을 부활 시켰다는 것은 속편에 대한 부담이 될 수 밖에는 없었을 텐데, '스펙터'는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끝까지 불안정한 채로 마무리한 결과물 같았다.




007 스카이폴 리뷰 : 50주년을 맞는 시리즈의 완벽한 대답

http://www.realfolkblues.co.kr/1769





일단 풀어놓은 이야기의 욕심이 너무 컸다. 아마 이 욕심은 (또 어쩔 수 없이) '스카이폴'에 기인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스카이폴' 역시 실패했다면 욕심이 너무 과했다 라는 평가를 들을 수 밖에는 없었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스카이폴'의 성공은 또 한 번 거대한 이야기를 1편의 이야기에 완벽히 풀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졌을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 이건 과욕이었다. '스펙터'는 또 한 번 등장하는 거대한 악의 조직을 빗대어 제임스 본드의 가족사를 통해 이 캐릭터 만의 역사성, 그러니까 다니엘 크레이그가 연기했던 제임스 본드의 역사성을 집대성하고자 한다. 일단 이 내용이 주가 되는 후반부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스카이폴' 만큼 좋을 수 있었던 내용이었다. 본드가 자신의 얼굴과 지난 인연들을 마주하게 되는 일종의 게임 같은 전개는, 단순히 악당과 맞서는 긴장감 외에 더 깊이 있는 긴장감을 줄 수 있는 요소이자 이 시리즈를 즐겼던 관객들에게 큰 흥미요소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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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후반부에 비해 초중반부의 전개나 이야기의 무게는 그리 탄탄하지 못했다. 초중반부 까지의 전개는 마치 클래식 007 영화를 보든 듯한 느낌의 익숙하고 안정적인 느낌으로 회귀한 듯 했는데, 이 방향성의 호불호 와는 별개로 후반부에 던지는 제임스 본드라는 인물에 대한 거대한 질문은 무언가 급작스럽고, 이 영화가 감당하기 버거운 주제처럼 느껴졌다.


난 '스카이폴'보다도 '스펙터'가 훨씬 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지점에 서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완벽하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방향성에서 한 시대를 마무리하는 듯한 성격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들 알다시피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는 이전 숀 코너리, 로저 무어, 피어스 브로스넌 등이 연기한 제임스 본드와는 확연히 스타일이 달랐다. 그 다름에는 수긍할 만한 논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제임스 본드가 살인면허를 따기 전의 이야기, 그리고 진정으로 사랑한 여인을 떠나보내기 전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아직 투박하고, 그렇기에 액션이 강력하고, 존재의 대한 무거운 질문들도 '내가 아는 본드는 이렇지 않아'라는 불만에 대답하기에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새로운 시대의 제임스 본드는 '스카이폴'에서 완벽하게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스펙터'는 정확히 과도기 같은 느낌이었다. 이 작품의 본드는 살인면허를 갖고 베스퍼에 대한 감정도 거의 잊혀져 가고 있지만 아직도 이 일에 대한 회의를 갖고 있는 동시에, 우리가 예전 007 영화에서 보았던 면모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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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로얄'을 통해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영화가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올드 팬들은 '이건 본드가 아니야'라며 부정적 입장을 많이 내비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제이슨 본과 같은 근육질과 맨몸 격투의 달인인 본드에게서는 로맨스를 즐기고 시종일관 여유와 유머가 묻어나는 기존의 본드들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스펙터'의 제임스 본드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과도기에 놓인 인물이다. 아직 투박하고 거친 느낌이 남아있지만 한 편으론 전작들에는 없었던 부드러움이나 유머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는 영화의 연출 방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위기 뒤에 섹스라던가, 한 편으론 너무 수월한 탈출 같은 걸 보면 최근의 관객들은 허무함이 느껴질 정도로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마 007의 오랜 팬들 같은 경우는 '본드는 원래 이래요'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펙터'는 호불호가 더 크게 나뉠 수 밖에는 없는 작품일 것이다. 의견은 더 하자면, 나는 '스카이폴'을 통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줄타기가 아니라 좀 더 한 편으로 치중한 성격의 영화이길 바랐는데, 영화는 한 번 더 중심 잡기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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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난 어쩌면 이번 '스펙터'가 다니엘 크렝그 시대의 마지막 007 영화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생각을 했다기보다 그런 편이 이 007이라는 브랜드에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한다. 참고로 나는 이전 007 영화들도 대부분 재미있게 보기는 했었지만, 동시대를 살고 있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에 더 열광했고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스카이폴'에 감동한 관객으로서,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를 더 오래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하지만 이 시리즈가 흘러 온 과정이나 샘 멘데스가 '스카이폴'과 '스펙터'를 통해 풀어 놓은 이야기의 전개로 보았을 때 다니엘 크레이그 본드의 시대는 마무리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아직 더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를 만나게 될지 못할지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어떻게 결정이 나든 다음 007 영화는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들 수 밖에는 없는 작품이 될 듯 하다.



1. 이번에도 오프닝이 끝내줍니다. 끝나고 자연스럽게 박수칠 뻔!

2. 다른 이야기지만 볼드모트와 모리아티의 대결이라니.... 특히 '셜록'에서 모리아티를 연기했던 앤드류 스콧의 'C' 역할은 여러가지 재밌는 상상을 할 수 있게 만들어서 흥미로웠어요 ㅋ

3. 과연 다음 007 영화는 어떻게 될까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Metro-Goldwyn-Mayer (MGM) 에 있습니다.






007 스카이폴 : 블루레이 리뷰 (Skyfall, blu-ray review)
50주년을 맞는 시리즈의 완벽한 대답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를 이전의 본드들 보다 더 좋아하는 이로서, 필자는 그의 세 번째 007 영화 '스카이폴 (Skyfall, 2012)'은 단연 기대 작이었다. 거기다가 샘 멘데스가 연출을 맡고 다니엘 크레이그와 함께 본드 역할로 거론되기도 했던 하비에르 바르뎀이 출연, 벤 위쇼와 랄프 파인즈, 알버트 피니까지 출연하는 출연진 역시 한층 기대를 더하게 했다. 이처럼 내가 '스카이폴'을 대하는 방식은 50주년을 맞는 007 시리즈의 팬으로서가 아니라 단순히 감독과 배우들로 인해 거는 기대가 큰 작품, 더 나아가자면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영화로서 기대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스카이폴'을 처음 보고 든 생각은 제작진이 이토록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있는 007이라는 브랜드의 매력에 완전히 설득 당했다는 것이었다. 예전 007 영화들을 거의 다 보기는 했지만 특별히 애착을 갖고 찾아보는 시리즈는 아니었는데, '스카이폴'에 가득 담긴 시리즈에 대한 자부심은 관심이 비교적 덜했던 전작들마저 돌아보게 만들었을 정도로, 시리즈의 50주년을 맞는 작품으로서 '스카이폴'은 정말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 본 리뷰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울러 메뉴 화면과 스페셜 피쳐의 자료 사진들은 블루레이에서 직접 켭쳐가 되지 않는 관계로 카메라로 촬영하여 편집하였기에 화질 저하가 있습니다. 이 점 여러분들께 미리 양해 구합니다.)






많은 007 시리즈의 골수 팬들이 마치 제이슨 본처럼 변한 제임스 본드의 모습에 적잖이 불만을 갖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 이 같은 액션 스타일의 변화는 스토리의 맥락 상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라 오히려 더 장점으로 느껴졌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처음 007을 연기한 '카지노 로얄'에서 제임스 본드는 처음으로 살인면허를 받고 007 요원으로 활동하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여유롭고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본드와는 다르게 거칠고 투박한 모습이 오히려 어울리는 바였다.


그리고 제임스 본드하면 또 하나 떠오르는 이미지인 여성 편력 혹은 카사노바 같은 이미지 역시 '카지노 로얄'과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이, 이 때의 본드는 베스퍼 린드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녀와의 이별로 인해 큰 상처와 트라우마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두 작품에서 본드가 보여주는 모습을 통해 이후 제임스 본드가 요원으로서 활동하고 여러 여성과 관계를 맺으면서도 왜 한 번도 깊은 관계로는 발전하지 않는 지가 설명된다는 뜻이다.





아델의 동명 타이틀 곡 'Skyfall'과 함께 시작되는 타이틀 시퀀스는 이번에도 역시 매력적이다. 이번에는 본드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것이 특히 인상적인데, 영화 전체를 암시하는 장면들과 현재 본드 혹은 007영화가 처한 상황 모두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는 감각적인 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


이런 등등의 이유로 다니엘 크레이그와 함께 새롭게 시작한 007시리즈는 단순히 유행하는 본 스타일의 액션이 가미된 본드라던가, 이미 익숙한 본드와는 전혀 다른 투박하기 만한 모습이 아니라, 둘 다 모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변화 혹은 캐릭터였기에, 오히려 그렇다면 진정한 제임스 본드가 된 이후의 작품을 기대하게 하는 새로운 007 시리즈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세 번째 작품 '스카이폴'에서는 이제는 준비를 마친 제임스 본드가 본격적으로 활약하는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기대한 것과는 달랐다. 여기서 잊고 있었던 점이라면 바로 이 작품이 007시리즈의 5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었다는 것이었다.






앞선 두 작품과는 다르게 '스카이폴'에서는 이미 노쇠하여 퇴물 취급을 받은 007이 등장한다. 그리고 주 적은 외부가 아닌 내부의 적이나 다름 없는 이를 등장시킨다. 즉, '스카이폴'의 갈등 구조는 세계를 위협하는 범죄 조직이나 악당이 아니라 좁게는 제임스 본드와 M으로 대변되는 MI-6의 위기, 넓게는 바로 스파이 장르로 50주년을 맞은 007 시리즈 자체에 대한 위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카이폴'의 또 다른 테마는 부활 (Resurrection) 이다. 이 부활이라는 테마는 꽤 직접적으로 영화 속에서도 언급되는데 (실바 : 넌 취미가 뭐지? 본드 : 부활), 결국 부활은 하되 어떤 모습과 메시지를 갖고 부활하는가가 이 영화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부활을 설파하는 과정에는 앞서 이야기한 위기, 새로운 시대를 맞은 21세기 007 시리즈의 위기를 돌파하고자 하는 영화 자체의 의지가 아주 강하게 담겨 있다.





그 부활의 테마 중 첫 번째로 주목해 볼 것은 주인공 제임스 본드의 부활이다. 제임스 본드의 부활이란 곧 미완성 혹은 결핍의 해소, 완성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유명한 '건 베럴' 장면이 아직도 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은 아직 미완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카이폴'은 그런 본드의 결핍을 해소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중요시 되는 요소는 역시 가족이라는 테마다. 이전 시리즈에서는 거의 언급된 기억조차 없는, 본드가 고아라는 사실을 '스카이폴'은 여러 번 비중 있게 언급하고 있으며, 주디 덴치가 연기한 M을 Mother로 부르는 것 역시 유난히 두드러진다.






그리고 본드의 과거가 남아있는 곳에서 만난 킨케이드 (알버트 피니)는 마치 그의 아버지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본드가 부모의 무덤과 과거가 남아있는 이 저택을 마지막 장소 삼아 실바와 대결을 펼치고 그 장소를 자신의 손으로 부숴버리는 것 역시, 과거라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진정한 부활로 거듭난다는 맥락에서 의미 깊은 장면들이었다. 그리고 007 시리즈의 오랜 조력자인 Q의 새로운 합류와 머니 페니의 등장은, 비로소 모든 것을 극복해 낸 제임스 본드에게 주어진 완벽한 가족과도 같은 존재들일 것이다. 이렇게 본드의 죽음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그 동안 미완성의 불안함을 보여주었던 제임스 본드의 완벽한 부활로 마무리 된다.




상하이 고층 빌딩 위에서 벌어지는 이 놀라운 격투 장면은, 로저 디킨스의 환상적인 촬영으로 완성되었다. 건물 외벽으로 비춰지는 대형 광고 조명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장면은, 2012년 가장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였다.


캐릭터 제임스 본드의 부활이라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영화였지만, 그 보다 '스카이폴'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이 영화가 너무나도 직접적이고 또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007이라는 브랜드 자체에 대한 자부심과 부활에 대한 의지 때문이었다. 앞서 이 영화가 대면하게 된 위기에는 이른바 한 물 간 시리즈, 시대에 뒤쳐진 냉전의 그림자에서 아직도 자유롭지 못한 스파이 물로서의 007 영화에 대한 위기가 있다고 했는데, 샘 멘데스를 대표로 한 '스카이폴'의 제작진은 시리즈의 50주년을 맞아 무엇보다 이 점에 대해 강력하게 말하고자 하는 듯 했다.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스파이들의 활약상이 중심이 되던 007 시리즈는 냉전 시대가 종식되면서 자연스럽게 그 생존의 이유 역시 위협받게 되었다. 이후 북한이라는 새로운 주 적을 등장시키기도 하고 또 다른 위협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지만, 이 007이라는 시리즈가 정확히 어떤 방향성을 갖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의지를 이토록 강하게 표명한 적은 적어도 없었다.






하지만 '스카이폴'은 바로 새 시대를 맞는 007은 어떤 모습이고, 앞으로 007은 어떠할 것인지에 대한 그 어떤 코멘트보다도 강렬한 대답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 글로벌 한 볼거리를 자랑하던 시리즈는, 영화의 주요 배경을 영국 런던, 더 나아가 MI-6의 본부로까지 가져왔다. 이는 곧 문제의 해결 방법을 외부에서 찾거나 외부의 공격, 영향으로 인한 방어기재가 아니라 내부의 문제로 인한 위기, 혹은 스스로가 해결 방법을 찾는 것만이 진정한 위기 해결 방법임을 깨달았다는 이야기다. MI-6의 심장부를 공격 당하고 그 수장인 M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더 강건하고 뚜렷해 진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M의 입을 통해 그리고 본드의 행동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






새롭게 등장하는 젊은 Q는 이야기한다. 예전 같은 신무기는 없다고. 뭐 볼펜 폭탄이라도 주는 줄 알았냐고. 그리고는 본드를 인식하는 권총 한 자루와 위치 추적을 할 수 있는 송신기 하나를 전달한다. 이후 실바 일당과 마지막 일전을 치 룰 때도 마찬가지다. 본드가 실바를 유인하게 위해 선택한 자동차는 다름 아닌 애스턴 마틴 DB5이며, 저택을 기점으로 일전을 준비하는 과정 역시 신무기로 무장하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아날로그하고 제한된 상황에서의 전략들(전구 플러그에 못들을 장착해 전원 스위치를 켜면 사방으로 못들이 스파크와 함께 튕겨 나가는 트랩처럼)로 이뤄져 있으며, 무장 헬기와 맞서는 본드의 무기 역시 오래된 사냥용 장총이다.


이는 단순히 이전 시리즈에 대한 오마주가 아니라 '스카이폴'이 영화 내내 담고 있는 강력한 의지를 뒷받침하는 장치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전 권총을 쥐고 사격 연습을 할 때 과녁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던 본드는, 오래된 사냥용 장총을 쥐고는 단 번에 멀리 있는 과녁을 명중한다. 이것 역시 다른 새로운 옷, 새로운 경향에 007 시리즈를 맞춰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007은 나름의 해왔던 익숙한 방식으로 앞으로도 살아남겠다는 또 다른 의지의 표현으로 느껴졌다.





그런 의미에서 실바라는 캐릭터도 다른 악역들과는 다른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역할이었다. 실바는 본드를 잡아온 자신의 거처에서 본드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우간다 선거를 조작하는 것, 또 어떤 무엇을 공격하는 것 등등 여기서 클릭 한 번이면 모두 가능하다고. 하지만 이렇게 하고자 하면 모든 것을 쉽게 이룰 수 있는 실바가 유일하게 원하는 것은 다름 아닌 M이다. 이는 007 시리즈에 대한 위기와 극복에 대한 질문이자 답으로 볼 수 있는데, 007 영화가 새 시대에 맞게 본 스타일의 액션도 할 수 있고, 또 다른 스타일리쉬한 트랜드에도 맞춰갈 수 있고 앞서갈 수 있는데 안 하는 것이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 길은 007 영화가 가야 할 길은 아니라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자문자답 같은 이야기인 것이다.





새 시대를 맞는 007의 대답은 결국 새 시대에도 007 영화는 가장 007 다움을 오히려 더 강조하고 고수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얼핏 오만이나 자만으로 비춰질 수도 있고 혹은 실제로 자만으로 봐도 무방하지만, 나는 이러한 이들의 자신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아니 영화의 자부심에 완전히 사로잡혀 버렸다. 실제로 제이슨 본 스타일의 트랜디한 액션 영화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스카이폴'의 고전적인 방식과 느린 호흡, 드라마 중심의 전개에 많은 실망을 하기도 한 것처럼, 결과적으로 새 시대의 관객들과는 소통하지 못하는 시리즈가 될는지 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 영화의 방식을 무조건 지지하는 바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가 쉬지 않고 관객에게 말하는 듯 했다. 우리는 50주년을 맞은 007 시리즈인데, 우리는 스스로를 증명하는 방법을 멀리서 찾지 않고 스스로에게서 찾았다고. 아니 그보다도 우리는 우리가 만든 이 시리즈에 대해 깊은 자부심을 갖고 있고 앞으로도 그 자부심으로 007 시리즈를 계속 이어갈 거라고 말이다.






영화가 말하고 자는 주장이 너무 직접적이라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지만, 그래서 좀 더 은근한 방법을 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이 영화의 자부심 넘치는 방식은 '스카이폴'은 물론 007 시리즈 전체에 대한 매력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로 강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관객에게 간절히 호소하는 방식이 아니라, 한편으론 도도해 보일 정도로 자부심 넘치는 방식으로 말하는 것이 더 좋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5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작품이라는 엔딩 크래딧의 문구를 비로서 깨닫게 되었다. 그 어떤 시리즈도 갖지 못한 역사와 전통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대답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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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캡쳐가 되지 않아 카메라로 촬영하였습니다. 화질이 저하된 부분에 대해 양해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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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폴' 블루레이 화질은 완벽한 작품만큼이나 만족스럽다. 샘 멘더스의 깊이 있는 연출로 그려낸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표현해 내는 색감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특히 잿빛 혹은 빛 바랜 브라운 계열의 색깔 같이 잘못하면 힘 없이 표현될 수 있는 색깔들마저도 디테일 덕에 중후한 멋을 내고 있다.







단순히 콘트라스트가 강해서 강렬하게 표현되는 경우가 아니라 각각의 색을 충실히 표현하고 있어서 전체적인 이미지가 강렬하게 느껴지는 경우라 하겠는데, 특히 벽과 바닥, 책상과 수트 등 각각의 질감이 모두 만져질 만큼 뛰어난 표현력을 보여준다. 한 동안 블루레이 화질을 얘기하면서 '매트릭스'의 모피어스 역할을 맡은 로렌스 피쉬번의 피부를 예로 들곤 했는데, 이제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얼굴도 그 좋은 예로 추가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이것이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노쇠한 역할로 등장하기 때문에 더욱 거칠고 피로감이 느껴지는 얼굴과 수염이 듬성듬성 정리되지 않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여기서 체감되는 블루레이 화질의 디테일이 놀랍다.







'스카이폴'의 또 다른 매력이라면 이 고풍스러우면서도 세련된 시리즈를 멋지게 담아낸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의 영상을 빼놓을 수 없을 텐데, 물론 블루레이 화질이라는 것이 단순히 기술적인 포맷의 평가가 있을 수 밖에는 없겠지만 촬영 시 얼마나 조명을 효과적으로 다루었는가가 기본일 수 밖에는 없다는 걸 '스카이폴' 블루레이 화질을 보며 새삼 깨닫게 되었다. '스카이폴'을 유심히 보면 특히 이 빛을 다루는 면에 있어서 상당히 섬세하다는 걸 알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블루레이에서도 각 장면의 광량에 따라 빛의 질감과 영상의 디테일이 잘 살아있었던 것 같다. 바꿔 얘기하자면 블루레이의 화질은 이러한 원본의 노력을 손실 없이 잘 담아내고 있다 하겠다.


실바의 본부 격이라 할 수 있는 섬에서 벌어지는 장면들, 마카오의 붉은 조명 아래 펼쳐지는 장면들, 마지막 어두운 밤에 아스라히 피어 오르는 불빛으로 비춰지는 실내에서의 인물들 표현까지, 레퍼런스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우수한 화질을 보여준다.


Blu-ray : Sound


DTS-HD M.A 5.1 사운드 역시 레퍼런스 급이다. 본드 영화의 전형적인 빠른 리듬의 액션 시퀀스가 담긴 오프닝에서 이미 다양한 사운드적 체감을 할 수 있는데, 자동차 추격 장면이나 오토바이로 갈아 탄 뒤 좁은 실내를 빠른 속도로 달릴 때, 나아가 기차 위에서 벌이는 액션 장면까지 액션 영화에서 만끽할 수 있는 대부분의 사운드를 만나볼 수 있다. 숨가쁘게 전개되는 데에 있어 다양한 효과음은 물론 토마스 뉴먼의 음악까지 곁들여져 아델의 메인 타이틀곡과 함께하는 타이틀이 시작되기 전까지 쉴 틈을 주지 않고 달린다.






전체적으로 '스카이폴' 블루레이의 사운드는 공간감이 돋보였는데, 특히 타이틀 시퀀스에서는 아델의 풍부한 목소리가 더 풍부하게 느껴지는 공간감을 느낄 수 있었고, 이후 장면들에서도 날카롭기보다는 전체적으로 풍부하고 넓은 영역으로 분포된 사운드를 확인할 수 있었다. 후반 부로 가면 헬기가 등장하거나 대규모 폭발과 총격 음이 등장하는데, 우퍼 스피커의 울림이 과하지 않으면서도 전체적인 스케일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으며, 대규모 폭발 장면에서도 뭉개지는 것 없이 작은 소리들도 귀를 기울이면 들릴 정도로 섬세한 측면도 만족스러웠다.






샘 멘데스의 '스카이폴'은 다른 007 영화에 비해 드라마가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액션이 결코 부족하다고 볼 수는 없는데 특히 007 영화라는 점에서 좀 더 스케일 있는 액션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다는 점에서 화끈한 사운드를 즐길 만한 장면들도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Blu-ray : Special Features


※ 캡쳐가 되지 않아 카메라로 촬영하였습니다. 화질이 저하된 부분에 대해 양해구합니다.


1 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스카이폴' 블루레이는 그리 적지 않은 부가영상을 수록하고 있는데, 특히 두 개의 음성해설이 가장 반갑다. 감독인 샘 멘데스가 참여한 트랙 하나와 제작자 바바라 브로콜리, 마이클 G.윌슨, 프로덕션 디자이너 데니스 가스너가 참여한 트랙 하나 이렇게 총 2개의 음성해설이 수록되었는데, 특히 샘 멘데스의 음성해설은 '스카이폴'을 인상 깊게 본 이들이라면 꼭 한 번 들어봐야 할 알토란 같은 정보들과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본인 스스로도 음성해설에서 어디까지 영화의 비밀 혹은 정보를 공개해도 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예상되었던 이야기들은 물론이고 예상하지 못했거나 50주년을 맞는 007 영화를 연출하면서 특별히 신경을 쓴 점들에 대해 들어볼 수 있다.






'Shooting Bond : 제작과정'에서는 다양한 주제들로 나누어 영화의 제작과정과 캐릭터, 전통, 음악, 로케이션 등의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다. 다른 본드 영화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듯 하다가 전혀 다른 마무리를 보여주는 오프닝 시퀀스와 내놓을 때 마다 화제를 만들어내는 타이틀 시퀀스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감독과 다니엘 크레이그, 각본가, 제작자 등의 인터뷰를 통해 시리즈의 50주년을 맞는 작품으로서 '스카이폴'이 갖는 의미와 담으려 했던 메시지 등을 들려주고, 이번 작품에서 특히 중요한 캐릭터인 주디 덴치가 연기한 'M'에 대한 소개와 뒷이야기도 수록되었다.






이 밖에 이번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이자 007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자동차인 애스턴 마틴 DB5와 새롭게 등장한 Q와 머니페니 그리고 본드걸과 악당들에 대한 소개도 각각 나뉘어 수록되었다. 그리고 이 작품의 스케일과 분위기를 더 하고 있는 로케이션 촬영지에 대한 소개와 토마스 뉴먼의 영화 음악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드 영화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까지 만나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유서 깊은 로열 앨버트홀 에서 열렸던 '007 스카이폴 프리미어' 현장 스케치와 짧은 사운드트랙 홍보 영상 (Soundtrack Promotional Spot)', 그리고 예고편이 수록되었다.



[총평] 007 시리즈의 50주년 기념 작이자 다니엘 크레이그의 세 번째 007 영화 '스카이폴'은 샘 멘더스의 손을 통해 007 제임스 본드라는 브랜드가 갖는 의미와 50주년을 맞는 현재 시점의 위치에 대해 깊은 성찰과 고민 그리고 자존심이 느껴졌던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더불어 블루레이의 화질과 사운드는 레퍼런스 급의 퀄리티를 수록하고 있어, 이 타이틀을 소장해야 할 이유를 더 확고하게 해주고 있다.


50주년을 맞아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는 007 시리즈. 다음 작품에서는 드디어 전통의 건 배럴 장면으로 시작하는 007을 다시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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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The Berlin File, 2013)

류승완의 본능적 느와르 영화



류승완 감독의 신작 '베를린'을 보았다. 개인적으로 팬임을 밝히고 시작하자면, 본래도 박찬욱, 봉준호 감독과 함께 좋아하는 감독이었지만 몇 년 전 '다찌마와 리 : 극장판'을 통해 직접 인터뷰할 기회를 갖게 되면서 더욱 친근하고 응원하고픈 감독이 된 것이 사실이다. 류승완의 전작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좀 더 대중적으로 큰 인기와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던 '부당거래'였다. 그런 그가 '부당거래' 이후 더 화려한 캐스팅과 제작비로 해외 로케이션 스파이 영화를 찍는다고 했을 때 부터, 과연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무척이나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여기에는 기대와 동시에 우려되는 부분도 있었다. 작은 영화에서 류승완 특유의 색깔을 보여주었던 것과는 달리, 대형 프로젝트의 규모 탓에 자신의 색깔을 잃고 흔한 대중적 포인트에 휩쓸려 성공은 거두더라도 팬으로서 아쉬움은 남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류승완의 '베를린'은 다양한 장르 영화의 클리셰를 발견할 수 있는 영화였지만, 그 가운데서도 분명히 류승완이 뿌리로 삼고 있는 성룡 영화와 쇼브라더스의 무협 영화와 골든하베스트의 액션 영화들, 그리고 홍콩 느와르 영화들의 정서를 고스란히 만나볼 수 있는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본 시리즈나 007, 더 나아가 톰 롭 스미스의 소설 '차일드 44'에 관한 이야기는 마지막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가급적 피하였으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외유내강. All rights reserved


류승완 감독은 '베를린'과 관련된 여러 번의 인터뷰를 통해 그 모티브를 '스파이 영화를 만들고 싶다라는 것에서 시작했다'라고 했는데, 개인적으로 결과물에 있어서는 방향성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나 싶다. '방향성이 달라졌다'는 것이 부정적인 의미라기 보다는, 류승완 감독이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본능적으로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장르와 정서를 스파이 영화인 '베를린'에 무엇보다 깊게 관여하고 있다는 얘기다. 아쉬운 점부터 이야기하자면 앞선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작 가장 디테일하고 세련되게 만들어져야 할 '스파이'의 이야기가 조금은 힘을 잃은 것 같았다. 베를린이라는 멋진 로케이션과 북한 정보원과 남한 정보원, 여기에 CIA에 모사드와 아랍 단체까지 엮여 있는 구조는 스파이 영화로서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이들이 만드는 그 비밀스러운 일의 과정과 정보를 다루고 처리하는 정보원 특유의 스킬을 관객에게 100% 흡입시키기에는, 무언가 이미지와 정서에 기대어진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맷 데이먼의 '제이슨 본' 시리즈가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해서 수시로 케이블에서 재방송을 해주는데도 그 때마다 잠깐만 봐야지 했다가 몰입해서 한참을 보게 되는 이유는, 결과를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그 과정의 세밀함이 워낙 흥미로워서 자신이 알고 있는 기억마저 의심하게 될 정도의 재미와 긴장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를린'에는 바로 이러한 점이 조금은 아쉬웠다. 특히 스파이 영화인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라면 바로 '배신'을 들 수 있을 텐데, 이 배신이 더 충격적이고 재미있게 받아들여지려면 그 정황이나 배경이 더 분명하게 설명되어야 했으나, 초중반의 흐름은 이와 같은 스파이 영화의 디테일한 재미를 주기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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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디테일한 측면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 탓에 정서적인 측면은 오히려 더 부각되고 깊은 인상을 주었다. 스파이 영화이 대표격인 '007'시리즈의 최근 작 '스카이폴'과 존 르 카레의 소설에서 느껴졌던 쓸쓸하고 차가운 스파이 세계를 묘사하는 데에 비교적 성공했으며, 글의 서두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류승완 특유의 액션이 강조되다 보니 자연스레 그가 평소 동경하고 있던 홍콩 영화들의 정서가 은연 중에 함포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액션 스타일 등을 들어 '제이슨 본'을 연상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가깝다면 '스카이폴'이 더 가깝다고 여겨졌으며 근본적으로는 오우삼의 '영웅본색'이나 '첩혈쌍웅' 같은 작품에 더 큰 정서적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직접 가르친 동생 같은 존재에게 배신 당한 것이나, 가장 멀리 있다고 느껴진 상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나, 하정우가 연기한 표종성이라는 캐릭터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홍콩 느와르에 열광했고 류승완의 팬인 내가 보기엔 영락없이 동일한 정서가 떠오르는 부분이었다. 즉, 오우삼의 '영웅본색'과 '첩혈쌍웅'이 진정한 영웅이란 무엇인지와 대칭점에 선 두 인물의 공감대를 보여주어 깊은 인상을 남긴 것처럼, 단순히 버림 받은 스파이의 이야기를 다룬 전문적인 스파이 영화가 아닌 이를 배경과 도구로 하는 느와르적 정서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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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이 흥미로워지는 또 다른 지점은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이 남과 북의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사실 '베를린'은 기획 초기에 남한 캐릭터가 전혀 고려되지 않았을 정도로, 남북의 이념이 주제가 되거나 부각되는 영화는 전혀 아닌데, 전혀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바로 이 남북이라는 설정이 특별한 감정을 불러왔다.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과 예상하지 못했다는 이유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영화가 전향이나 남북의 주인공들이 등장해도 전혀 이념적이지 않기 때문이었는데, 개인적으로 딱 한 마디의 대사에서 다른 스파이 영화에는 없는 특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 '련정희 (전지현)'를 발견한 '정신수 (한석규)'는 '같은 편이야'라는 말을 한 뒤 점점 숨을 잃어가는 련정희에게 이렇게 묻는다. '고향이 어디에요?'


개인적으로 이 한 마디는 영화가 지금까지 달려올 때까지 단 한 번도 인식하지 못했던 두 주인공의 국적을 한 번에 인식하는 순간이었으며, 더 나아가 분단된 국가라는 새삼스러운 사실 역시 떠올리게 된 의외의 순간이었다. 그러니까 영어를 범용으로 사용하는 서양의 스파이 영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제3의 언어를 공유하는 관계라는 점을 넘어서서, 고향을 물어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있는 서로 다른 주인공이라는 점은, 적어도 대한민국을 사는 관객으로서는 이 장면에 흐르는 묘한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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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액션 연출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정두홍 무술감독과 함께 만든 기술적인 측면은 재쳐두더라도 연출 측면에서 다른 스파이, 범죄 영화와는 다른 점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후반부 표종성과 동명수 (류승범)의 한계까지 몰아 붙이는 액션 시퀀스를 보면서, 최고의 기술자들이 한계에 달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임팩트도 물론 느낄 수 있었지만 그 보다는 정서적으로 진이 빠지도록 만든 연출이 더 인상적이었다. 류승완 영화의 액션 클라이맥스 들은 대부분 이렇게 주인공을 더 이상 소모할 체력이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소모시켜서 관객 역시 피로함이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베를린'의 클래이맥스 역시 바로 이 점이 테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장철 영화에서 느꼈던 비장함이나 처절함도 엿볼 수 있었는데, 이미 숨을 거둔 련정희의 시체를 표종성이 들쳐 업고 나오는 장면만 봐도 다른 영화였다면 더 간결하게 갈대 숲 안의 장면으로 충분히 마무리할 수 있었던 장면이었으나, 류승완은 이 정서를 더 연장하여 몇 번이고 넘어지기를 반복하며 갈대 숲을 빠져나와 슬픔과 아픔에 녹초가 되어버리는 표종성을 계속 응시한다. 이런 시퀀스에서 좀 더 류승완 만의 정서를 분명히 전달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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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최근 이 영화를 둘러싸고 논란이 되고 있는 표절 혹은 클리셰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실 관람하기 전 이미 '제이슨 본' 시리즈의 표절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간 상태였기 때문에 걱정을 하기도 했었는데, 결론적으로 이 부분은 클리셰로 볼 수 있는 부분이라 크게 문제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노래에서 코드 진행이 같다는 사실 만으로 표절이라고 부를 수는 없듯이, 스파이 장르와 특히 최정예 요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액션 영화에서 클리셰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상당 부분 많기는 했지만 이것의 유사점을 들어 표절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제이슨 본' 시리즈 보다는 '스카이폴'이 연상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사실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려고 했으나 이후 논란이 된 톰 롭 스미스의 소설 '차일드 44'에 대한 내용을 읽고 나서는 쉽게 마무리할 수가 없었다. '베를린'과 유사점이 의심되는 '차일드 44'의 소설 부분 부분을 확인해본 결과 이는 단순히 클리셰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디테일한 설정과 장면의 유사점이 발견되었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변함이 없으나, 확인할 수 있었던 부분들의 유사점 만으로도 소설 '차일드 44'와의 논란은 타당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누구보다 류승완 감독의 팬이기에 이 부분은 좀 더 명확한 이야기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1. 표절 논란으로 발전적이지 않은 추가 논쟁이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2.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감독님과 인터뷰해보고 싶었는데, 이제 안되려나요?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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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스카이폴 (Skyfall, 2012)

새 시대를 맞는 007의 강렬한 대답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를 이전의 본드들 보다 더 좋아하는 이로서 그의 세 번째 007 영화 '스카이폴 (Skyfall, 2012)'은 단연 기대작이었다. 거기다가 샘 멘데스가 연출을 맡고 다니엘 크레이그와 함께 본드 역할로 거론되기도 했던 하비에르 바르뎀이 출연, 벤 위쇼와 랄프 파인즈, 알버트 피니까지 출연하는 출연진 역시 한층 기대를 더하게 했다. 이처럼 내가 '스카이폴'을 대하는 방식은 50주년을 맞는 007 시리즈의 팬으로서가 아니라 단순히 감독과 배우들로 인해 거는 기대가 큰 작품, 더 나아가자면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영화로서 기대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극장을 나오며 처음 든 생각은 제작진이 이토록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있는 007시리즈 브랜드의 매력에 완전히 설득 당했다는 것이었다. 예전 007 영화들을 거의 다 보기는 했지만 특별히 애착을 갖고 찾아보는 시리즈는 아니었는데, '스카이폴'에 가득 담긴 시리즈에 대한 자부심이 관심이 비교적 덜했던 전작들마저 돌아보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아..시리즈의 50주년을 맞는 작품으로서 '스카이폴'은 정말 완벽에 가깝다.



ⓒ  Metro-Goldwyn-Mayer (MGM). All rights reserved


많은 007 시리즈의 골수 팬들이 마치 제이슨 본처럼 변한 제임스 본드의 모습에 적잖이 불만을 갖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 이 같은 액션 스타일의 변화는 스토리의 맥락 상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라 오히려 더 장점으로 느껴졌던 부분이었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처음 007을 연기한 '카지노 로얄'에서 제임스 본드는 처음으로 살인면허를 받고 007요원으로 활동하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여유롭고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본드와는 다르게 거칠고 투박한 모습이 오히려 어울리는 바였다. 그리고 제임스 본드하면 또 하나 떠오르는 이미지인 여성 편력 혹은 카사노바 같은 이미지 역시 '카지노 로얄'과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이, 이 때의 본드는 베스퍼 린드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녀와의 이별로 인해 큰 상처와 트라우마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두 작품에서 본드가 보여주는 모습을 통해 이후 제임스 본드가 요원으로서 활동하고 여러 여성과 관계를 맺으면서도 왜 한 번도 깊은 관계로는 발전하지 않는 지가 설명된다는 얘기다. 


이런 등등의 이유로 다니엘 크레이그와 함께 새롭게 시작한 007시리즈는 단순히 유행하는 본 스타일의 액션이 가미된 본드라던가, 이미 익숙한 본드와는 전혀 다른 투박하기만한 모습이 아니라, 둘 다 모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변화 혹은 캐릭터였기에, 오히려 그렇다면 진정한 제임스 본드가 된 이후의 작품을 기대하게 하는 새로운 007 시리즈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세 번째 작품 '스카이폴'에서는 이제는 준비를 마친 제임스 본드가 본격적으로 활약하는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기대한 것과는 조금 달랐다. 여기서 잊고 있었던 점이라면 바로 이 작품이 007시리즈의 5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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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두 작품과는 다르게 '스카이폴'은 이미 노쇠하여 퇴물 취급을 받은 007이 등장한다. 그리고 주적은 외부가 아닌 내부의 적이나 다름 없는 이를 등장시킨다. 즉, '스카이폴'의 갈등 구조는 세계를 위협하는 범죄 조직이나 악당이 아니라 좁게는 제임스 본드와 M으로 대변되는 MI-6의 위기, 넓게는 바로 스파이 장르로 50주년을 맞은 007 시리즈 자체에 대한 위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카이폴'의 또 다른 테마는 부활 (Resurrection)이다. 이 부활이라는 테마는 꽤 직접적으로 영화 속에서도 언급되는데, 결국 부활은 하되 어떤 모습과 메세지를 갖고 부활하는가가 이 영화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부활을 설파하는 과정에는 앞서 이야기한 위기, 새로운 시대를 맞은 21세기 007 시리즈의 위기를 돌파하고자 하는 영화의 의지가 아주 강하게 담겨 있다.


그 부활의 테마 중 첫 번째로 주목해 볼 것은 주인공 제임스 본드의 부활이다. 제임스 본드의 부활이란 곧 미완성 혹은 결핍의 해소, 완성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유명한 '건 베럴' 장면이 아직도 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은 아직 미완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카이폴'은 그런 본드의 결핍을 해소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중요시 되는 요소는 역시 가족이라는 테마다. 이전 시리즈에서는 거의 언급된 기억조차 없는, 본드가 고아라는 사실을 '스카이폴'은 여러 번 비중 있게 언급하고 있으며, 주디 덴치가 연기한 M을 Mother로 부르는 것 역시 유난히 두드러진다. 그리고 본드의 과거가 남아있는 곳에서 만난 킨케이드 (알버트 피니)는 마치 그의 아버지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본드가 부모의 무덤과 과거가 남아있는 이 저택을 마지막 장소 삼아 실바와 대결을 펼치고 그 장소를 자신의 손으로 부숴버리는 것 역시, 과거라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진정한 부활로 거듭난다는 맥락에서 의미 깊은 장면들이었다. 그리고 007 시리즈의 오랜 조력자인 Q의 새로운 합류와 머니페니의 등장은, 비로소 모든 것을 극복해 낸 제임스 본드에게 주어진 완벽한 가족과도 같은 존재들일 것이다. 이렇게 본드의 죽음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그 동안 미완성의 불안함을 보여주었던 제임스 본드의 완벽한 부활로 마무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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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제임스 본드의 부활이라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영화였지만, 그 보다 '스카이폴'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이 영화가 너무나도 직접적이고 또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007이라는 브랜드 자체의 자부심과 부활에 대한 의지 때문이었다. 앞서 이 영화가 대면하게 된 위기에는 이른바 한물 간 시리즈, 시대에 뒤쳐진 냉전의 그림자에서 아직도 자유롭지 못한 스파이물로서의 007 영화에 대한 위기가 있다고 했는데, 샘 멘데스를 대표로 한 '스카이폴'의 제작진은 시리즈의 50주년을 맞아 무엇보다 이 점에 대해 강력하게 말하고자 하는 듯 했다.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스파이들의 활약상이 중심이 되던 007 시리즈는 냉전 시대가 종식되면서 자연스럽게 그 생존의 이유 역시 위협받게 되었다. 이후 북한이라는 새로운 주적을 등장시키기도 하고 또 다른 위협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지만, 이 007이라는 시리즈가 정확히 어떤 방향성을 갖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의지를 이토록 강하게 표명한 적은 적어도 없었다.


하지만 '스카이폴'은 바로 새 시대를 맞는 007은 어떤 모습이고, 앞으로 007은 어떠할 것인지에 대한 그 어떤 코멘트보다도 강렬한 대답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 글로벌한 볼거리를 자랑하던 시리즈는, 영화의 주요 배경을 영국 런던, 더 나아가 MI-6의 본부로까지 가져왔다. 이는 곧 문제의 해결 방법을 외부에서 찾거나 외부의 공격, 영향으로 인한 방어기재가 아니라 내부의 문제로 인한 위기, 혹은 스스로가 해결 방법을 찾는 것만이 진정한 위기 해결 방법임을 깨달았다는 이야기다. MI-6의 심장부를 공격 당하고 그 수장인 M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더 강건하고 뚜렷해 진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M의 입을 통해 그리고 본드의 행동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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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등장하는 젊은 Q는 이야기한다. 예전 같은 신무기는 없다고. 뭐 볼펜 폭탄이라도 줄 줄 알았냐고. 그리고는 본드를 인식하는 권총 한 자루와 위치 추적을 할 수 있는 송신기 하나를 전달한다. 이후 실바 일당과 마지막 일전을 치룰 때도 마찬가지다. 본드가 실바를 유인하게 위해 선택한 자동차는 다름 아닌 애스턴 마틴 DB5이며, 저택을 기점으로 일전을 준비하는 과정 역시 신무기로 무장하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아날로그하고 제한된 상황에서의 전략들(전구 플러그에 못들을 장착해 전원 스위치를 켜면 사방으로 못들이 스파크와 함께 튕겨 나가는 트랩처럼)로 이뤄져있으며, 무장 헬기와 맞서는 본드의 무기 역시 오래된 사냥용 장총이다. 이는 단순히 이전 시리즈에 대한 오마주가 아니라 '스카이폴'이 영화 내내 담고 있는 강력한 의지를 뒷받침하는 장치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실바라는 캐릭터도 다른 악역들과는 다른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역할이었다. 실바는 본드를 잡아온 자신의 거처에서 본드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우간다 선거를 조작하는 것, 또 어떤 무엇을 공격하는 것 등등 여기서 클릭 한 번이면 모두 가능하다고. 하지만 이렇게 하고자 하면 모든 것을 쉽게 이룰 수 있는 실바가 유일하게 원하는 것은 다름 아닌 M이다. 이는 007 시리즈에 대한 위기와 극복에 대한 질문이자 답으로 볼 수 있는데, 007 영화가 새 시대에 맞게 본 스타일의 액션도 할 수 있고, 또 다른 스타일리쉬한 트랜드에도 맞춰갈 수 있고 앞서갈 수 있는데 안하는 것이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 길은 007 영화가 가야할 길은 아니라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자문자답 같은 이야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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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를 맞는 007의 대답은 결국 새 시대에도 007 영화는 가장 007다움을 오히려 더 강조하고 고수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얼핏 오만이나 자만으로 비춰질 수도 있고 혹은 실제로 자만으로 봐도 무방하지만, 나는 이러한 이들의 자신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아니 영화의 자부심에 완전히 사로잡혀 버렸다. 실제로 제이슨 본 스타일의 트랜디한 액션 영화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스카이폴'의 고전적인 방식과 느린 호흡, 드라마 중심의 전개에 많은 실망을 하기도 한 것처럼, 결과적으로 새 시대의 관객들과는 소통하지 못하는 시리즈가 될런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 영화의 방식을 무조건 지지하는 바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가 쉬지 않고 관객에게 말하는 듯 했다. 우리는 50주년을 맞은 007 시리즈인데, 우리는 스스로를 증명하는 방법을 멀리서 찾지 않고 스스로에게서 찾았다고. 아니 그보다도 우리는 우리가 만든 이 시리즈에 대해 깊은 자부심을 갖고 있고 앞으로도 그 자부심으로 007 시리즈를 계속 이어갈거라고. 말이다.


영화가 말하고자는 주장이 너무 직접적이라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지만, 그래서 좀 더 은근한 방법을 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안해본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이 영화의 자부심 넘치는 방식은 '스카이폴'은 물론 007 시리즈 전체에 대한 매력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로 강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관객에게 간절히 호소하는 방식이 아니라, 한편으론 도도해 보일 정도로 자부심 넘치는 방식으로 말하는 것이 더 좋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5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작품이라는 엔딩 크래딧의 문구를 비로서 깨닫게 되었다. 그 어떤 시리즈도 갖지 못한 역사와 전통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대답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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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맨 처음 이야기했던 것처럼 저는 007 시리즈의 팬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냥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이 더 좋았을 뿐인데 '스카이폴'이 저를 완전히 007 시리즈의 팬으로 만들어 버렸네요. 그 동안 흘려 보았던 예전 007 영화들을 너무 다시 보고 싶게끔 말이에요.


2. 아델의 주제곡이 흐르는 오프닝은 정말로 환상적이었습니다. 크리스 코넬의 곡과 함께한 '카지노 로얄' 오프닝 보다도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오프닝 만으로도 울컥하는 경험은 실로 오랜만이었어요. 아델은 마치 007 테마곡을 부르기 위해 태어난 가수인 것만 같더군요. 이미 곡을 접했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는데 환상적인 오프닝이 더해지니 이건 뭐 말로 다 감동을 표현할 길이 없더군요.


3. 샘 멘데스의 기용은 정말 완벽한 선택이었네요. 언젠간 크리스토퍼 놀란이 007을 연출할 날이 올 것 같지만, 그래도 샘 멘스의 '스카이폴'은 영원히 기억될 것 같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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