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아스 라인 (Antonia's Line, Antonia, 1995)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인간의 굴레
<댈러웨이 부인>을 연출핶던 마를렌 고리스 감독의 1995년작 <안토니아스 라인>은 제목은 지인들을 통해 매우 자주 접해왔을 정도로 익숙한 영화였는데, 막상 실제로 작품을 보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다행히 그 경험은 극장에서 이루어졌다. 재개봉에 앞서 위드블로그와 함께한 시사회를 통해 만나볼 수 있었는데, 역시나 많은 영화팬들에게 회자되는 작품답게 여러가지 담론을 생성해 내고 있었다. <안토니아스 라인>이 언급될 때 반드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는 다름아닌 '페미니즘'일텐데,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단순히 페미니즘 영화로 묶어버리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을 듯 하다. 많은 페미니즘적 요소가 담겨있기는 하지만 여성을 위한 여성의 영화라기 보다는 결국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으로 더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화는 간단히 말해서 '안토니아'라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마을을 배경으로 그 속의 사람들의 관계와 가족의 탄생 그리고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일단 이 마을은 일반적인 가족영화에서 등장하는 마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마치 스릴러 영화에나 나올 법한, 매우 고립되고 날이 서 있는 구성원들이 자리잡고 있는 기묘한 공간이며, 주인공 안토니아가 이 마을에 다시 돌아와 자리잡게 되면서(그리고 안토니아와 딸이 마을 사람들과 관계를 점차 맺어가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안토니아를 살펴보기 전에 이 마을 사람들의 이미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을에 살고 있는 이들은 단순히 남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이 일종의 빈자리를 저마다 하나씩 갖고 있다. 안토니아가 이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 방식은 바로 이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이며 구성원들은 더 노골적으로 (모든 것을 이미 소유한듯한) 안토니아에게 자신의 빈자리를 채워주길 기대한다. 이를 단순히 성적인 욕망이나 자손 보존의 본능만으로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그러한 눈초리와 기대도 분명 있겠지만, 영화는 단순히 남성과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서서 일종이 구원의 존재를 통해 삶과 죽음의 역사를 풀어놓는 것이다. 이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로 불리우는 것은 이런 것을 가능케 하는 주인공이 여자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안토니아를 비롯해 딸인 다니엘은 물론이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은 거의 다 독립적이고 남성에게서 자유롭거나, 안토니아를 통해 이런 삶을 살게 된다. 그 반대로 남성 캐릭터들은 상당히 무능력한 동시에 여성을 이용하려고만 드는 존재로 그려져 그 상대적 비교감을 더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페미니즘 영화라면 '여성에 의한'도 중요하겠지만 '여성을 위하는' 측면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안토니아스 라인>은 페미니즘 영화로만 바라보기에는 더 큰 주제를 얘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기존에 하도 페미니즘 영화라는 소리를 듣고서 본 영화는 조금 의외이기도 했다.
(영화 속에는 안토니아가 씨 뿌리는 장면이 두,세차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분명 상징적인 것이다. '남편이 왜 필요하죠?'라는 안토니아의 영화 속 대사처럼, 정해진 성적 역할 분담에 대해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임을 이야기한다)
최근 끝까지 감상을 했던 미드 <식스 핏 언더>를 본 탓인지 두 작품에서 비슷한 분위기와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다. <안토니아스 라인>은 영화가 중반 이후까지 전개될 때까지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하지는 않는다(페미니즘 적인 측면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어찌보면 이 때까지는 그저 세월의 흐름과 가족의 구성과정 관계의 확장에 대해서 차근차근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고 사건 사건을 그저 늘어놓을 뿐이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이 다 되어서 그리고 결말이 나고나서는 앞서 풀어놓은 긴 세월의 흔적들이 결국 이러한 것들이 반복되는 인생사를 이야기하려는 소스였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보름달이 뜨면 늑대처럼 우는 여자와 그 아랫 층에 사는 남자의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등장시킨 것은, 나중에 보름달만 보이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면 관객들이 느낄 허전함과 그녀가 죽고 난 뒤 그 소리를 평생 못견뎌하던 남자가 결국 이어서 늑대처럼 우는 장면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인 것이 단편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계속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고 가족을 확장시켜 나가기만 했던 영화는 조금씩 구성원들 간의 갈등을 이야기하면서 균열과 슬픔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인다. 그러다가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영화의 첫 장면처럼 다시금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영화에서 죽음을 묘사하는 장면 중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죽음을 맞게 된 혹은 그 주변 사람이 죽음의 대해 미리 알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초반 어머니의 죽음 때문에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는 안토니아의 내레이션에는 '하지만 아직 어머니가 죽기 전에 도착했다는 점이다'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마지막 안토니아가 죽게 되었을 때의 묘사도 그렇고 자신의 죽음을 직접 준비하는 '굽은 손가락'의 경우도 그렇고, 죽음이라는 것이 인간으로서 막을 수 없는 순리라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삶에 더 충실해야 한다는 진리를 역설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매우 진부한 진리를 다루는 이 영화만의 방식이며 이 역시 <식스 핏 언더>와 동일한 부분이다.
영화는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가볍게 춤추는 것처럼 유머를 섞어가며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마치 남들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는 다니엘의 시선처럼(이런 설정은 이런 류의 영화에서는 잘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는데, 잘 생각해보니 초반에는 이런 것들을 보았던 다니엘이 나중에 보질 못하고 그녀의 손녀인 아이가 다른 상상을 보게 되는 것 또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지 말고 세상의 정해진 선입견들을 비판없이 수용하지 말고, 나름의 인생을 살아가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 여러가지 측면으로 읽힐 수 있는 텍스트라는 점에서 <안토니아스 라인>은 좋은 영화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족과 여성, 삶과 죽음, 이것들을 각각의 시선으로 각자가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2. 그러면에서 리뷰에는 다 쏟아내지 못했지만, 페미니즘 측면에서 본 영화, 인생사로 본 영화, 가족의 탄생 측면에서 본 영화 등 각각의 리뷰를 써보거나 비교하는 재미도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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