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쉬 걸 (The Danish Girl, 2016)

진짜 나를 찾아줘



1926년 덴마크 코펜하겐. 풍경화 화가로서 명성을 떨치던 아이나 베게너(에디 레드메인)와 야심 찬 초상화 화가인 아내 게르다(알리시아 비칸데르)는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부부이자 서로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파트너이다. 어느 날, 게르다의 아름다운 발레리나 모델 울라(엠버 허드)가 자리를 비우게 되자 게르다는 아이나에게 대역을 부탁한다. 드레스를 입고 캔버스 앞에 선 에이나르는 이제까지 한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그날 이후, 영원할 것 같던 두 사람의 사랑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고, 그는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출처 : 다음영화)


세계 최초의 성전환수술을 한 남자로 알려진 아이나 베게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원작으로 '킹스 스피치'와 '레 미제라블' 등을 연출했던 톰 후퍼가 연출한 작품이다. '대니쉬 걸'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한 인물의 이야기를 묘사함에 있어서 철저히 주인공의 입장에서 (편에 서서)이야기를 전개하는 동시에, 또한 제3자의 시선일 수 밖에는 없는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아주 조심스럽지만 용기 있는 태도를 유지하려 애 쓰고 있는 영화다.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인물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비슷한 설정의 다른 영화들과 조금 다른 점이라면 주인공의 심리 묘사를 영화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에디 레드메인이라는 배우의 아주 뛰어난 연기가 뒷받침되었다는 점과 혼란을 겪는 주인공 만큼이나 더 큰 혼란을 겪었을 그의 아내인 게르다라는 캐릭터를 아주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점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압도적일 수 밖에는 없었던 전자의 인상을 넘어설 정도로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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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첫 번째로 아이나 베게너를 연기한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다. 신체적 고생이 겸비 된 '레버넌트'의 디카프리오의 연기와 마찬가지로 '대니쉬 걸'의 아이나 베게너라는 캐릭터는 내면의 갈등과 외면의 변화를 모두 표현해야만 하는 캐릭터인 동시에 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한 캐릭터라는 점에서 이른바 오스카 수상에 적합한 캐릭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동일한 선상에서 연기상이라는 기술적인 측면을 고려했을 때 그 누구보다 레오의 오스카 수상을 바라는 자임에도 이 영화를 본 뒤에는 에디 레드메인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는 없었다. '대니쉬 걸'에서 에디가 연기한 아이나 베게너는 남성의 몸으로 여성의 인생을 살게 되는 인물이라고 했을 때 예상되는 감정과 외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그 진정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기에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 연기를 선보인다. 외향적으로는 아이나에게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에 표정이나 손짓, 발짓 모두 부족함이 없었으며, 내적으로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어쩌면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인물이라고 했을 때 예상되는 갈등과 고민의 과정을 또 한 번 보여주었음에도 '왜 그래야만 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그럴 수 밖에는 없었다'라는 이 영화의 근본적인 대답의 신뢰와 공감을 얻어내는 훌륭한 연기가 아닐 수 없었다. 다시 말해 만약 '대니쉬 걸'의 다른 요소들에 대해 특별한 인상을 얻지 못하더라도 단지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로 탄생시킨 아이나 베게너라는 성전환자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의미있는 영화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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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연기한 극 중 아이나의 부인인 게르다라는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이 더 인상적이었다. 성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고 결국 여성으로 살기 위해 수술을 감행하는 아이나의 고통(여기서의 고통이란 단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못지 않게, 가장 사랑하는 남편을 남편이 아닌 여성으로 맞아야 했던 게르다의 복잡한 심경을 도드라지지 않게 묘사하고 있다. 게르다의 이야기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는데, 얼핏 보면 게르다는 자신이 함께 했던 일종의 장난이 커져서 결국 남편이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었다고 여기는 장면들이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게르다는 어쩌면 처음부터 아이나가 여성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혹은 끝까지 막을 생각은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동성애나 성정체성의 혼란 등을 영화가 그리는 방식을 보면 그 당사자들이 어느 순간 그런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조차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서 고치려 해봐도 되지 않자 결국 받아 들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대니쉬 걸'은 이런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아이나는 여성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그려낸다. 그런 측면에서 게르다가 아이나를 바라보는 방식도 이해할 수 있는데, 게르다의 얼굴에서는 어딘가 모르게 (겉으로는 말하지 않아도) 아이나가 결국 여성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겠다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아이나가 릴리(아이나의 여성 자아)가 되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이라면 그렇게 되는 것을 적극 응원하겠다 라는 심경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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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게르다라는 캐릭터의 묘사는 '대니쉬 걸'이라는 영화가 성전환수술자의 실화 혹은 이야기를 어떤 시선과 자세로 바라보고 있는 지를 엿볼 수 있도록 한다.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인물의 이야기는 행여 그것이 이제는 조금 진부할 수 있는 갈등이나 혼란이라고 여겨질 지라도 그들이 다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기 보다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는 반면, 그(그녀)의 가장 가까운 존재였던 게르다를 묘사함에 있어서는 조금 더 적극적이고 진보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서, 어쩌면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들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성정체성의 혼란이라는 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주제에 대한 묘사도 에디 레드메인이라는 훌륭한 배우를 통해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연기한 게르다라는 캐릭터를 통해 좀 더 많은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세심한 레이어로 이뤄진 구조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게르다라는 인물의 인상이 더 깊게 남았다. 끝까지 자신이 사랑했던 아이나를 릴리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에 의심이 없었던 그녀의 이야기는 이 영화의 또 다른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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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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