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 브루스 배너는 분노를 적절하게 조절해야만 한다. 명석한 과학자인 평온한 그의 삶은 억제된 욕망을 품고 있으며, 유전적인 기술이 처절한 그의 과거를 숨기고 있다. 옛 여자친구이자 그의 뛰어난 동료 베티 로스는 브루스의 감정 기복에 지쳐서 그의 삶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베티가 배너의 혁신적인 연구로부터 뭔가를 발견하게 된다. 잠깐의 실수는 폭발적인 상황을 야기 시키고, 브루스는 순간의 결정을 내린다. 그의 충동적인 영웅심으로 다른 이들은 생명을 건지고, 그 자신도 상처 하나 입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몸은 치사량 이상의 감마선에 노출된 상태였다.




그 후 브루스에게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아침에 일어났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의식을 상실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상황은 실패한 실험이 초래한 예기치 못한 결과. 그러나 배너는 자기 내부의 다른 존재들, 낯설긴 하나 매우 친밀하며 다소 위험하지만 은근히 매력적인, 그러한 것들을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대한 피조물, 난폭하며,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 강력한 존재인 헐크가 간헐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헐크는 파괴를 일삼아, 배너의 연구실과 집안을 모두 파괴한다. 이로 인해 베티의 아버지 로스 장군 휘하의 병력이 동원되고, 브루스의 맞수인 글렌 탤벗이 여기에 동참한다. 개인적인 복수와 가족 관계가 극대화된 위험을 증폭시킨다.
베티 로스는 사건의 배후에 브루스의 아버지 데이빗이 연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브루스와 헐크의 관계를 이해하는 유일한 인물이며, 군대의 투입을 막으려 노력한다. 괴물을 생포하기 위해 엄청난 병력이 동원되고... 어쩌면 그와 그것을 구하기엔 너무 늦었을 런지도 모르는데...




마블 코믹스(Marvel Comics)는 우리에게 [스파이더 맨], [엑스 맨], [데어데블]등의 만화와 영화로 잘 알려진 만화 제작사이다. 주로 마블의 주인공 캐릭터들은 정의의 편에서 악당들에 맞서는 영웅들로 이루어져 있고, 캐릭터마다 능력과 재능, 패션의 다양함으로 많은 마니아들을 거느리고 있다. 또한 마블 코믹스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슈퍼 히어로임에서 알 수 있듯 미국식 영웅주의와 미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내용과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솔직히 국내에서는 바다 건너 먼 나라의 열기가 느껴지지 않을 뿐이지, 미국 내에서 마블 코믹스의 인기는 정말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헐리웃 영화 속에서 종종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가장 갖고 싶은 선물로 주저 없이, 마블 코믹스의 만화책 몇 호, xxx 몇 월 호,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경우나, 박스오피스의 주요 흥행 성적 1위란에 [스타워즈]나 [반지의 제왕], [매트릭스]등의 영화들을 제치고 [스파이더 맨]이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서 마블 코믹스, 마블의 히어로에 대한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위의 여러 마블의 작품들만큼이나 많은 인기를 끌었고, 또한 영화화를 고대했던 작품이 바로 이 작품 [헐크]라고 할 수 있는데, 위에서 주저리주저리 나열했던 사실들로 인해, 헐크는 그 제작초기부터 결코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야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인들이 대단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마블 코믹스의 작품을, 그들의 손이 아닌 이안이라는 동양의 한 이방인에 손에 맡겨졌다는 사실에 있었다. 물론 이안의 전작 [와호장룡]은 극장에서 자막을 보기를 귀찮아하는 미국인들에게 외국어 영화로는 드물게 흥행에서도 내용 면에서도 호평을 받기도 했었고, [센스 앤 센서빌리티]로 서양의 것을 비교적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이안이란 감독은 이방인일 수밖에는 없었다. 이러한 이안이 [헐크]의 감독을 맡게 되었을 때 그들은, ‘이안이 어디 헐크를 제대로 보기나 했겠느냐?’, ‘동양인은 절대 헐크를 제대로 만들어 낼 수 없다’라는 식의 거센 항의를 제기하였다. 이러한 제작초기의 우려는 개봉 뒤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헐크를 망쳐 놨다’라는 식의 반응이 지배적이었고, 국내에서도 심지어는 ‘’슈렉‘ 형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흥행에는 별 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었다(결코 슈렉을 폄하하는 뜻은 아니니 오해 마시길). 하지만 필자는(여기서부터 지극히 개인적일 수도 있는 헐크의 칭찬이 시작된다)극장 개봉 시에 보았을 때도 재미없다거나 지루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하였고, 특히 이번에 출시된 DVD타이틀은 타이틀만으로도 높은 소장가치로 인해 매우 만족스러웠다고 말하고 싶다.





마블의 캐릭터는 모두 다 슈퍼 히어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안이 만들어낸 헐크는 슈퍼 히어로의 범주에는 속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슈퍼 파워’는 지녔지만 말이다. 대부분 헐크를 얘기할 때, 변형된 초록색 거구의 모습이라던가, 엄청난 힘 등에 포커스를 두곤 하지만, 감독인 이안이 중점을 둔 부분은 ‘헐크’라기 보다는 ‘브루스 베너’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브루스 베너라는 한 인물의 복잡한 내면세계를 통해 불우했던 가족사와 베티와의 관계, 자신의 존재의식에 대한 고찰 등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나아가서는 조직과 개인, 권력과 그의 따른 피해자의 관계 등 더 큰 범위의 의미들 또한 포함하고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헐크를 마블 코믹스의 다른 슈퍼 히어로들과 마찬가지로 영웅의 이미지로 알고 있지만, 이안이 만들어낸 헐크는 ‘영웅’이라기보다는 ‘피해자’에 더 가깝다. 이안의 관점에서 본다면 브루스 베너가 헐크로 변하는 설정은, 피해의식의 분출에 한 방법론으로 인식되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관객들이 지루해 하기는 했지만, 브루스 베너가 헐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상당히 비중 있게 그렸고, 헐크로 변한 다음에도 덩치 큰 액션들 보다는 흔들리는 눈빛에 더 중점을 두었다. ‘헐크는 영웅이 아니다’라는 식의 결론은 영화를 보다보면 더 확연해 지는데, 솔직히 영화 속 헐크는 정의를 위해 싸운다던가, 악당을 물리친다던가 하는 활약상은 전혀 없다(굳이 들자면 다리에 부딪힐 뻔한 전투기에 뛰어올라 충돌을 막았다는 것 정도). 영화 내내 괴로워하고 고통당할 뿐이다. 이안이 초점을 맞춘 이러한 면은 대중들에게는 크게 호응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지만, 영화의 맥락에 있어서는 결코 [와호장룡]에 크게 뒤지지 않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Collector's Limited Edition'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헐크] 패키지는 몹시도 만족스럽다. 일단 이전에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주먹 모양을 형상화한 특별 케이스는 ‘헐크’라는 특성을 잘 살린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패키지 안에는 본 편과 서플먼트 등을 수록한 3장의 디스크와 오리지널 마블 코믹스북, 스토리보드, 일러스트레이트 등 그야말로 패키지다운 아이템들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패키지의 내용물과 케이스는 전부 직수입된 아이템이라 마니아들에게는 더 큰 소장가치가 있을 것 같다. 본격적으로 본 편의 화질과 사운드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영상은 1.85:1의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을 제공하고 있는데, 실사와 CG가 함께 쓰인 장면이 유난히 많은 만큼, 영상의 퀄리티는 타이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ILM에서 만들어낸 놀라운 컴퓨터 그래픽 기술은, DVD를 통해 선명하게 재생되고 있다. 특히 헬기가 등장하는 장면이라던가, 헐크와 헬기, 전투기가 전투를 벌이는 장면, 탱크와 결투를 벌이는 장면에서는 매우 정교하고 깨끗한 영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헐크의 피부의 질감도 그대로 드러난다. 사운드는 DTS트랙과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수록하고 있는데, DTS의 강력함이 무척 마음에 든다. 헐크가 등장하는 씬에서의 사운드는, 그야말로 DTS의 강점을 십분 느낄 수 있을 만큼 웅장하면서도 공간감이 있는 소리를 들려준다. 채널의 분리도도 뛰어났으며, 무엇보다도 영화가 영화인만큼 우퍼 스피커의 활약이 돋보인다.



다음은 서플먼트인데, 2장에 디스크에 담긴 서플먼트는 헐크를 이해하고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을 만한 자료들이 다양하게 수록되어 있다. 특히 3번째 디스크는 한정판에만 수록된 것으로 배우인 샘 엘리엇과 조쉬 루카스의 소개를 따라 헐크의 또 다른 뒷얘기를 전해들을 수 있다. 2번째 디스크에 수록된 다양한 서플먼트들을 살펴보면, 기본적인 메이킹 다큐가 수록되어 있고, 코믹스와 연관하여 헐크의 탄생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들과 코믹스에서 TV시리즈를 거쳐 영화화되기까지의 과정들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컴퓨터 그래픽의 사용과 기술적인 도움 영상들로 인해, 헐크의 CG캐릭터가 어떻게 탄생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스크린에서 살아 숨쉬게 되었는지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그리고 덧붙여 본 편에는 수록되지 않았던 삭제 씬들도 수록되어 있고, 감독인 이안, 주연 배우인 에릭 바나, 제니퍼 코넬리, 닉 놀테의 인터뷰 영상도 만나볼 수 있다.




2003.11.14
글 / 아시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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