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의 숲 (ピアノの森, 2007)
클래식으로 풀어낸 두 아이의 우정


오랜만에 극장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을 만나고 왔습니다. 국내에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제작했던 '매드하우스'의 작품임을
강조하는 홍보가 강했는데, 이런 면에서 만약 <시달소>를 염두에 두고 극장을 찾게 된다면 이 영화 <피아노의 숲>에는
적잖이 실망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시달소>의 경우가 소녀의 풋풋한 감성과 소녀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애니메이션이라면, <피아노의 숲>은 '소년'이라기 보다는 '아이'에 가까운 두 남자 아이가
피아노와 음악을 통해 우정을 키워나가고 조금씩 자신과 주변을 알아가게 되는 내용으로, 전자보다는 좀 더 아동용에
가까운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아동용'이라는 표현을 마치 작품을 무시하는 것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신데, 아동용이란 말 그래도 어린이들이 보기에 적절한 영화라는 그 본 의미로 쓰인 것이며, 사실 제대로 된 교훈적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에서 어쩌면 더 돋보이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네요).




영화의 줄거리는 아주  단순합니다. 클리셰의 향연이랄까요. 만약 이런 음악가나 클래식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았던 이들이라면 대부분 과정과 결말을 미리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다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나 마지막 연주회 부분이나 그 이후에 방향을 보면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와 많이 비슷한 결말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뭐 이건 '노다메'의 전유물이라기 보다는 이런 류의 스토리가 보여주는 전형적인 클리셰라고 봐야겠죠).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겠지만(사실 이야기가 새로울 것이 없어서 굳이 스포일러까지 될까
싶기도 하지만서도), 그렇다면 <피아노의 숲>이 이렇게 뻔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음에도 나름 괜찮은 아동용 애니메이션으로
평가하게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건 바로 뻔한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주느냐 하는 것에 있을텐데, 일단은 이런
일반적인 흐름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도록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조를 보여주고 있고, 더나아가 아이들이 볼 때에도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나중에 더 컸을 때 비슷한 류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아, 맞어, 예전에 보았던
만화에서 비슷한 걸 보았었는데'하는 기억이 날 정도로 은연 중에 교훈적인 내용을 잘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영화의 주요 소재로 사용된 피아노 연주와 클래식 음악을 들 수
있겠습니다.  베토벤이나 모짜르트 사진을 보고는 '얘는 누구야?' '쟤는 또 누구고?'하고 얘기하던 주인공 카이가
피아노를 연주하게 되면서 점차 얼마나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는지도 관심있게 봐야할 장면들이고, 일본 애니메이션 답게
클래식 전문 작품이 아님에도 음악적인 기본기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는 작은 장면들도 놓치기 아쉬운 장면들입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나름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타고난 천재와 노력파를 각각 그리면서, 이 둘을 갈등을 모두 다
제법 깊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아마데우스>의 모짜르트와 살리에르처럼 이런 관계에 대한 묘사는 여러번
있어왔던 것이지만, 아이들의 눈에 맞게 아주 심오하지는 않으면서도 그 정곡은 제대로 찌르고 있는 구성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나 단순히 천재 소년의 놀라운 능력에만 집중하지 않고 오히려 끊임없이 노력해도 천재적인 친구를
이길 수 없다는 좌절감을 몸소 체험하고 한 걸음 더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을 가볍지 않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대부분 아동용 작품이라면 아마도 단순히 천재소년에만 집중했겠죠. 그래서 <피아노의 숲>이 오히려 참 교훈적이라는
얘깁니다. 이런 관계를 그리면서도 어느 한쪽을 악당으로 몰아세우지 않고, 각자의 입장이 다 이해되도록 그려내는 점
말이죠).




이 두 아이의 이야기 가운데 선생님의 '어른'이야기가 잠시 끼어드는데, 제가 보았을 땐 끼어들 수 있는 최대한의
안전한 범위 내에서만 참여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즉 더 끼어들었으면 자칫 이야기가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가 있는 이 어른의 이야기로 흘러갈 수도 있었고, 아이들 관객들이 보기에도 어려워질 수 있었으나 그 아슬아슬한
범위를 잘 지켜내고 있다는 점이죠.

그리고 리뷰 내 스틸컷은 삽입하지 않았지만 이 두 남자 아이 외에 피아노 콩쿨에 참여하는 여자 아이의 이야기가
후반 부에 등장하는데, 재미면에서 보나 내용면에서보나 이 여자 아이의 등장은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칫 너무 뻔한 이야기로만 흐를 수도 있는 과정 속에서 약간의 긴장을 주었고, 개그와 아련함이 적절히 섞인
독특한 시퀀스로 또 다른 메시지를 들려준 것 같기도 하구요.
원작인 만화에서는 영화 속 이야기 이후의 이야기를 계속 들려준다고 하는데, 이 여자 아이의 이야기도 전개가
되는지도 궁금하네요.




목소리 연기로 우에토 아야와 이케와키 치즈루가 참여하고 있는데, 이케와키 치즈루의 경우 좋아하는 배우이긴 하지만,
워낙에 애니메이션에 흠뻑 빠져들다보니 그녀의 목소리를 특별히 인지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제게 아이가 있다면 요 정도의 애니메이션을 먼저 보여줄 것 같아요. 교훈적이기도 하고 많이 어렵지도 않으면서,
음악이나 피아노에 흥미를 갖기에도 충분한 작품이니 말이죠.
아마도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아이들은(실제로도 제가 본 극장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님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집에 갈 때 피아노 사달라고 하는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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