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D리뷰] 장면과 대사들로 다시보는 <마법에 걸린 사랑> 블루레이

2007년작으로 오랜만에 극장에서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었던 월트디즈니의 실사영화 <마법에 걸린 사랑 (Enchanted)>은, 픽사나 드림웍스 등에 왕좌를 내준 뒤 이렇다할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었던 제작사 월트디즈니의 전환점이 될 만한 작품이었다. 극장에서 관람했을 때 역시도 '와! 재밌다!'를 넘어서는 디즈니의 야심과 반성이 엿보인다고 생각했었는데, 블루레이로 다시금 찬찬히 감상해보니 역시 장면 하나하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새로워 진' 혹은 '변해야 할' 디즈니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블루레이 리뷰는 평소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장면과 대사에 집중하여 이야기해볼 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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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마법에 걸린 사랑>은 디즈니의 고전 애니메이션들을 연상시키는 애니메이션으로 시작된다. 이는 설정 상으로 동화책 속 주인공이 마녀의 계획으로 인해 현실로 오게 되면서 겪는 사건들을 위한 구성상의 꼭 필요한 조건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월트디즈니 하면 익숙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을 서두에 깔고 시작하는 것은 '본래 디즈니는 이랬다'라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을 듯 하다. 이렇게 간단하게 얘기하고 나면 '그러면, 기존 디즈니는 다 나쁘다는 말이냐?'라고 반문할 수 있겠는데, 물론 디즈니가 추구하던 가치가 다 좋지 못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전 <피노키오> 블루레이를 리뷰하면서 이야기한 것처럼, 월트디즈니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서 많은 것을 가장 먼저 이뤄낸 선구자적인 존재였으며, 세계 수 많은 아이들에게 그야 말로 '꿈과 희망을' 안겨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였음은 두 말하면 잔소리이겠다. 

개인적으로 그런 막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월트디즈니 였기에 후기 작품들에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가치관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는 아이들이 보기에는 너무 선입견이 짙은 설정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작고 예쁜 동물들은 친구 같은 존재이지만 덩치 큰 육식동물(혹은 공룡)들은 무조건 악당으로 설정되는 점이나, <슈렉>에서 이미 잘 비틀어 주었듯이 못 생긴 것은 곧 저주라는 공식을 은연 중에 심어버린 이야기 들은, 어른들이 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주로 보는 것이기에 더 큰 위험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물론 이런 보수적인 구조를 완전히 다 바꾸려고 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마법에 걸린 사랑>에서는 '더이상 이대로 있다가는 안되겠다'라는 변화에 대한 디즈니의 절박함마저 엿보인다. 사실 예전에는 애니메이션 하면 다른 스튜디오는 하나도 모르고 오직 '= 디즈니'이던 시절이었는데, 최근에 와서는 그 입지가 픽사나 드림웍스에 비해 상당히 위축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서두에 애니메이션 부분은 최대한 기존 클래식 애니메이션에 가까운 구성을 취하고 있다. 백마탄 왕자와 공주, 성, 마녀, 동물친구들, 뮤지컬 시퀀스는 디즈니를 구성하는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라고 할 수 있는데(왕자가 공주를 보자마자 '결혼합시다'라고 얘기하는 장면은 이런 디즈니스러움을 노골적으로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대사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에 서두에는 이들이 모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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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이야기는 주인공인 지젤 (에이미 아담스)이 현실 세계인 뉴욕으로 오게 되면서 조금씩 변화하게 된다. 뉴욕으로 온 만화 속 주인공 지젤은 사람들과 처음 만나게 되면서 역시나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자신의 장신구를 뺏어간 할아버지에게 하는 그녀 최대의 나쁜 표현은 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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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안 좋은 분이군요' 정도다. 그런데 이 대사를 할 때도 잘 보면 조금 머뭇거리고 부자연스러워 하는 지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동화 속에서 지젤은 한 번도 누구에게 나쁜 말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뉴욕으로 오자마자 그는 누군가에게 나쁜 말을 해야만 할 상황에 닥치게 되고, 부자연스러운 말투로 '별로 안 좋은 분이군요'라는 본인 최대의 악담을 하게 된다. 여기서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건, '별로 안 좋은 분이군요' 라는 말조차 부자연스러웠던 지젤이 뉴욕에 더 오래 머물게 되면서 점점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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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로버트 (패트릭 뎀시)의 집에 와, 욕실에서 샤워를 끝낸 지젤은 이 신비로운 샤워 시설에 감탄하며 '마법 같아요'라고 한다. 이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일단은 지젤이 대표하는 바가 '디즈니'이고 뉴욕으로 표현되는 현실의 모습은 역시 현재 애니메이션 계의 현실이라고 볼 때, 현대의 애니메이션들이 추구하는 바와 갖고 있는 가치들은 디즈니 입장에서 보아도 마법처럼 매력적이고 동경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다르게 말하면 이 마법 같은 요소들이 주변에 널려있는데 이것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여도 될지 주저하는 디즈니의 모습까지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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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 지젤의 모습이 현실에 와서도 이어지고 있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역시 'Happy Working Song' 장면을 들 수 있겠다. 동화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노래로 동물들을 불러모아 신나게 청소하는 지젤의 모습은 장소만 동화 속에서 뉴욕으로 바뀌었을 뿐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제목과 '노래하며 일을 하면 피곤하지 않다네'하는 가사에서 알 수 있듯이, 디즈니가 영원히 동화같은 이야기로 들려주고 싶은 것은 즐겁게만 하면 힘들지 않다, 어려운 일도 생각하기 나름이다 라는 진리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마냥 행복함'을 점점 세상에서 '바보 같음'과 동일하게 생각하면서 디즈니도 함께 어려워 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디즈니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약간의 보수적인 색체는 있었지만, 동심에서나 이해할 수 있는 순수함 측면에 있어서는 사실 가장 선구적인 존재라고 생각되는데, <마법에 걸린 사랑>은 바로 이 디즈니적 순수함(동심에 가까운)과 현실의 괴리감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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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에서 막 뛰쳐나온 지젤에게는 너무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은 것이 사실. 로버트는 화내지 않고 차근차근 설명해주지만 마치 아이같은 지젤에게 어른 같은 현실의 이야기는 인정할 수 없다기 보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니까, '아, 뉴욕이란 곳에서는 이럴 수도 있군요' 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안달라시아는 안 그래요'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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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괴리감은 영화 곳곳에서 등장하는데, 영화의 하이라이트 라고 할 수 있는 'That's How You Know' 시퀀스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처음 지젤이 노래하려고 할 때 자꾸 노래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로버트의 대사에서나, 지젤의 노래를 거리의 악사들이 따라하자 '처음 드는 노랜데...' '엇, 이 노래를 아네? 하고 이야기하는 로버트의 대사를 굳이 삽입한 것은 예전 같으면 아무 설명없이 '디즈니 세계에선 다 가능해' 라고만 해도 되었던 것이, 로버트의 시각처럼 '어, 이거 말이 안되잖아'라는 시각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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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은 단순히 메시지적인 측면이나 대사의 삽입을 넘어서서 장면의 구성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센트럴 파크에서 벌어지는 'That's How You Know'시퀀스의 경우, 위의 스샷처럼 다양한 신세대 댄서들과 최신의 댄스 장르들이 결합된 단체 댄스장면을 볼 수 있다. 이는 감독의 말처럼 짧게는 다양한 문화가 함께하는 뉴욕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도 있겠지만, 더 나아가 생각해보자면 새로운 조류를 적극 수용해야만 하는 현실을 수렴한 구성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이렇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과 동시에 고전의 오리지널리티를 간직하려는 움직임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시퀀스에서 노인들이 춤을 추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여기 출연하고 있는 배우들은 대부분 예전에 <메리 포핀스>같은 뮤지컬 영화에서 댄서로 출연한 경험이 있거나,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댄서/연기자들로서 영화 속에서는 잠시 등장할 뿐이지만, 감독은 이 장면에 얼마나 많은 것을 담으려고 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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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통해 디즈니의 변화와 변화하려는 노력을 부담스럽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극 중 로버트와 같은 친절한 캐릭터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엄연이 얘기해서 로버트라는 캐릭터는 지젤과 관객 사이에서 괴리감을 줄이기 위해 중간자적 입장으로 활약하는 메신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로버트가 지젤에게 하는 대사들을 들으면 지젤이 이해 못할 현실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설명해 주는데, 보통 이런 구성의 영화에서 주인공에 관객이 100% 공감하게 되는 것에 반해 가끔 관객은 로버트의 입장에서 '맞아, 지젤. 너의 얘기는 너무 황당하잖아' 라고 생각하게 까지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해서 지젤 입장에서 보면 로버트라는 존재는, 너무나 갑작스런 현실에서 '만화'처럼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존재이며, 이해가 안되는 일들을 조금이나마 그럴 수 있겠다는 정도로 수긍할 수 있도록 만드는 캐릭터라 할 수 있겠다. 여기에는 패트릭 뎀시에 따듯한 인상이 크게 한 몫 했음을 부인할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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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런 따듯한 인상???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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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마스덴이 연기한 에드워드 왕자를 그리는 방식도 기존 디즈니 월드의 방식과는 조금 다르다. 에드워드 왕자라는 캐릭터는 지젤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 애매한 존재다. 기존 작품들처럼 확고한 악당도 아니지만, 분명 사랑하는 다른 이가 있는 상황에서 별로 원치 않은 존재이며 무언가 지키고 싶지 않은 약속 혹은 예절이랄까. 그런 관계에 놓인 존재다. 아마 보통 디즈니 월드였다면 에드워드 왕자와 지젤이 연결되어야 했을 것이다. 지젤은 현실에서도 계속 왕자를 만나기만을 고대하고, 왕자 역시 현실 속으로 들어와 지젤을 만나기 위해 수많은 고난들을 이겨내 결국 둘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지냈다는 식의 결론 말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에드워드 왕자라는 캐릭터의 존재는 분명 기존 디즈니의 작품들과는 다르다. 이런 식의 전개라 하더라도 보통 같으면 배신 당한 에드워드 왕자가 악당으로 변모하게 된다거나 하는 것으로 흘러가게 마련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너무도 쿨하게 지젤과 로버트의 관계를 받아들이고 있어서 오히려 바보처럼 보이기까지 한다(출연 작품들에서 연이어 이런 역할을 맡은 제임스 마스덴에게 '지.못.미'가 쏟아진 것은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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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지젤과 마찬가리로 에드워드 역시 현실로 건너오게 되면서 조금씩 변화를 겪게 된다는 점이다. 특히 후반 부에 결정적인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 전까지 다람쥐가 그렇게 얘기를 전할려고 노력했어도 단 한마디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던 에드워드는, 동화 속 이야기와는 다르게 지젤을 로버트에게 양보(?)하고 나서부터는 더 악조건임에도 다람쥐의 말을 단 한번에 완벽하게 이해하게 된다. 어찌보면 지젤과 마찬가지로(어쩌면 더 한) 에드워드 역시 기존의 디즈니를 상징하는 캐릭터로서, 틀에서 벗어나는 과감한 행동 이후 바보 같은 모습을 벗는 구성은 역시나 의미심장할 수 밖에는 없다(영화 내용상 그렇다고는 하지만, 너무 해맑게 웃는 제임스 마스덴의 모습을 보며 여간 가슴 한 켠이 아려왔던 것이 아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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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는 뉴욕에서 지젤을 처음 만나자마다 반가움에 서두의 애니메이션에서 그랬던 것처럼 노래를 부른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뮤지컬 세상에서 혹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세상에서 노래하는 것은 전혀 어색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노래란 말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기도 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은 행복한 동화 속 분위기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드워드의 노래에 맞춰 함께 노래해야 할 지젤은 당황스런 표정을 지며 오히려 별로 노래하고 싶지 않다고 얘기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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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는 제법 충격이었다. 이런 장면이 디즈니 영화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가장 핵심적인 요소를 제대로 파고든 경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노래하는 것을 어색해 하는 디즈니 캐릭터라. 특히나 지젤이 애니메이션에서 뛰쳐나온 캐릭터라는 점에서 노래하지 않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전면에 부각시킨 이 장면은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이 장면에 대한 메시지는 아마도 그 틀안에만 있었을 때에는 몰랐으나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된 이후부터는 그간 본인이 해오던 것이 얼마나 당황스럽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지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관객들이 그냥 주인공들이 노래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믿는 때가 아니라는 점을(그러니까 인과관계가 정확하지 않은 '마냥' 그러려니 하는 구성은 봐주지 않음을) 깨달아야만 한다고 스스로에게 얘기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극중 인물들이 갑자기 노래하거나 하더라도 크게 이질감이 없는 편이라, 이런 세계도 계속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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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지젤의 변화는 로버트와 헤어지고 에드워드와 다시 안달라시아로 돌아가기 직전에 다시 한번 등장한다. 이미 안달라시아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지젤은 아무 의심없이 돌아가려는 에드워드에게 데이트 등에 핑계를 대며 돌아가지 않으려고 한다. '당장 갈 필요는 없잖아요' 라는 대사는 일반 영화 같으면 사실 별 큰 의미없는 대사일테지만, 하루 만에 만나 첫 눈에 반해 결혼까지 약속하는 동화 속 지젤에게서 나온 대사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무언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분명 커다란 변화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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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로 들어온 마녀와 결투를 벌이는 마지막 시퀀스에서 역시 기존 디즈니의 방식을 완전히 뒤엎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일단 더 이상 공주를 구하기 위해 마녀와 대결을 벌이는 왕자의 모습은 없으며, 오히려 남자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마녀에게 맞서는 지젤의 모습만이 있을 뿐이다. '용감한 공주가 구출하러 온다'라는 대사를 마녀가 일부러 해주는 것 역시 이 장면이 그간 보여주었던 구성과 전혀 다른 장면임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기 위한 장치이며, 지젤이 로버트를 구하러 가기 전에 구두를 벗어던지고 나가는 장면에서 구두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앵글은, <신데렐라>처럼 실수로 벗겨진 구두를 누군가가 찾아주길 기대하는 여자 주인공의 모습이 아니라, 남자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구두를 벗어던진 여자 주인공의 모습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장치이자 역시 의미심장한 앵글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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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와의 결투가 끝나고 나서, 그 결투가 벌어졌던 건물에서 서서히 멀어지는 카메라를 발견할 수 있는데 자세히 보면 이 성과 같은 건물은 월트디즈니의 상징인 로고 속 그 성과 매우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계속 얘기한 바와 같이 <마법에 걸린 사랑>이 단순한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월트디즈니가 스스로 주인공이 되는 영화임을 다시 한번 알려주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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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점들이 많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그런거 다 제쳐두더라도 <마법에 걸린 사랑>은 월트디즈니의 마법이 아직까지 유효함을 확인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디즈니가 추구해오던 가치관을 어떤 감각으로 그려내느냐에 따라 다시 한번 마법같은 순간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과 동시에, 디즈니 스스로 변화해야 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듯한 작품으로 상당히 많은 고민과 혼란을 겪는 듯한 모습마저 발견할 수 있었다.

글의 성격이 달라 다 소개하지 못했지만, 주연을 맡은 에이미 아담스의 연기는 그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동화 속 지젤을 완벽하게 소화해 다시 한번 '에이미 아담스가 아니면 안돼!' 라는 생각을 하게 했고, <인어공주>를 비롯해 디즈니의 수많은 애니메이션들의 수록곡들을 만들었던 Alan Menken이 만들어낸 음악은, '그래, 영화 속에서나마 이렇게 마냥 행복한 걸 굳이 거부할 필욘 없잖아'라는 생각과 더불어 뮤지컬 영화의 또 하나의 명장면으로 기억될 순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블루레이 캡쳐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ALT DISNEY VIDEO에 있습니다.








볼트 (Bolt, 2008)
트루먼 쇼의 후속편 혹은 진행형?

월트디즈니의 신작인 <볼트>는 애초부터 경쟁사인 픽사와 드림웍스의 작품들과 비교될 수 밖에는 없었던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픽사는 <월-E>로, 드림웍스는 <쿵푸팬더>로 각각 최고의 히트작을 근래 선보였다는 것이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월트디즈니의 신작에 거는 기대는 클 수 밖에는 없었다(하지만 한편으론 같은 이유로 기대가 적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더군다나 픽사의 존 라세터가 총 제작자로 참여했다는 점이나, 스틸컷들로 엿볼 수 있었던 3D애니메이션의 결과물은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한 이유들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비교 대상들을 제외하고 봤을 때 그리 나쁘지 않았던 작품이었던
것 같다. 특히 디즈니스러운 측면에서 나쁘지 않았던 애니메이션. 여기서 디즈니와 픽사, 드림웍스를 가지고 애니메이션 업계
전체를 논하려고 하면 너무 얘기가 길어질 듯 하니 간단하게만 얘기해보자면, 월트디즈니는 픽사나 드림웍스의 성공을
부러워해 그들처럼 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들 만의 장점을(그게 혹자들에게는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되더라도) 오히려 더
부각시키는 편이 월트디즈니의 옛 명성을 되살리는 길이라고 본다. 이런 좋은 예로 지난해 초 개봉했었던 <마법에 걸린 사랑>을
들 수 있겠다. 자신들 만이 가진 히스토리와 장점을 부각시켜 기존의 스토리텔링에 리듬감을 불어넣는다던가, 새로운 기술과
감각을 조금씩 가미하는 식으로 업그레이드 시켜나가는 것이, 자신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좋은 옷을 애써 입는 것 보다는
훨씬 낳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볼트>는 약간 중간 지점에 위치한 작품일 듯 하다.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3D 기술력은
경쟁사들과 비교하여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놀랍게 성장했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아주 고전적이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아래부터 두 단락에는 영화 본편에 대한 내용과 영화 <트루먼 쇼>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볼트>의 이야기는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 쇼>를 바로 연상시킨다.TV드라마 속 슈퍼독으로 활약하고 있는 개 '볼트'는
촬영장 내를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는, TV 속 슈퍼독 캐릭터를 보이는 그대로 믿고 있는 또 다른 '트루먼'이다.
악당인 '녹색눈'으로부터 주인이자 친구인 '페니'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 밖에는 없는 볼트는, TV드라마의 내용상 페니가
녹색눈에게 납치되게 되자 세트장내 컨테이너를 박차고 페니를 구하기 위해 나선다. 이 과정 속에서 볼트는 우연히 촬영장
밖은 물론 이곳이 위치한 헐리우드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동부로 옮겨지게 되고, 처음으로 가상 현실 공간을 벗어나 현실 공간에
놓여진 볼트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TV쇼라는 가상현실에 이것이 가상현실인 줄 홀로 모르는 주인공이 놓여있다는 점은 <트루먼 쇼>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지만,
트루먼은 가상현실 속에서 이를 깨닫고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볼트는 우연한 기회에 가상현실을 벗어나게되,
현실 속에서 자신이 그 동안 겪었던 삶이 허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하겠다.
그러니까 한편으론 촬영장 문을 스스로 박차고 나간 <트루먼 쇼>의 후속편 격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나중에야 현실을 깨닫게 되었음으로 여전히 <트루먼 쇼>와 동일선상에 놓여진 영화라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이렇게 보면 두 작품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상당히 유사한 것으로 생각되기 쉬우나, 잘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루먼 쇼>의 경우 평생을 가상현실 속에서 살았던 주인공이 어른이 되어 자신이 가상현실 속에 살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적극적으로 이를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고 결국 세트장 문을
박차고 나서면서 '사람들의 트루먼'이 아닌 '나 스스로의 트루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볼트>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볼트에게는 자신의 지나온 삶이 가상현실 임을 알아차린 뒤에도 이를 적극적으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없다.
볼트에겐 바로 '페니'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가상현실임을 알게 된 이후에도 페니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며
페니만은 진짜 '현실'일 것이라는 강한 믿음만이 볼트가 힘든 여정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주원동력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물론 <트루먼 쇼>의 경우와 이야기를 더욱 선호하지만, <볼트>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디즈니다웠다고 생각된다.
가상현실=악당 이라는 설정 속에서도 희망과 빛을 대변하는 페니의 존재는, 이 영화를 이야기적 모티브를 제공하는 가장
핵심적 캐릭터라고 생각된다. 만약 정말로 가상현실=악당 이었다면 <트루먼 쇼>의 경우처럼 탈출 하는 것이 곧 해피엔딩이
되었겠지만 (물론 <트루먼 쇼>의 경우도 그 가상현실 속에 살고 있는 트루먼을 안타깝게 여긴 실비아라는 캐릭터가 존재하긴
한다) 페니가 있었기에 <볼트>의 엔딩은 <트루먼 쇼>와는 다른 방향으로 맺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볼트가 여정 중에 그 동안 자신의 삶이 가상현실임을 깨닫고 고양이 친구인 '미튼스'에게 평범한
강아지들의 삶에 대해 설명을 듣게 되는 부분이데, 얼핏보면 이 부분이 마치 <월-E>에서 이브가 자신이 정지되어 있을 동안
월-E가 했던 일들을 영상 자료로 후에 보게 되면서 애틋해 하는 것과 유사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이 보통 강아지들의 삶으로 일컬어진 일련의 이들이 과연 옳기만 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보수적인 디즈니의
스토리텔링에 비판적인 주장을 펼칠 수 있겠다.

'원래 개들은 이렇게 살아' 하면서 보여주는 것들이 이 영화에서 줄기차게 얘기했던 페니와 볼트 간의 '친구'관계를 떠올려
봤을 때(이 영화에서는 단 한번도 '주인'이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 과연 '친구'에 더 가까운 것인지 아니면 일반적인
'주인'과의 관계에 더 가까운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강아지에게까지 동등한 관계를
요구하는 것은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 할 수 있지만, 앞서도 얘기했듯이 이 영화에서는 줄기차게 '주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을 계속 '친구'라는 개념으로 설명해 왔기에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반려동물과 인간 과의 관계에 대한 영화들 중 <우리 개 이야기>의 경우를 비춰봤을 때 <볼트>에서 이야기하는
동물과 인간의 친구관계란 어차피 주종관계의 또 다른 이름밖에는 되지 않는 듯해 아쉬움이 남았다.





사실 지금까지는 비교적 비판적인 이야기들을 주로 했지만 반려동물로서 강아지와 고양이를 모두 다 키워봤던, 그리고 앞으로도
기회만 된다면 반드시 다시 키우고 싶은 사람으로서 <볼트>가 주는 뻔한 감동적 장면에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감독인 바이론 하워드와 크리스 윌리엄스를 비롯해 작업에 참여한 애니메이터들이 상당히 많은 시간
강아지의 움직임을 관찰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기존 강아지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들에서는 현실 속
강아지의 움직임들과는 사뭇 다른 '영화적'인 느낌이 강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영화 속 '볼트'의 움직임 하나 하나는
정말 실제 살아있는 강아지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디테일했다. 개인적으로는 놀라운 3D 애니메이션 기술력
보다도 이러한 움직임 때문에 더더욱 이 작품이 실감났던 것 같다. 굉장히 미세할 수 있지만 강아지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던 강아지만의 작은 움직임들을 잘 표현해내고 있고, 관절의 움직임들도 상당히 오랜 시간 연구한
티가 나는 애니메이션이었다.




고양이 캐릭터인 '미튼스'와 햄스터 '라이노' 캐릭터도 흥미로웠다. 특히 '라이노'는 <볼트>에서 '웃음'을 담당하고 있는
캐릭터라 할 수 있는데, 라이노가 보여주는 오타쿠적인 설정도 재미있었고, 볼을 이용한 움직임과 유머스런 장면들도
나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미튼스'가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는 장면에서 울컥했었는데, 볼트가 주인공이라 어쩔 수
없긴 했겠지만 미튼스의 이야기를 조금 더 다뤄줬어도 크게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미튼스가 주인공
이었다면 주인의 무책임함, 그야말로 반려동물을 그저 '애완동물'로만 여기는 인간들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 곱씹어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볼트가 주인공이니 여기까지 다룰 수는 없었을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삶을 한탄하며 슬퍼하는 미튼스의 표정에서는 얼마전 한국단편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보았던 한 작품 가운데 고양이와 강아지 한 마리가 바에 앉아 자신의 처지를 슬프게(정말 구슬프게!) 그들 만의 언어로
이야기하던 그 작품이 떠올랐다.

기술적인 얘기를 거의 하지 못했는데, <볼트>는 얼핏 사전 정보없이 보면 이 영화가 디즈니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휼륭한
3D 그래픽 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볼트의 털들은 자연스럽게 잘 표현되고 있으며('털'이라는 것이 그래픽 수준을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점이라는 점에서 <볼트>는 제법 우수한 애니메이션이라고 볼 수 있겠다), 초반 영화 속 장면들 영상에서는
실사를 방불케 하는 깔끔한 디자인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영화가 영상 측면에서 디즈니 작품으로 확 와닿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캐릭터들의 모습 때문이기도 했는데, 마치 <인크레더블>에서 뛰쳐나온듯한 인물들의 이목구비는 이 영화에 장점도
단점도 될 수 있을 듯 하다.




존 트라볼타가 더빙한 볼트의 목소리 연기는 만족스러웠다. 존 트라볼타의 목소리가 제법 익숙한 나로서도 영화 초반 이후부터는
그의 이미지를 지우고 극에 몰입할 수 있었으니 이 정도면 성공이다. '페니'는 마일리 사일러스가 연기했는데 크게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던 것 같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는 노래가 한 곡 흐르는데 더빙 연기를 맡은 두 배우가 직접 노래하고 있다.
오랜만에 존 트라볼타의 노래를 듣게 되어 반갑기도 했다. 3D 디지털 자막 버전을 보고 싶었으나 국내에서는 사실상 상영하는
곳이 없음으로 불가피하게 일반 자막 버전을 선택했는데, 3D 버전을 보지 못한 아쉬움이 여전히 남는다. 더빙 판본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듯 한데, 나중에 DVD나 블루레이가 출시되면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



1. 사실 원래 제목은 '뻔한 감동, 그래도 감동' 이었다. 아....이 참을 수 없는 동심의 용솟음이란 -_-;;

2. 영화를 보고나니 다시 한번 반려동물과 함께 하고 싶은 생각도 용솟음쳤다.

3. 엔딩 크래딧 디자인의 구성이 마치 <월-E>와 흡사함을 느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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