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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怒り, 2016)

누군가를 완전히 믿는다는 것


2010년작 '악인'에 이어 다시 한번 요시다 슈이치의 원작을 영화화 한 이상일 감독의 신작 '분노 (怒り)'는 믿음에 관한 영화다. 분노라는 제목은 무엇에 분노하고 있는가? 분노의 대상이 누구인가? 등의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 물론 그 질문 역시 이 영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주제이기도 하지만 더 큰 메시지는 믿음이라는 아주 진부하고 원초적인 감정 혹은 행동에 있다.


영화는 도쿄에서 벌어진 한 부부의 잔혹한 살인사건을 던져두고 이 사건의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가정 하에 치바와 도쿄, 오키나와를 각각 배경으로 하는 전혀 다른 세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이 구성은 범인이 누구인가를 쫓는 방식처럼 보이지만 영화 '분노'는 범인을 찾는 스릴러가 아닌 이 하나의 살인사건이 각기 다른 세 명의 인물과 그 주변의 인물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주목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앞서 언급했던 의심과 믿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깊이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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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명의 인물들이 하나의 스크린에 등장하지만 이 세 개의 이야기는 결코 서로 관여하지 않는다. 즉, 각각의 이야기는 독립적으로 존재가 가능하되 단지 전제가 되는 사건만 공유하고 있을 뿐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 셋 중 어떤 이야기 하나 만을 골라서 영화화를 했어도 충분히 힘 있는 드라마가 가능했었을 텐데, 왜 세 개의 이야기를 같은 시공간에 겹쳐 놓았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건 아마도 전혀 다른 환경에 놓인 인물들이 동일한 사건을 두고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받게 되는지, 즉 비슷해 의심과 신뢰의 과정 속에서 어떤 잘못이나 상처를 겪게 되는지 보여줌으로써 이 영화의 네 번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나만의 분노, 아니 믿음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려 보게 만든다.


이상일의 '분노'를 보며 새삼스럽지만 누군가를 완전히 믿는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믿는다 는 말을 자주, 또 쉽게 하곤 하는데 그 믿는다는 말속에 과연 영화 속에서 등장했던 것과 같은 각오나 확신이 내포되어 있었는가 싶다. 이 영화가 끝까지 힘을 받게 되는 건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예상되는 세 명의 인물에 대한 그 주변 인물들의 의심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합리적이고 수긍이 되는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들의 의심을 보고는 '어떻게 저들을 의심할 수 있지?'라기보다는 오히려 '세 명이 다 범인일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합리적인 의심의 영역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마지막이 더 쓰라린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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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화를 보고 들었던 질문으로 돌아와 보자. 누군가를 완전히 믿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영화 속 인물들의 의심이 합리적이라는 이유보다 더 중요한 건 그들의 의심이 확신에 가깝게 발전하게 된 이유다. 이들이 의심을 갖게 된 과정을 보면 그 대상의 말과 행동이나 과거 등으로 미뤄봤을 때 충분히 의심이 갈 정도의 합리적 추론은 결정적 이유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이들은 별 다른 의심을 갖고 있지 않았던 상태에서 자신이 아끼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방어 수단으로써 경계 차원으로 의심을 갖게 되고, 또 확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즉, 앞서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들의 의심을 두고 뭐라 탓할 수 없을 정도로 이 과정에 대한 묘사는 현실적이고 또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분노'가 그저 어쩔 수 없음의 비관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작품인가 라고 묻는 다면 전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이상일 감독의 '분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어야 한다 라고 말하고 있는 영화다.  그 과정의 상처를 잔인하리만큼 냉혹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걸 관객이 이전처럼 쉽게 내뱉을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자 끼치고자 했던 영향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완전히 믿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것. 혹은 완전히 믿어야만 하는 존재를 언젠가는 만나게 된다는 것. 이건 인생의 커다란 고통이자 또 희망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마지막 그럼에도 믿고자 했었던 아이코 (미야자키 아오이)가 타시로 (마츠야마 켄이치)를 지긋이 바라보는 그 눈빛은 그래서 더 처연하고 또 희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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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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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 (悪人 Villain, 2010)
외로운 존재와 소중한 자를 둘러싼 슬픈노래


지난해 일본내 가장 화제작 중 하나였던 이상일 감독의 '악인 (
悪人)'은, 그 제목과는 달리 단호하거나 세기가 강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굉장히 섬세하고 따듯한 시선으로 세상에서 '악인'이라 불리는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저 '우리가 악인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연약한 이들이 많다' 라거나 '이들을 악인으로 만든건 사회다'라는 것 정도를 담아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좀 더 넓은 의미의 포용과 관계를 담아내려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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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살인사건을 둘러 싸고 유이치 (츠마부키 사토시)와 요시노 (미쓰시마 히카리)와 그녀의 아버지 요시오 (에모토 아키라), 요시노와 관계가 있던 남자 대학생 마스오 (오카다 마사키) 그리고 나중에 유이치와 만나게 되는 미츠요 (후카츠 에리)와 요시노를 자식같이 키웠던 그의 할머니 후사에 (기키 기린)까지. 이들의 이야기는 하나의 사건으로 엮여 있지만 각기 다른 이해관계와 슬픔 그리고 결핍을 안고 있다. 요시다 슈이치의 원작 소설을 읽지는 못해 원작과의 비교는 어렵겠지만, 이 다양한 캐릭터들의 이야기는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악인'은 러닝타임도 139분으로 결코 짧지 않은 편인데, 이 각자의 이야기 (각각이 아닌)는 조금은 독립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완벽하게 하나의 이야기로 러닝타임 내내 동일한 힘의 크기로 움직이지는 못한다. 유이치의 이야기는 너무 가려져 있고 미츠요를 만나기 전과 후의 이야기는 1막과 2막으로 나눠도 좋을 만큼의 거리감이 없지 않으며 할머니인 후사에의 이야기 역시, 중심에서 조금은 벗어나 독립성을 갖는 부분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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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지만 글 서두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악인'에는 더 넓은 의미의 포용과 시선이 존재한다. 이 포용은 마치 연골처럼 이들의 관계를 조금 더 자연스럽도록 연결시켜주는 동시에 하나의 메시지로 귀결시킨다. 다시 말해, 좀 더 유이치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에 완전히 집중해 극적인 동력을 얻지 못한 까닭은, 그 만큼 '악인'에서는 악인이 된 유이치 뿐만 아니라 그 주변과 그로 인해 돌아볼 기회와 잠재적 분노 그리고 슬픔을 표출하게 된 '이들'의 이야기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최근 들어 어떠한 사건, 특히 살인사건이나 사이코 패스 등을 그릴 때의 경향을 보면 결국 그 이면에는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무관심과 잘못이 있었다는 것으로 종결짓곤 하는데, 이 작품은 그렇게 볼 수 있는 여지가 없지 않지만 이러한 논리적이고 냉소적인 이유 보다는 감성적인 부분에 더 호소하고 기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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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내 불필요 하다 싶을 정도로 흩날리게 뿌려놓은 조각들은 마지막에가서 영화가 결국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꺼낼 때, 완전하지는 않지만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작동한다. 이 덩어리는 완벽한 하나가 되지는 못해 조금씩 갈라진 균열의 틈으로 빛이 새어나오기는 하지만, 따지고보면 이 균열이라는 것 또한 이 작품이 말하고자 했던 또 다른 외로움과 포용의 이름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점을 미처 다 느낄 수 없었더라도 영화가 마지막 던지는 메시지는 뭉클하고 울컥하게 되는 지점을 분명히 갖고 있다. 그 동안 이들의 외로움을 경험할 수 있었고, 그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슬픔과 마음의 짐을 엿볼 수 있었기에, 참아왔던 이들이 비로소 자신의 진심을 소박하게 고백하는 순간 (혹은 끝내 토해내지 못하는 것을 목격하는 순간), 영화가 들려주는 슬픈 노래에 눈물짓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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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을 맡은 츠마부키 사토시는 캐릭터의 특성상 깊이를 체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던 반면, 할머니 역할을 맡은 기키 기린이나 아버지 역할의 에모토 아키라의 연기는 역시 명불허전, 이 작품에 가장 큰 역할을 한 배우라면 오히려 이 둘을 더욱 꼽고 싶을 정도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영화에 상당히 많은 부분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는데, 극중 캐릭터들이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내면의 감정을 음악이 상당부분 역할을 부여 받아 표현하고 있는 듯 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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