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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 (Anarchist from Colony, 2017)
박열, 아니 가네코 후미코에 대해
'이 영화는 고증에 충실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실존인물입니다’
이준익 감독의 신작 ‘박열’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것은 굉장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일종의 선언이자 이 영화가 실화를 어떤 마음 가짐으로 다루고자 했는지 관객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최대한 고증에 신경을 쓴 영화들 조차 ‘실화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정도로 언급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영화는 고증에 ‘충실’했음을 영화의 무엇보다 가장 먼저 알리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은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실화 속 이야기나 인물에게 깊은 감동이나 인상을 받고 그 감동을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자 영화로 제작하게 된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들은 그 가운데서 그 메시지를 좀 더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또는 좀 더 대중적인 언어로 관객들에게 극적 요소를 더하기 위해서 허구의 장치를 정도에 따라 가미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박열’은 그런 여지를 영화 스스로가 배제하고 있다. 꼭 실화를 있는 그대로 만드는 것만이 미덕은 아닐 것이나, 영화가 고증에 충실했음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는 이유에는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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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 이유를 통해 이 영화가 갖는 가치관과 태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준익 감독의 ‘박열’은 마치 가네코 후미코가 자신의 자서전의 원고를 동료에게 전하면서 절대 화려하고 포장하는 말들로 꾸미지 말라고 했던 것처럼, 우직할지언정 외적 요소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한 영화다. 바로 그것이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제대로 알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에.
이 영화를 보며 가장 놀랐던 건 ‘아니, 겨우 몇십 년 밖에 되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를 왜 전혀 몰랐던 거지?’하는 무지로 인한 것이었다. 실제로 일제 시대 독립운동 과정 중에 민족을 위해 자신을 바쳤던 인물들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잘못되거나 숨겨져 온 경우들이 적지 않은데, 대부분은 그들이 해방 이후 납북되거나 북으로 전향했기 때문에 정치적인 이유로 이들의 삶을 가리고자 했던 경우들이었던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찾아본 결과 박열의 경우도 해방 이후 납북되었는데, 다른 이들 (예를 들면 김원봉 같은)과는 성격이 좀 다르긴 하지만 (참고로 박열은 이후 건국훈장을 받고 북에서의 죽음이 알려지자 남한에서도 사회장 수준의 추도식을 치르기도 했었다) 어찌 되었든 다른 독립 운동가들에 비해 후세에 덜 알려진 경향이 있다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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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제목은 ‘박열’이지만 영화의 내용이나 실존 인물들의 삶을 비춰보자면 가네코 후미코의 비중이 절반, 혹은 절반 이상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 영화는 페미니즘 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도 다른 보통의 영화들에 비해 훨씬 진일보한 시각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물론 여기에는 실존 인물의 삶 자체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해야겠지만) 만약 성별이나 국적이 반대의 경우였다면 이 영화의 제목과 비중은 당연히 지금의 가네코 후미코가 우선되었을 정도로 후미코의 삶은 한 인간으로서, 제국주의 시대를 살던 아나키스트로서 압도적인 삶이었다.
영화 ‘박열’은 박열과 후미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일종의 로맨스로 그리고자 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삶에 누가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보통의 로맨스가 아닌 그들 만이 가능했을 방식의 로맨스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대역죄인으로 억울하게 몰려 심문과 재판 과정에 놓이기 되는데, 둘을 심문하는 검사를 가운데 두고 두 사람이 서로의 (동지로서의) 진심을 확인하는 시퀀스는 영화적으로도 몹시 매력적이다. 또한 그저 돌아이처럼 묘사되는 과정 속에서도 그들의 자신의 논리를 정색하며 펼칠 때 순간적으로 다시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 가능했던 것도 이 영화 만이 갖는 독특한 리듬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보통 같으면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이들을 어떻게 돌아이처럼 묘사할 수가 있냐고 되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고증에 충실한 영화다. 그들은 20살, 22살의 청춘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던지는 또 다른 메시지는 청춘에 관한 것이다. 조금, 아니 많이 쓰라리지만 비켜나갈 수 없는 송곳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나의 스무 살은 그만큼 뜨거웠는가에 대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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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서 짧은 시간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삶에 대해 찾아본 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단언할 수 없는 것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정보를 찾아보고 난 뒤 더 분명해진 점이라면 박열보다는 가네코 후미코의 삶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해방 이후 박열의 행보를 보면 아쉬운 행보가 없지 않은 것, 즉 좀 더 가치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 것에 비해, 가네코 후미코의 삶이 주는 메시지는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싶을 정도로로 인상적인 것을 넘어 경의로운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보고 난 뒤 가네코 후미코의 삶이 더 궁금해졌다. 가네코 후미코라는 아나키스트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 영화 ‘박열’이 주는 의미는 결코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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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네코 후미코를 연기한 최희서 배우는 ‘동주’에도 출연했고 ‘옥자’에도 잠깐 출연하는데, 오랜만에 제대로 된 발견이네요. 다음 작품이 정말 기다려집니다.
2. 이 영화에서 가장 잘못된 홍보 포인트라면 이제훈 배우의 얼굴과 함께 '나는 조선의 개새끼로소이다'라고 써있는 메인 포스터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것만 보면 일제 시대 일본에서 살았었던 좀 특이한 조선인에 대한 이야기 정도로 보이거든요. 제국주의에 맞선 아나키스트들의 이야기로는 보이지 않아요. 실제로 그래서 못 볼뻔 했던 영화이기도 했구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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