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블루레이 : 역대급 부가영상을 만들어냈다!

(Veteran : Blu-ray special features Review)


블루레이로 영화를 다시 혹은 처음 즐기게 될 때 가장 큰 매력은 최고 수준의 화질과 음질로 접하게 되는 영화 본편의 재미도 있겠지만, 그야말로 블루레이를 통해서만 만나볼 수 있는 제작 과정 등의 뒷이야기를 첫 번째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영어로는 Special Features라고 주로 부르고 우리 말로는 부가영상으로 이르는 이 영화에 대한 다양한 영상들들은, 제작 과정에 대한 내용들을 전반적으로 다룬 메이킹 다큐멘터리나 감독, 배우, 스텝 들의 주요 인터뷰 영상, 그리고 각종 예고편 및 시사회 등의 모습을 담은 영상 그리고 감독을 중심으로 영화에 참여한 이들이나 평론가 등이 참여한 음성해설 (코멘터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블루레이를 보고 난 뒤 개인적으로나 또는 매체 등에 기고를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해오면서 하나 아쉬운 점이 있었다. 특히 국내 영화의 블루레이 타이틀에 대해서 말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극장이 아닌 블루레이를 통해 영화를 다시 보게 될 때 가장 궁금하고 기다려지는 매력 포인트가 바로 부가영상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한국 영화의 부가영상 구성이나 완성도는 매번 아쉬움이 남는 수준이었다. 굳이 변호를 하자면 결국 국내 시장 상황의 현실을 또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실제로 감독 본인이 DVD나 블루레이 제작에 대한 열의를 갖고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많은 자료들을 최대한 남기고자 노력한 경우도 없지 않았으, 이후 영화의 흥행 성적에 따라, 혹은 흥행을 했더라도 물리 매체를 중심으로한 국내 2차 시장의 규모가 워낙 협소하다 보니 제작비를 감안하여 최소한의 부가영상이 수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양적으로 부가영상이 많은 경우는 적지 않았으나 질적으로 보았을 때는 확실히 만족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몇 개의 주제로 나누어 부가영상이 수록된 경우에도 인터뷰 등이 중복되어 수록되는 경우가 많았고,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임에도 특별히 촬영 소스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은 탓에 SD급의 떨어지는 화질로 수록된 경우도 없지 않았다. 또한 전반적으로 DVD나 블루레이를 애초부터 감안하지 않은, 그러니까 부가영상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크게 고려하지 않은 다른 성격의 영상들이 끼워 넣기 식으로 수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구성 측면에서는 특히 아쉬운 면이 컸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영화가 성장하는 가운데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인정받는 스타 감독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자신의 작품에 더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환경이 조금씩 마련되면서, 어쩌면 가장 근본적인 곳에서부터 긍정적인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서 그 영화를 (아마도) 가장 사랑하는 이라고 할 수 있는 감독 본인이, 자신의 영화가 그냥 그저 그렇게 평범한 (솔직히 말해 허접한) 물리 매체로 제작되는 것에 더 큰 반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건과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오해가 생길 수도 있으니 긍정적인 의미로 바꿔 말하자면, 감독이 자신의 작품이 더 나은 2차 물리 매체 (블루레이)로 제작될 수 있도록 더 적극적으로 제작사에 어필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 결과물을 첫 번째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류승완 감독의 최근작 '베테랑'이 아닐까 한다. 적어도 내가 확인한 바로는 그렇다. 








예전에 '베를린'의 DVD가 발매되었을 즈음 류승완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을 때 '베를린' DVD 그리고 그 당시 곧 발매 예정이었던 블루레이에 대해 적지 않은 아쉬움을 이야기하던 기억이 난다. 감독 역시 이 시장의 규모나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의 영화가 더 풍성하고 높은 완성도의 블루레이로 발매되기를 원하는 갈증을 해소하기엔 아무래도 부족함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점 역시 오해가 있을까 부연을 하자면, 해당 타이틀의 완성도가 특별히 떨어졌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류승완 감독이 평소 DVD나 블루레이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그 어떤 팬들 보다도 더 나은 블루레이가 나오길 바랐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이후 '베테랑'의 블루레이 제작에는 더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이 있었고 결국 기획과 제작을 맡은 CJ E&M의 주도 하에 제작 진행 및 오소링을 맡은 플레인 아카이브 그리고 구성/편집을 맡은 RABBIT ON THE MOON 까지 세 회사의 협엽을 통해 그간 한국 영화 블루레이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부가영상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럼 본격적으로 '베테랑'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에 대해 살펴보자.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전반적으로 한국영화 블루레이, DVD의 경우 부가영상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는 경우가 (아직도) 대부분이기 때문에, 추후 발매되는 매체의 부가영상 역시 인터뷰가 여러 번 중복되거나, 다른 목적을 위해 촬영된 인터뷰나 촬영 장면을 범용 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베테랑’ 블루레이는 무엇보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부가영상(메이킹)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인터뷰들과 많은 촬영 분량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추후 천만 관객을 넘는 흥행이 있고 나니 진행한 부가적인 인터뷰 등이 아니라 이미 영화 제작 당시 많은 인터뷰나 자료들을 현장 촬영해 두었다는 얘기다 (물론 이후 진행된 인터뷰 들도 있고).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전체적으로 부가영상이 메뉴에 맞춰 수록하는 것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기획/편집된 영상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감독이나 배우의 인터뷰 중간중간에 그 인터뷰와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영화 속 장면이 삽입된 것은 물론, 영화 속 장면을 인용해 인터뷰 중간에 유머를 넣은 것도 한국영화 부가영상에서는 거의 첨 보는 경우라 신선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영화를 볼 때 보다 더 놀랐다!). 어쩌면 벌써 한 참 전에 이런 부가영상을 가진 한국 영화 블루레이가 있었어야 했는데, 이제야 제대로 된 타이틀을 만나게 된 기분이다.




'탐문수사 (기획 배경/자료조사)'에서는 류승완 감독의 상세한 인터뷰를 영화 속 장면들과 함께 흥미롭게 전한다. ‘베테랑’이라는 제목을 선택한 이유와 이 제목이 영화에 미친 영향들 그리고 이런 구도의 이야기를 기획하게 된 배경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한 단순히 ‘베테랑’에 국한된 이야기뿐만 아니라 감독의 전작인 ‘부당거래’와 ‘베를린’의 영향 혹은 유사한 점과 차이점 들도 들을 수 있어 유익하다. 그리고 이 영화를 위해 만난 실제 형사들, 경찰, 사회부 기자, 기업 관련인 등과의 취재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 들을 수 있다. 더 실감 나고 디테일한 묘사와 이야기 전개를 위해 얼마나 많은 현실 속 인물들을 만나 취재를 진행했는지 새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작전설계 (캐스팅/로케이션)'를 통해서는 주요 캐릭터들에 대해 왜 그 배우를 캐스팅하게 되었는지 뒷 이야기를 들려준다. 감독의 인터뷰는 물론 배우들의 인터뷰 역시 부가영상을 위해 별도로 제작된 인터뷰 영상이라 무엇보다 메리트가 있다. 또한 이런 배우 인터뷰 부가영상의 경우 유명한 1~2명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광수대 팀원 전원의 캐릭터 소개와 적지 않은 분량의 배우 인터뷰가 수록된 점도 확실히 인상적이다.


로케이션에 대한 부분도 조화성 미술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자세하게 들려준다. 극 중 경찰서의 촬영지는 어떤 곳인지 또 조태오의 공간은 어떤 곳에서 촬영되었는지에 대해 소개하는데, 단순히 로케이션 및 세트에 관한 미술적 설명뿐만 아니라, 그 로케이션 장소가 영화적으로 갖는 의미까지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더한다. 






'사전훈련 (액션 메이킹)'에는 류승완 영화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액션 메이킹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처음부터 감독이 좋아하는 성룡 영화의 액션을 구현하고자 했던 이 영화의 액션 디자인에 대해, 감독과 무술감독인 정두홍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소개한다. 




'현장출동 (촬영/미술)'에서는 조화성 미술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의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제법 상세하게 들려준다. 세트 디자인과 각 공간에 놓인 소품들에 대한 의미들에 대해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배치하게 되었는지 들려주는데, 영화를 볼 때 미처 다 포착하지 못했던 미술적 요소들에 대한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편집이라는 역할은 하나의 영화를 완성하는 데에 연출만큼이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 할 수 있는데, 그간 한국영화에서는 편집자에 대한 조명이 많지 않았던 것에 반해 이번 ‘베테랑’ 블루레이에서는 별도의 '사건수습 (편집/CG/음악)' 섹션을 통해 영화의 편집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들려준다. 


이 영화의 편집을 맡은 김상범 편집감독의 인터뷰가 수록되었는데, 감독의 인터뷰와 코멘터리만큼이나 흥미롭고 유익한 섹션이었다. 참고로 김상범 편집감독은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왕의 남자’ ‘아저씨’ ‘부당거래’ 등 약 80여 편의 한국영화의 편집을 맡은 마스터 편집 감독이다.





마지막으로 '사후보고 (개봉/반응/속편계획)' 에서는 해외 관객들의 반응에 대한 이야기들도 만나볼 수 있는데 국내 관객과는 조금 차이를 보이는 해외 관객들의 반응 뒷이야기도 흥미롭다. 속편에 관한 이야기도 전해 들을 수 있는데, 언젠가 만나보게 될 ‘베테랑 2’가 벌써부터 기대되는 영상이었다.





* 삭제 장면에는 이동휘 배우의 씬들이 제법 있었다.




'베테랑'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은 전체적으로 각 섹션별 분량이 아주 많은 편은 아니었는데 (각 20~30분 수준), 확실히 양적인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구성과 편집이 특히 마음에 쏙 드는 완성도였다. 류승완 감독의 인터뷰는 각 섹션들을 통해 거의 대부분 등장함에도 중복된 내용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정보량이 상당했으며, 무엇보다 영화를 더 재미있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부가영상'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해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고 유익한 인터뷰 들이었다.




* SITGES 영화제에서 류승완 감독에게 보내 온 친필(?) 선물 ㅎㅎ




마지막으로, 영화 장인 리들리 스콧의 DVD나 블루레이를 주의 깊게 살펴본 이들이라면 아마 잘 알겠지만, 그가 연출한 영화의 블루레이에서는 종종 그의 버금가는 잘 짜인, 완성도 높은 메이킹 다큐를 만나볼 수 있었다. 그 메이킹 다큐멘터리들을 만든 이는 감독이자 프로듀서인 찰스 데 라우지리카 (charles de lauzirika)라는 감독이다. 한 번 그의 메이킹 다큐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 이후에는 리들리 스콧의 영화만큼이나 그가 만든 영화의 메이킹 다큐를 기다리게 될 정도로 그가 만든 부가영상의 완성도는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가 되었다 (찰스 데 라우지리카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 번 별도로 자세히 소개해 볼 예정이다). 



* 찰스 데 라우지리카가 작업한 메이킹 다큐가 수록된 리들리 스콧의 '프로메테우스' 블루레이 부가영상에 대한 소개 글

프로메테우스 _ 그 숨겨진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 '베테랑'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을 제목 그대로 스페셜한 메이킹으로 만들어 낸 제작진들!


국내에서도 최근 '올드보이'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으로 메이킹 다큐멘터리인 '올드 데이즈'가 별도로 제작되기도 했는데, 물론 '올드 데이즈'는 그야말로 앞으로 다시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 규모의 시도이기는 했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영화의 매력을 한층 더 배가 시키는 역할을 하는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한국 영화 블루레이에서도 자주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란다. 또 전체적으로 기획된 구성의 부가영상을 지속해서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의 제목처럼 '베테랑'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은 해외 영화 블루레이의 부가영상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인 역대급 완성도를 보여준다고 까지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간의 한국영화 블루레이의 아쉬움과 현실로 미뤄봤을 때 '베테랑'은 그런 첫 번째 시도로서 몹시 반가운 블루레이임이 틀림 없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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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Veteran, 2014)

울분에 가득찬 현실세계의 활극



2010년 류승완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했던 '부당거래'와 2012년, 어쩌면 대한민국에서만 가능했을 스파이 영화인 '베를린' 이후 그가 선택한 새로운 이야기는 또 한 번의 형사이야기 '베테랑' 이었다. '베테랑'에 대한 베일이 조금씩 벗겨지면서 영화가 자신을 홍보하는 방식은 철저히 '오락영화'라는 것이었다. 범죄오락액션 에서 분명 오락에 초점이 맞춰진 방식은 특히 이 영화가 개봉하는 시기가 여름 그리고 휴가철이었기에 마케팅을 오래 해왔던 입장에서 봐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 마케팅 방식이었다. 하지만 개봉에 앞서 '베테랑'이 더 오락액션영화 임을 강조해 갈 수록, 류승완 감독의 오랜 팬의 한 사람으로서는 조금씩 걱정스러운 점들도 있었다. 여름 극장가에 걸맞는 영화도 좋지만, 최근 좀 더 알게 된 류승완 감독이라면 더 진일보한 영화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이 같은 걱정은 그야말로 기우일 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베테랑'은 영화가 자신을 홍보해 온 것처럼 범죄오락액션 영화가 맞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근본에는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과 그에 따른 울분과 씁쓸함이 담겨있는, 결코 간단히 볼 수 없는 입체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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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룡 영화 그리고 메시지가 담긴 분노의 날라차기


먼저 액션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미 전작 '베를린'에서 또 한 번 액션 연출에 있어서 진일보한 시퀀스를 만들어 냈던 류승완+정두홍 콤비는 이번 '베테랑'에서도 뻔한 액션 시퀀스를 만들지 않기 위해 애썼음을 알 수 있었다. 가장 눈여겨 볼 만한 액션 시퀀스는 영화 초반 주인공 서도철 (황정민)이 불법 자동차 공장에서 일당들과 벌이는 장면과 그 이후 이어지는 컨테이너 박스들을 배경으로 한 항구에서의 장면인데, 일단 첫 시퀀스에서는 성룡 영화의 느낌이 강하게 묻어난다. 류승완 감독이 성룡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점인데, 액션 연출에 있어서 이 시퀀스 처럼 직접적으로 그 장점을 활용하고자 했던 시퀀스는 의외로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액션 연출을 보면 철저하게 도구를 활용하고, 그 도구 및 주변 물건들이 갖는 특성을 100% 액션 연출에 가미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로 인해 코믹한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단순히 잘 싸우는 사람이 주도 하는 액션을 보는 것 이상의 '보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이후 다시 한 번 이야기하겠지만 '베테랑'에는 유독 날라차기, 그것도 두발 날라차기가 자주 등장한다. 주로 미스봉 (장윤주)이 마치 필살기처럼 사용하는 이 날라차기는 단순히 캐릭터의 시그니쳐 무브로 활용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겠다. 일단 날라차기 (그것도 두발 날라차기)라는 기술의 특성을 보았을 때 어쩌면 그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느껴질 정도로, 실패했을 경우 타격이 크고 (실제로 실패했을 경우의 타격에 대한 장면이 영화에도 등장한다) 무언가 모든 걸 다 던져 버린다는 감정이 실린 기술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으로 보았을 때 이 분노의 날라차기는 설령 실패하거나 한 방에 보내지 못해 더 맞게 될 지언정, 한 번 시원하게 때려줘야겠다는 심정이 느껴지는 선택이었다. 이것은 이 영화의 주된 모티브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 날라차기는 결코 흘려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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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내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


혹자는, 특히 전작 '부당거래'를 좋아하는 이들 가운데는 '베테랑'을 보며 그저 오락 영화이기만 하다고 아쉬워 하는 경우도 있는데, 내 생각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오히려 '베테랑'을 보며 든 생각은 '어? 이거 부당거래 보다도 더 직접적인데?'라는 생각이었다. 아마 뉴스를 관심 있게 보는 이들이라면 영화 속 이야기를 본 기억들이 있을 텐데 (워낙 세상이 떠들석한 뉴스였으니), 극 중 유아인이 연기한 조태오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이 재벌가들이 벌이는 행동들은 그저 혀를 차며 '저런 나쁜 놈들...'하기에는 너무 직접적인 묘사였다 (오히려 부당거래의 묘사보다 베테랑의 묘사가 훨씬 더 직접적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렇게 까지 직접적인 묘사를 한 이유는 관객들로 하여금 스스로 느끼게 끔, 혹은 당장은 느끼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문득 '아, 이게 그냥 영화가 아니었네'라고 생각될 만한 여지를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더 오락영화 임을 강조하고 그렇게 만들고자 했다는 느낌도 있었고.


그리고 '베테랑'에서 돋보이는 대사들은 전작들과는 다르게 형사나 재벌, 혹은 범죄자들이 현장에서 쓰는 진짜 단어나 대사들이 아니라 서도철의 아내인 주연 (진경)의 대사나, 화물차 운전사로 등장했던 배기사 (정웅인)의 대사들이었다. 이 대사들이 와닿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전자로 언급한 대사들과는 조금 다른 이유에서 였는데 전자의 경우, 진짜 형사나 범죄자들이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들이 포함된 대사들을 듣게 되면 잘은 몰라도 전문적이고 실감나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면, 후자의 경우는 잘은 몰라도가 아니라 너무 잘 알 수 밖에는 없는, 감정이 동요하는 대사들이었기 때문에 와닿을 수 밖에는 없었다. 즉, 대부분의 관객은 형사도 아닐 뿐더러 형사 가족도 아니고 그렇다고 재벌이나 셀러브리티도 아니지만, 그들과 엮여 있는 이 세계에서 나오는 대사들은 너무도 현실 접근성이 높았던 터라 일부분 영화적으로 묘사된 부분들 마저도 자연스럽게 읽히는 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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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신 맞아주고 때려주고 욕해주는, 선배의 영화


솔직히 개인적으로 '베테랑'이 통쾌하다고는 말 못하겠다. 너무 현실에 찌든 탓인지 극 중 서도철 처럼 조태오 같은 인물에 맞설 자신도 없고, 그의 아내처럼 흔들리는 와중에 끝까지 거절할 수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영화 속 인물들이 과연 이후에 행복해졌을까 혹은 조태오는 제대로 된 심판을 받게 될까 라는 질문에 부정적인 답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도 이 같은 점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히 먼저 말하자면 '베테랑'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같은 일종의 허무맹랑할 수도 있는 맹목적 메시지 보다는, 현실에 근거하여 '야, 그래도 해보는데 까지는 해봐야지, 이건 아니잖아. 형이 먼저 해볼께'라고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영화는 유독 그런 점을 강조한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쪽팔리게 살진 말아야지'

이를테면 이런거다. 누구나 거대한 권력이나 무력 앞에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주장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런 것을 강요하는 것조차 일종의 폭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끝까지 소신을 지키라는 것 보다는,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갖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즉, 잘못된 것과 끝까지 싸우지는 못하더라도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마저 버려서는 안되며, 현실적인 어려움은 있지만 그 양심마저 버리게 되었을 때 과연 무엇이 남는지를 되물으며, 그렇게까지 살지는 말자 라고 이야기하는. 최대한과 최선의 노력을 강요하는 영화가 아닌, 최소한 지켜내야 할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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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영화 후반부 서도철과 조태오의 대립과 결투는 특별하게 다가왔다. 이것은 분명 권선징악의 성격을 띄고 있지만 악을 선이 완전히 물리쳐서 대리만족을 얻게 되는 이야기라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누군 가가 악에 대신 맞서서 싸워주고 아니 피 흘리고 멍들고 부러지도록 맞아주고, 시원하게 욕이라도 한 마디 해줌으로서 그런 용기를 갖지 못했던 이들의 마음 속에 작은 불꽃이라도 꺼지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도심에서의 액션 장면에서 서도철이 주변의 CCTV를 인지하고 전과는 다르게 미란다 원칙을 먼저 말하고 시작하는 장면 역시, 단순히 정당방위를 성립시키기 위해 참아낸 과정이라고 보기 보단 오히려 그 주변을 둘러싸고 휴대폰 카메라도 지켜보고 있던 수 많은 보통 사람들이, 이 상황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을 때까지 육체적으로 견디며 기다려준다는 느낌이 강했다.


류승완 감독의 액션 연출에서 거의 대부분 발견되는 점은 바로 피로감 그리고 고통인데, '베테랑' 역시 그 점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하지만 전작들과는 다르게 그 고통과 고단함이 기술적으로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를 뒷 받침하는 기능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베테랑'의 액션은 더 매력적이고 인상적이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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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보며 든 가장 깊숙한 곳의 느낌은, 영화가 끌어 오르는 울분을 꾹꾹 눌러 담으며 이를 아주 세련되게 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저 울분을 토해내는 것에만 집중해서 결국 아무도 그 울분이 왜 일어났는지, 왜 그렇게까지 분노하는지를 공감할 수 없게 되는 것에서 영리하게 빠져나와, 결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 해 낸 그런 오락영화였다.


아, 진짜 베테랑이다!



1. 아트박스 사장님이 좀 더 활약하는 확장판 없나요? ㅎㅎ

2. 초반 정웅인 씨가 등장하는 장면은 왜 죄다 그렇게 불안하고 가슴 졸이게 되는지. 차는 사고가 날 것만 같고, 컨테이너가 어디서 떨어질 것만 같고.

3. 극 중 인물 가운데 제일 불쌍한 사람은 최상무 (유해진) 같아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스템 속에 갇혀버린 사람.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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