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 스피치 (The King's Speech, 2010)
절제하는 치유의 영화


이번 아카데미의 주요 부분을 석권하며 큰 화제를 모았던 톰 후퍼 감독의 '킹스 스피치 (The King's Speech)'를 이제야 만나보게 되었다. 콜린 퍼스와 제프리 러쉬 그리고 헬레나 본햄 카터가 출연하는 말더듬이 왕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몇가지 예상되는 수순들이 있었다. 실제로 '킹스 스피치'는 대부분의 수순을 그대로 밟아가지만 감정적으로 과잉되거나 신파로 충분히 그려질 수 있는 부분들을 과감히 절제하고 오히려 심심할 정도로 꾹꾹 눌러담는 영국 영화의 위엄을 갖고 있는 작품이었다.




 The Weinstein Company.  All rights reserved



'킹스 스피치'의 미덕이라면 감정적으로도 그렇고 이야기 구성면에서도 곁가지들을 과감히 다 쳐내고 조지 6세(콜린 퍼스)의 치유의 영화에만 집중한 것을 들 수 있겠다. 사실 이 이야기는 역사적인 배경 측면에서도 왕위에 대한 이야기와 2차 세계대전 등 디테일하게 풀어갈 수 있는 이야기들이 참 많은데, 이런 부분들을 그냥 배경처럼 은은히 배치하고 핵심적인 이야기는 매우 소소한 것을 내세움으로 인해 오히려 배경의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했을 때와 맘먹는 효과를 일으켰다. 즉, 위의 이야기들을 배경 정도로 사용하긴 했지만 이것들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이 영화에서 매우 큰 차별점이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실화라는 점에서 그리고 말더듬이를 비롯해 결핍을 겪어온 주인공의 배경이 왕자(왕)라는 점에서 핵심의 깊이를 더해준다. 다시말해 뉴스 아나운서를 꿈꾸는 주인공이라던지, 연설이 생활인 정치인이었어도 이 이야기는 충분히 동일한 이야기였을테지만, 실제 왕이었던 조지 6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면서 주인공이 겪는 시련과 갈등에 깊이가 더해졌고 그를 치유하기 위해 등장한 라이오넬 (제프리 러쉬)의 캐릭터 역시 상대적인 깊이를 더 풍부하게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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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영화는 치유에 관한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텐데,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치유되는 주인공과 그 주인공을 돕는 조력자의 면면에 모두 충실한 작품이었다. 말더듬이 왕으로 수많은 연설들 앞에서 매번 긴장하고 힘들어 해야만 했던 조지 6세의 심정은 콜린 퍼스의 완벽한 연기로 매우 섬세하게 표현되고 있는데, 물론 말더듬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연기한 장점도 분명 있었지만 이 영화에서 콜린 퍼스가 진정으로 빛나는 장면들은 말을 할 때가 (더듬거나 그렇지 않거나를 떠나서)아니라 눈빛과 표정으로 말할 때 였다. 

사실 이 영화가 개인적으로 좀 더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바로 주인공을 돕는 조력자를 묘사하는 섬세함 때문이었다. 일단 제프리 러쉬가 연기한 라이오넬의 경우는 조지 6세에 버금가는 자신 만의 스토리를 갖고 있는 캐릭터였다고 볼 수 있을텐데 (초반 연극 오디션을 보는 장면을 보고서는 그의 이야기가 제법 이어질 줄로만 알았었다), 하나의 이야기에 집중한 것은 좋았지만 라이오넬의 이야기는 조금은 더 비중을 두었더라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즉, 대부분의 치유의 영화가 그렇듯이 일방적인 치유가 아니라 상처받은 사람이 치유되는 동시에 그 상대마저 그 과정 속에서 자연 치유가 되는 구조말이다. 이랬더라면 좀 더 감정적으로 일어나지 않았을까 싶은데, 톰 후퍼는 어찌나 절제하는지 이 마저도 허락하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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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력자를 묘사하는 섬세함에 있어서 돋보였던 캐릭터는 헬레나 본햄 카터가 연기한 왕비 캐릭터였다. 라이오넬의 이야기가 절제되어 조금은 아쉬운 경우였다면, 왕비야 말로 절제를 통해 완벽하게 묘사된 캐릭터였다고 할 수 있겠다. 누군가를 오랫동안 안쓰러워 하며 고치려고 자신의 일처럼 매달렸던 사람의 심정을 매우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보통 더 감정적인 영화였다면 마지막에 가서 펑펑 눈물을 흘렸을테지만 오히려 꾹꾹 가슴으로 삼키는 그녀의 캐릭터 묘사에 오히려 더 감정적인 동요가 일었다. 헬레나 본햄 카터가 영화 내내 보여준 따듯한 시선은 이 영화의 가장 보석같은 부분 중 하나일 것이다.

 

영화의 내용과 별개로 '킹스 스피치'는 요 근래 오랜만에 보는 1.85:1 화면비의 영화였는데, 그래서인지 상하의 높이를 적극 활용한 장면들과 공간의 여백을 활용한 장면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가 위엄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물론 왕과 그 주변을 다룬 탓도 있겠지만 이를 묘사할 때 상하의 높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앵글과 화면비가 준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시네마스코프가 좌우 넓이를 통해 스케일을 표현하는 것과는 달리 1.85:1 화면비에서는 상하의 높이를 통해 위압감을 전달하고 있는데, '킹스 스피치'는 이런 위압감과 스케일을 전달하는 것 외에 여백을 강조한 앵글을 통해 (초반 조지 6세와 라이오넬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 대화 시퀀스와 캐릭터 묘사에 있어 독특한 리듬감을 주고 있다. 또한 디자인 적인 측면에서도 미술적으로 깊은 인상을 주었던 라이오넬의 방과 왕실의 대부분의 공간들처럼 천정이 높은 공간을 잘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한껏 표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공간이 주는 미적 효과를 십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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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 스피치'는 흥미로운 소재(실화)를 가지고 보편적인 흐름에 충실한 평범한 이야기였지만, 자칫 감정적으로만 흐를 수 있었던 부분들을 과감할 정도로 배제하고 또 절제함으로서 깔끔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오히려 감정적으로도 동요될 만큼 위엄있는 작품이었다.


1. 티모시 스펄은 제가 본 것 중에서는 가장 높은 직책으로 나온 영화가 아니었나 싶네요. 매번 쥐(?)나 하인 등으로 단골 출연했던 그였는데, 무려 윈스턴 처칠이라니!!

2. 짧은 분량이었지만 우리의 덤블도어 마이클 겜본의 포스는 역시 무시할 수 없더군요. 그리고 이렇게 같은 영화에 출연시켜 놓고 보니 (함께 등장하는 장면은 없었지만), 마이클 겜본과 제프리 러쉬가 몹시 닮아보이더군요. 그래서 처음에는 제프리 러쉬의 1인 2역인가 싶었었다는.

3. 수 많은 조연들 가운데 가장 놀랐던 캐릭터는 역시 가이 피어스였습니다. '더 로드'에서도 이런 식으로 깜짝 등장했었던 것 같은데, 이번 작품에서는 멀쩡하게(?) 출연하기는 했지만 왕년에 그를 기억하는 저로서는 확실히 많이 늙어버린 그의 모습이 아직도 잘 적응이 되질 않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The Weinstein Company 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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