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의사 선생님 (Dear Doctor, 2009)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에 대하여


'유레루'를 연출했던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2009년 작 '우리 의사 선생님 (Dear Doctor)'을 뒤늦게야 DVD로 감상하였다. 전작을 통해 제법 국내에서도 이름을 알렸음에도 이 작품은 개봉 당시 많은 관객들과 만날 기회를 갖질 못했었는데, 보고나니 일본 영화 특유의 잔잔한 분위기로 채워져 있기는 했지만 역시나 그 잔잔함과 소소함 속에 깊은 여운을 주는, 그냥 놓치기에는 아쉬운 작품이었다. DVD를 선물 받은 것도 시간이 제법 지났는데, 이번 주말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고이 모셔져 있던 DVD를 꺼내 감상하게 되었다.

사실 '우리 의사 선생님'이라는 제목을 처음보았을 때 느꼈던 선입관은 너무 착하기만 한 영화는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착하기만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제목과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만으로 영화의 대부분을 예상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닐까 하는 오해 때문이었다. 이 글에 사용된 포스터말고 대표적으로 사용된 포스터에는 의사선생님 역할을 맡은 쇼후쿠테이 츠루베가 사람 좋은 웃음을 얼굴 한 가득 머금고 있는 장면이 사용되어서 더욱 그랬는지르겠는데, 그런 반면 푸른 들판을 배경으로 무언가 외로워 보이면서도 의문을 담고 있는 듯한 표정과 분위기를 풍기는 위의 포스터가 오히려 좀 더 작품의 성격과 잘 맞아 떨어지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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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두 가지의 이야기가 서로 정반대에서 시작해 접점에 이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이 두 가지 이야기는 사실 다른 이야기라기 보다는 하나의 이야기인데 시간의 흐름과 풀어가는 방식에 따라 갈린다고 말할 수 있겠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마치 신처럼 추앙받은 의사 선생님을 소개하는 동시에 다른 한 편에서는 그 의사 선생님이 의문스럽게 자취를 감춰버렸다는 미래의 이야기를 동시에 꺼내 놓는다. 이와 같은 방식은 사건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그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는 없었던 더 깊은 가치와 정서에 주목한다고 할 수 있을텐데, 특히 이 작품 같은 경우는 이렇듯 존경 받는 의사 선생님이 왜 그렇게 된 걸까 라는 의문을 처음부터 갖고 보게 되기 때문에, 반대로 처음부터 디테일한 감정 표현과 캐릭터 묘사에도 주목하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게 보게 된 '우리 의사 선생님'은 우리가 흔히 진정성이라고 표현하곤 하는 진정(眞情)에 관한,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에 관한 이야기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그리고 가짜보다 더 가짜 같은 진짜들의 이야기. 쉽게 (조금은 경박하게) 풀어내자면 이런데, 사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짜 가짜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마음가짐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면허증이나 자격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접근하고 받아들이냐에 관한 이야기. 영화는 이 측면에서 비록 자격은 갖지 못했지만 마음가짐만은 그 어떤 진짜보다도 진정을 갖고 있던 한 남자와 이 남자를 마음으로 받아들인 듯 했지만 사실은 그저 자격과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끌어 안고 있었던 작은 사회에 관한 양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후자의 이야기 때문에 이 작품을 마냥 착하고 따스한 영화로 보긴 어렵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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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나온 대사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대사 중 하나는 극중 의약품 판매상으로 나왔던 카가와 테루유키의 말이었는데, 약을 팔면서 한 번도 환자의 병을 낫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며 스스로를 뒤돌아보는 대사였다. 즉 무엇이든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초심을 잃어버렸거나 아니면 너무 직업이 되어버려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린 일들에관해 생각해 보게 되는 대사이자, 이 작품이 전체적으로 담아내려한 진정에 대한 묘사이기도 했다. 인간이란 기계와는 달라서 처음과 끝이 똑같기 어렵고 무슨 일이든 내성이 생기면서 안좋은 쪽으로 익숙해지기도 하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점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인간들이 초심을 잃는 속도, 내성이 생기는 속도가 너무 빠른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그런 면에서 오로지 그 마음 가짐만으로 이미 내성이 생겨버린 사람들 사이에서 한참을 우뚝 솟았던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는, 그가 진짜였냐 가짜였냐를 떠나서 수 많은 이미 갖은 자들에게 큰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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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마치 '골든 슬럼버'나 '디스트릭트 9'의 정서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딱딱하고 정형화된 수사의 방식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판타지와도 같은 순간으로 따듯한 미소를 짓게 하는 감독의 연출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 하다. 아, 엔딩 크래딧에 흐르던 More Rhythm의 '웃음꽃'의 가사가 주던 여운 역시...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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