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 (火車, 2012)

삭막한 사회 속 잊혀져 가는 존재에 대한 연민



변영주 감독의 신작 '화차'를 보았다. 이 작품은 버블 경제 붕괴라는 사회적 문제를 겪고 있던 일본의 1990년대를 배경으로 신조 교코라는 여성의 삶을 미스테리한 방식으로 풀어낸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미야베 미유키는 여러 작품들을 통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그 원인을 주로 사회로부터 찾는 작가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고, 그런 측면에서 변영주 감독의 작품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내가 느낀 변영주 감독의 '화차'는 미스테리와 그 속의 인간성 그리고 이를 만든 사회의 문제에 대한 직간접 은유까지 적절한 조화를 이룬 무게감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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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결혼은 앞둔 문호(이선균)와 선영(김민희)이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집으로 내려가던 중 들린 휴게소에서 선영이 갑작스레 실종되면서 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 실종의 미스테리를 풀어가기 위해 전직 형사인 사촌 형 종근(조성하)까지 합류하면서 조금씩 실마리가 잡혀가지만, 알아가면 갈 수록 미스테리의 깊이도 마음의 상처도 더 깊어만 간다.


단순히 형식적으로만 보자면 갑작스레 사라진 선영을 추적하고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선영의 존재에 대한 미스테리를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화차'를 본격적인 미스테리 스릴러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화차'는 미스테리가 포인트인 작품이 아니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풀어가는 일종의 도구 정도로만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원작에서는 형사인 사촌 형이 사건을 풀어가는 시점에서, 문호와 선영, 종근의 삼자 구도로 각색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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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시종일관 차갑고 어두운 색감과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물들은 거의 웃을 겨를이 없을 정도로 상처가 깊어만 가는 얼굴을 하고 있다. 문호가 선영을 쫓는 과정 속에는 기본적으로 선영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있다. 자신이 결혼을 결심했을 정도로 사랑했던 연인으로서의 애정은 물론이고, 점점 미스테리가 풀릴 때마다 인간적인 실망과 분노가 일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더 나아가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인간적 연민의 마음까지 도달한다 (특히 마지막 용산역 에스컬레이터 에서의 그 대사는, 애정으로 기인했을지 몰라도 분명 인간적 연민이 나타난 대사였다). 이렇듯 단순한 로맨스의 감정에서 그치지 않고 인간적 연민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좋았다.


이렇게만 보면 김민희가 연기한 극중 선영이라는 캐릭터가 이 사회가 만든 어쩔 수 없는 피해자임만을 강조하여 연민이 들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만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꼭 그렇지 만은 않다. 관객이 선영에게 연민의 감정을 갖을 수 있도록 한 것은 맞지만, 그녀로 인해 또 다른 피해를 받은 인물들 (여기에는 문호도 포함)과 혹은 선영에게 연민의 감정을 갖는 중에 간과될 수 있었던 인물들에 대한 묘사들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있기 때문에 관객에게 선영에 대한 연민 외에도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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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주 감독은 '화차'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삭막한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직접적으로는 김민희가 연기한 선영이 자신으로 살아오지 못한 현실을 묘사하면서, 사람하나 죽거나 어찌되어도 아무도 관심조차 없는, 무관심과 단숨에 무너져 버리기 쉬운 낱알들로 이루어진 사회의 모습을 그린다. 즉, 더이상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없도록 내몰린 사람과 내몰고 있는 사회, 또 그 사람이 자신이 아닌 사람으로 살아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각박한 사회와 어쩌면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 살기에 바뻐서 역시 내가 당하기 전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이들로 구성된 사회에 대한 씁쓸한 자화상이자, 그 사회를 살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연민을 담으려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용산역, 용산 이라는 장소를 선택한 것은 더욱 의미 깊게 느껴졌다. 하루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용산역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세 주인공들의 교차는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했고, 마지막 용산역 옥상 위에 선 선영의 모습에서는 자연스럽게 같은 장소인 용산에서 철거민으로 내몰려 망루 위에 올라야만 했던 이들을 떠올리게 했다. 변영주 감독의 작품이라 더더욱 연관 지을 수 밖에는 없었던 점도 부인할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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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영화를 보면 누구나 발견하게 되는 동물병원 간호사 역할의 배우 김별 님. 좋았습니다.

2. 누가 이 영화가 16억 예산의 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가격대비 매우 훌륭한 때깔이었습니다.

3. 영화 음악도 은근히 좋았어요.

4. 이 영화를 용산 CGV에서 봤으면 어쩔 뻔 했는지;;;;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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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 (Bleak Night, 2010)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애처로운 간극


단도직입,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윤성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 '파수꾼'은 포스터 맨 위에 문구처럼 올해의 발견이자 가장 빛나는 데뷔작이라 할 수 있겠다. 윤성현 감독은 이제 막 서른이 된 어린 나이에 정말 멋진 데뷔작을 만들어 냈는데,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이나 표현 방식 등을 살펴보자면 더더욱 놀라운 데뷔작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겠다. 영화는 미스테리의 방식으로 한 남자가 아이들을 찾아나서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남자는 기태의 아버지이며 아들의 죽음에 대해 의문점이 있어 아들이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을 수소문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게 되는데, 이 이후에도 이 미스테리 방식은 계속 되지만 이 영화는 전혀 미스테리는 아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전개를 구성하는 방식에서는 시간의 재배열과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 사실 관계 등은 감각적이고 신선한 느낌을 주지만, 사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른 곳에 있다. 아, 한 편으론 미스테리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파수꾼'은 학창시절 그 누구도 왜 그래야만 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던 우정과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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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은 기태와 희준, 동윤, 이 세 친구들의 관계를 통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그 이전에 '파수꾼'은 소년과 학교 그리고 우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들이 흔히 가곤 하는 쉬운 길을 가지 않고 있다. '말죽거리 잔혹사'와 같은 표면적인 폭력과 사춘기 솟아나는 사랑의 감정에 집중하지 않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처럼 폭력을 권력으로 그리지도 않는다. 사실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파수꾼'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조금은 가까운 작품이 아닐까도 생각했지만, 이 영화가 택한 길은 전혀 달랐다. 일단 이 영화가 폭력을 그리는 방식, 폭력의 피해자 보다 가해자(피해자인 동시에)를 묘사하는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극중 기태(이제훈)는 학교에서 이른바 '짱'으로 무리를 거느린 일종의 권력자다. 항상 같이 다니는 무리들 중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무섭게 그리고 상대가 무력화되도록 겁을 주곤 하는 존재다. 그러던 기태가 어느 날 역시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해 희준에게 상처를 주게 되고, 이 일로 인해 희준은 큰 상처를 입고 기태를 멀리하려 한다. 

이 영화가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기태가 사과를 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 이유는 바로 폭력의 주체였던 기태조차 자신의 저지른 행동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 지 몰랐던 것은 물론, 결국 그 결과와 맞닥들이게 되었을 때 어디서 잘못되었고 어떻게 돌릴 수 있을지를 전혀 알 수 없었던 기태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압권이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그것처럼 처음부터 확실한 의도를 가지고 행한 것이 아니라, 잠깐의 실수 혹은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로 인해 가해진 상처는, 상처를 고스란히 받게 된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 역시 비슷한 (혹은 더 큰) 상처를 받게 된다는 것을 영화는 매우 섬세하게 묘사한다. 다시 생각해봐도 이제훈이 연기한 기태가 그 상황을 맞닥들이는 장면의 전율에 가까운 떨림은 정말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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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평범하지 않은 동시에 더 섬세함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기태라는 캐릭터의 묘사를 들 수 있을텐데, 일단은 기태와 희준, 동윤이 일방적인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아니라 우정을 나눈 친구로 묘사되었다는 점과 더불어 기태 역시 직간접적인 피해자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기태의 이런 면을 그리는 것에 있어서 직접적인 방식을 택하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로 보았을 때 기태는 분명 미워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안타까운 추억과도 같다. 일단 영화는 기태라는 캐릭터의 단서로 그의 아버지와 가족을 들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기태의 아버지는 죽음 이후 기태의 친구들을 수소문해 궁금한 점들 혹은 의심되는 점들을 찾아가고 있다. 기태 아버지의 여정은 아들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에서 오는 속죄의 여정에 가깝다. 어머니의 부제와 존재는 했지만 곁에 있지 못했던 아버지의 존재, 이로 인해 외로움과 결핍을 겪어야 했던 기태는 주목 받기 위한 삶을 자연스레 택하게 되었고, 어쩌면 그것이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를 좀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아버지와 기태의 자리를 몇 번 그대로 포갠듯이 묘사한다. 영화의 시작, 위 층에서 들리는 피아노 연주 소리를 듣는 아버지의 모습은, 친구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큰 상처를 받은 기태의 마지막 모습과 겹쳐지고, 동윤이는 같은 장소에서 기태와 기태 아버지를 모두 만나게 되기도 한다. 이것은 분명 아버지의 속죄의 여정이지만 그의 표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기에 속죄는 없다. 후회만이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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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이 가장 빛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미묘하고 섬세한 관계에 대한 감정 묘사 부분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섬세한 감정묘사가 단순히 묘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핵심적인 장치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앞서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미스테리일지도 모른다'라는 식의 얘기를 했는데, 결국 이 작품은 세 친구의 우정과 그 헤어짐을 통해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잘못 된 걸까에 대한 물음이자, 아니 묻기 보다는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아니 그렇게 밖에는 못했던 수 많은 관계들에 대한 안타까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극 중 주인공들의 대화를 보면 핵심이 없다. '뭐' '그래서' '그래서 왜' '뭐가 어쨌는데'라는 식의 서로를 방어하고 물러서지 않으려는 자기 보호식의 대화들이 주를 이룬다. 자아가 만들어져 가는 시기에서 자존심을 지키려는 그리고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이들은 마음을 열고 상대를 이해하기 보다는 이내 마음을 닫고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그러다보니 결국 이야기는 핵심없이 겉돌고 무엇 때문에 언제부터 잘못되었는지 조차 서로 알지 못한 채 안타까운 해체를 맞게 되는 것이다.

'파수꾼'은 세 친구에게 똑같은 애정을 쏟고 있긴 하지만, 확실히 기태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장 크게 묻어나고 있다. 결국 희준과 동윤이 역시 기태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과연 더 현명한 우정으로 이 간극을 극복할 수는 없었는지. 영화가 이 안타까움을 그리는 라스트 씬에서는 데뷔작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영화적 기운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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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을 보고나서 자연스레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게 되었다. 나는 기태였을까, 희준이었을까 아님 동윤이었을까. 내가 누구였는지를 알게 된 들, 그 시절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1. 기태 역의 이제훈씨를 비롯해 서준영, 박정민 이 세 사람의 연기는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본문에도 썼지만 기태의 그 흔들리는 눈동자와 불안하고 당황한 연기는 정말 압권이었어요.

2. 사실 이 영화가 조금 더 개인적인 다른 이유는 영화의 배경이 된 기차역이, 바로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낸 동네의 장소이기 때문이었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아는 곳 같다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엔딩 크래딧에 원능역이 있는 걸 보고나서 역시!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실제로 저 기차길에서는 불량한 형들을 비롯해 학생들이 자주 놀 던 곳이기도 하고,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걸터 앉아 놀던 기억이 있어 제 학창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실제로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기차길 바로 앞 아파트에서 살았기 때문에 메일 학교가려면 그 기차길을 지나야 했거든요.

3. 윤성현 감독과 세 배우의 앞날이 모두 너무나 기대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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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2010)
개싸움으로 풀어낸 카오스의 세계


나홍진 감독의 2008년 작 '추격자'는 분명 잘 빠진 데뷔작이었다. 영화의 호불호를 떠나서 감독이 하고자 하는 바를 끝까지 밀어붙인 힘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작품인 동시에, 극적인 공감대를 통한 공포를 느낄 수 있었던 깊은 색의 작품이었다. 그런 그가 '추격자'의 김윤석, 하정우와 함께 또 한번 호흡을 맞춘 신작 '황해'는, 동일한 배우와 몇몇 추격하는 장면 탓에 비슷한 느낌의 작품이 아닐까 오해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전작과는 구성자체가 전혀 다른 감독의 야심이 드러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홍진 감독의 '황해'는 의도하지 않았던 카오스를 통해 어떤 결론을 도출하려는 것이 아니라, 카오스 그 자체에 관한 담론이라 해야할 것이다. (이제 고작 그의 작품을 두 작품 보았을 뿐이지만) 어쩌면 나홍진 감독의 스타일이야말로 카오스를 그려내기에 가장 적합한 스타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황해'는 괜찮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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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속 문구처럼 면정학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김구남에게는 그간 겪고 있던 삶의 고통보다 더한 카오스를 맞이하게 된다)

영화는 4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제목은 (택시운전사, 살인자, 조선족, 황해) 단순하게는 주인공 김구남 (하정우)의 현실 혹은 상황을 가리키고 있으며, 더나아가 이 막 구성은 카오스를 그리게 된 영화적 특성을 보완하려는 친절한 구성으로 받아들일 수도 겠다. 어쨋든 '황해'가 흥미로운 것은 초중반까지는 김구남을 주인공으로 그가 매달려있는 구심점에 동조하도록 의도하지만, 갑자기 이 구심점이 변하고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가 김구남의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더이상 김구남 만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이 전작인 '추격자'와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추격자' 같은 경우는 확실한 극적인 구심점이 있었기 때문에 (하긴 '추격자'는 이 구심점을 아예 처음부터 노출하고 시작한 작품이라 더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관객이 끝까지 공감대를 이어갈 수 있었던 반면, '황해'는 어느 정도 중심의 이야기로 흘러가나 싶더니 이 이야기가 갑자기 다른 이야기에 잠식되어 갈피를 잃게 되는 동시에, '어? 지금 어떻게 흘러가는 거지?'라고 막 느끼게 될 때쯤 이미 카오스의 중심에 서있게 되는, 그러니까 카오스 자체가 구심점이 되어버리는 흥미로운 구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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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는 이번에도 도망자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 '황해'의 김구남은 자신도 모르는 일에 휩쓸려 도망치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

물론 여기서 갈피를 잃었다던가 구심점을 잃게 되었다는 것은,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얘기가 복잡해져서 흔들렸다가 아니라 의도적인 흔들기로 볼 수 있겠다. 제목 역시 '서해'가 아니라 '황해'라고 한 것은 무언가 뿌연 느낌과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모호함을 의도하기 위한 제목이었다고 생각된다. 

사실 이 처럼 주인공이 자신도 모르는 일들에 우연 혹은 더 큰 권력과 시스템에 의해 이용되어 겪게 되는 일들을 그린 영화들은 많은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점은 '황해'의 구남은 그냥 휩쓸린 것이 아니라 일종의 도박을 한 셈이라는 점이다. 조선족으로 많은 빚을 지며 하루하루가 고통스럽고 미래를 꿈꿀 수 없었던 구남은 여분의 돈만 생기면 마작을 통해 더 큰 돈을 벌려고 하지만 매번 여의치가 않다. 그런 그에게 브로커인 면정학 (김윤석)이 접근하게 되고 김구남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도박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초반 마작을 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오는 것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준다. 이 도박이라는 점은 앞서처럼 무고한 인물이 큰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경우와는 달리 공감대에 있어서 취약할 수 밖에는 없다. 특히나 이 영화에서 관객이 김구남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라고는 그가 꾸는 꿈과 단편적인 이야기들 뿐이라 더더욱 그러한데, 이 점 역시 앞서 얘기한 카오스론과 함께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의도적으로 관객들이 구남에게, 일반적으로 주인공에게 느끼는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면서 영화가 끝나고, 구남과 면정학 그리고 김태원 (조성하)의 이야기가 모두 마무리 되어도 그저 뿌연 안개같은 모호함만 남게 되는 결과를 의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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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감독은 이러한 카오스를 더 극대화 시키기 위해 폭력성과 잔인성을 가미한다. 즉, 깔끔한 액션이 아닌 이른바 '개싸움'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대놓고 이런 '개싸움'의 이미지를 여기저기서 드러내고 있다). 인물들은 상대를 맞아 엄청난 칼부림과 도끼질을 휘두르는데, 여기에는 리얼리즘과 판타지적인 요소를 모두 느낄 수 있다. 개싸움이라고 했던 만큼 주인공들은 멋진 기술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서로 뒹굴고 서로 상처를 입는 싸움이 계속된다. 하지만 반대로 이런 개싸움 와중에도 구남이나 명정학은 항상 그 상황을 빠져나오거나 이겨낸다. 특히 이 정도 스케일을 모르고 휘말리게 된 구남의 생명력은 판타지에 가깝다. 전국의 수배령이 내려지고 뉴스 속보로 자신의 얼굴이 연일 나오는 과정 속에서 몇번이나 직접적으로 맞닥들였음에도 동에 번쩌 서에 번쩍하며 도망다니는 구남의 모습을 보면, 이걸 단순히 공권력에 대한 조롱으로 보기에도 너무 과한 건너 뛰기로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면정학의 경우는 구남과는 다르게 애초 캐릭터 설정에서 부터 일반인과는 다른 아우라를 갖은 캐릭터로 그리고 있다. 후반부 면정학의 모습을 보면 마치 신적인 존재로까지 느껴질 정도로 리얼리즘을 뛰어넘는 존재로 묘사되는데, 처음부터 판타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리얼리즘에 근거하여 이런 존재의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점이 흥미로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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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나홍진 감독의 '황해'가 조금 아쉬운 부분은, 이왕 카오스 그 자체를 그리려고 했던 것이라면 구남과 아내의 관한 부분을 좀 더 깔끔하게 정리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주인공에게 공감대를 완전히 실어 관객이 '구남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게 하기 보다는, 이 미칠듯한 개싸움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길 의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여기에 관객이 계속 구남에게 여지를 남기도록 하는 부분이 바로 아내에 관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부분이 참으로 애매했다. 그러니까 의도한 모호함이 아니라 그냥 애매했다는 것이다. 

아내가 결국 죽었는가 살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엔딩은 그런 의미에서 모호함을 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구남이 영화 내내 오해하고 의심했던 부분에 대한 따듯한 위로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구남이 카오스에 빠져들게 된 동기로 그치지 않고 영화 내내 구남을 지배하는 구석으로 남아, 영화에 극적인 온기를 불어넣으려 하고 있다는 점인데, 개인적으로는 이보다는 오히려 이 감정적일 수 있는 부분을 과감히 정리하고, (어차피 카오스에 집중하려고 했던 만큼) 구남에게도 잔인하리만큼 황폐함을 남겨주었다면 더 강렬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 부분이 상업영화로서 마지막으로 포기할 수 없었던 부분일 수도 있고, 아니면 구남에게 주는 위로가 영화의 또 다른 메시지가 될 지도 모르겠지만, 이왕 가기로 마음 먹은거 더 밀어 붙였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 황폐함과 카오스의 끝으로 말이다 (쓰고보니 너무 잔인한 바램인 것 같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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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황해'는 다시 한번 나홍진 감독의 스타일을 확고히 하는 작품이 될 것 같다. 아무리 상업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 해도 감독이 자신의 스타일을 꺽으면서까지 대중과의 타협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즉, '나는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지만 관객에게는 내가 생각해도 불편한 작품일 것 같다'라고 생각될 때 타협을 하게 되는 것 말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추격자'에 이어 좀 더 자신의 스타일이 투영된 '황해'를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더 확고히 한 것은 그의 팬에게도 팬이 아닌 이들에게도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팬이던 팬이 아니던 앞으로 나홍진 감독의 신작이 나왔을 때 더 확실한 선택을 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1.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갔다던 카체이스 장면은 나쁘지 않았으나, 너무 카오스를 강조하려는 나머지 필요이상으로 카메라를 흔들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조금만 덜 흔들었어도 좀 더 멋진 카체이스가 나왔을지도 모르겠네요. 개인적 바램은 이렇지만, 감독은 분명 더, 더를 외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ㅎ

2. '추격자'의 마지막 슈퍼 장면에서 많은 이들이 허술함을 지적했던 점을 미뤄봤을 때, '황해'에는 이를 뛰어넘는 비약과 건너 뜀이 훨씬 많은 편이에요. 특히 구남이 도망치는 부분에 있어서 그렇죠. 여기서 너무 많이 '풋..'하게 되면 이 후의 개싸움도 빠져들기 어려울 것 같아요

3. 하정우, 김윤석의 경우 스크린에 보여지는 표정만 봐도, 얼마나 '찌들어 있는지' 그 질감이 느껴지더군요. 두 배우 모두 쉽게 '황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듯 싶네요.

4. 초반 김구남이 살인을 계획하는 시퀀스는 이 영화의 또 다른 멋진 장면이었네요. 이런 카오스가 주제인 작품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장면이라는 점만 빼면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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