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구왕 (The King of Jokgu, 2014)

이토록 진지한 SF영화



장안의 화제인 '명량' 아니 '족구왕'을 보았다. 처음 '족구왕'이라는 영화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땐 그 제목과 더불어 코믹함이 연상되는 포스터와 스틸컷들로 인해, 아주 유쾌하고 코믹한 청춘 영화일 것으로 예상했다. 대부분 많은 이들이 그렇게 본 듯 하나, 내가 본 '족구왕'은 조금 달랐다. 극장에서 막이 오를 때까지만 해도, 아니 영화 중반 까지만 해도 이미 알려진 것과 같은 코믹, 청춘 영화인 줄로 알았는데 중반 이후 부터는 점점 이상한 기운이 스멀스멀 느껴지더니 결국 엔딩에 가서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족구왕'은 완벽한 SF영화다. 너무 진지하고 영화 스스로도 별로 이를 설득하려 하지 않을 뿐이지, 따지고 보면 이처럼 자연스러운 SF영화가 또 어딨나 싶다. 마치 극 중 소재로 등장하는 '백 투 더 퓨처'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시간 여행을 다룬 하지만 그 여행을 바라보는 입장이 주인공이 아닌 그 외의 인물들이라 미처 깨닫지 못하는 그런 SF영화가.


(굳이 따지자면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조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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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주인공 홍만섭 (안재홍)이 '난 사실 미래에서 왔어'라는 대사를 할 때만 해도 이것이 단순히 코믹 요소로 활용된 그저 지나가는 대사로만 여겼었다. 실제로 영화는 그 이후 현재의 만섭에게만 집중하지 이 '유머'와 관련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런데 후반부 나도 모르게 울컥하게 만드는 그 영어 수업 발표를 보면 조금 의아한 생각도 들었는데, 초반에 등장해서 별로 (다른 유머에 비해) 먹히지 않았던 이 시간 여행 유머를 진지하게 다시 꺼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확신하지 못했었는데 영화의 마지막, 체육 대회 이후 주인공 들의 에필로그를 다룬 장면에서 영화가 만섭을 그리는 방식을 보고서는 확신하게 되었다.

'아, 이건 진짜 백 투 더 퓨처 같은 SF영화였구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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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진지하게 이 영화를 SF영화, 그러니까 만섭이 극 중 했던 말 대로 그가 미래에서 온 것이라고 가정 한다면 영화의 부족한 몇 몇 부분들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사실 영화 초반 가장 설득력이 떨어졌던 부분은, 군대에서 탁월한 실력으로 족구를 했다곤 해도 제대 이후 복학한 만섭이 그렇게 족구에 목숨을 거는 이유가 조금은 부족해 보였었다. 뭐랄까, 그냥 '우린 영환 족구왕이니까 족구는 그냥 필연적인거야'라는 정도로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부분이었는데, 앞서 이 영화를 만섭의 말 그대로 따르자면 이 부분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죽음을 앞둔 노인 만섭은 다시 청춘으로 돌아와 그 당시 맘 껏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해보게 되는데, 그 후회를 만회하기 위해 돌아왔다면 군대에서도 그리고 복학해서도 족구는 물론 모든 생활에 저리도 열심인 것이 모두 한 번에 납득이 된다. 처음엔 그냥 족구도 이유 없이 좋아하고, 아르바이트와 생활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한)을 위해 정말 열심히 일하는 만섭의 모습이 그냥 그의 타고난 성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역시 성품이라기 보단 20대에 맘껏 해보지 못했던 후회로 인한 '열씸'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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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성품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무슨 일을 겪어도 단 한 번도 남에게 화를 내지 않는 만섭의 모습 역시, 억척스럽게 일하는 모습과 겹쳐서, '에이, 요새 저런 청년이 어딨어'라고 생각할 정도의 착한 성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보다는 이미 다 겪은 자로서의 여유와 편안함에서 나오는 배려라고 생각하니, 만섭의 표정 하나 하나가 다르게 느껴졌다. 즉, 정말 힘든 상황과 열악한 멤버들과 함께 하는 족구 대회여도 그가 화를 내거나 포기하지 않는 건, 그에겐 영화 속 지금이 그 토록 바라던 제 2의 기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흔히 '청춘'을 이야기할 때 청춘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되는데, 대부분 그 청춘을 보내고 있는 당사자들은 이를 모르기 마련이다. '족구왕'은 분명 청춘 영화이지만 조금 다른 점이라면 그 '청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뒤 늦게 알아채고는 뼈저리게 그 때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주인공이 다시 그 때로 돌아가 다른 청춘들과 함께 하는 영화라는 점이다. 자신의 청춘을 구하는 동시에 과거의 청춘들도 구해내는 이야기랄까. 만섭에게는 이렇듯 시간을 헤아릴 수 없는 표정이 담겨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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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극 중 등장한 윤준경의 '나 다시 젊음으로 돌아가면'이라는 싯구도 아주 직접적이었다. 만약 돌아가고 싶은 청춘의 그 때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것이 족구든 아니든 간에 홍만섭처럼 정말 열정적이면서도 평온한 마음을 갖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내게 '족구왕'은 정말로 의외의 감동을 느낀 영화였다.

청춘을 그렸지만 정말 진지한 가운데 티내지 않으면서 시간 여행을 다룬 SF영화. 아마도 프리퀄이 있다면 만섭이 20대로 돌아오게 되는 과정을 볼 수 있을지도.



1. 저는 진지합니다.

2. 전 영화가 진지하게 이런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증거를 아주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었어요. 본문에 언급한 내용 말고도 판타지에서나 가능한 만섭의 필살기를 영화가 남용하지 않고 결정적인 순간에 딱 두 번만 사용한다는 점. 그리고 결정적으로 엔딩 에필로그 부분에 다른 인물들과 떨어트려 만섭의 이야기를 홀로 정리했다는 것. 즉, 코믹 요소를 지우고 드라마와 감동적인 부분을 더 추가했다면 (그래서 CG로 활용된 부분도 덜어냈다면) 아마 이 영환 일반적인 SF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 하지만 이렇게 관객 대부분이 오해하도록 만든 방식이 더 좋았어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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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플라워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2012)

청춘, 그 뜨거운 무한함에 대해



워낙에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보는 편이기는 하지만, 이 작품 '월플라워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2012)' 역시 여주인공 엠마 왓슨 말고는 아무런 정보가 없는 영화였다. 심지어 남자 주인공인 로건 레먼을 어디서 봤었는지도 영화를 보는 중간에야 기억할 수 있었다 (그 영화는 나 혼자만 재미있게 본 것 같은 '퍼시잭슨과 번개도둑'이었다). 그저 엠마 왓슨 주연의 풋풋한 청춘 영화인가 보다 싶었던 '월플라워'는 오랜 만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청춘, 바로 청춘 영화였다. 좋은 청춘 영화는 언제나 옳다. 그리고 '월플라워'는 정말 좋은 청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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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다룬 영화는 많지만 진짜 '청춘 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영화는 별로 많지 않은데, '월플라워'는 어쩌면 그 뒤에 버티고 있는 다른 이야기를 하려는 듯도 하지만 결국엔 보편적인 청춘의 불안함과 자유, 무한함을 잘 표현해낸 작품이었다. '월플라워'를 글로 풀어내려고 보니 그리 쓸 말이 많지 않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무한한 감동을 받고 무언가 한 바닥을 써내려 갈 것만 같았는데 막상 정리해보니 별로 특별한 이야기는 아닌 듯 했다. 샘과 패트릭, 찰리 그리고 친구들의 이야기는 조금씩 특별한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각자의 이야기가 생겨난 계기가 되기는 하지만 영화는 그 자체에 주목하지 않는다. 원작 소설에서는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영화로 표현 된 '월플라워'는 그냥 친한 친구들과 함께 한 어린 시절 사진 한 장으로 시작된 영화인 것만 같다. 왜 10대 시절 친한 친구들과 함께 한 사진들에는 그 사진에 등장하고 있는 이들 만이 느낄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이 영화가 바로 그렇다. 영화는 바로 사진 속 이들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관객에게 솔직하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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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플라워'가 더 흥미로운 다른 이유는 7,80년대의 히트 넘버 들 때문인데, 주인공들이 아웃사이더의 성격을 갖고 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극 중 등장하는 곡들은 평소 너무 좋아하는 취향의 곡 들이라 한 곡 한 곡 나올 때마다 완전히 동화 되는 느낌이었다. New Order, The Smiths, Sonic Youth는 물론이고 극 중 주인공들이 공연하는 영화 '록키 호러 픽쳐쇼'의 곡 들도 만나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영화 속 영화라 할 수 있는 '록키 호러 픽쳐쇼'는 평소에도 좋아하는 작품인데 이렇게 소품처럼 만나게 되니 더 흥미로웠다. 이런 문화를 이미 좋아해버린 탓에(?) 조금 아쉬웠던 점은 극 중 중요한 지점에 등장하는 곡의 제목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는데, 주인공들이 라디오에서 듣고 무슨 곡인지 한참을 몰랐던 그 곡은 사실 너무나 유명한 데이빗 보위의 'Hero'였다. 원래 좋은 사운드트랙은 이미 유명한 곡을 삽입하였더라도 그 영화에 완전히 녹아 들도록 해 다시 금 그 노래를 듣고 싶도록 만드는데, 이제 보위의 'Hero'를 듣게 되면 '월플라워'가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그 이전엔 '물랑루즈'였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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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 테잎의 추억도 새록새록 떠올라 좋았다. 더블 데크가 유행하던 시절, 집에 사둔 테잎 들은 물론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던 곡 들을 녹음해 둔 것을 이용해 나만의 믹스 테잎을 여럿 만들곤 했었는데, 당시 좋아하던 이에게 늦은 밤까지 정말로 엄선에 엄선을 거친 곡들을 테잎의 양면 가득 담아, 가수와 수록곡들도 작은 글씨로 빼곡히 써서 선물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나도 몰래 흐뭇해 졌다. 그 땐 정말 좋은 곡 한 곡을 찾기 위해 정말 많은 곡 들을 들었었고, 그 곡들을 나만의 콜렉션으로 만들기 위해 각각의 이름으로 명명된 믹스 테잎으로 나뉘어 담기도 했었다. 예전엔 이렇게 사라진 문화들을 보면 단순히 '그 때가 좋았었지..'하고 아쉬워하곤 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이런 추억과 청춘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에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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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샘(엠마 왓슨)이 터널을 지날 때 차 뒷 좌석에서 일어나 두 손을 양쪽으로 펼치고 나는 듯한 포즈를 취하는 장면을, 스틸컷으로만 보거나 다른 영화에서 봤다면 아마 손발이 오그라들었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청춘을 다룬 영화들에는 간혹 허세나 미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월플라워'에는 전혀 이러한 점이 없음에도 무한한 청춘의 에너지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몹시도 우정이 그리워졌다. 내 뜨거운 청춘은 다 지나가 버렸을까? 아님 아직도 무한한 가능성으로 남아 있을까.



1. OST가 너무 좋아요. 국내에도 라이센스로 발매되었는데 안지를 이유가 없습니다.

2. 곧 퍼시 잭슨 2가 개봉 예정인데, 이젠 퍼시 잭슨으로 분한 로건 레만이 더 어색할 것 같네요.3

3. 엠마 왓슨의 매력을 다시 보게 된 영화였어요. 헤르미온느도 물론 매력적이었지만, 마법 없이도 매력적인 그녀. 역시 최고의 머글이군요 ㅎ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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