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Tinker Tailor Soldier Spy) 블루레이가 출시되었습니다


출시가 된 지는 조금 되었는데 뒤늦게 소개하게 되었네요.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의 2011년 작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블루레이가 국내에 정식 출시되었습니다. 국내 협소한 시장 탓에 하마터면 출시가 어려울 수도 있었는데 프리오더 후반부에는 더 적극적인 판매가 이뤄지면서 무리 없이 발매될 수 있었네요. 개인적으로도 워낙 좋아하는 작품이라 해외 판 구매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이렇게 멋진 라이센스 반으로 출시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번 블루레이에도 제가 제작에 조금이나마 참여를 하게 되었는데요, 그 위주로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영화의 포스터 이미지로 꾸민 전면과 영화 속 '서커스'의 문장을 담은 후면 디자인 입니다. 게리 올드만이 서 있는 저 이미지를 참 좋아하는 터라, 블루레이의 커버도 만족스럽네요. 심플하니 좋습니다.






투명 케이스로 제작된 블루레이 타이틀 내부에는 디스크와 함께 라이센스 블루레이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소책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존에 소책자를 포함했을 경우 아웃케이스를 만들어 외부에 수록하는 방식을 택했었는데, 근본적으로 시간이 지나면 케이스의 비닐이 우는 문제가 발생하여 이번에는 내부에 소책자를 포함하는 형태로 제작이 되었습니다. 대신 소책자의 사이즈는 조금 작아진 편입니다. 오히려 좀 더 아기자기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이번 팅테솔 블루레이에 개인적으로 가장 뿌듯한 점은 제 글이 실린 것 보다도 두 감독 님의 멋진 추천사가 포함된 것인데, 굉장히 촉박한 일정으로 부탁을 드렸었는데 흔쾌히, 그것도 짧게 써주신다고 해서 정말 한 문장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긴 추천사를 써주신 두 분께 감사의 말씀을 이 자리를 빌어 또 한 번 드리고 싶습니다. 박찬욱 감독 님은 이번 기회를 통해 처음 연락하게 되었는데, 처음 박감독 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을 때의 떨림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ㅎㅎ 또 연락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본인도 현재 차기 작 자료 조사 중이시라 바쁘실 텐데, 긴 추천 글은 물론 박찬욱 감독 님과도 적극적으로 연결해주신 저의 절친(?) 이고 싶은 류승완 감독 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난 번 '베를린' 인터뷰 차 뵈었을 때 감독 님이 팅테솔을 참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았기에 조심스럽게 부탁 드렸었는데, 바쁜 일정에도 멋진 글을 보내주셔서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곧 '베를린' 블루레이가 출시될 예정인데, 그 때 '베를린' 블루레이를 들고 다시 한 번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벌써 그 날이 기다려지네요~






이번 소책자는 제가 참여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정말 깨알 같은 읽을 거리 들이 제법 있습니다. 오히려 이미지 컷들보다도 읽을 거리가 많은 점이 좋았어요.





그리고 또 한 번 영광스럽게 제 글도 소책자에 수록이 되게 되었습니다. 국내 정식 출시된 블루레이에 제 글이 수록된 것이 이번이 아마도 일곱 번째 인 것 같은데, 모두 다 제 돈을 들여서라도 참여하고 싶었던 작품들이라 참여하는 자체가 몹시 뿌듯한 프로젝트 들이었습니다. 이번 '팅테솔' 역시 마찬가지이구요.





영화를 재미있게 보신 분들이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누군 가는 이렇게도 보았구나'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씩 읽어봐 주신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번 '팅테솔' 블루레이는 화질과 사운드, 그리고 소책자는 물론 기존 극장 판에서 큰 문제가 되었던 오역이 모두 수정된 버전이라,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던 분들이라면 전혀 다른 영화를 보시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실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여러 번의 중역과 번역, 검수를 통해 탄생한 완성도 높은 자막 만으로도 충분히 소장 가치가 있는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음에 또 좋은 영화를 수록한 블루레이 타이틀 발매 소식으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Tinker Tailor Soldier Spy, 2011)

쓸쓸한 공기를 머금은 스파이라는 존재에 대해



르카레의 원작 소설 팬들에게는 이 작품이 영화화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대되는 바였겠지만, 역시나(?) 원작을 읽지 않은 나로서는 '렛 미 인'을 연출한 토마스 알프레드슨의 신작이라는 사실과 게리 올드만, 톰 하디, 존 허트, 콜린 퍼스, 토비 존스, 마크 스트롱, 시아란 힌즈 그리고 최근 셜록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까지 이름을 올리고 있는 출연진에 도대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스파이 영화라고 했을 때 혹자는 '누가 스파이인가?'를 찾아내는 반전 영화를 기대했을지도 모르겠지만,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이하 TTSS)'는 결코 '범인이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냉전 시기 유령처럼 활동하던 스파이라는 존재를 작전의 역동성이나 활동성으로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은퇴한 스파이가 조직 내의 이중 스파이를 추적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스파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운 시대의 산물인지를 그 시대와 함께 아주 덤덤하게 그려낸작품이었다. 많은 스파이 영화와는 달리 그들을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애잔한 시대의 시선으로 바라본 것이야 말로 TTSS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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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혹은 쫓겨난) 스파이 조지 스마일리 (게리 올드만)는 조직 내에 스파이를 찾아내라는 명령을 받고는 조용하고 빠르게 이중 스파이를 찾아나선다. 영화는 스마일리가 이중 첩자를 찾아내는 과정을 그리기는 하지만, 그것 보다는 오히려 그 과정 속에서 조지 스마일리로 대변되는 스파이라는 존재에 대한 묘사에 더욱 많은 신경을 쓴다. 그의 회상을 통해 그 동안 이 인물들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를 묘사하는데, 이것 역시 양면의 활용도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영화가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역시 '스파이'와 '세계' 그 자체다. 사실 나도 영화 감상 초반만 해도 일반적인 스파이 영화를 볼 때처럼 온몸에 감각을 최고로 곤두세운 상황에서 모든 단서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는데, 점점 영화가 전개될 수록 단서보다는 '공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영화는 클래식한 당시를 디테일하고 고풍스럽게 묘사하면서도 톤을 다운시켜 전반적으로 마치 추운 겨울 입 밖으로 내뱉는 차가운 입김처럼 싸늘한 공기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서늘함은 곧 외로움과 쓸쓸함으로 연결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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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영화 정말 쓸쓸하다. 영화 속 스파이들은 같은 편에 서있던 그렇지 않던 철저히 혼자라는 느낌을 관객은 받게 된다. 그리고 더욱 흥미로운 것은 자신들이 스파이로서 이러한 외로운 존재라는 점을 그들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듯 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이 어떠한 이유로든 벼랑 끝에 몰렸을 때 사력을 다해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기 보다는, 마치 이 외로움을 누군가 끝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들이 내 뿜는 공기는 주변의 것보다도 차가워 보였고, 홀로 남겨진 그들의 눈빛은 누구보다 애처로워보였다. 시종일관 이러한 분위기를 머금기만 해오던 영화는 종종 이를 분출하기도 한다. 주변을 정리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어쩔 수 없이 연인과의 관계를 마무리하고 연인이 떠난 뒤 홀로 오열하는 모습이나,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를 죽음으로 종결시켜주길 바라는 이나 그런 연인의 바램을 들어줄 수 밖에는 없는 이의 '눈빛'은 다른 스파이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정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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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과 마찬가지로 스마일리가 이중 스파이를 찾는 과정은 마치 자신이 걸어온 스파이로서의 삶을 반추하며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되짚어가는 과정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역시 스마일리가 카를라(칼라)와 만났던 순간을 회상하는 장면이었다. 이 영화를 본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가장 명장면으로 꼽는 이 장면은 회상 장면임에도 플래시백 없이 그저 현시점에서의 대화만으로 묘사되는데, 그럼에도 이 장면은 가장 소름돋는 '회상' 장면이자 간장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이 대화, 아니 회상 시퀀스에도 역시 TTSS만의 쓸쓸한 정서가 담겨있는데, 단순히 경지에 오른 강호의 고수가 또 다른 고수에게 보내는 존경의 마음이 아닌, 냉전이라는 시대가 만들어낸 스파이라는 세계에서 서로를 인정함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아주 함축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그로 인해 영화가 시종일관 말하려고 하는 '스파이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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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이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된 것에는 역시 스마일리를 연기한 게리 올드만의 영향이 컸다. 게리 올드만이라는 배우에게 연기력을 논하는 것 자체가 우습지만, 그는 조지 스마일리를 통해 또 한 번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 리뷰 중간중간 포함된 스틸컷에서도 느껴지는 것처럼 게리 올드만이 창조한 '조지 스마일리'는 절제로 가득 덮혀 있음에도 감정의 변화가 느껴지는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이 글에서 여러번 이야기했던 것처럼 냉전의 시대보다도 더 차갑고 쓸쓸한 스파이라는 존재를 묘사하는데에 있어 스마일리의 그 표정없는 얼굴은 정말 효과적인 거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이미지도 잘 어울렸다. '셜록'과는 묘하게 차별되면서도 이미지로서 전달하는 바가 충분하다고 느껴지는 캐릭터였다. 콜린 퍼스는 주연으로 홀로 나설 때보다 이렇게 여러 캐릭터에 섞여 있을 때 더 큰 매력을 발산한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고, 마크 스트롱의 그 눈빛은 아마도 이 영화에서 가장 못 잊을 이미지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비중은 별로 많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영화와 시대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라고 생각하는 '로이' 역의 시아란 힌즈의 이미지도 인상적이었으며, 톰 하디와 존 허트, 스티븐 그레헴 등 좋은 배우들의 멋진 이미지가 영화와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든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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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일반적인 영화가 스파이를 그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을 선택함으로서, 오히려 가장 스파이 영화다운 작품이 되었다. 이던 헌트가 활약하는 스파이 영화도 좋지만, 조지 스마일리가 활약하는 스파이 영화도 못지 않게 인상적이었다.



1. 



엔딩에 흐르던 훌리오 이글레아시스의 'La mer'는 정말 정말 탁월한 선곡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지금까지 도대체 몇번을 반복해서 들었는지 모르겠네요;;


2. 보통 원작이 있는 영화는 영화를 보고나면 크게 다시 찾아보고픈 생각이 들지 않곤 하는데, 이 작품은 원작을 찾아보고 싶어졌어요. 기회가 된다면 BBC에서 제작한 알렉 기네스 주연의 TV시리즈도요.


3. 색감과 질감에 반한 탓인지 블루레이 출시를 손꼽아 기다려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Studio Canal 에 있습니다.





렛 미 인 (Let The Right One In, Lat Den Ratte Komma In, 2008)
고혹적 아름다움의 러브 스토리


<렛 미 인 (Let the Right One In)>은 개봉 전부터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았던 흔치 않은 스웨덴 영화였습니다.
시사회를 통한 평론가들의 별점 평가에서 대부분 만점에 가까운 찬사를 받기도 했고, 많은 영화팬들이 평점을 비교할 때
많이 찾는 사이트 중 하나인 로튼토마토에서 100점 만점을 기록했다는 말들은, 이 영화가 헐리웃 영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더욱 관심을 갖게 되는 평가들이었습니다. 특히나 로튼토마토 100점 만점이라는 것은 그 '신선도'가 신선하다 못해
생소하다는 것인데, 영화를 보고 나니 이 평가들이 결코 크게 오버된 것들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더군요.
알려졌다시피 <렛 미 인>은 뱀파이어 소녀(여기엔 소녀라고 썼지만 이후에 다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와 따돌림 당하는
인간 소년의 애틋한 이야기를 그려나가고 있는데, 이 둘이 서로에게 표현하는 대사나 몸짓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이 둘을 둘러싸고 있는 스웨덴 북부 도시의 눈덮인 고요한 풍광이 또한 너무 아름답더군요.
앞으로는 스포일러가 가득 담긴 글이 될테니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요 근래 본 영화들 가운데서는 가장 깊은 인상을 준
수작이었으며, 아마도 <판의 미로>의 경우처럼 오랫동안 장면과 캐릭터의 표정들이 기억에 남을 영화가 될 것 같네요.



(이 후로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과감히 맨 마지막 문단으로
이동해 주세요~)





12살 소년인 주인공 오스칼은 이혼한 엄마와 둘이 살고 있고, 아버지와는 가끔 만나며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이른바 '왕따' 소년입니다. 대부분의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들의 특징처럼 오스칼 역시 계속 괴롭힘을
당하긴 하지만 단 한 번도 그 앞에서는 반항하지 못하고, 아무도 없는 집 앞 정글짐 앞에서나 나무에 대고 칼로 자신을 괴롭힌
친구를 상상하며 소심하게 욕구를 분출하는 외로운 소년이죠.
이 외로운 소년의 옆 집에 어느날 누군가 이사를 오게 됩니다.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와 함께 이사온 이엘리가 바로 그 주인공인데,
눈이 깊게 덮힌 추운 날씨임에도 맨발과 반팔 차림으로 나타난 이엘리와 오스칼은 조금씩 서로에게 편안함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따돌림 당하고 친구 하나 없이 외로움에 익숙해져 있던 오스칼은, 조금은 이상해 보이는 이엘리 이지만 처음으로 자신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로서 받아들이고 빠르게 이엘리에게 깊은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엘리 역시 뱀파이어로서
아버지로 보이는 (계속해서 '아버지로 보이는'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극중에서 이 인물에 대한 명확한 묘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원작을 보니 성도착자에 가깝게 그려졌다고 하는데, 영화에서 역시 완벽한 아버지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약간
애정 관계에 있는 듯도 하고, 100% 명확하지는 않거든요;;하지만 여러가지 정황상 이 남자 역시 한 때는 오스칼 같은 소년이었고, 오스칼 역시 미래에는 이 남자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남자가 인간들을 죽이고
가져오는 피로 계속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외로운 삶 속에서, 처음으로 마음을 나눌 만한 상대를 만났다는
생각에 오스칼에게 깊은 애정을 갖게 되구요. 이렇게 지금까지 외로운 삶 속에 놓여있던 이 두 존재는, 처음으로 서로를
나눌 만한 존재가 등장했다는 생각에 그 어느 친구들간의 우정이나, 그 어느 연인들 간의 애정보다도,
서로에게 헌신적인 존재가 되려합니다.




여기서 이엘리가 과연 남성인가 여성인가, 혹은 중성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데, 아무래도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일부 대사를
통해 '소녀'로 묘사되고 있기는 하지만,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또는 이 둘의 관계를 단순히 남녀 간의
로맨스로만 본다면 영화를 반 밖에 보지 못한 것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 같구요. 특히 오스칼이 이엘리는 받아들이는 것에
있어서 단순히 '여자친구'로 의식했다기 보다는(물론 대사에는 '여자친구가 되어줄래?'가 있긴 하지만 말이죠),
단순한 우정이나 사랑을 초월한, 서로간의 존재로서 존재를 느끼고 의지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맞다고 생각됩니다.

이엘리 역시 처음에는 단순히 오스칼이 '여자친구'이기만을 원하는 것 같아 '여자친구'가 되려하지 않지만, 오스칼이 말하는
'여자친구'가 되어도 지금의 관계가 전혀 달라지지 않는 다는 말을 듣고는 오스칼이 원하는 '여자친구'가 되기로 결심하는 것이죠.
사실 이엘리가 오스칼에게 자신이 뱀파이어라는 것을 들키게 된 이후에, 오스칼에 행동들은 약간은 클리셰에 가까운 행동들을
취하게 되는데, 이것은 전형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오스칼이 12세 소년이라는 점에서 아직 불완전한 소년의 감성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뱀파이어라는 것 까지는 알지 못했던 오스칼은, 이엘리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에
잠깐 놀라긴 하지만 자신의 삶으로 돌아와 다시 한번 무관심과 외로움을 느낀 다음에는 바로 이엘리에게 달려가게 되죠.
이 이후에 초대받지 못한채 오스칼에 방에 들어오게 된 이엘리가 온몸으로 피를 쏟아내는 고통을 스스로 선택하게 된 걸
보게 되면서, 오스칼 역시 완전히 이엘리의 존재를(이엘리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이 더 이상 크게 중요하게 되지 않은거죠)
받아들이게 되죠. 이렇게 외롭게 지내던 두 아이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서로를 알아가고 관계를 형성해 가는 이야기를
영화는 참으로 아름답고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해 냅니다. 여기에는 그들의 대사가 영어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도
약간에 몫을 한 것 같구요. 스웨덴어가 주는 발음의 느낌도 이 이야기를 더욱 동화스럽고 신비스럽게 만드는 것 같네요.




이 영화는 뱀파이어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분명히 존재하고 뱀파이어 만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장면들도 제법 여러 번 등장합니다. 특히 병원 벽을 거슬러 올라가는 장면이라던가, 이엘리에게 물린
여자가 결국엔 햇빛에 노출되어 불에 타 죽고 마는 장면, 그리고 높은 곳에서 뚝뚝 떨어져서 인간들의 피를 빨아먹는
장면 등도 뱀파이어라는 인물에 특성에 맞는, 즉 과도하지 않으면서도(이 영화가 본격적인 뱀파이어 영화로 보기는 조금
힘들테니 말이죠. 그래서 더 좋았지만요;), 뱀파이어의 특성은 잘 살리고 있는 정도로 장면의 묘사들이 이루어진 경우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더욱 슬픈 분위기로 흐르거나, 가끔 공포스러운 분위기로 이끌어가도록 만드는 것은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느 기사에서 본 것처럼 이 영화는 음악이 전혀 없다고 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만큼 멋진 풍광과 절제된
대사 만으로도 분위기를 구성할 수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확실히 음악이 좀 더 극적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긴 합니다.
특히 공포스러운 부분에서는 음악이 상당히 공포스러운 장면이 곧 나올것이다 라는 암시를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15세 관람가여서 그런것인지, 관객들에게 미리 준비하라는 사인을 계속 주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영화의 시작이나 마지막에도 흐르던 그 음악들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마치 <판의 미로>에서 등장했던 그 테마 음악처럼
그 음악을 듣게 되면 오스칼과 이엘리를 자연스레 떠올릴 만큼, 시종일관 슬픈 사랑이야기를 잔잔하게 강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렛 미 인>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단 한번 만이라도 내가 되어봐'라는 대사처럼,
스스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관계를 이어가는 것으로 영화가 진행, 마무리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네요.
아마도 이 영화의 주인공이 소년.소녀가 아니라 어른들이었다면 아마도 뱀파이어는 사랑하는 인간을 위해 인간이 되려하고,
인간은 사랑하는 뱀파이어를 위해 스스로 뱀파이어가 되려고 했었겠지만, 아직 세상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오스칼과
이엘리에게는 이런 복잡한 계산이 아예 없었던 것이죠.
이엘리는 어쩌면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뱀파이어로서의 모습을 오스칼이 바로 보는 앞에서 노출하기도 했고,
오스칼 역시 이런 이엘리에 모습에 어른만큼 크게 놀라거나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는 거죠. 아마도 어른들이었다면
내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떨까, 나를 더이상 만나지 않으려 하겠지 라는 걱정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데
상당한 시간과 고민이 수반되었겠지만, 이엘리는 아주 순수하게 '그래, 오스칼을 진정으로 사랑하니까 나의 진정한 모습도
다 이해해주겠지'하는 단순하지만 '올바른' 생각을 했던 것이죠. 그런 마음이 결국은 오스칼에게도 진심으로 통하게 된 것이구요.
어느 한 편만 이런 순수함을 갖고 있었다면 이 이야기는 슬픈 이야기로 끝이 나버렸겠지만, 둘 모두가 이런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서로가 함께 할 수 있는 '행복한' 이야기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사실 <렛 미 인>을 설명하는 대부분의 말들이 '슬픈 사랑이야기'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분위기 상으로는 그렇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슬프다'라고 생각하는 건 제 3자의 시각일 뿐, 오스칼과 이엘리는 계속 함께 하게 되었으니
'행복한'이야기라고 해야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로가 행복하면 그것으로 되었다 라는게 더 맞는 것 같기도 하구요
(물론 여기에 '그렇다면 이엘리의 생존을 위해 죽어간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 그들의 가족들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하고
묻기 시작하면 이 이야기는 끝이 없어요 --; <렛 미 인>은 여기에 포인트를 준 영화는 아니니깐요;;;).




벌써부터 <렛 미 인>의 헐리웃 리메이크 소식이 들려오는데,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겠지만 아마도 헐리웃에서 이 영화를 만들게
된다면 더 '재미'있을지는 몰라도 이런 감수성은 절대 다 포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더 많은 관객들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지언정, 스웨덴 영화 <렛 미 인>이 남긴 깊은 인상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얘기죠.

스웨덴의 눈 덮인 밤의 정취는 공포스럽기 보다는 참 고요하고 평화스럽게 느껴지더군요(물론 이 영화가 본격적인 공포
영화였다면 다르게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에요). 그리고 수영장 씬과 검은 밤하늘에 눈발이 휘날리는 장면들은
영화적으로도 매우 멋진 장면이었던 것 같구요(이 외에도 이 영화에는 상당히 멋진 장면과 구도가 등장합니다).

개봉관이 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더 많은 분들이 이 신선하고 아름답고 소중한 이야기를 극장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1. 스웨덴 학교는 참 부럽더군요. 수업시간에 톨킨을 읽어주다니(빌보가 탈출했다고 한걸로 봐서는 '반지의 제왕'보다는
   '호빗'인 것 같더군요).

2. 고양이들의 성내는 장면에서 대부분의 CG가 사용된 것 같더군요. 좀 티가 나긴 하더라는;

3. 오스칼에 그 표정과 빛나는 금발 때문에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가 연상되기도.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수입사 the Daisy Entertainment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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