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트풀8 (The Hateful Eight, 2015)
타란티노의 첫 번째 오리지널 서부 영화
레드 락 타운으로 ‘죄수’를 이송해가던 ‘교수형 집행인’은 설원 속에서 우연히 ‘현상금 사냥꾼’, ‘보안관’과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 거센 눈보라를 피해 산장으로 들어선 4명은 그곳에 먼저 와있던 또 다른 4명, ‘연합군 장교’, ‘이방인’, ‘리틀맨’, ‘카우보이’를 만나게 된다. 큰 현상금이 걸린 ‘죄수’를 호시탐탐 노리는 이들에게 ‘교수형 집행인’은 경고를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참혹한 독살 사건이 일어난다. 각자 숨겨둔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서로를 향한 불신이 커져만 가고 팽팽한 긴장감 속에 증오의 밤은 점점 깊어지는데... (출처 : 다음영화)
쿠엔틴 타란티노의 8번째 영화 '헤이트풀8 (The Hateful Eight, 2015)'은 그의 장기가 집대성 된 영화다 (아, 그 전에 헤이트풀팔 이라는 국내 제목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그냥 증오의 8인 정도로 했으면 좋았을 것을. 관련 글 링크). 또 한 번 여러 명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수다는 재료가 아니라 핵심이며, 장르 영화의 틀 안에서 자유롭게 노는 것도 여전하다. 타란티노는 이미 전작들을 통햇도 자신이 좋아하는 여러 장르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를 빌어 다양한 진화된 결과물을 보여주었었는데, 이번 '증오의 8인'이 전작들과 조금 다른 점이라면 바로 오리지널리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헤이트풀 8'은 어떤 영화에 대한 오마주이거나 오마주를 활용해 더 흥미로운 작품을 만든 경우가 아니라, 명백한 장르 영화로서 첫 번째 오리지널 작품이라는 점에서 흥미롭고 주목할 만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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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 롤이나 엔딩 크래딧 등만 보아도 이전 그의 작품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활용된 적이 있으나, 전작들에서는 말그대로 명확한 컨셉에 따른 선택이었다면 이번 경우는 어떠한 의도를 갖기 이전에, 그냥 진짜 서부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이런 성향을 가장 잘 대변하는 이번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이미 가장 많이 화제가 되기도 한 엔니오 모리꼬네의 영화 음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어? 예전에도 타란티노의 영화에 엔니오 모리꼬네 음악은 많이 나오지 않았나?'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어쩌면 모리꼬네의 열렬한 팬이었던 타란티노의 선택으로 인한 일종의 삽입곡인 경우였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곡들 외에도 타란티노의 영화들은 그가 선택하는 유명한 넘버들로 인해 사운드 트랙 측면에서도 매번 끝내주는 앨범을 선사하곤 했는데, 전작들의 사운드트랙이 컴필레이션 앨범에 가깝다면 이번 '헤이트풀 8'의 사운드 트랙은 오리지널 정규 앨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엔니오 모리꼬네가 이 영화 만을 위해 새롭게 만든 스코어들은 앞서 언급한 첫 번째 오리지널 영화로서의 의의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있다. 타란티노는 모리꼬네의 새로운 곡을 받고 얼마나 좋아했을까. 그 흥분이 스크린 밖까지 느껴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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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에 가까운 168분의 러닝 타임이지만 영화는 아주 한정된 공간만을 무대로 한다. 잡화상 건물 안에 각기 다른 이유로 오게 된 인물들을 가둬두고 챕터 형식을 통해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는, 한정된 공간이라는 제약을 가장 큰 장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정된 공간에 한정된 인물들이라면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무기는 대화가 된다. 타란티노에게 대화 시퀀스란, 아니 수다란 가장 매력적인 도구이자 자신의 의도를 가장 잘 표현해줄 수 있는 도구가 아니던가. 타란티노는 이 수다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린 장인답게 오로지 수다 만을 통해 각 인물들의 성격을 부여하는 동시에, 묘한 긴장감과 이야기의 복선과 반전 등을 이끌어 낸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를 보고나면 서부 영화를 봤다는 느낌과 함께 한 편의 설화를 전해 들은 듯한 느낌이 남는다. 즉, 캐릭터가 빛나는 캐릭터 영화이기도 하지만, 스토리텔링이 중심에 있는 전통적인 방식의 영화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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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트풀8'은 제목의 요상함 보다도 그 화면비에 대한 이야기가 더 화제가 되었는데, 다행히 스타리움 관을 통해 최대한 감독의 의도에 가까운 화면비로 감상할 수 있었다. 타란티노는 오리지널 서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조금은 집착에 가깝게 고전적인 화면비율을 고집했는데, 일반적인 2.35:1 화면비가 아닌 울트라 파나비전 70렌즈와 70mm 필름 촬영을 통해 무려 2.76:1의 극단적인 화면비로 이 영화를 완성하였다. 요즘 관객들은 위아래로 가득 찬 화면비를 더 선호하기는 하지만, 좌우로 길게 뻗은 시네마스코프 화면 만이 만들어 내는 영상미는 분명 존재하고, 또 압도적인 순간들을 만들어 낸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같은 작품들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텐데, 타란티노는 와이오밍의 설원을 배경으로 인물들이 작게 언덕 넘어 등장하는 이 장면 하나 만을 위해서라도 아마 이 화면비를 고집했을 감독이다. 바꿔 말하면 이 장면은 최근 다른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압도적인 시네마스코프 화면비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다. 사실 이러한 화면비를 선택한 것치고는 풍광을 담은 로케이션 장면이 그리 많지는 않은 편인데, 하지만 잡화점 내에서도 이 화면비는 감독의 의도를 구현하는 데에 탁월한 영상을 선사한다. 타란티노는 한정된 공간 내에서 주로 인물들 간의 대화와 구도로 이뤄지는 영화의 내용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 될 수 있도록 이 화면비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1.85:1의 비스타비전 화면비에서는 다 표현되지 못하는 인물 간의 거리와 그 거리를 이용한 신선한 구도들은, 8명의 인물들이 이야기의 전개 과정 속에서 계속 구도가 달라지는 것을 표현하는 것에 아주 효과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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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데이지 도머그 역할을 맡은 제니퍼 제이슨 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타란티노의 영화 속에서 더욱 빛나는 여러 배우들 가운데서도 (마이클 매드슨, 커트 러셀, 팀 로스 등) 단연 돋보였던 제니퍼 제이슨 리는 이 작품의 상징과도 같다. 뭐라고 한 마디로 설명하기가 어려운 이 도머그라는 캐릭터를 매력적이고 심지어 사랑스럽게까지 만든 그녀의 연기는 진정 올해의 캐릭터로 꼽힐 만하다. 아마도 타란티노 만이 창조할 수 있었을 이 캐릭터를 구현해 낸 그녀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헤이트풀 8'은 지루하지 않다 (그녀는 심지어 기타 연주와 함께 노래도 한다). 국내에서는 그럴 일이 없겠지만 미국에서는 도머그 성대모사도 나오지 않을까? ㅋ
1. 응답하라 시리즈의 라면처럼, 영화 속 스튜가 어찌나 맛있어 보이던지. 아, 그리고 이제 어디가면 커피는 좀 가려 마셔야겠어요.
2. 벌써 블루레이 국내 발매 소식이 전해졌는데, 무조건 구매입니다.
3. 사운드트랙도 구입했는데 오히려 타란티노의 전작 OST에 매력을 느낀 분들이라면 조금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어요. 본문에 쓴 것처럼 전작들은 삽입곡 위주의 컴필레이션 같은 구성이었다면, 이번엔 스코어의 성격이 더 강하거든요.
4. 아래는 이전에 썼던 타란티노의 최근 작 글들
* [블루레이] 장고 : 분노의 추적자 _ 울분을 토해내는 타란티노식 서부극
* 바스터즈 _ 타란티노가 말하는 내 생애 최고의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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