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올해의 영화 베스트 10

(2012 Movie of the Year)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하자면 2012년 한 해는 정말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몹시 힘든 시간들이었는데, 이렇게 또 한 해를 버티고 나니 그 시간들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더라. 그럼에도 결코 쉽지 만은 않은 시간들을 버티게 해준 것은 역시 영화였다. 허세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많은 영화들이 지친 영혼을 위로해 주었고 차마 울 수 없었던 현실과는 다르게 영화를 보면서는 마음껏 눈물 흘릴 기회도 주어졌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것 만큼이나 보고 난 뒤 글을 쓰면서 단순히 영화를 보고 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더 좋았던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2012년에는 유난히 보고 싶었는데 못 본 작품, 그리고 봤는데 쓰지 못한 작품도 적지 않았다. 벤 애플렉의 '아르고'는 결국 보지 못했고 '아무르'도 결국 놓쳤다. 다르덴 형제의 '자전거 탄 소년'이나 레오 까락스의 '홀리 모터스' 그리고 벨라 타르의 '토리노의 말'은 모두 인상 깊게 보았으나 결국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글을 쓰지 못했다 (글을 쓰지 못한 작품을 올해의 영화로 꼽은 적은 '홀리 모터스'가 처음인 것 같다. 너무 감동받아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그랜 토리노'를 제외한다면).


언제나처럼 각 작품들 간의 순위는 없으며, 아니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1위 작품 하나 만을 꼽으려고 한다. 바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늑대 아이'가 그 것이다. '늑대 아이' 외에는 순위와 상관없는 개봉일 역순이며 2012년 한 해 극장에서 본 영화만을 대상으로 했으며, 12월 일본에서 보고 온 '에반게리온 신 극장판 : Q'는 후보에 넣지 않았다. 아쉽게 빠진 작품이라면 '클로니클' '토리노의 말' '다크나이트 라이즈' '건축학개론' '우리도 사랑일까' 그리고 '다른나라에서'와 '대학살의 신' 등이 있겠다.





1.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Tinker Tailor Soldier Spy, 2011)

쓸쓸한 공기를 머금은 스파이라는 존재에 대해

 

 

올해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근사하고 우아한 작품을 고르라면 단연 TTSS였다.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배우들의 향연들 만으로도 황홀한데, 스파이라는 존재를 그리는 이 방식은 또 얼마나 매력적인지. 이제 내게 스파이하면 이던 헌트 만큼이나 조지 스마일리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아, 엔딩에 흐르던 훌리오 이글레아시스의 'La mer'는 올해의 엔딩곡 후보.

 

 

 



2. 워 호스 (War Horse, 2011)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고전의 감동

 

 

스필버그의 오랜 팬으로서 물론 재미나 감동에 대해서 의심을 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워 호스'의 감동은 그 크기가 달랐다. 복잡한 얘기도 없고, 신파적이고 우직한 이야기 뿐이지만 그 이야기가 나를 이토록 많이도 울렸다. 올해 극장에서 흘린 눈물 가운데 양으로만 따지면 '워 호스'가 아마도 가장 많을 것이다 (극장에서 잘 우는 내 특성상 올 연말에는 꼭 눈물양으로만 순위를 한번 따져봐야 겠다;;). 스필버그가 왜 거장인지 설명하는 것에는 이제 지쳤다. 올해의 헐리우드 클래식!

 

 

 



3. 디센던트 (The Descendants, 2011)

아버지라는 존재의 이유

 

 

스필버그가 왜 거장인지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것처럼, 조지 클루니가 왜 멋진 배우인가에 대해서도 이제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알렉산더 페인과 만난 조지 클루니는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남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매력적인 연기를 펼쳤다. '디센던트'는 시간을 두고 가끔씩 꺼내보고 싶은 영화다. 30대 초반에 본 '디센던트'와 40대가 되어서 보게 될 그리고 50대가 되어서 보게 될 '디센던트'는 또 다른 영화가 되어 있을 것이다.

 

 

리뷰 보기 - http://realfolkblues.co.kr/1611

블루레이 리뷰 보기 - http://realfolkblues.co.kr/1641

 



4. 멜랑콜리아 (Melancholia, 2011)

우울함은 영혼을 잠식한다

 

 

국내 극장에서 볼 수나 있을까 살짝 걱정도 했었던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는 과연 압도하는 작품이었다. 얼마나 압도 당했는지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한 동안 좌석에서 쉽게 일어날 수 없을 정도였다 (오랜만에 겪는;;). 혹자는 라스 폰 트리에를 일컬어 너무 병적으로 집착하는 것이 아니냐고도 하지만, 자신이 집중하는 것에 대해 이런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예술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 보기는 정말 힘든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또 보고 싶은 작품이기도 했다.

 

 

 



5.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2012)

근원에 대한 선문답

 

 

논란 아닌 논란이 많았던 작품이지만 나는 리들리 스콧의 방식을 굳게 지지한다. '프로메테우스'의 진정한 메시지는 '답'이 아닌 '질문'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 작품이 관객에게 질문을 이끌어내는 방식은 가장 효과적이었다 (실제로도 그랬고).

 

 

리뷰 보기 - http://realfolkblues.co.kr/1652
블루레이 리뷰 보기 - http://realfolkblues.co.kr/1700

 


 

6.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s Paris, 2011)

우디 앨런의 엑설런드 어드벤처

 

 

요 몇 년 사이 가장 신작을 기다리는 감독 중 하나가 홍상수 만큼이나 우디 앨런이 되어버렸는데, '미드나잇 인 파리'는 이런 기대감을 120% 만족시켜 준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파리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한 일종의 도시 시리즈인 줄로만 알았었는데, 우디 앨런이 만든 도시 중심 영화는 역시나 달랐다. 시공간을 넘나들면서도 이렇게 자유로운 감독이 또 있을까. 올해 본 영화 가운데 '아, 내가 조금만 더 알았더라면!'하는 아쉬움이 가장 컸던 작품이기도 했다.

 

 

 

 


7. 스카이폴 (Skyfall, 2012)

새 시대를 맞는 007의 강렬한 대답

 

 

나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 점에서 다니엘 크레이그 007 삼부작의 세 번째 작품 '스카이폴'은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감독도 다르고 공식적으로 삼부작도 아니지만, 샘 멘데스는 '스카이폴'을 통해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세 작품을 모두 껴앉으며 완성형이자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만들어냈다. '스카이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영화 자체가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007'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50주년 기념작으로 더 없이 완벽한 이 작품은, '어떻게 이 시리즈가 50년이라는 세월을 생존해 왔는가'를 넘어서서 '왜 냉전이 끝난 21세기에도 007이어야만 하는가'를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말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8. 서칭 포 슈가맨 (Searching for Sugar Man, 2011)

말하는 순간 기적이 되는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은 올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놓쳤으면 후회했을 작품이었다. 실제로 놓칠 뻔 했던 영화를 뒤늦게 보게 되어서 더 그렇기도 하지만, 이 기적 같은 아니 기적의 영화를 본 것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올해 마틴 스콜세지의 '조지 해리슨'과 더불어 좋은 다큐 영화들을 여럿 접할 수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서칭 포 슈가맨'이 특별한 건, 영화가 특별한 것 +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인공 로드리게즈의 삶이 주는 특별함 때문이었다. 이 영화는 뭐라고 말로 할 수가 없다. 보라는 것 밖에는. 에반게리온 : Q가 말하는 순간 스포가 되는 것처럼, 이 영화는 말하는 순간 기적이 되는 영화다.

 

 

 



9. 홀리 모터스 (Holy Motors, 2012)

왜 우리는 영화를 보는가

 

 

글의 서두에 밝힌 것처럼 올해 인상 깊게 보고도 글로 풀지 못한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레오 까락스의 '홀리 모터스'다. 영화제를 통해 인상 깊게 보았지만 타이밍을 놓쳐 미처 쓰질 못했는데, 이 영화가 주는 특별한 경험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기본적으로는 '영화'라는 매체, 그리고 '영화를 본다'라는 것에 대한 영화로 읽혀졌다. 참고로 이 영화는 씨네큐브에서 진행했던 영화제를 통해 보았는데 그 당시 영화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던 '신의 소녀들' '토리노의 말' '홀리 모터스' 가운데 개인적으론 '홀리 모터스'가 가장 좋았다.

 


 

10. 늑대아이 (おおかみこどもの雨と雪, 2012)

엄마는 그렇게 살아왔구나...

 

 

올해의 영화를 몇 년째 꼽으면서 정말 수 많은 명작들을 다뤄왔지만 그래도 순위를 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올해는 이례적으로 1위 한 작품은 꼽게 되었으니 바로 이 작품 '늑대아이'다. 보통 울컥하는 영화들은 어떤 지점에서 터지거나 클라이맥스에 터지곤 하는데, 이 영화는 하나가 홀로 되던 시점에서부터 이미 울컥하기 시작해서 그 이후에도 쉴새 없이 감정적으로 흔들렸던 작품이었다. 내년에는 기회가 된다면 '늑대아이' 속 실제 장소를 찾아가는 일본 여행을 계획 중일 정도로 이 작품에 대한 여운은 아직도 '뜨겁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각 영화사 에 있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