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We Bought a Zoo, 2011)

이유라는 것의 무의미도 필요해



'제리 맥과이어 (1996)' '올모스트 페이모스 (2000)' '엘리자베스타운' 등을 연출했던 카메론 크로우의 신작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We Bought a Zoo, 2011)'를 보았다. 제목과 포스터 (주인공들이 모두 등장한 버전)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만 보아도, 이 작품은 매우 '착한영화'일 것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특별한 악당도 없고, 주인공들이나 주변 인물들도 모두 선한 분위기가 가득 찬 이들이고 이들이 겪게 되는 과정들도 결국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참 착한 영화말이다. 각종 범죄와 폭력, 스릴러가 난무하는 영화들을 연달아 보게 되면 가끔씩은 아무 이유없이 그냥 착한 영화들에 대한 갈증이 절로 생기게 마련인데, 그래서 극장을 찾으면서 기대했던 것은 이런 착한 영화가 줄 수 있는 흐뭇함과 안식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카메론 크로우의 신작은, 단순히 착한 것 외에도 생각해볼 만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더 괜찮은 작품이었다.



Twentieth Century Fox Film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아내를 잃고 아들과 어린 딸과 함께 남겨진 한 가장이 새로 살 집을 찾던 중, 우연한 기회에 동물원을 운영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작지만 큰 과정을 그리고 있다.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가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정서 중 하나는 바로 이 남겨진 자들이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내이자 엄마를 잃은 한 가정이 이 빈자리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주요 테마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면에서 최근 보았던 존 카메론 미첼의 '래빗 홀 (Rabbit Hole, 2010)'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었다. 두 작품 모두 단순히 누군가의 '부재'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존재의 상실에서 오는 남겨진 자들의 치유의 과정과 그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방법면에 있어서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래빗 홀'에 방법론은 이 작품의 리뷰에서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의 방법론을 이야기하자면, 정반대의 길로 달려본 뒤에야 해결 방법이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결국 정반대라고 생각했던 길마저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이겨내는 길이었음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영화는 이 가족의 치유 과정 속에 어쩌면 착한 영화다운 메시지를 살며시 포개어 놓는다. 관찰자의 입장에서는 그 어떤 모험에도 적극적이고 복잡할 것이 없었던 주인공 벤자민(맷 데이먼)이 실제로 자신이 진짜로 겪게 된 모험에서는 여러가지 이유와 사정들을 들어 쉽게 전진하지 못하는 과정을 그리는 동시에, 역시 상처와 트라우마 때문에 한 걸음 더 다가가지 못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영화는 'Why Not?'이라고 되묻는다. 그리고 여기에 작은 도구로 용기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리고 그 작은 용기, 20초만 눈 딱감고 저질러 버리면 되는 그 작은 용기가 만들어낼 수 있는 커다란 가능성의 세계를 보여준다. 혹자는 이 과정을 100% 수긍하기에는 너무 헛점이 많은 것 같다라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Why Not?'을 설명하기 위해 논리적 무장을 철저히 하는 것은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과 동물을 배경으로 그 안에 인간이라는 도구를 사용해, 눈빛과 표정으로 마음을 전달하는 과정은 적어도 나에겐 충분했다. 맷 데이먼이 좋은 배우라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지만, 아버지 역할로서도 이 정도의 감동을 선사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컨테이전'에서 보여준 가능성이 이 작품에서 좀 더 꽃을 피웠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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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보통 같았으면 당연히 끝났어야 할 지점을 지나 영화는 에필로그처럼 작은 이야기 한 토막을 꺼내 스스로 마무리한다. 바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Why Not?'에 대해 정리할 부분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 장면은 너무 직접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살짝 드는데, 그래도 이 장면은 너무 좋았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떤 영화든 정말 멋진 장면을 한 장면씩은 갖게 마련인데, 이 작품에는 아마도 이 장면이 아닐까 싶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 장면이 있어서 이 영화가 앞으로도 더욱 기억에 남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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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론 크로우의 팬이라면 그의 영화를 볼 때 좀 더 기대하게 되는 부분이 바로 영화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음악에 대해서는 잔뼈가 굵은 그 답게 이번에는 '시규어 로스 (Sigur Rós)'의 메인 보컬로 더 잘 알려진 '욘시 (Jónsi)'의 음악을 선택했다. 기존 욘시의 솔로 데뷔 앨범 'Go'에서 전혀졌던 신비스러운 행복함이 이 작품에도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고 있는데, 자연과 동물원이라는 배경 그리고 치유라는 메시지에 있어서 욘시의 음악처럼 잘 어울리는 조합도 없지 않나 생각된다. 그 밖에도 카메론 크로우가 평소에 좋아하는 밥 딜런, 윌코 등의 음악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카메론 크로우 영화의 사운드 트랙은 믿고 사도 좋다.


누군가는 이 영화에 대해 너무 쉽게,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물론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무기가 있기는 하지만;;) 그냥 '안될 이유가 있나?'라는 무모함으로 너무 쉽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을 텐데, 물론 그렇지만 가끔은 하나하나 이유를 들어 설명하지 않고 그냥 '안될 이유가 있나?'라는 무모함 섞인 희망과 긍정이 담긴 영화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리고 허무맹랑이라 하기에 이 영화가 담아낸 이야기는 충분히 감동적이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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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영화는 'Why Not?'이라는 것과 더불어 극중 벤자민처럼은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몇년 간 적지 않게 고민하고 있는 '귀농'이라는 것과 맞물려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계산하고 이유를 찾다보니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 같은데, 정말로 '안될 이유가 있나?'라는 심정으로 실행해야만 가능한 걸까요? ;;

2. 주인공이 키우는 강아지가 나오는데 이렇게 비중이 없는 영화는 거의 없을 듯. 아마도 배경이 동물원이다보니 강아지는 그야말로 찬밥인듯 ㅎ

3. 엘르 패닝은 '수퍼 8'에서는 쌀쌀맞게 나오더니 여기서는 정반대라 좀 적응이 안되기도 ㅎ 아직까지는 괜찮은 성장중인듯.

4. 영화 속 동물원 개장날의 이야기는 실제 현실인가 아닌가를 떠나서 판타지에 가까워서인지, 더욱 그 이후 영화가 보여준 결말이 꼭 필요했다고 생각되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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