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아 블루레이

장인의 손길로 태어나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멜랑콜리아 (Melancholia, 2011)'가 PLAIN에서 제작한 DP시리즈를 통해 국내에 블루레이로 정식 발매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해의 영화 10편 중 한 편으로 꼽았을 정도로 인상 깊게 본 라스 폰 트리에의 작품이었는데, 극장에서 보면서도 블루레이로 다시 보았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과연 출시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부터 앞섰던 것도 사실이었죠. 하지만 PLAIN과 DP를 통해 이 작품을 완성도 높은 퀄리티와 소장 가치 높은 타이틀로 소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간단하게 '멜랑콜리아' 블루레이에 대해 사진 위주로 소개하려 합니다.






배경에 깔린 포스터는 블루레이 발매 전 영상자료원에서 상영했을 때 받아온 오리지널 포스터인데, 그 퀄리티가 정말 대단합니다. 포스터 종이의 질이나 디자인의 수준이나, 들인 노력이나 퀄리티가 오버라고 느껴질 정도의 결과물이었죠. 하얀 배경의 책자는 개봉 당시 이벤트로 한정 배포했던 짧은 책자인데, 이것 역시 단순한 팜플렛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쏠쏠한 이미지들을 시원한 컷으로 만나볼 수 있는 아이템이었죠. 이로서 '멜랑콜리아' 3종 세트가 완성되었군요!






사진을 통해서는 100% 표현이 안되는 부분인데, 아웃케이스를 로얄 아이보리 용지를 사용했고 캘리그래피 타이틀 및 로고 실크 에폭시 처리를 하여 품격을 더하고 있습니다. 즉, 손으로 캘리그래피 부분을 만져보면 얼마나 섬세하게 만들어졌는지 촉감으로 확인할 수 있어요. 블루레이 아웃케이스에 이 정도 퀄리티라니... 오버 스펙이 아닐 수 없겠네요.





아웃케이스를 제외한 블루레이 케이스와 소책자. 개인적으로는 블루레이 케이스의 메인 이미지가 너무 마음에 들어요. '멜랑콜리아'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들 보다도 저 이미지가 더 마음에 들고, 일반적이지 않아서 더 좋구요.





케이스 안에는 블루레이 디스크와 작은 엽서 한 장이 수록되었습니다. 엽서의 뒷 면에는 PLAIN에서 출시될 다음 블루레이 타이틀인 '더 레슬러'에 대한 이미지가 수록되었습니다.





다른 DP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안에 일반판 속지가 추가로 들어있는데, 역시 DP용 버전이 더 마음에 드네요. 내부에는 프리오더에 참여한 DP 분들의 닉네임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소책자에는 여러가지 글과 이미지들이 수록되었는데, 역시나 타이틀의 소장 가치를 한 층 더해주는 내용들이 수록되었습니다. 라스 폰 트리에의 짧은 글도 만나볼 수 있고.





영화 평론가 최은영 님의 글 '인간이라는 복잡한 존재의 미로를 탐험하는 기이한 안내서'도 수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쓴 '우울함의 끝과 시작'이라는 제목의 글도 수록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글이 수록되는 입장에서는 내 글이 담긴 페이지에 어떤 이미지들이 수록되었나 하는 것도 관심 사항인데, 이번 메인 이미지는 너무 마음에 드네요. 제목과 잘 어울리는 강렬한 이미지인 것 같아요.






그 외에도 다양한 읽을 거리는 물론 라스 폰 트리에의 다음 작품인 '님포매니악 (The Nymphomaniac, 2013)'의 홍보 컷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완성도 높은 타이틀에 제가 조금이나마 참여하게 되어 다시 한 번 PLAIN에게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계속 영화 팬들을 위한 좋은 작품을 블루레이로 꾸준히 소개해줄 수 있기를 바라고 응원하겠습니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멜랑콜리아 (Melancholia, 2011)

우울함은 영혼을 잠식한다



국내에 과연 정식 개봉이나 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던 라스 폰 트리에의 신작 '멜랑콜리아 (Melancholia, 2011)'를 보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아니 제목을 보지 않아도 라스 폰 트리에의 신작이라는 것 만으로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던 것처럼, '멜랑콜리아'는 우울함과 불안함에 관한 그의 또 다른 이야기다. 라스 폰 트리에는 이번에도 챕터 형식을 빌어 '저스틴' (키어스틴 던스트)과 '클레어' (샬롯 갱스부르)로 나누어 우울함이라는 것과 이를 받아들이는 각자의 방식 그리고 이를 둘러싼 불안함에 대해 들려준다. 아무도 이 영화를 SF재앙 영화로 기대하지는 않았을 테니 그에 따른 실망도 없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우울증'이라는 이름의 행성으로 인한 재앙의 불안함을 영화의 주요 소재로 사용한 것이 여러가지 측면에서 효과적이었다고 생각된다. 어쩌면 이것이 그 동안 내가 알던 라스 폰 트리에의 방식과는 조금 빗겨나 있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여기에는 최근작 '안티 크라이스트'를 아직 보지 못한 것이 매우 크다), 우울증이라는 주제의 시각화에 있어서 매우 인상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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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저스틴'에서는 대저택에서의 성대한 결혼식을 맞이한 신부 저스틴의 우울한 심리를 주목한다. 사실 저스틴의 심리 상태가 모든 관객에게 동의를 얻기는 쉽지 않다. 정상적인 맥락으로 보자면 오히려 이렇게 여러 사람이 동원되어 준비한 결혼식날 아무 이유없이 계속 망쳐버리는 신부 때문에 사태를 수습해야 하는, 그녀의 언니 클레어나 클레어의 남편 존 (키퍼 서덜랜드) 그리고 인생에 가장 중요한 날을 망쳐버린 신랑 마이클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의 입장이 오히려 더 와닿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라스 폰 트리에는 철저히 저스틴 개인이 처한 우울함에 집중한다. 이 결혼식 자체를 자신을 옭아매는 사슬처럼 고통스럽게 느끼고 있는 저스틴의 심리를 너무나 거창한 식순의 결혼식과 교차하여 더 극대화 시킨다. 이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쉽게 공감을 받기 어려운 저스틴의 심리를 좀 더 관객에게 표현하고자 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결혼 예식 속에서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을 때와 홀로 남았을 때의 저스틴의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녀 내부의 우울함을 더 디테일하게 표현한다. 우울함이라는 존재가 어느 순간부터 서로 간의 관계 속 작용이 통하지 않는 순간까지 치닫는 과정을 저스틴의 하룻밤을 통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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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 폰 트리에는 1부의 저스틴을 그리면서 모두 정상적인 사람들 가운데 홀로 문제를 겪고 있는 한 사람을 이야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즉, 반드시 주인공 주변의 이상한 상황이 주인공을 조여들고 있다고 하지 않고서도, 주인공이 처한 심정을 - 혼자만 느낄 수도 있는 - 표현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한 발 양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저스틴의 시각에 근거한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속 저스틴과 주변 인물들 간의 관계는 이제 문제가 터져나오는 시점이 아니라, 이미 서로 포기한 단계에 있다. 즉, 그것이 우울함에 빠져버린 저스틴의 개인적 시각에서 비롯된 것일지는 몰라도, 이미 개선의 여지보다는 무기력해 놓아버리기 만을 서로 바라고 있는 그런 관계 말이다. 영화는 바로 이렇게 매말라버린, 더이상 좋아질 것 같지 않고 그냥 서로 포기하는 편이 낫겠다 싶은 (하지만 포기를 권할 의지조차 증발해버린) 무기력한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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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클레어'에서는 더 무력해져 버린 저스틴을 감싸 안은 언니 클레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1부가 저스틴의 우울함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2부는 클레어의 불안함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행성 '우울함 (Melancholia)'을 두고 서서히 커져가는 불안함이 결국 우울함(저스틴)에게 마저 잠식당하게 되는 과정을, 아주 조용히 하지만 극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평소 자주하는 이야기이지만, '불안함'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영화는 행성이 점점 다가오는 와중에 아무것도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이들의 매우 현실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실 우리는 수많은 재앙영화를 통해 주인공들이 직접 지구의 위기를 해결한다거나 극적으로 기적 같은 일들을 만들어 내 모두 목숨을 구하는 경우에 익숙해져 있지만, 현실은 아마도 이 영화와 거의 같을 것이다. 2부 '클레어'의 이야기는 1부 '저스틴'과는 달리 스스로 무기력함에 빠져버린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자신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에 놓여버린 인물을 통해, 같지만 다른 두 개의 우울함과 불안함에 대해 들려준다. 그래서 2부에 등장하는 저스틴이 마지막 '멜랑콜리아'를 대면하며 클레어을 감싸는 장면은 말로 형용하기 힘든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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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내면에도 우울함이라는 것이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멜랑콜리아'가 전개될 수록 재앙이 다가오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과는 다른 이유로 가슴이 조여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는 여러가지 방법과 메시지로 깊은 인상들을 주는데 지난해 '트리 오브 라이프' 이후 이 같이 압도되는 느낌을 주는 작품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멜랑콜리아'는 라스 폰 트리에의 다른 작품들처럼 다시 보기는 힘겨운 작품이지만, 그래도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가장 다시 보고 싶어지는 (극장을 나오면서 바로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가 생길 줄은 몰랐다) 작품이기도 했다. 아...



1.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안티 크라이스트'를 볼 용기가 생겼어요.

2. 본래 '저스틴' 역할에는 페넬로페 크루즈가 캐스팅 되었었더군요. 그런데 '캐리비안...' 때문에 하차했다고. 그래서 인지 엔딩 크래딧 스페셜 땡스란에 그녀의 이름이 가장 먼저 등장합니다. 페넬로페 크루즈가 저스틴을 연기했다면 커스틴 던스트의 버전과는 전혀 다른, 또 다른 '멜랑콜리아'가 되었겠네요.

3. 극중 클레어의 저택으로 등장하는 곳의 경우, 핀처 판 '밀레니엄'의 삭제 장면에 등장한 그 곳과 동일한 곳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네요;

4. 전 사실 오페라는 잘 모르지만, 이렇게 영화와 연결되었을 때 깊은 인상을 받게 되면 언젠가는 제대로 섭렵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번 영화 사운드트랙에 쓰인 '트리스탄과 이졸데' 처럼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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