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나쁜 놈이 더 잘 잔다 (A Good Night Sleep for THE BAD, 2009)
폭력과 사회가 만들어낸 청춘의 자화상


이미 몇 번의 관련 포스팅을 통해 밝혔던 것 처럼 이 영화 <나쁜 놈이 더 잘 잔다>는 연출을 맡은 권영철 감독님과의 개인적인 친분으로 인해 이번 부천영화제에서 가장 기대를 했던 작품이었으며, 조금이나마 오늘 이렇게 영화제를 통해 관객들에게 선보이기 까지의 어려움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영화제를 통한 최초의 공개가 더더욱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 상영직전 상영관 밖에서 감독님과 잠깐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확실히 자신이 연출한 첫 번째 장편영화가 처음 관객들에게(배우들에게도 처음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공개되는 날이라 그런지 분명 긴장되 보이는 모습이었다. 사실 감독님에 비하면 천 분의 1도 안되겠지만 극장안이 컴컴해지고 '나쁜 놈이 더 잘 잔다'라는 타이틀이 스크린 가득 펼쳐지니 나도 덩달아 무척 흥분이 되었다. 그렇게 90분 남짓 진행된 영화는 장르영화적 성격이 짙은 영화일 것이라는 본래 예상과는 달리 폭력과 가족 그리고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던 한 편의 드라마였으며, 무엇보다 비슷한 메시지와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영화들 과는 달리 주인공 캐릭터에게서 다른 희망을 엿볼 수 있었던 신선한 영화이기도 했다.


ⓒ 제1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영화는 아마도 마지막에 임박한 장면이 아닐까 생각되는 자동차 사고 장면으로 시작된다. 윤성(김흥수)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가지고서는 돈이 든 것으로 보이는 큰 가방을 가지고는 함께 있던 영조(오태경)를 따돌리고 길가로 나온다. 멀리서 차 한대가 오자 타고가려고 하지만 차는 서지 않고 그냥 가버린다. 그러자 윤성은 이렇게 한 마디 한다. '에이씨, 뭐 타고 가지?'. (이 대사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인상깊게 와닿았는데 나중에 한번 더 등장한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처음 등장하는 서울 근교 어느 동네 쯤으로 보이는 황량한 로케이션 장소를 보는 순간, 일단 참 장소 선택이 탁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핏 보면 <살인의 추억>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그 들판을 떠올리게도 하는 곳이었는데, 서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찾아볼 수 있을 법한 풍경이었지만 그 황량함과 영화 속 주인공이 처한 현실이 잘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사실 스틸 컷이 공개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 작품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들의 대한 신뢰는 그리 크지 않았었다. 하지만 스틸 컷이 공개된 이후에는 특히 김흥수 씨에게서 '살아있는 눈빛'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영화 속에서도 이런 그의 혼란스러움과 절박함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동안 김흥수 씨가 출연한 작품들을 많이 보진 못했지만 확실히 이번 작품을 통해 더 다양한 스펙트럼의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그가 연기한 '윤성'이라는 캐릭터는 이렇게 피범벅이 되는 대부분의 캐릭터들과는 아주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단순히 모든 것을 다 걸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캐릭터가 아니라 무언가 계속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부분이 남아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우와는 다르게 그저 내던지는 것 만으로는 표현이 어려운 부분이 분명 있었을 듯 하다. 그런 면에서 김흥수 씨의 연기는 바로 그런 캐릭터를 발견할 수 있게 할 만큼 인상적인 연기였으며, 그 청춘의 불완전함을 비교적 잘 표현해 냈다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보는 내내 가장 놀라웠던 것은 '영조' 역할을 맡은 오태경 씨의 열연이었다. 아역 배우때의 작품들부터 적지 않은 출연작을 보아왔던 입장에서 이번 그가 연기한 '영조' 캐릭터는 너무 다른 모습이라 이질감 마저 느껴질 정도였는데, 불량스러운 표정과 말투에 나이를 몇 살은 더 먹은 듯한 그 얼굴은 과연 오태경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마치 <똥파리>에서 주인공을 연기한 양익준 감독의 모습에서 전혀 '양익준'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처럼, '영조'에게서는 전혀 '오태경'을 찾아볼 수 없었던 것 같다.


ⓒ 제1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다음 스틸컷이 나오기까지 이 단락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까 줄거리를 얘기하면서 언급한 '에이씨, 뭐 타고 가지?'(정확한 건진 모르겠네요)는 후반 부에도 다시 한번 등장하는데, 이 대사는 윤성이라는 캐릭터와 맞물려 상당히 생각해볼만한 거리를 던져주었다. '어떻게 가지?'가 아니라 '뭘 타고 가지?'라는 건 수단의 개념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청춘의 자화상은 뭘 해야 좋을지 모르는 혼란의 시기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은 있지만 사회와 가족을 비롯한 본인 외적인 요소들 때문에 갇혀있는, 그래서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수단(=길)을 찾고 있는 청춘이라 할 수 있겠다. 윤성은 감옥에 가 있는 아버지 그리고 동생 둘과 함께 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유학을 계획하고 있고, 동생 해경(조안) 역시 지금의 가정환경을 벗어나기 위해 교내 선배들에게 아부해가며 연예인을 꿈꾸고 있다. 이렇게 어찌보면 해방과 더 나은 삶을 위해 길을 찾던 주인공들에게 어두운 그림자는 결국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일 수 밖에는 없으며 이 길을 선택하면서 윤성은 더,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놓인 주인공들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강수를 두게 되는 영화들과 <나쁜 놈이 더 잘 잔다>의 윤성의 캐릭터는 분명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앞서 피범벅이 되 돈가방을 들고 빠져나가기 위해 차를 세우려던 윤성은 다른 영화의 비슷한 상황이었다면 총으로 운전자를 위협한 뒤 차를 뺏어탈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는다. 그리고 은행을 털고 나서 자신만 홀로 남겨져 돈을 독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굳이 돌아와서 다시 본래 계획했던 대로 몫을 나누고는 헤어진다. 그리고 가장 핵심은 보통 같았으면 이런 지옥같은 현실을 탈출하기 위해 홀로 홀연히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보통이지만, 윤성은 해경이 원하지 않는대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족들을 다 데리고 해외로 떠나려고 한다. 이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핵심 포인트라고 생각하는데 영화가 끝나고나서 감독과의 대화 도중 비슷한 질문에 대한 감독의 대답에, '아!'하는 외마디 탄성과 함께 영화를 보는 나조차 굉장히 모든 것에 무뎌져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윤성의 행동을 설명하는 단어들을 다시 보자면 '굳이 돌아와서' '원하지 않는대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건 분명 선입견이 가미된 표현들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우리는 흔히 영화를 볼 때 주인공에 공감을 하게 되면, 그리고 이 영화처럼 종극으로 치닫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어느 정도 그 과정 중에 겪게 되는 행동들에 대해 적당히 묵인하고 넘어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불우한 가정환경과 어려운 경제사정을 극복하기 위해 무리한 선택을 할 수 밖에는 없었던 캐릭터들에 대해 모든 것을 너무 쉽게 용인해주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극한의 상황에 놓인 주인공이라고 모두 나쁜 이들은 아니다, 아니 나쁜 선택을 쉽게 하는 것은 아니다 혹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해서 꼭 더 나쁘게 자란다는 법은 없다 라는 당연한 명제를(하지만 다른 편에 놓인 명제에 비해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보여주려 하고 있다. 즉 다시 말해 윤성이 하는 위와 같은 행동들은 '굳이'나 '불구하고'가 아니라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당연한 측면이 분명 있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만연해있는 잘못된 것들에 의해 당연한 것을 너무 잊고 사는 것이 이런 캐릭터와 이야기에 잠시나마 당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영화 중간에도 그랬지만 영화가 끝난 뒤 감독의 대답을 직접 듣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때리는 듯한 멍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윤성은 극한으로 치닫지만 그 과정 속에서 그가 지키려고 했던 가치들은 아마 '잘 자는 나쁜 놈'들은 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싶다.


ⓒ 제1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순전히 개인적으로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 가운데 삼촌으로 등장하는 캐릭터와 그를 둘러싼 에피소드의 분위기였는데, 이것이 마치 감독님과 내가 예전에 자주 함께 즐기던 XB0X360 게임 GTA4의 분위기가 느껴졌다는 점이다 ㅎ 특히 '삼춘'이라는 존재는 이 게임에 비유하자면 '커즌(cousin)'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만약 이 영화가 라틴계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면 좀 더 GTA분위기가 나지 않았을까 싶다. 그 삼촌의 하와이안 셔츠도 이런 느낌에 크게 한 몫을 하기도 했다 ^^;

하나 아쉬운 점을 들자면 영화에 사용된 음악이 조금은 분위기를 해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좀 더 심각하고 진지하게도 꾸려갈 수 있는 장면에서 약간 재미를 유발하는 소품스러운 음악이 삽입된 장면이 몇몇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계속 인물들에게 집중하고 있던 터에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지는 음악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래도 아는 사람이라고, 객관적인 평가를 스스로 했다고 자평하기는 어려운 부분이지만, 젊은 배우들의 열연을 맛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던 작품이었으며, 우리가 잊고 지내던 이런 종류의 영화 속 캐릭터에 대한 진정을 새삼 떠올려보게 했던 의미있는 작품이기도 했다(개인적으로는 이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아무쪼록 이번 부천영화제에서 좋은 반응과 입소문이 흘러나와 꼭 개봉관에서도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나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1. 아, 본문에는 미처 못썼는데 감독님 평소 스타일대로 주옥같은 대사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스크린에서도 여전하시더군요! '자러서 나무나 되라' 이런건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아요 ㅎㅎ

2. 그래도 조금 아는 사람이라고 엔딩 크래딧 마지막에 '권영철 감독 첫번째 작품'이라는 크래딧을 보니 마음이 찡하더군요 ㅠ

3. <나쁜 놈이 더 잘 잔다> 화이팅 입니다! 나중에 기회되면 인터뷰(?)라도 하고 싶네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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