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문 (New Moon, 2009)
속편이란 사실을 망각한 속편


<트와일라잇>은 호불호가 많이 갈리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제법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 로맨스가 주가 되기는 했지만 뱀파이어라는 설정은 기존 로맨스 영화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장면과 요소로 흥미를 불러 일으켰고, 사가(Saga)의 첫 작품인 만큼 속편을 기대하게 하는 등장인물이나 이야기도 많아 그럭저럭 즐길만한 작품이었거든요. 사실 <트와일라잇>은 개봉 당시 극장에서 보지 못하고 블루레이 리뷰를 위해서 최근에야 보게 된 흔치 않은 작품이기도 한데, 이와 같은 전작의 흥미로움과 더불어 드디어 무언가 본격적일 것만 같은 예고편 때문에 더더욱 트와일라잇 사가의 두 번째 작품 <뉴 문>을 기대하게 되었지요. <트와일라잇>이 거의 기대가 없던 반면, <뉴 문>은 개봉이후 터져나온 수많은 악평들 속에서도 기대를 했던 작품이였는데, 결론적으로는 저도 그 아쉬움들 속에 의견을 좀 보태야 할 것 같습니다. 악평까지 할 이유야 없지만, 어쨋든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그리고 속편이 보여주어야 할 미덕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어정쩡한 또 다른 서론이 되어 버린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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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의 감독이었던 캐서린 하드윅이 왜 하차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뭐 캐서린 하드윅이 연출을 했더라도 반드시 나아지리란 보장은 없다손쳐도, 크리스 웨이츠의 버전보다는 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믿음(?)이 강하게 드는군요), 결론적으로 크리스 웨이츠의 <뉴 문>은 이래저래 아쉬움만 많이 남기게 되었습니다. 어찌보면 크리스 웨이츠의 전작이 <황금 나침반>이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반지 시리즈 이후 뉴라인에서 야심차게 내놓았던 판타지 시리즈였던 <황금 나침반>은 결국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위기에 놓이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황금 나침반>은 어쨋든 대서사시의 첫 번째 작품이었기 때문에 이해하고 넘길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다고 생각되었던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아무리 소개할 것 많고 본격적인 카드는 숨겨두는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라 하더라도 너무한 부분이 좀 있었지만요.

그런데 크리스 웨이츠는 트와일라잇에 와서 무언가 착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뉴 문>은 <황금 나침반>처럼 시리즈의 첫 작품이 아니라 '두 번째' 작품이거든요. 이미 주요 캐릭터와 이 세계관에 대해서는 전편을 통해 대략적으로 설명이 끝난 상태라 이번 속편에서는 무언가 이를 배경으로 본격적인 사건과 갈등이 벌어져야 하니까요. 그런데 <뉴 문>은 여전히 더딥니다. 전 남들 다 지루하다는 영화도 별 내색없이 척척 잘 보는 편이지만 <뉴 문>의 스토리는 참으로 더딥니다. 더디더라도 꼭 깊게 다뤄야 할 이야기가 있는 반면, 한 번의 설명으로 끝을 낼 수 있는 이야기가 있기 마련인데, 벨라를 뱀파이어로 만들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갈등하는 에드워드나, 벨라에 대한 마음으로 갈등하는 제이콥의 마음 등은 대부분 전작을 통해 이미 관객들에게 다 맛을 보여주었거든요. 물론 전작에서 이 갈등요소들이 모두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연장선상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두 손 들어 환영하지만, 무언가 본격적인 것이 나와야할 속편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이야기의 전개 속도가 너무 느리고 반복되는 느낌이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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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단락에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실 <뉴 문>을 기대하게 한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늑대인간'의 등장이었습니다. 전편에서는 그저 그런 존재들이 있다는 것 정도일 뿐 활동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던 늑대인간들과 컬렌가로 대표되는 뱀파이어들과의 대결 구도는 벨라를 둘러싼 로맨스를 중심으로 충분히 보여주고 들려줄 이야기가 많을 꺼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제이콥이 늑대인간으로 자각하는 것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 이들 무리의 활동도 사실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 화려한 복근이 아까울 정도로요(물론 늑대가 되면 그 복근은 크게 효용이 없는 것도 같지만 ㅎ). 결국 다른 뱀파이어인 로랜트와의 액션 시퀀스만 한 건 있을 뿐(그 마저도 회상 씬으로;;) 이 늑대인간 시퀀스는 적어도 이번 작품에서는 소개 이상의 이야기는 제공하고 있지 못합니다. 늑대인간과 뱀파이어간이 전쟁이라도 기대했던 저로서는 전쟁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더 깊은 이야기가 나올 줄로만 알았었는데, 너무 서로의 경계만을 '충실히' 지키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더군요.

아로(마이클 쉰)로 대표되는 이탈리아의 강한 뱀파이어 일족의 이야기도 너무 허무하게 다뤄진 감이 없지 않습니다. 극중 자막으로는 '배신'으로 다뤄지긴 했지만 배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소박하기까지한 갈등이었으며(사실 갈등이란 것 자체가 없었죠),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를 매우 직접적으로 가져왔다고는 하나, 잘못 알게된 벨라의 죽음 때문에 자신을 죽여줄 대상을 찾아 더 강한 뱀파이어를 찾아간다는 이야기는(하긴 벨라가 본인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했으니 복수할 대상이 없죠;;;) 설득력이나 극적인 측면에서 많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구요. 뱀파이어 일족, 그리고 이들의 역사와 전통에 관한 더 깊은 이야기와 이를 사랑 때문에 배신하려는 에드워드와 이를 돕는 컬런가이 이야기가 펼쳐졌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대부분의 관객들이 못알아본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극장 내에 아무런 수근거림이 없더군요;;) 왜 나왔는지 모르겠는 다코타 패닝처럼, 이 이탈리아 시퀀스는 또 다른 소개만을 남긴채 아무런 본격적인 것도 보여주지 않은채 끝나버리더군요. 결론적으로 많이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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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리즈의 경우 시리즈가 거듭될 수록 '과연 마지막에 이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될까?' '이 문제는 도대체 어떻게 해결되려고 이렇게 몰고가나'하는 의문과 기대가 동반되어야 계속 볼 맘이 생긴다고 할 수 있을텐데, <뉴 문>은 <트와일라잇>에서 생겼던 기대마저 사그라들게 만든 부분이 없지 않아 있는 듯 합니다. <뉴 문>이 만약 사가의 첫 번째 작품이었다면 괜찮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크리스 웨이츠가 캐서린 하드윅의 전작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다시 쓰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쨋든 전작에 이어 속편을 보게 된 대부분의 관객 입장에서는, '어, 도대체 본격적인 이야기는 언제 하려고 그러지?'하는 의문을 남긴 아쉬운 작품이었습니다.


1. 올해 처음으로 극장에서 크래딧이 모두 끝나기 전에 극장을 나왔습니다. 물론 그래도 맨 마지막으로 나오긴 했지만요.
2. 시리즈의 다음편인 <이클립스>는 <하드 캔디>와 <30 데이 오브 나이트>를 연출한 데이빗 슬레이드가 연출을 맡을 예정인데, 기대반 걱정반이네요. 차라리 손발이 좀 오그라들더라도 시리즈의 미덕이려니하고 캐서린 하드윅을 그대로 밀고 갔으면 어떨까도 싶네요. 개인적으로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연출했던 알폰소 쿠아론이나 데이빗 예이츠였다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싶지만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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