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핏 (Whip It, 2009)
뻔하지만 재미있는 세가지 이유


엘렌 페이지에 저 가인스러운 아이라인의 포스터를 본 순간, 그리고 감독인 드류 베리모어를 비롯해 영화 속에 터프한 '언니'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 <위핏>은 쭈욱 기대작이었다. 사실 드류 베리모어의 첫 연출작이라는 점에서 기대한 것보다는 엘렌 페이지를 비롯한 수 많은 여자 캐릭터를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더 기대되는 포인트였을 것이다. 드류 베리모어는 연출작은 처음이지만 이전 몇몇 작품의 제작자로서 나선적이 있어서 이런 감독으로서의 행보가 크게 낯선 것만은 아닌데, 결과적으로 '엇, 드류 베리모어에게 이런 점도 있었어?'라기 보다는, '딱 봐도 드류 베리모어 스타일이 묻어나네'하고 느낄 정도의 통쾌하고 깔끔한 가족 드라마였다.



Babe Ruthless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위핏>의 줄거리는 사실 이보다 더 간단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흔한 소녀의 성장드라마이다. 이제 막 소녀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려는 찰나에 놓인 주인공은, 애정 문제로 진로 문제로 그리고 부모와의 문제로 갈등을 겪는다. 여기에는 우리가 너무도 많이 보아왔던 멋진 밴드 보컬의 남자친구, 시골 작은 마을 소녀로서 이곳을 빠져나가 더 큰 세상으로 나가고픈 욕망,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이것저것 다 해보지도 못했는데 한가지 길만 가라하는 부모님과의 갈등이 또 다시 등장한다. 여기서 조금 다른 점이라면 소녀의 분출구 중 하나가 조금은 특별한 '롤러 더비' 경기라는 점일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이 영화는, '과연 소녀가 나중에 어떻게 될까?' '더비 경기에서 우승할까?'라는 점에서 보게 된다면 정말 재미없는 영화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위핏>은 뭐가 재미있는걸까? 개인적으로 그 첫 번째로는 캐릭터를 들 수 있겠다. 이 작품은 하나같이 몹시도 만화 같은 캐릭터들로 채워져 있는데, 이들에게 영역 설정을 적절하게 해준 감독의 연출력을 눈여겨 볼 만 하다. <위핏>의 캐릭터들은 분명 만화같은 캐릭터들이지만, 별로 만화같은 행동들을 저지르지는 않는다. 그 말은 즉슨 좀 독특해 보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만화처럼 오버스런 캐릭터로 나아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헐 스카우트' 팀을 비롯해 상대팀원들도 그렇고, 더 오버하여 완전히 스포츠 만화로 이어질 여지가 많았지만, 이들은 어쩌면 자신의 캐릭터를 제대로 다 소개하지도 못한채 (그런데 이렇게 되었다면 가족 영화로서의 동력을 떨어졌을지 몰라도, 다른 한편으론 더 재밌는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존재하고 있는데, 별로 결정적인 장면 없이 항상 '팀'으로 등장한다는 점은 (개성은 부여하되 항상 팀으로만)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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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는 역시 이런 캐릭터들을 잘 살린 수 많은 배우들을 들지 않을 수 없겠다. 주인공을 맡은 엘렌 페이지에게서는 아직도 <주노>의 그림자가 남아 있긴 하지만, 좀 더 엘렌 페이지만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달까. 엘렌 페이지가 언제쯤 소녀 이미지에 기대지 않은 캐릭터로 다가올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어쨋든 현재 엘렌 페이지의 소녀 이미지는 언제든 환영이다. 많은 여배우들 가운데 가장 반가운 배우는 줄리엣 루이스였다. '메이븐' 역할을 맡은 줄리엣 루이스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망가지면 망가질 수록 지나 데이비스를 떠올리게 하는데, 거칠고 '찌든(?)' 언니 역할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메이븐 역할은 악역으로 빠지기 쉬운 캐릭터였으나 이 정도의 롤을 부여한 것은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탁월했다 여겨진다.

<미스트>의 '그랜드 캐년'(!) 마샤 게이 하든 여사 역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는데, 그녀의 특유의 무서움과 그 이면에 따듯함을 동시에 보여준 캐릭터로서 뻔한 가족영화가 되지 않는 중요한 캐릭터라고 생각된다. 남편 역할을 맡은 다니엘 스턴의 경우 다들 알아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홀로 집에>의 그 도둑인데, 나이가 들어서도 아직까지 그 천진한 표정이 남아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만약 그가 하지 않았다면 존 굿맨이 맡았을 역할로 생각되었을 정도 ㅎ
<데스 프루프>의 그녀 조 벨 역시 반가운 배우였는데, 그녀가 출연했길래 당연히 스턴트에도 관여를 했을 줄 알았는데 (물론 어느 정도는 했겠지만), 크레딧을 보니 온전히 배우로만 출연을 했더라. 힙합 아티스트로 더욱 유명한 이브도 있는 듯 없는 듯 했고, '버드맨' 역할로 나온 카를로 알반은 어디서 봤는가 했더니 TV시리즈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NBA저지를 항상 입고 있던 그였더라. 드류베리 모어나 크리스틴 위그를 비롯해 여기 언급하지 않은 많은 조연배우들이 많든 캐릭터 덕에 한층 재미가 배가 되었던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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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는 뻔하지만 감동적인 연출과 영화에 사용된 음악들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을 보고도 나름 재밌다고 생각했던 나여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뻔한 가족 드라마의 몇몇 순간에서는 찡해지기도 했는데 이런 부분을 과잉으로 몰아가지 않고, 그 정도로 두는 연출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영화 삽입곡들은 사실 맨처음 드류 베리모어에게 기대했던 작품이 있었던 것처럼, 음악 역시 '아마도 이런 분위기의 곡들이 나올 것 같다'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선곡에 반가움이 먼저 들었다. 'The Ramones'와 'Clap Your Hands Say Yeah'를 비롯해 특히 영화의 후반 하이라이트 경기 부분에 'the Go! Team'의 익숙한 곡이 들려왔을 땐 박수라도 칠 뻔했다 (그런데 기억이 정확하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분명 기억엔 'The Power Is On'이었던 것 같은데 사운드트랙에는 'Doing It Right'가 수록되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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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드류 베리모어의 첫 연출작인 <위핏>은 이 정도면 성공이다. 그녀는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차기작을 통해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더욱 펼칠 수 있을지 기대된다.


1. 스페셜 땡스란에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름을 보니 왠지 뿌듯하더군요 ^^
2. 그런데 이 '롤러 더비' 경기는 실제로 북미지역에 존재하는 건가요? 살짝 궁금해지더군요.
3. 크레딧의 맨 마지막 프로덕션 이름을 보고 또 한번 재미있어 했네요 ;;
4. 상하는 정확하지 않아도 좌우는 확실히 짤린 화면비였는데, <더 문>에 이어 두 번째군요 윽..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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