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 2009)
시대의 불안과 트라우마


마틴 스콜세지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콤비의 신작 <셔터 아일랜드>는, 스콜세지 - 로버트 드니로 이후 최고의 감독과 페르소나 콤비로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는 이들의 신작이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관심을 갖게 하는 작품이었다. 더군다나 <미스틱 리버>, <곤 베이비 곤>의 원작자 데니스 르헤인이 쓴 유명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점이었는데, 원작을 읽지 않은 입장에서 스크린으로 먼저 만나게 된 <셔터 아일랜드>는 이미 많은 이들이 언급한 것처럼 히치콕식 스릴러 연출과 큐브릭을 연상시키는 미장센으로 담아낸, 거장 마틴 스콜세지의 수작이었다(개인적으로는 걸작이라 불러도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요 근래 극장에서 본 작품들 가운데 가장 몰입도 있고, 가장 영화 본연의 미덕에 충실한 작품이었으며, 근래 본 연기 가운데 또 하나의 절정의 연기를 만나볼 수 있었던 매우 만족스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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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연방 보안관인 테디 다니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이날 처음 만난 자신의 파트너 척(마크 러팔로)과 함께, 셔터 아일랜드에 위치한 '애쉬클리프' 정신병원에 환자 실종사건을 조사하러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탈출구라고는 선착장에서 배를 타는 것 외에는 없는 이 외딴 섬에서 어떻게 환자가 도망치게 혹은 실종되었는지 의문이 많은 가운데, 테디는 이 정신병원 시설과 관계자들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며, 그 안에 자신의 개인적인 조사 역시 진행하게 된다.

영화의 오프닝의 타이틀 텍스트라던지 애쉬클리프를 조명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이라던지, 'The Band'의 기타리스트 출신인 음악감독 로비 로버슨의 음산하고 무거운 음악 등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1950년대 미국의 보스턴 셔터 아일랜드로 이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미장센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보자면, <셔터 아일랜드>의 의상과 미장센은 너무도 영화적이라 매혹적이다. 당시의 코트와 의상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배우 중 하나인 마크 러팔로의 코스츔은 그 자체로 고증을 넘어선 매혹이 되버리고, 아내가 골라준 촌스러운 넥타이를 코트에 어울리지 않게 매치한 디카프리오의 모습 역시 영화 초반 연대를 알리는 텍스트 없이도 이 작품이 어느 시대를 그리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사실 몰입 잘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나는, 코트에 모자를 눌러 쓴 마크 러팔로를 보는 순간 이미 몰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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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과 미장센이 시대의 공기를 담으려고 애썼다면, 시종일관 긴장감을 전하는 스코어는 장르 영화로서의 장점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시대의 불안과 트라우마라는 영화 뒷 편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어 든다. 개인적으로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마크 러팔로의 등장만으로 몰입했던 터라 그 이후에도 심하게 몰입해 영화가 반전을 제공했을 때에도, 그 이후를 이야기했을 때에도 모두 다 함께 할 수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스코세지가 풀어낸 <셔터 아일랜드>의 구성은 혼란스럽고 불부명한 구조를 보여주는 듯 하다.

관객들은 죽었다던 테디의 아내가 등장할 때 꿈이나 환상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그녀가 환상 속에서 보여주는 장면과 대사, 미장센 들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쉽게 알아채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테디가 보는 아내의 환상 들은 마치 최근 보았던
찰리 카우프먼의 <시네도키 뉴욕>을 연상시킬 정도로, 어쩌면 이 작품을 더욱 모호하게(하지만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더 좋았던)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영화의 결말로 되돌아 보았을 때 다시 한번 장면 하나하나의 의미를 떠올리게 하는 좋은 영화적 장치들이었다(재미있는 건 <시네도키 뉴욕>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미셸 윌리엄스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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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아래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아주 깊게 몰입했던 터라 결말에 보여준 반전과 그 이후에 영화가 택한 설정도 마음에 들었지만, 사실 이 영화는 반전에만 목숨건 정통 스릴러는 아니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중간에 혼란스런 설정들도 매우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정통 스릴러의 범주로만 따져보아도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캐릭터가 결국 테디 다니엘스 인지 앤드류 레디스 인지를 따져보는 것도 흥미롭고, 맨 마지막에 선택한 삶(혹은 죽음)이 테디로서의 그것인지 앤드류 로서의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다.

스포일러를 표시한 김에 이 영화의 반전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면, 결국 마지막 등대 위에서 들려주는 박사의 이야기처럼 앤드류는 자신의 아이들을 우울증으로 익사시켜 살해한 아내를 자신의 손으로 죽인 것과 나치 수용소의 기억 등이 트라우마가 되어 결국, 테디 다니엘스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냈고 수술이 아닌 진보적인 치료를 추구하던 코리 박사는 이 거대한 연극을 통해 앤드류를 치료하길 시도했으나, 결국 다시 한번 돌아오는 것에 실패한 앤드류에게 포기하고 외적인 수술을 시도할 수 밖에는 없게 된다.

원작에는 없다는 영화 만의 마지막 대사는 이 영화의 반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단초가 되는데, '괴물로 살아가거나 선량한 사람으로 죽거나'라는 대사 뒤에 스스로 수술을 당하는 것을 인지하고 행동하는 앤드류(테디)의 모습은, 이런 극복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고 앤드류(괴물)로서 살아가느니, 가상의 인물인 테디가 되어 모든 것을 잊은 채 사는 것을 (수술) 선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실 결국 앤드류의 환상이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수긍이 가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이 이야기를 테디 다니엘스의 이야기로 보아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조목조목 논리적인 이유를 들어가며 결국 이 모든 것이 음모를 파해치려는 연방 보안관 테디 다니엘스를 막기 위해 병원가 박사가 몰아간 것이라고 보는 설도 완전히 무시하긴 어려운 부분이다. 그 만큼 스콜세지는 각각의 이야기에 논리가 될 만한 설정들을 영화 중간 중간에 직간접적으로 뿌려 놓았다. 이것들은 <셔터 아일랜드>가 재 관람 할 때마다 다른 영화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테디 다니엘스의 이야기로 믿으며 따라가느냐 아니면 앤드류 레디스의 이야기로 따라가느냐에 따라 영화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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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것이 진실인가에 대한 논란은 그 자체로 너무도 흥미로운 이야기거리 이긴 하지만, <셔터 아일랜드>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진실이 무언인가?'에 대한 것은 아니다. 만약 진실에 관해 이야기하려 했다면 이 작품은 혼란스럽게 단서를 풀어놓 되 결말이 알려지고 나서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어야 했고, 깊이 파고들면 들 수록 더 확고한 영화가 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트라우마' 그 자체다. 영화는 반전에 관련된 여러 단초들을 심어 놓은 것과 마찬가지로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시종일관 하고 있다. 테디가 이 일에 자처한 것도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앤드류가 이곳에 있다는 정보 때문이며, 꿈만 꾸면 보이는 환상들(나치 수용소에 쌓여 있는 시체들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과 자신의 아이들을 빨리 구하지 못한 트라우마까지) 역시 모두 테디 내면의 트라우마 들이다. 영화는 한 개인이 트라우마로 인해 어떻게 잠식되어 가고 고통을 겪는지의 과정을 스릴러라는 그럴 듯한 장르에 빗대어 들려준다.

이렇게 개인적인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로 볼 수도 있지만, <셔터 아일랜드>의 트라우마는 개인적인 것 외에 당시 미국 사회의 레드 컴플렉스와 트라우마를 담고 있다. 극중 테디가 겪었던 나치 수용소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때 뿐이며, 공산주의자를 색출해 내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던 당시 미국 사회내의 문제는 영화가 담고 있는 불안으로 바꿔 이야기할 수 있다. 50년대 핵과 냉전 시대의 공포와 의심은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시대의 트라우마를 개인의 트라우마에 빗대어 직간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극중 조지 노이스(잭키 얼 헤일리)와의 대화 중에 '수소 폭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비유는 사실 매우 직접적인 당시 미국사회에 대한 묘사이기도 하다. 내부에서부터 폭발한다는 수소 폭탄의 비유는, 냉전 시대 소련이나 다른 세계로 부터의 공포보다는 메카시즘으로 대표되는 당시 미국 사회 내의 불안과 공포가 더욱 스스로를 잠식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떠올렸던 또 다른 영화는 바로 밀로스 포먼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였는데, 이 작품에도 <셔터 아일랜드>와 비슷한 시대 배경과 정신병원(뇌수술)이라는 설정이 등장한다. 실제 이런 어두운 역사를 갖고 있는 미국 사회를 되돌아 보았을 때, 마치 독일이라는 나라가 '나치'라는 트라우마를 지울 수 없는 것처럼 현재의 미국 사회에서 역시 50년대 메카시즘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치와 공산주의의 정반대에서서 자유를 부르짖었던 자신들에게 나치와 똑같은 어두운 과거는 분명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였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결국 이 영화는 시대의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개인에 빗대어 이야기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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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갈수록 매혹적이다. 1950년대에 빠져든 디카프리오는 당시 고전 헐리웃 영화 속 남자 배우들 처럼, 연극적인 연기를 펼친다. 스콜세지와의 호흡은 한계를 모르고 나아가고 있으며, 이젠 더이상 연기력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실례일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마크 러팔로 라는 배우는 시대극에서 특히 장점을 발휘하는 것 같다. 그 자체가 미장센이 되는 연기에 있어서 마크 러팔로는 참으로 탁월한 재주가 있다. 그 밖에 벤 킹슬리와 막스 본 시도우 같은 베테랑 연기자들이 함께한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무게는 깊어지며, 미쉘 윌리엄스와 잭키 얼 헤일리(아시다시피 <왓치맨>의 '로어셰크'가 바로 그다), 그리고 에밀리 모티머와 패트리시아 클락슨의 연기도 좋았다. 디카프리오가 월등한 롤을 맡고 있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조연급 연기자들의 연기를 맛보는 것도 이 작품의 또 다른 재미다.

여러가지 이유로 마틴 스콜세지의 <셔터 아일랜드>는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다.

1. 벌써부터 얼른 블루레이가 출시되었으면 좋겠네요. 디지털 상영으로 보았는데 영상의 입자 자체가 거친 편이라 칼 같은 선예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어서 블루레이나 DVD가 출시되어 음성해설 트랙이라도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2. 마크 러팔로의 의상을 보며 자연스럽게 <조디악>을 떠올렸는데, 흥미로운건 <조디악>에서 범인으로 의심되었던 배역을 연기했던 존 캐롤 린치가 이 작품에도 소장(부소장?)으로 등장한다는 점이죠.

3. IMDB의 트라비아를 보니 파라마운트에서는 이 프로젝트를 데이빗 핀처와 브래드 피트, 마크 월버그로 진행하려고 했었다는데, 그렇다면 더더욱 <조디악>스러워졌을지도 모르겠군요 ㅎ

4. 오랜만에 스코어에 감동 받았습니다. 감정적 감동이 아닌 영화적 감동이요. 사운드 트랙도 구매해야 겠네요.

5. 글을 다 쓰고 오랜만에 관련 글들을 읽어보며 정말 희열을 느꼈습니다. 영화의 반전을 가지고 각자의 논리들로 풀어놓은 글들을 보는 재미를 이렇게 느낀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6. 아, 또 보고 싶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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