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애듀케이션 (An Education, 2009)
교육, 과정의 중요성


어쩌다보니 연출을 맡은 론 쉐르픽 보다 각본을 쓴 닉 혼비가 더욱 유명세를 탔던 영화 <언 애듀케이션>을 지난 주말 보았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 감독과 주연 배우 정도만 알고 가는 나로서는 (모르면 모르고 볼 수록 최적의 조건에서 관람할 수 있다), 포스터만 보고는 '좀 샤방한 로맨스겠구나' 했는데, 물론 로맨스적인 요소가 없지는 않지만 그 이상의 성장담이었으며 가족과 교육의 굴레를 보면서 의외로 우리내 교육현실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이 작품을 보며 이런 현실을 떠올리게 될 줄은 사실 몰랐다). 여기까지만 보면 '에이, 또 성장이야기야?' 싶은데, 사실 영화 가운데 성장담이 아닌 영화가 어디 있겠느냐만은, 매번 반복되는 성장담(그것도 소녀!)임에도 <언 애듀케이션>은 한 번쯤 또 볼만한 성장담이자, 그 외에 여러가지 요소를 조용히 들려주는 괜찮은 작품이었다.



BBC Films. All rights reserved


이 영화는 소녀의 성장담 이전에 그 소녀가 처한 현실의 상황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61년 영국을 살고 있는 17세 우등생 '제니' (캐리 멀리건)는 보수적인 부모님의 엄격한 통제 아래 옥스퍼드 대학을 목표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제니는 이런 부모님의 기대와 통제 아래 열심히 공부해 매번 1등을 놓치지 않는 우등생이지만, 마음 한 켠에는
'왜 옥스포드에 꼭 가야하나?'라는 의문이 있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만난 연상남 '데이빗' (피터 사스가드)은 17세 소녀 제니가 동경하던 세상을 실현시켜줄 인물로 급 부상하며, 제니는 급속도로 데이빗과 이 새로운 어른의 세상에 빠져들게 된다.

일단 일탈 전 제니가 살고 있던 가정을 살펴보면, 엄격하고 보수적이며 오로지 우등생만을 목표로 하는 듯한 이 가정은 의외로(?) 그리 부유한 편은 아니다. 옥스포드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작은 레슨비 하나하나에 형편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넉넉한 형편은 아니다. 하지만 딸의 인생을 위해 가족 모두가 제니의 교육이라는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 후반부에 좀 더 터져나오지만, 이 가족의 목표(즉 부모의 바램)는 꼭 '옥스포드'는 아니다. 바꿔 말하면 성공적인 삶이며, 그것이 옥스포드 일 뿐인 것이다.



BBC Films. All rights reserved


그런 제니가 탈출해서 만난 데이빗의 세상은 실로 어른의 세상이다. 겉보기에는 하루하루를 살기 위해 (옥스포드를 목표로 매번 압박 속에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치열하기 보다는 유유자적 인생을 즐기며 사는 듯 한 데이빗의 그럴 듯한 삶에 제니는 단번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는 어른이 되고 싶은 17세 소녀 제니의 욕망도 있다. 제니는 데이빗과의 삶을 통해 단숨에 어른의 삶에 물들어 버렸고, 동경하던 삶을 너무 쉽게 이뤄버린 탓에 그 과정에서 배워야할 것들을 놓치고 만다.

그런데 중반까지 영화가 그려내는 데이빗의 삶은 정말 완벽해 보인다. 이 영화를 그냥 데이빗과 제니의 알콩달콩 로맨스로만 가져갔더라도 그럭저럭 괜찮은 영화가 되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이 둘의 묘사는 17세 소녀라는 점을 지워도 충분히 매력적이며, 피터 사스가드가 연기한 데이빗이라는 캐릭터는 느끼함과 귀여움을 고루 갖춘 매력을 선사한다. 멀쩡한 로맨스 영화를 요새 별로 못 본 것도 있지만, 이 둘의 연예를 보면서 오랜만에 그 귀여움에 웃음을 터트릴 수 밖에는 없었다.


BBC Films. All rights reserved

그런데 영화가 후반으로 갈 수록 인상 깊은 것은 알프레드 몰리나가 연기한 제니의 아버지의 이야기였다. 이 캐릭터는 여러모로 한국의 아버지를 닮아 있었다 (1960년대 영국 남자에게서 근래 한국의 아버지상을 보다니;).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딸의 인생은 지금의 자신보다는 나아지게 해야겠다는 일념하에, 성공적인 삶의 목표 (혹은 길)로 알려진 옥스포드 대학에 반드시 제니를 진학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데이빗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듯이, 아버지가 원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딸의 성공'이나 '딸의 편안한 삶'이지 '옥스포드'가 아니다. 그런데 이를 눈치채지 못한 어린 제니는 나중의 아버지의 태도가 급변 했을 때 (사실 한 발 물러서서 보면 급변이라 보긴 어렵지만, 제니의 눈으로 보았을 땐 그렇게 느껴지기 충분했다) 몹시 당황하게 된다. 그래서 더더욱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게 되고,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제니는 한 여름의 꿈과도 같은 바람을 겪고 나서 다시 돌아왔을 때, 자신이 그동안 당연하다고 혹은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금 되돌아 보게 된다. 결국 이런 획일적인 교육과 삶이 싫어서 일탈했던 제니가 바람을 겪고 다시 (스스로) 돌아온 곳은, 또 다시 교육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그렇다고 '부모님 말씀 하나 틀린 것 없다' 라던지, '결국 삶에 순응하며 살아야된다'로 결론짓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영화가 말하려는 것은 결국 돌아왔으니 그 길이 맞는 것이었다가 아니라 교육이라는 것에 본래 의미, 즉 '과정'에서 배우는 것들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BBC Films. All rights reserved


<언 애듀케이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주연을 맡은 캐리 멀리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소녀의 전작들이 무엇이 있나 찾아보았더니 <오만과 편견>과 <퍼블릭 에너미> 정도가 본 작품인데, 어쨋든 이들 작품 속에서 멀리건의 이미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쨋든 이 영화는 캐리 멀리건을 위한 작품임에 틀림 없다. 그녀의 얼굴과 표정연기는 참 유니크한데,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표정과 이미지들을 만들어 낸다. 이 작품으로 단번에 관객들과 평단에 찬사를 받은 그녀의 차기작이 기대된다.

그녀 외에 알프레드 몰리나의 연기가 몰입하는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데이빗' 역할을 맡은 피터 사스가드의 그 영국식 억양이 특히 인상적이었다(배경이 영국이다 보니 다들 영국식 억양을 쓰긴 하지만, 사스가드의 그것이 가장 매력적이더라). 개인적으로 좋았던 것은 <해피 고 럭키>의 샐리 호킨스의 깜짝 출연이었는데, 전혀 다른 인상이긴 했지만, 워낙에 인상적인 페이스라 단번에 알아보겠더라. 그녀의 모습을 본 건 의외의 수확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BBC Films 에 있습니다.





+ Recent posts